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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렙 영웅님께서 귀환하신다!-165화 (164/1,559)

# 165

만렙 영웅님께서 귀환하신다!

- 7권 14화

수많은 시선들이 불편할 정도로 날아들었지만 정작 내게 다가와 적의를 표하는 이들은 극소수였다.

오염이 아직 번지지 않은 숲지나 주거지의 경우엔 아직도 아름다운 모습을 유지하고 있었다.

-이 좁게 남은 구역이 유일하게 상위 정령을 소환할 수 있는 곳인 게지.

엘프들의 숲은 정령 에너지가 충만했다.

정령의 동반자는 엘프.

엘프의 동반자는 정령이라 할 만큼, 정령이 많은 곳엔 엘프가 존재했고 엘프가 많은 곳엔 정령이 모여들었다.

사전 작업은 중요하다고, 엘프들과는 별개로 나는 이 숲을 이 잡듯이 돌아다니며 상황을 직접 확인했다.

의술이건 무엇이건 잘못되고 뒤틀린 건 신중하게 확인한 뒤에 해결해야 했다.

"정령술이라는 건 말이야. 자연에 있는 정령 에너지가 풍부할수록 소환 확률이 올라가."

-그대에겐 사실 의미 없지 않는가?

"왜 없어, 소환 성공 실패를 떠나서, 어떤 정령이 불려 나오느냐가 달라지는데."

같은 하급 정령도 순도가 높은 정령과 불순물이 많은 정령이 존재했다.

간단히 표현해서 1급수 물과 5급수 물의 차이가 있듯, 정령 또한 그 차이가 분명 존재했다.

"정령왕은 그런 게 없지만 최상급 정령까지는 미약하다 해도 그 차이가 있어."

아주 작은 차이.

기왕지사 할 거면 제대로 해야 하지 않겠는가.

[아파.......]

오염된 정령이 머무르는 나무의 껍질에 손을 올린 뒤 미약하게 신성력을 끌어올렸다.

환자를 앞에 두고 실험하는 건 할 짓이 아니긴 하지만.

"조금만 참아볼래?"

[인간....... 믿을게.]

[5급 성마법]

[정화.]

[아아아악!!]

우웅!!

백광색의 휘황찬란한 빛이 내 손끝을 타고 나무에 스며들었다.

하지만, 변화는 전혀 없었다.

한 가지, 정령의 비명만이 들려왔다.

오염이라는 명제를 깔고 있다면 이정도 정화 마법을 걸었을 때 최소한 반응이라도 생겨야 했다.

-전혀...... 반응이 없군.

"말기에 이른 정령의 오염은 신성력으로 해결 못한다더니. 진짜였네."

계열이 달랐다.

일리나의 다크나이트 화를 해결할 때에 나는 분명 사령마나를 이용했었다.

그렇듯, 각기 힘에는 고유의 코드라는 게 존재했다.

-애초에 정령마나는 마나나 신성력, 혹은 사령마나가 변하여 만들어지는 힘이 아닌가?

내가 정령마나를 따로 끌어 모으지 않는 이유가 그것이었다.

"정령마나랑은 조금 다르다고 해야 하나."

살점처럼 일그러진 껍질에 손을 올린 뒤 이번에 정령마나를 끌어올렸다.

"오염은 정령의 문제야. 정령의 문제는 정령의 힘으로 해결해야지."

내가 만능인 줄 아냐?

-그대가 못한 게 뭐가 있는데. 이 무적 치트나 쓰고 사는 사기꾼 같으니.

페르세르크가 눈을 곱게 흘기며 쏘아붙여왔다.

"엄밀히 말하자면, 정령마나는 정령의 연료야. 좋은 예를 들어줄게."

정령 친화력은 운전 실력, 정령마나는 말이라 할 수 있었다.

그리고, 정령은 마차.

정령마나를 이용해 정령의 힘을 끌어내면 정령이 움직이는 것이다.

"이 오염의 정화는 마차가 움직여야 뭘 해볼 수 있어. 마력이 낮으면 무거운 마차를 끌 수 없는 거랑 비슷한 원리야. 정령마나에 간이 정령 마법을 응용해서 해줄 수 있는 건 오염의 진행을 살짝 늦춰주는 것 정도?"

그것도 나 정도로 마나가 많아서 무식하게 밀어 넣어야 아주 조금 효과를 보는 정도겠지만 말이다.

-쓸데없이 디테일하군.

"세상에 디테일하지 않은 힘이 어디 있어."

단순히 말 몇 마디로 모조리 설명이 가능하다면.

그런 게 존재한다면 그게 정말로 신의 기적이지.

예를 들어 내 몸에 새겨진 성마법, 남의 아공간에 멋대로 등급을 책정하고 락을 걸어버리는 것.

이런 것들.

도저히 내 머리로는 이해할 수 없는 현상.

모든 질병은 차근차근 확인해야 하는 법이다.

만약 확신하지 않은 상태로 정령을 소환해서 정화했다가.

그게 트랩이 되어버린다면?

개쪽도 그런 개쪽이 없으리라.

"이봐."

이윽고 나는 나를 감시하기 위해 따라붙어 있던 한 젊은 엘프를 불렀다.

"뭐냐, 인간."

상당히 적대적이었지만, 일정 이상의 무례는 범하지 않았다.

유리아가 모두를 모아놓고, 했던 한마디 때문이었다.

[저는 이곳 달의 숲 주민 여러분들이 은혜와 원수를 구분 못하는 후안무치한 존재는 아니길 바라요.]

당연 내가 결계를 박살내버린 것 때문에 상당히 반발이 있긴 했지만, 뒤 이어지는 내 한마디 덕분에 일단은 상황을 종식시킬 수 있었다.

'까짓것, 그거 새로 만들어주마.'

보통 같으면 개소리 하지 말라며 코웃음을 칠 소리였지만 유리아는 내가 저지른 일들을 소문으로 들은 바가 있었던 편이고, 내 몸 안에 있는 이해 못 할 정령 친화도를 직접 느끼고 있었기에 믿는 듯 보였다.

"신성 마법이 신기하냐? 뭘 그렇게 넋 놓고 봐."

캬, 오지 벽골 산촌에서 갓 상경한 촌놈 같으니.

"읏! 우......웃기지 마라! 이......인간의 마법 따위 궁금할 것 같은가!"

"아닌 척하기는."

내 물음에 그가 눈을 크게 뜨고 고개를 돌려버렸다.

사내새끼가 그렇게 부끄럼을 타면 거부감이 들었다.

숲의 수장인 유리아 헬리샤나가 분명 나의 친우 베르디스라고 말할 정도로 그녀와 가까운 인물인 것 같은데.

그러면 조금 믿을 만하리라.

"할 말이 있으면 빨리 해라."

"혹시 계약하고 있는 정령이 있나?"

음, 이 향기는 물의 정령의 향기로구나.

구라치다가 걸리면 손모가지 날아간다.

내 질문에 베르디스는 한참을 고민하듯 나를 바라보다 짧게 한숨을 내쉬었다.

"중급 정령...... 운디네와 계약하고 있다."

"중급이라, 딱 좋네. 미안한데, 확인이 필요해서 그러니까, 잠시 불러줄래?"

내 요구에 그는 말없이 한숨을 내쉬고는 조용히 손을 뻗어 올렸고, 곧 그의 손끝으로 물방울이 모여들며 아주 작은 소녀의 형태가 되기 시작했다.

다만 인간과 다른 점은 귀가 물고기의 지느러미처럼 되어있고 이마에 뿔이 달려 있다는 것이었다.

"이제 그 정령의 힘으로 이 나무를 정화시켜봐. 최대한 모든 힘을 쏟아서."

"대체 내가 왜......."

"숲을 살리기 싫어?"

내 질문에 그가 움찔거렸다.

"확인 절차니까 한 번 해봐."

"젠장......."

인상을 찌푸리며 그가 조용히 의지를 전하자 나이아스가 잔뜩 용을 쓰는 표정으로 손을 뻗기 시작했다.

동시에 내 붉은 눈동자의 색이 검은색으로 변했다.

슈르르르륵! 촤악!!!

그리고, 운디네의 손끝으로 퍼져 나온 물방울이 나무에 스며들기가 무섭게 변화가 일어나기 시작했다.

아주 잠깐 오염이 주춤거리는 듯싶더니 본래대로 돌아왔다.

겉보기엔 별 문제를 느낄 수 없는 오염이었지만 사령안(死靈眼을 뜬 채 지켜보고 있던 내 눈에 한 가지가 잡혔다.

"오염이 생명력을 먹었네. 그것도 대량으로."

"그게...... 무슨 말이지?"

"마을에 엘프 중 실종자나 사망자가 있나?"

"그......그건 왜."

당황한 그가 움찔거렸다.

"중요한 거다, 있어? 없어? 거짓말하면 그 뒷감당은 내가 책임 안 진다."

워낙에 진지하게 말한 탓인지 그의 얼굴이 창백하게 질렸다.

"최......최근 사고가 잦긴 했다. 영역을 침범하려 하는 몬스터 무리가 있어서 처리하던 도중 사고가 있었다고 했다."

"시신은?"

"전부 그 자리에서 화장해 자연의 품으로 돌려보냈다고......."

"보수파 엘프가 그러던?"

내 말에 그가 인상을 찌푸렸다.

"뭐냐. 인간, 도대체 뭘 말하고 싶은 거냐."

이쯤 되면 짜증이 날대로 났는지 그가 퉁명스레 물어왔다.

이에 내가 차갑게 웃으며 돌아섰다.

"내가 생각하는 게 아니길 비는 게 좋을 걸?"

생명력을 먹고 가속화된 오염.

그 생명력이 어디서 나왔는지는...... 뻔한 답변이지만.

* * *

숲을 돌아다니며 노가다를 뛴 보람은 있었다.

시간을 충분히 벌었으니 말이다.

결계를 부수고 숲의 오염의 근원에 정령마나를 꼬아 넣어 그 흐름을 잠시 막았다.

오염의 근원은 총 7곳으로, 나는 그곳들을 돌아다니며 정령마나를 불어넣어 쓸데없는 변수가 생기지 않게 틀어막아버렸다.

오염된 물이 새는 벽에 접착력이 아주 강한 테이프를 몇 겹이고 깔아 붙여놓은 꼴이었다.

본래 속도라면 2달. 내가 시간을 조금 늘려서 보름 정도 추가.

뭐라 해도 이 숲이 죽음의 숲으로 변해버리는 건 이제 얼마 남지 않았다.

"그나저나 슬슬 미끼를 물어줬으면 좋겠는데. 너무 간을 본단 말이지."

당장 숲을 갈아엎어버리고 정령을 소환해야 할지, 아니면 정령을 소환하기 좋은 터를 먼저 찾아서 편하게 숲을 정화시켜버릴지는 나름대로의 선택 사항이기도 했다.

그 외에는, 전자의 방식을 사용하면 내가 조금, 아니 많이 귀찮아질 거라는 점이 발목을 잡았다.

나 또한 희노애락을 느끼는 사람인만큼, 며칠 기다렸다가 더 편하게 하면 좋지 않는가.

내가 숲에 온 지 약 이틀 정도가 되자 엘프들도 이제는 그러려니 하며 나를 방치하는 상황에 이르렀다.

경계와 적의를 사도 이상하지 않을 인간이었지만, 들어와서 한다는 게 오염의 근원을 이리저리 둘러보고 마을의 외곽에 있는 절경에 적당히 해먹 하나 설치해놓고 느긋하게 즐기고나 있으니 신경 쓰는 게 머리 아프다고 판단한 모양이었다.

-데이비, 아이들이야.

연금학회에서 야심차게 준비하여 상회를 통해 여기저기 영지에 팔아치우고 있는 기호식품인 사탕.

내가 알던 사탕과는 조금 달랐지만 제법 달달한 터라, 아이들에게 인기가 많은 간식이었다.

당연 식탐이 보통이 아닌 홍단이, 청단이에겐 외부에서 먹기 딱 좋은 간식거리이기도 했다.

물론, 인간의 기준에선 사실상 어느 정도 흔했지만 엘프들에겐 아니었던 모양이다.

청단이, 홍단이가 내 품에 안긴 채 사탕을 맛있게 할짝거리고 있으니 거기에 호기심이 동한 것일까.

마을의 엘프 꼬마들이 멀찍이 몸을 숨긴 채 옹기종기 머리만 내놓고 나를 바라보고 있는 게 보였다.

그 아이들의 눈빛엔 경계나 두려움보다는 호기심이 가득했다.

엘프만의 세뇌교육을 받기엔 이 아이들은 아직 많이 어렸으니 어찌 보면 저 아이들의 반응도 당연한 듯 보였다.

-정확히는 그대가 준 사탕에 신경이 쏠려 있는 게지.

페르세르크의 말에 고개를 끄덕인 나는 곧 아공간에서 막대사탕 몇 개를 더 꺼내 들고는 씨익 웃어보였다.

일은 일이고, 역시 여론조작엔 아이들을 이용하는 것만큼 좋은 게 없다.

"홍단이, 청단이. 맛있어?"

"응! 응! 엄청 마시써!"

"달콤해!"

주변 아이들의 시선은 상관없다는 듯 신이 나서 대답하는 녀석들의 미소에 몇몇 엘프 소년들의 얼굴이 빨갛게 물드는 게 보였다.

-종족을 불문하는 미소는 너무 깜찍하지. 하아.......

홍단이의 머리 위에 앉아 한없이 밝은 얼굴로 녀석의 머리를 쓰다듬어주는 페르세르크였다.

내가 보기엔 홍단이보다 더 작아서 귀여워 보이는 건 아는지, 모르는지.

애써 그녀를 무시한 채 한 손에 사탕을 들고 있던 내가 물었다.

"더 먹을래?"

"더! 더! 머글래!"

당연 새롭고 맛있는 건 주는 대로 먹는 아이들이었다.

거절할 턱이 있을까.

다만, 단순히 두 녀석에게만 주기 위해 꺼낸 사탕이 아니었다.

"하지만 또 먹으면 이가 상할 텐데?"

"으우......."

내 말에 울상을 지어보이는 녀석들 때문에 인내심이 무너질 뻔했지만 이내 참아냈다.

"호......홍다니 안 먹을래......."

"청다니도......."

"그래? 아쉽네, 그럼 이건 누굴 줘야 할까?"

고민하듯 눈치를 슬쩍 보자 이미 엘프 아이들은 멀찍이 숨어서 지켜보던 것도 잊은 채 슬금슬금 다가오고 있었다.

"너희들이 먹을래?"

당장이라도 고개를 끄덕일 것처럼 구는 아이들의 모습은 이미 거의 다 넘어왔다는 것을 보여주고 있었다.

하지만 곧 아이들은 내 존재에 대한 이야기를 기억한 듯 눈을 동그랗게 뜨더니 곧 비명을 지르고 여기저기로 흩어져 버렸다.

"교육은 잘 받았네."

모르는 사람이 과자를 준다고 해서 함부로 따라가면 안 되는 것이다.

"홍단이, 청단이 모르는 사람이 과자주면 어떻게 해?"

"우웅?"

내게 안긴 채 사탕을 할짝거리던 홍단이가 고개를 갸웃거리자 청단이가 눈을 크게 뜨며 다급히 외쳤다.

홍단이에게 질 수 없다는 어린아이의 심정이 여지없이 드러났다.

"가......감사함미다!"

"마......마싯게 먹겠습니다!"

"......."

뒤이어 질 새라 홍단이도 대답하긴 했다만, 애초에 답이 틀려먹어버렸다.

"그럴 땐 이렇게 말하면 돼."

내 말에 두 녀석이 눈을 초롱초롱 빛냈다.

"안 돼요, 싫어요. 하지 마세요."

"앙 대요오. 시......시......시러요오! 하디 마세요!"

어눌한 발음으로 힘차게 따라하는 홍단이의 대답에 나는 킥킥 웃으며 녀석의 머리를 쓰다듬어주었다.

어눌한 발음이야 아직 태어난 지 얼마 되지 않은 아이이니 그러려니 했다만, 그래도 영특한 자아답게 받아들이는 속도는 빨랐다.

"청단이도 알겠지?"

"안 대여! 시러요! 하디 마세요!"

내 말에 청단이가 환하게 웃으며 고개를 연신 끄덕여 보였다.

절로 미소가 피워지는 모습이었다.

귀여운 딸 키운다는 아버지의 심정이 이런 것일까.

문득 극성 딸 바보 황제 두 명에 대한 생각이 떠올라 웃음이 나왔다.

톡톡.......

그때였다.

잘했다고, 상이라고 사탕을 하나씩 더 물려주려던 찰나 누군가가 내 팔을 톡톡 건드린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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