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66
만렙 영웅님께서 귀환하신다!
- 7권 15화
"음?"
고개를 돌리자 4~5살 정도 되어 보이는 아주 작은 소녀가 말똥말똥한 눈으로 나를 올려다보고 있는 게 보였다.
겉보기엔 순진무구하기 짝이 없는 작은 소녀였지만 한 가지가 기존의 엘프들과 달랐다.
상당히 개방적인 복장을 하고 있는 엘프들과 다르게 녀석은 특이하게 생긴 로브를 입고 있었다.
"먹을래?"
다른 아이들과 다르게 용기를 내어 내게 다가온 녀석이었다.
엘프가 싫다고 해도 종족이 껄끄러운 거지, 개개인을 무시할 수는 없는 법.
내가 아이를 대하듯 녀석에게 사탕 하나를 건네주자 녀석이 화들짝 놀라 내가 기대어 앉아 있는 나무 뒤편에 몸을 숨겼다.
그리고는 고개만 살짝 내밀더니 이내 조용히 물었다.
"아......아저씨는 인간?"
홍단이, 청단이와 체격은 비슷했지만 역시 장수 종족인 엘프답게 발음이 명확했다.
"그래, 인간."
"흐응......."
내 대답에 신기한 듯 나를 요리조리 뜯어보던 녀석이 아주 천천히 몸을 다시 드러내더니 내게 조심스레 다가왔다.
"맛있는 냄새......."
"자, 깨물어 먹지 말고, 천천히 핥아먹어."
"맛있는 냄새!"
내 말에 눈을 반짝거린 녀석이 사탕을 받아들고는 조심스레 혀를 내밀어 사탕을 핥았다.
그러더니 눈을 동그랗게 뜨며 그대로 입안에 쏙 집어넣더니 헤픈 웃음을 흘려보였다.
"헤헤, 맛있다."
"네 이름은?"
"뮤우. 엄마가 지어줬어."
담담하게 답한 녀석은 홍단이와 청단이를 무시한 채 나를 직시하다 물었다.
"아저씨."
"아저씨 말고 기왕이면 오빠라고 해주지 않을래?"
"아저씨."
고집이 쎈 녀석이었다.
"아저씨는 인간이야?"
다시 물어오는 의미 모를 질문.
이에 내가 눈을 살짝 가늘게 뜨며 고개를 끄덕여 주자 녀석이 내 팔을 잡아당겼다.
"뮤우, 보물 보여줄게!"
인간이라는 말에 반응하여 내게 자신의 보물을 보여준다고 말하는 녀석이었다.
어서 따라오라는 듯 소매를 잡아당기는 모습에 페르세르크를 보자 그녀는 그저 어깨를 으쓱여 주었다.
-아이들이 제 보물을 보여준다는 건 상당히 호의적인 경우에 나오는 반응이야, 데이비.
"응? 응? 얼르은! 뮤우 보물 보여줄 거야! 엄청 예쁘고, 반짝반짝한 보물!"
어서 따라오라는 듯 옷깃을 당기는 녀석의 모습에 나는 천천히 두 아이를 안아 든 채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래, 한 번 가보자."
내 말에 녀석의 얼굴에 해맑은 미소가 어렸다.
종족을 불문하고 아이의 미소는 사람을 포근하게 만드는 무언가가 있다.
* * *
로브를 입은 작은 엘프 소녀, 뮤우가 나를 데려간 곳은 엘프들이 살고 있는 마을에서 조금 떨어진 울창한 숲이었다.
근처에 정령수가 돌아다니는 것을 보아선 엘프의 영역은 분명한데, 조금 이상하게 거리가 있었다.
"아저씨! 요기! 요기 앉아!"
뭐가 그리 신이 난건지 나무 그루터기를 찰싹찰싹 때리며 나를 안내한 녀석은 내가 자리에 앉기가 무섭게 후다닥 뛰어가더니 뒤편에 만들어진 작은 나무 구멍 사이로 익숙하게 기어 들어가 버렸다.
집이라고 하기엔 미묘하고 어설프게 만들어진 공간이었다.
하지만 뮤우는 나무 구멍을 마치 자신의 집인 것처럼 익숙하게 드나들었다.
홍단이와 청단이를 륀느에게 맡긴 뒤 주변을 잠시 구경하고 있자, 숲 저편에서 눈치를 살피고 있던 정령수 하나가 흘끗 고개를 내밀었다.
그리고는 슬금슬금 내게 다가오더니 곧 내 손에 자신의 머리를 부벼댔다.
갸르릉거리는 것이 상당히 호의적이라는 것이 느껴질 정도.
뿔이 없는 엘크디어는 설사 엘프라 해도 함부로 다가오지 않는 것으로 유명한 정령수였다.
하지만 녀석은 나를 발견하기가 무섭게 다가와 내게 호감을 표했다.
처음 이 숲에 왔을 때도 정령수나 자연 정령들이 내게 상당히 호의적이었다는 점을 생각하면 내 몸 안에 내재된 자연 친화력이 얼마나 터무니없는지를 보여주는 꼴이었다.
"끙......차."
그렇게 한참을 기다렸을까.
이윽고 작은 구멍에서 다시 기어 나온 뮤우가 꼼지락거리며 나무에서 내려오더니 내게 쪼르르 달려와 작은 주머니를 내밀었다.
"보물! 뮤우 보물!"
어서 봐달라는 듯 해맑게 웃는 그 모습에 나는 그녀가 내민 주머니 안의 물건을 보고 깜짝 놀란 표정을 지었다.
"오, 정령석이네?"
"반짝거려! 엄마가 준거야!"
헤헤 웃으며 어떠냐는 듯 물어오는 모습에 뭐라 답할까 고민하던 찰나, 내 어깨를 톡톡 두드린 페르세르크가 나긋나긋한 미소를 지으며 말해주었다.
-부럽다고 해줘, 아이들은 자신의 보물을 보고 놀라워 해주길 바라니까.
"오오, 이런 놀라운! 정말 부러운데?"
-.......
미묘하게 박자가 어긋난 듯한 기묘한 연기가 펼쳐지자 페르세르크의 표정이 차갑게 식어버렸다.
-원숭이가 해도 그것보단 잘하겠군.
그녀의 말대로 방금 내가 한 연기는 스스로 생각하기에도 조금 무리수가 아닌가 싶을 만큼 어색한 감이 없잖아 있었다.
하지만, 뮤우는 달랐던 모양이었다.
"헤헤!"
그 어색한 연기조차 진짜로 받아들인 듯 해맑게 웃으며 정령석을 손가락으로 콕콕 찌르며 녀석이 다른 주머니 안에서 꺼낸 열매를 내밀었다.
"아저씨! 뮤우랑 비밀 친구!"
비밀 친구요?
"비밀...... 친구라고?"
당혹스러운 목소리가 흘러나왔지만 녀석은 문제없다는 듯 연신 고개를 끄덕였다.
"응! 응! 엄마가 하늘나라 가기 전에 말해줬어! 인간 중에 믿을 수 있는 사람도 있다고 했어! 아저씨는 포근한 향기가 나니까 좋은 인간! 그러니까 뮤우랑 친구!"
보통 자신들 이외에 다른 종족을 상당히 배척하는 엘프가 내보일 수 있는 반응이란 말인가.
문득 이상함이 들어 그녀에 대한 정보 활성화하려던 찰나였다.
"흐으....... 상쾌해!"
로브의 후드가 답답한지 후드를 훌렁 벗어 넘긴 녀석이 앞니가 하나 빠진 유치를 보이며 이질적인 그 차이를 내 눈앞에 드러냈다.
-세상에....... 300년 가까이 모습을 감췄다더니. 어떻게.......
"하프엘프......."
이상하리만치 인간에게 호의적인 연녹빛 머리칼의 꼬마 엘프 소녀.
녀석은.
인간과, 엘프의 혼혈인 하프엘프였다.
* * *
엘프와 인간의 혼혈.
그들을 두고 세상에선 하프엘프라고 불렀다.
보통 뾰족하고 긴 귀를 지닌 엘프나 하이엘프들과는 다르게 하프엘프는 귀가 순혈에 비해 상당히 뭉툭한 감이 없잖아 있었다.
물론, 그래도 인간보다는 긴 귀를 지니고 있지만 말이다.
결과적으로 인간과 엘프 사이에서 난 뮤우는 제 아빠와 같은 인간인 내게 그리 적대나 경계를 품지 않고 있었다.
다만, 그 미소 안에 숨겨진 애정결핍이 느껴질 정도로 녀석은 외롭다는 감정을 숨기지 못하고 있었다.
"아저씨, 아저씨! 그럼 이제 뮤우랑 비밀 친구야?"
"그냥 친구로 하자."
"하지만 마을에선 뮤우와 같이 지내면 안 된다고 하는걸."
입을 삐쭉이며 말하는 그녀였다.
"티미도 그렇고 엘리도 그렇고 다 그랬어! 나는 하프이기 때문에 친구를 만들 자격도 없다고 그랬는걸!"
"누가?"
"흐응....... 무서운 콘대 할아버지, 막! 막! 콘대 할아버지가 하프와 같이 지내는 건 죄라고 했어! 그래서 티미도 엘리도 미안하다고 하면서 뮤우랑 같이 안 놀아줘! 뮤우는 하프야?"
콘대 장로.
내게 상당히 적의를 품고 있던 그 엘프 장로가 분명하다.
뮤우가 해맑게 웃으면서 하는 말은 그냥 듣고 있으면 친구와 나누는 즐거운 대화 같았지만 실상 내용은 그리 즐겁지 않았다.
본인은 이것이 얼마나 터무니없고 불합리한 일인지 전혀 인지를 못하고 있었지만 내 입장에선 불쾌한 내용들이었다.
"이래서야 누가 더 추악한 종족인지 알 길이 없네."
내 시선에선 엘프나 인간이나, 결국 그놈들이 그놈들이었다.
외부의 존재와의 관계.
그 사이에서 나온 하프엘프인 뮤우.
보수파로 보이는 그 깐깐한 엘프의 입장에선 하프 엘프인 뮤우의 존재부터가 거부감이 들었을 것이다.
"비밀로 하지 않아도 돼."
"응? 어째서? 콘대 할아버지가 절대 뮤우와 친구하면 안 된다고 그랬는걸."
"그건 그 노친...... 아니, 그 할아버지가 잘 못 알고 있는 거야."
"으응....... 뮤우는 어려운 건 잘 몰라!"
고개를 갸웃거리던 녀석이 아무렴 어떻냐는 듯 헤실헤실 웃었다.
"그럼 아저씨! 뮤우랑 친구하는 거야?"
"그래."
너무 티 없는 웃음에, 그 순수한 마음에 씁쓸한 감정이 들었다.
그나마 내가 이곳 엘프들에게 어느 정도 호의적인 것은 그나마 유리아의 존재.
그리고 몇몇 보수파를 제외하고 상식적으로 생각할 수 있는 엘프들이 있었기 때문이다.
"그치만...... 들키면 혼날 텐데......."
"아저씨가 더 무섭게 혼내줄게. 걱정 마."
콩알만한 꼬맹이에게 오빠 소리를 듣기에는 양심에 걸리니 그냥 아저씨 하고 말리라.
제 입술을 톡톡 두드리며 고민하던 녀석이 작은 입으로 열매를 아삭아삭 씹어 먹었다.
"그래? 꺄핫! 그럼 뮤우랑 친구! 비밀 친구 말고 그냥 친구!"
"그래."
"아저씨는 이름이 뭐야?"
"데이비."
내 말에 뮤우는 이름을 입안에서 굴리듯 몇 차례고 되뇌었다.
"데이비 올 라운."
"데이비 올 라운....... 데이비, 데이비. 그럼 데이비 아저씨네?"
"그래."
녀석의 머리를 쓰다듬어주자 내 옆에 앉아 사탕을 쪽쪽 빨던 홍단이가 남은 사탕 하나를 들고는 용기 내어 물었다.
"사탕 머글래?"
"와아! 먹을래! 먹을래!"
아이끼리는 쉽게 친해진다.
순식간에 친해진 청단이와 홍단이, 그리고 뮤우의 모습에 절로 씁쓸하면서도 푸근한 미소가 흘러나왔다.
홍단이와 청단이가 호의를 보이자 뮤우는 더욱더 기뻐했다.
친구가 또 늘었다면서 뛸 듯이 기뻐하는 뮤우를 보던 내가 문득 생각난 듯 물었다.
"뮤우."
"응?"
"아저씨가, 친구 된 기념으로 정령 보여줄까?"
"정령? 응! 볼래! 작은 친구들! 정말 귀여워!"
꼬물거리는 자신이 더 귀여운 건 아는지 모르는지.
방방 뛰며 즐거워하는 녀석을 보며 나는 쇠뿔도 단김에 빼듯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리고는 적당한 공터에 손가락으로 익숙하게 마법진 하나를 그렸다.
그 크기는 크지 않았지만 필요한 건 모두 들어 있으리라.
"자, 뮤우. 여기에 서고."
내 말대로 그녀가 쫄래쫄래 다가와 내 앞에 섰다.
이에 나는 녀석의 양 겨드랑이에 손을 넣어 들어 올린 뒤 마법진의 앞에 앉히고는 말했다.
"자, 이제 아저씨가 하는 말을 따라 하는 거야."
"응! 뮤우 정령 볼 거야!"
눈을 반짝이는 녀석을 보던 내가 이내 미소를 지웠다.
그리고는 담담한 시선으로 마법진을 보며 몸 안의 정령마나를 끌어올리기 시작했다.
순혈 엘프와 다르게 하프엘프는 정령 친화도가 상당히 낮은 편이었다.
게다가 아직 어린 뮤우에겐 정령이라는 존재를 소환할 방법이 없는 게 정설이기도 했다.
그랬다. 정설이었다.
-그대는 상식을 파괴하는 자니까.
친구가 필요한 녀석에게 친구 하나 만들어 주는 거야 어렵지 않았다.
그게 상식을 박살내는 행위라 할지라도.
어떤 정령이 좋을까 고민이 들었다.
어느 정령이건 첫 정령은 정령사의 성향에 큰 영향을 미치니 말이다.
음, 그래. 랜덤박스는 개봉하는 맛에 있지.
비실비실 새어나오는 웃음을 삼킨 채 내가 조용히 입을 열었다.
"태초부터 존재하온 위대한 의지여. 만물을 관장하는 자연의 일부여."
"태......태초에 존재하는......."
내 입에서 흘러나오는 영창에 뮤우는 신기하다는 표정을 지으면서도 또박또박 내가 말하는 문장을 그대로 따라 읊기 시작했다.
"그대의 의지와 나의 바람이 닿아 숭고한 계약의 장을 열고자 하니."
뮤우의 말이 이어짐에 따라 본래 녀석의 몸 안에서 빠져나가야 할 정령마나가 녀석을 대신해 내 몸에서 빠져나갔다.
어떤 녀석을 불러줄까.
골라, 골라, 정령 놓고 정령 먹기.
"물의 정령? 땅의 정령? 어떤 녀석이 보고 싶어?"
말만 해, 친구 된 기념으로 이 아저씨가 쏜다.
"우웅....... 작은 친구! 뮤우, 흙 친구 볼래!"
"그래....... 노움이 보고 싶다 이거지."
"뮤우 노아스 볼래! 노아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