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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렙 영웅님께서 귀환하신다!-167화 (166/1,559)

# 167

만렙 영웅님께서 귀환하신다!

- 7권 16화

너, 노아스가 땅의 정령왕인 건 알고 말하는 거지? 그렇지?

천진난만한 요구에 헛웃음이 나왔다.

"노아스는 바빠서 지금은 못 봐, 나중에 보여줄게."

"에에! 뭐야. 아저씨 거짓부렁!"

이 자식이?

"좋아, 곧 보여줄게, 지금은 노움으로 만족하자. 노움은 어때?"

땅의 하급 정령인 노움.

"노움? 노움은 뮤우 친구해줘?"

"그럼."

"그럼 볼래! 노움 볼래!"

정령의 소환은 순차적으로 이루어지는 편이었다.

하급 정령을 소환하고 그 정령과 동화를 마치면 중급 정령을, 중급 정령과의 동화를 마치면 상급 정령을.

최상급 정령과 정령왕 또한 마찬가지라 할 수 있었다.

개인의 역량에 따라 계약 정령과 완전 동화하는 데에 걸리는 시간 차이는 컸지만 어지간해선 이 시스템이 절대 준수되는 게 사실이었다.

이윽고 다량의 힘이 빠져나갔다.

조금 어거지 방법으로 밀어붙인 탓에 생각 이상의 힘이 빠져나가긴 했지만 내가 가진 힘의 총량을 생각하면 간에 기별도 가지 않을 양이긴 했다.

우웅!!!!

이윽고 영창이 끝을 맺기가 무섭게 마법진이 빛을 내뿜기 시작하자 뮤우가 신기하다는 듯 마법진을 내려다보았다.

드드드드득!!!

그리고, 아주 잠깐의 텀이 흐른 후 마법진의 위로 다량의 흙이 모여들기 시작하며 작은 난쟁이의 형태를 취하기 시작했다.

기본적인 형체는 인간과 흡사했지만 동글동글한 것이 마치 두 발로 선 동물을 보는 듯한 느낌이 들었다.

"귀......귀여워! 노움! 뮤우랑 비밀...... 아니! 아니! 친구해! 친구!"

신이 나서 소리치는 녀석의 말을 알아들은 것일까.

완전히 형체를 갖춘 노움은 나와 뮤우를 한 번 번갈아보더니 이내 천천히 날아올라 뮤우의 이마에 입을 맞췄다.

"정말 친구해주는 거야?!"

아마, 저 노움의 목소리는 뮤우에게만 들릴 것이다.

이윽고 이마에 입맞춤을 받자, 미약한 빛이 뮤우의 이마에 새겨졌다가 서서히 사라졌다.

본래라면 불가능할 계약이 완료된 것이다.

-1차 성장도 하지 못한 엘프가 정령과의 계약이라.......

보통 엘프들은 자연의 축복을 받은 존재라고 한다.

실제로 재능이 없는 엘프도 최소한 하급 정령을 다룰 만큼 정령술에 대한 재능이 좋은 종족인 것 또한 사실이었다.

하지만 그런 엘프들에게도 제약은 분명 있었다.

엘프의 기준으로 1차 성장이라 불리는 일정 성장 시기를 거쳐야 정령의 축복을 받으며 정령을 다루고 소환할 수 있게 되는 것이다.

유아기를 벗어나는 성장 시기.

엘프는 유아기를 벗어나는 1차 성장과, 2차 성장, 그리고 마지막으로 성년이 되는 3차 성장의 과정을 거친다.

뮤우는 아직 1차 성장도 채 하지 못 한 어린 엘프.

그런 1차 성장도 못 한 정말 어린 엘프의 경우 정령 계약은커녕 소환할 힘조차 가지지 못하고 있다.

"노움 친구를 부르고 싶으면 정령석을 손에 꼭 쥐고 마음속으로 외쳐, 그럼 언제든 나타날 거야."

"와아! 뮤우 친구 많아! 엄청 많아! 뮤우가 말 잘 듣고 얌전히 있어서 엄마아빠가 하늘나라에서 친구를 보내줬어!"

홍단이와 청단이, 그리고 나와 노움까지.

단번에 친구가 넷이나 생겼다며 뛸 듯이 기뻐하는 모습에 페르세르크가 한 손으로 입을 틀어막고 눈시울을 붉혔다.

-흡....... 얼마나 외로웠던 것이야.

계약 당시에 필요한 마나는 제공했지만 기본적으로 이후의 소환이나 다루는 데에 필요한 정령마나는 녀석이 다 자라기 전까지는 빌려와야 했다.

그리고, 그 주체는 정령마나가 담겨 있는 정령석이 되리라.

제법 질이 좋았으니 사용 자체엔 큰 문제가 없을 터였다.

신이나 외치는 뮤우, 그리고 그런 뮤우의 분위기에 편승해 덩달아 신이 난 청단이와 홍단이.

팔짝팔짝 뛰며 좋아하는 세 아이의 모습을 바라보던 내가 천천히 입을 열었다.

"거, 한 번 찾아오는데 얼마나 걸린 거냐."

평소의 느긋한 목소리가 미묘하게 가라앉았다.

"여기 계시다는 말을 듣고 왔어요."

"유리아."

"제가 왜 당신을 찾아왔는지 알아내신 것 같은데."

고개를 돌린 그곳엔 열매가 든 바구니를 가져온 유리아 헬리샤나가 쓰게 웃으며 다가오는 게 보였다.

* * *

"꺄악! 이리와!"

"꺄하하하하! 나 잡아봐라!"

신나게 뛰어다니는 세 아이를 바라보던 유리아가 환한 미소를 지어보였다.

"저 아이가 저렇게 티 없이 즐거워 하는 건 정말 오랜만에 보네요."

"미성년 엘프는 절대적인 보호 대상이 아니었나?"

"어떻게 그 사실을 알고 계신지는 모르겠지만....... 그 부분에 관해선 할 말이 없네요. 하프엘프를 배척하는 경향이 없잖아 있었지만 지금처럼 심하진 않았어요."

쓰게 한숨을 내쉰 그녀가 뛰어놀고 있는 뮤우를 아련한 시선으로 바라보았다.

"뮤우의 모친은 순혈의 노멀엘프였어요. 그리고 부친이 평범한 인간이었죠."

마을 간의 연락이나 중요한 물건을 운반하기 위해 숲을 나서는 엘프가드.

뮤우의 모친은 그런 전령 중 하나였다.

"전령 임무를 마치고 신목으로 돌아가던 중 몬스터를 만나 죽을 위기에 처했었다고 해요. 거기서 만난 거죠. 죽어가던 그녀를 구해준 뮤우의 아버지와."

목숨을 구원받은 엘프 여성과 그녀를 구해준 인간 남성.

그 사이에서 생긴 아련한 무언가.

그리고, 두 사람의 사이에서 태어난 아이인 하프엘프, 뮤우.

"본래라면 인간 세상에서 살았겠지만, 세 사람이 살던 작은 마을에 도적단이 들었던 모양이에요. 가까스로 뮤우와 그 모친만이 신목으로 도망쳐올 수 있었죠."

"아이의 아버지는....... 아니다, 답은 뻔하네."

"그렇죠. 문제는 그 이후였어요. 멋대로 숲을 이탈하고, 인간과 관계를 맺어 아이까지 만든 뮤우의 모친은 분노한 세계수의 벌을 피할 수 없었어요. 제가 할 수 있는 건 죄 없는 뮤우를 숨겨서 살려내는 것뿐."

유리아는 직접 뮤우의 생명을 거둔 척 숨긴 뒤, 그녀를 데리고 이곳으로 왔다.

그게 전부였다.

"이 숲의 주민들은 모두가 세계수의 그런 말도 안 되는 보수적인 폭정에 지쳐가던 이들이 대부분이에요. 그들만 있었다면 뮤우도 마을에 녹아들어 살 수 있었을지도 모른답니다."

"그런데 지금 상황을 보면 외곽에 혼자 지내게 둔 것 같은데."

"보수파 때문이에요. 세계수는 제가 신목의 성지를 등지고 이곳으로 왔을 때 저를 감시하게끔 세 명의 장로를 딸려 보냈어요. 그중 하나는 이미 만나 보셨죠?"

콘대라는 이름의 장로. 상당히 고압적이고 보수 성향을 지니고 있던 엘프 사내였다.

"이 숲에 있는 보수파의 지지기반은 낮아요. 이 숲의 엘프들 중 그들을 따르는 이들은 사실상 극소수라 할 수 있죠. 제대로 따르는 이들은 없다고 봐도 무방해요. 하지만......."

그들의 뒤엔 세계수가 버티고 있었다.

조금이라도 선을 넘는 순간, 세계수가 간섭하게 됐다.

"처음엔 뮤우를 죽이려 드는 콘대 장로를 막는 게 고작이었어요. 다른 이들과 어울리지 못하게 숲 밖에 거주지를 만들고 이런 상황을 만들어 목숨을 보존하는 게 전부였죠."

"세계수의 보복이 두려웠나?"

"이 숲의 주민들은 세계수의 눈에 가시 같은 존재예요. 맞아요. 인간으로 치면 반역자죠. 다만, 당장 군대를 보내 토벌할 명분은 없는 반역자."

담담하게 말한 그녀가 한숨을 내쉬었다.

"그래서 다들 숨죽이고 있는 거랍니다. 제가 최상급 정령을 소환할 때까지 말이에요."

형벌과는 별개로 세계수가 간섭할 건덕지가 없으면 그들은 자유로울 수 있었다. 게다가 최상급 정령술사는 당연 하이엘프가 가지는 권위를 막강하게 만들어주는 부가효과도 지니고 있었다.

분하고 수치스럽고, 억울해도 참았다. 힘이 없는 작은 마을 부족이기에, 그들에게 내려진 선택은 거의 없었다.

"마을 주민들도 알아요. 뮤우가 이렇게 혼자 버티고 있는 걸, 그래서 다들 뒤에서 보이지 않게 저 아이를 도우고 싶어할 만큼 착한 이들이에요. 그저...... 겁이 많을 뿐."

그녀는 자신이 가져왔던 바구니를 툭툭 두드렸다. 그리고는 나를 직시했다.

"여기까지가 공적인 견해입니다만....... 이제부터는 제 사견이 되겠네요."

그녀가 곱게 웃어보였다.

"고용주님."

조용히 나를 부른 그녀가 자리에서 일어나 그대로 내게 무릎을 꿇었다.

그리고는 조용히 머리를 숙여 보이며 무언가 말하려 했다.

하지만 그녀가 입을 열기도 전에 내가 그녀의 흐름을 끊었다.

"지금 내가 낚시를 하고 있거든."

"......."

"그런데, 미끼가 조금 부족해. 거기에 동참해볼래?"

줄줄이 굴비 엮듯 낚아 올릴 자신 있는데.

천천히 고개를 들어 올린 그녀의 얼굴에 옅은 미소가 어렸다.

* * *

엄숙한 분위기.

모두가 숨을 죽이고 눈앞에 펼쳐진 거대한 마법진에서 눈을 떼지 못했다.

최상급 정령을 소환하는 고대부터 전해 내려온 엘프들만의 정령마법으로 가동하는 보조 마법진이었다.

부족한 친화력과 마나를 다른 이들의 도움을 받아 채워 계약을 맺는 것.

그 한계는 6명 정도밖에 도와주지 못했지만 사실상 그 정도만 해도 충분했다.

이 숲에서 상급 정령과 계약한 유리아를 제외하고 중급 정령사는 일곱.

개중 뛰어난 중급 정령사 5명과 내가 끼어들어감으로써 마법진의 가동 준비가 완료된 꼴이었다.

수많은 엘프들이 지켜보는 가운데 유리아는 정령석이 장착된 완드를 가볍게 내려세우고는 천천히 마법진의 중앙으로 들어갔다.

그리고는 은은하게 피어오르는 정령마나를 퍼뜨리며 천천히, 그리고 우아하게 춤을 추기 시작했다.

"자연 정령들이......."

"축복하고 있어."

그런 그녀의 의지에 감명이라도 받은 것처럼 그녀의 주변으로 빛의 가루들이 모여들었다.

다른 이들의 시선에는 그저 빛의 가루처럼 보일 테지만 내 시선엔 분명히 보였다.

각기 제각각의 형태를 지닌 자연의 정령들이 마법진을 배회하며 끊임없이 마법진 내에 있는 모두에게 축복을 걸어주고 있는 게 말이다.

"태초의 맹약에 따라."

이윽고 고요하게 춤을 추던 유리아의 입에서 청명한 영창이 흘러나오기 시작했다.

"굳건히 자연의 일부로 존재해온 존재이시여."

정중하기 그지없는 언어들로 구성된 정령을 부르는 의식 속에서 모두가 침을 꼴깍 삼키고는 그녀를 직시했다.

최상급 정령은 엄연히 마스터 급이라 불리는 상급 정령사의 상위 존재.

정령을 종족의 동반자라 여기는 엘프들에게 상위 급 정령이 현현하는 모습은 넋을 놓고 볼만큼 신비롭고 경이로운 광경이었다.

하급 정령을 불러 계약한 정령사가 중급 정령사가 되려면 하급 정령과 완전히 교감하고 동화하여야 했다.

그리고, 상급 정령을 불려내기 위해선 중급 정령과 완전히 교감하고 동화하여야 했다.

-불안정해.

'미숙하지. 정령마나 부족, 현재 정령과의 교감 상태도 완전하지 않아. 게다가.......'

애초에 정령마나를 다루는 능력부터가 미숙했다.

애초에 뻔하디 뻔한 결말이었지만, 무엇보다 가장 그녀의 정령 소환에 큰 문제가 되고 있는 것은.

다름 아닌 이 숲을 서서히 잠식하고 있는 오염이었다.

깨끗한 정령의 에너지가 풍부한 곳이어야 상위 정령을 불러내는 게 가능하다는 점을 생각하면 시시각각 넓혀지는 오염에 둘러싸인 이 상황에서는 결과가 뻔했다.

그런 생각을 하고 있는 와중에도, 그녀의 영창은 멈추지 않았다.

"태초의 맹약 아래! 지고지순한 자연의 이름으로 바다의 조율을 명받은 자! 그대를 간절히 바라는 자의 눈앞에 모습을 드러내어 그 위용을 드러내다오!!"

그녀가 완드를 높게 들어올렸다.

"엘레스트라!!!"

물의 최상급 정령.

수룡 엘레스트라.

그녀의 외침과 동시에 배회하던 정령 에너지들이 막대하게 요동치며 거대한 물의 소용돌이를 만들어내기 시작했다.

마치 유리아를 보호하듯 소환되어 있던 물의 상급 정령 운다인은 성인 여성의 형태에서 완전히 물로 변하며 그녀를 보호하듯 감싸기 시작했다.

"나......나타난다!"

"세상에! 정말 최상급 정령을 보게 될 줄이야!"

마스터 이상 급의 경지인 최상급 정령의 존재이기에 인간보다 오래 사는 엘프라 해도 평생에 한 번 볼까 말까한 광경인 건 분명했다.

한 방울, 두 방울 모여들던 물방울들이 서서히 합쳐지며 거대한 수룡의 형태를 잡아나가자 엘프들은 마치 경배라도 하듯 그대로 엎드려 머리를 조아렸다.

[그......대의......에 따라.......]

노이즈가 낀 것 같은 수룡 엘레스트라의 목소리가 들려오자 유리아의 얼굴이 한층 밝아졌다.

비록 완전히 소환된 건 아니었지만 최상급 정령이 그녀에게 화답을 했다는 건 큰 의미가 있었다.

하지만, 모든 사고는 불시에 터지는 법이라고 했던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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