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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렙 영웅님께서 귀환하신다!-170화 (169/1,559)

# 170

만렙 영웅님께서 귀환하신다!

- 7권 19화

처음엔 조금 어두웠으나 서서히 선명해지는 영상 속에선 기절한 듯 눈을 감고 있는 작은 아이를 옆구리에 낀 채 서 있는 한 남성 엘프와 뒷짐을 지고 있는 엘프가 보였다.

[콘대 장로님, 뮤우를 확보했습니다.]

[잘했네. 이걸로 모두 제자리를 찾는 게지. 제아무리 유리아 헬리샤나라 해도 숲 전체가 오염된 곳에서 소환을 성공할 리가 있겠나.]

음산하게 웃으며 말하는 그의 존재는 다름 아닌 콘대 장로였다.

[하지만 장로님....... 아무리 하프라 해도 아직 어린아이를.......]

[어허, 내 말을 듣지 못하겠다는 겐가? 이래서 젊은 놈들은 쯧쯧....... 나 때엔 그런 항명은 상상할 수도 없었네. 시키면 시키는 대로 그것을 어기는 순간 바로 귀싸대기가 날아갔을 걸세.]

[......알겠습니다.]

[허허, 나의 뜻은 곧 세계수와 신목의 성자의 뜻이라는 걸 잊지 말게나.]

말 같지도 않은 호가호위(狐假虎威)

범의 위세를 등에 업은 여우라.......

[아......알겠습니다.]

당황한 채 인상을 찌푸린 엘프 청년이 말없이 옆구리에 끼고 있던 잠든 소녀, 뮤우를 바라보았다.

[그래, 원망을 하려거든, 세계수와 신목의 성자의 뜻을 거스른 유리아 님을 원망하거라.]

그리 말하며 그가 뮤우를 오염의 근원, 늪의 한복판에 던지는 것으로 영상이 끊겼다.

갑작스레 오염의 빨라진 원인을 제공한 콘대는 아무것도 모른다는 척 은근슬쩍 이곳으로 돌아와 있었던 것이다.

"코......콘대 장로님. 이게 대체......."

"이......이건."

엘프들이 경악한 표정으로 콘대를 바라봤고, 콘대는 당혹스러운 표정으로 어찌 할 바를 몰라 허둥지둥했다.

"데이비 님, 륀느의 상영 능력 높게 평가?"

"그래, 높게 평가."

"더더욱 칭찬을 요구."

륀느는 양손을 허리에 올린 채 빈약한 가슴을 펴고 낭랑한 얼굴을 했다.

그렇게 당당하게 칭찬을 요구하는 모습에 내가 씨익 웃어주었다.

"그래 잘했다."

"더......더더욱 칭찬을 요구! 물질적인 칭찬도 요구!"

"그만해라."

"쳇."

불만스레 혀를 차고는 콘대를 노려본 륀느였다.

"아직 할 말이 남았습니까? 더러운 배신자."

비록 틈만 나면 뮤우를 처리해야 한다고 열을 올리던 그였지만, 숲의 오염을 가속화하기 위해 일부러 오염의 근원에 생명력이 풍부한 아이를 던져 넣는 것은 이야기가 완전히 달랐다.

싸늘한 유리아의 말에 콘대 장로가 믿을 수 없다는 듯 소리쳤다.

"그......그럴 수가! 이건 모함이오! 모함이란 말이오! 감히 장로를 모함...... 커헉?!"

응징은 빨랐다.

순식간에 그의 어깨를 화살 하나가 관통했다.

"당신이 그렇게 떠나고 륀느 양이 바로 나서서 구조하지 않았다면 뮤우는 죽을 뻔했어. 알아들어?!"

격분한 유리아의 외침에 그는 침묵했다. 그리고는 눈동자를 이리저리 굴리며 다른 엘프들을 바라보았다.

충격을 받은 시선.

그럴 줄 알았다는 듯한 시선.

아무리 그래도 이렇게까지 했느냐는 듯한 타박 어린 시선까지.

"아무리 그래도 이건......."

"도대체 무슨 짓을 저지른 겁니까? 콘대 장로."

결국 잡아떼는 것을 포기한 콘대 장로가 발악하듯 소리쳤다.

"모든 원인은 당신이오! 당신이 세계수의 뜻을 거역하지만 않았다면 이런 사태도 벌어지지 않았을 게요!! 당신은 세계수를 배신하고 거역했어!"

"그래서요?"

"잘못된 건 세계수의 의지를 거부한 당신이야!"

그의 발악에 유리아가 싱그럽게 웃었다.

"말 잘하셨어요. 이 상황이 세계수의 의지라 이거죠."

담담하게 말한 그녀가 후련하게 선언했다.

"그렇다면 이곳 달의 숲 주민들은 더 이상 세계수를 인정하지 않겠습니다. 오랫동안 유지되어온 세계수의 같잖은 관습은 모조리 거부하겠어요."

독립 선언.

어떤 의미로는 선전포고가 그녀의 입에서 떨어졌다.

세계수와 적이 된다 해도 지켜주겠다는 내 약속을 잘 기억하고 있는 건지.

화끈한 선언에 나는 절로 웃음이 흘러나왔다.

* * *

"그...... 말 무슨 뜻인지는 알고 내뱉으신 것이오?"

콘대 장로가 이를 뿌득 갈며 물었다.

"어머, 내가 그걸 모를까요."

"당신은 지금 300년간 이어져 온 전통을 무시하고 감히 저 천박하고 추악한 종족과 손을 잡겠다는 거요?! 우리 고결한 엘프들을 배신하고?!"

"말은 똑바로 해! 콘대."

장로라는 호칭도 빼버린 채 유리아가 싸늘하게 그를 노려보았다.

"엘프를 배신한 건 우리가 아니야. 세계수고 당신이지."

엘프의 가장 오래된 전통.

미성년 엘프는 반드시 보호한다.

그것은 하프든 순혈이든 가리지 않았다.

엘프의 피를 받아들였고, 엘프의 마을에 사는 이상 미성년 엘프들은 차별 없이 보호받아야 했다.

유리아의 싸늘한 일갈에 그가 입을 다물었다.

"뮤우가 뭘 잘못했는데? 당신에게 뭘 잘못했는데? 그 아이, 친구가 없어서 홀로 외롭게 살던 아이야."

"......."

"그 작은 아이가 얼마나 외로웠으면 가장 경계했어야 할 대상인 인간에게 먼저 다가가 보물을 보여주겠다고 했는지 당신은 이해나 해?"

그녀의 말에 몇몇 엘프들이 시선을 내리 깔았다.

그들도 자신들이 뮤우를 방치한 잘못이 있다는 것을 알고 있는 일이었다.

"그 아이가 얼마나 외로웠으면 친구가 되었다고, 엘프도 아닌 타종족의 존재들이 친구가 되었다고 뛸 뜻이 기뻐하고, 말도 안 통하는 정령수에게 몇 시간이고 자랑을 했어. 다른 이들에겐 절대 보여주지 않던 보물을 보여준다면서 직접 집으로 데려가서 보여줬고!"

"......."

"그런 당신들이 타종족을 두고 추악하니 이기적이니 그런 말을 할 자격이 있어?"

엘프든 인간이든, 모든 지성체는 각 개체마다 생각과 사상이 달랐다.

선한 이도 있고 악한 이도 존재했다.

엘프들은 너무 오랜 시간 자기애와 폐쇄적인 쇄국정책으로 인해 고일대로 고였을 뿐이다.

"모......모든 것은 엘프의 율법에 따라......."

"그딴 것이 엘프의 율법이라면 나는 더 이상 엘프로, 또한 하이엘프 신관으로 남지 않겠어."

그녀의 말은 충격 발언이었지만 그 누구도 입을 열지 못했다.

"이게 사실이라면......."

"아무리 세계수라지만 이건 너무하잖아."

"대체 우리는......."

자괴감과 상실감, 충격에 휩싸인 엘프들은 쉽사리 패닉에서 헤어 나오지 못 했다.

"차후 이곳 달의 숲은 세계수의 소속이 아닌 인간, 데이비 왕자의 영지 하인스 영지와 긴밀한 협력 관계, 그리고 억압되지 않는 자유와 상식이 통하는 관계로 나아갈 겁니다. 원치 않는 자 있나요?"

그녀의 단호한 물음에 모두가 고개를 저었다.

"저는 유리아 님의 결정에 따르겠습니다."

"빌어먹을....... 같은 엘프로서 수치스러울 정도입니다!"

"이건 말도 안 돼. 그 작은 아이를 외곽으로 쫓아낼 때도 참았지만, 이건......."

그들은 륀느의 등에 업혀 잠들어 있는 뮤우를 보며 눈시울을 붉혔다.

"우린 긍지 높은 엘프입니다! 고일대로 고여 전통만을 고집하는 이들이 싫어서 당신을 따라 나온 자들입니다! 속빈 자기애에 빠져 눈앞의 문제점도 보지 못하는 세계수라면, 나는 차라리 인간과 손을 잡겠소!"

"저도 그럴 겁니다!"

"맞아요! 정령왕까지 소환하는 이를 믿지 않으면 도대체 누굴 믿는단 말인가요!"

그놈의 정령술의 조예로 상대를 믿는 특이한 관습.

하나둘 그렇게 외치기 시작하자 종래엔 대부분의 엘프들이 유리아의 의견에 동조하며 나섰다.

유리아를 믿기에 내리는 결론이 아닌, 현실을 직시하고 스스로 내린 결론.

유리아가 이 숲의 주민들에게 주고 싶어 한 자유는 그런 것이었다.

-생각 이상으로 대단한 아가씨야. 조금만 실수해도 제 목숨이 날아갈 뻔한 건 알고 있는 겐지.

페르세르크의 말에 나는 륀느가 데려온 뮤우의 목옆에 손가락을 올렸다.

"생명력이 빠져나갔네."

"륀느, 불찰을 인정. 빠르게 구했지만 다수의 생명력이 소진되었다고 분석."

"괜찮아 이 정도면 회복 마법 받고 잘 먹고 푹 쉬면 낫는 수준이야."

이 아이에겐 미안하지만 유리아나 나의 경우나 뮤우를 이용한 꼴이었다.

언젠가 이 아이가 커서 이때의 일을 되짚어보고 나를 원망할지도 몰랐다.

"저는...... 이제 뮤우에게 고개를 들 수 없어요."

그 사실을 유리아도 잘 아는지 그녀가 우울하게 중얼거렸다.

붉게 충혈된 눈동자는 당장이라도 눈물을 흘릴 것처럼 눈물이 그렁그렁하게 맺혀 있었다.

"위험하다는 걸 뻔히 알면서도 이 배신자들을 처단하기 위해 눈을 감고 기다려야 했어요."

가볍게 신성력을 끌어올려 회복 마법을 걸어주던 내 곁으로 다가온 유리아가 뮤우를 끌어안았다.

"미안해....... 미안해 뮤우."

"우웅......."

동시에 소진된 생명력이 회복되며 의식을 되찾았는지 뮤우가 짧게 뒤척이며 눈을 떴다.

그리고는 천천히 유리아를 보며 고개를 갸웃거렸다.

"우웅. 언니, 왜 울어어......."

"미안해. 미안해 뮤우....... 내가 정말 미안해. 네가 위험할 거라는 걸 알면서도....... 나는...... 나는 너를 더러운 알력 싸움에 끌어들이고 말았구나."

서럽게 울기 시작하는 유리아의 모습에 뮤우는 덩달아 눈물이 그렁그렁해진 눈으로 유리아를 끌어안고 등을 토닥였다.

"응....... 응 언니 울지 마아. 뮤우가 울면 언니가 매번 등을 토닥여줬어. 그러면 뮤우 눈물이 쏙 들어갔어."

"뮤우......."

"뮤우는 언니가 정말 좋아."

헤실헤실 웃는 그 모습에 결국 유리아가 엉엉 울며 그녀를 끌어안았다.

이에 조용히 고개를 돌리자 눈시울을 붉힌 채 침묵하는 마왕님이 보였다.

'거, 감성도 풍부하시네.'

-그대가 너무 메마른 것뿐이겠지.

'나도 좋은 기분은 아니야.'

그리 말하며 한숨을 내쉰 나는 거대한 존재감을 흩뿌리며 숲을 정화하는 정령왕 노아스를 바라보았다.

"뮤우."

"우웅....... 아저씨?"

"뮤우, 노아스 보고 싶다고 했지?"

내 말에 그녀가 눈물을 닦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럼 마음껏 볼까?"

"우웅. 노아스! 노아스도 뮤우랑 친구해?"

그녀가 천진난만한 얼굴로 그렇게 말하자 나는 말없이 침묵하고 있는 지고의 대지 정령왕 노아스를 바라보았다.

혹여나 거부한다면 강제로라도 말을 듣게 할까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그런 생각은 기우였던 모양이었다.

[순수한 영혼. 매우 맑군. 대지는 순수한 영혼을 언제고 환영한다.]

이 빌어먹을 페도필리아 정령왕이.......

"노아스도 좋다고 하네. 그나저나 너, 움직이지 마라. 한 번 움직일 때마다 마나가 너무 많이 날아간다."

내 말에 주변에서 황당하다는 듯한 시선이 날아와 꽂혔다.

정령왕에게 연비가 안 좋으니 쓸데없이 움직이지 말라며 짜증을 부리는 정령사.

그것도 보통 정령이 아닌 정령왕인 만큼 더욱 당혹스러워 하는 시선들이었다.

[거절한다, 엄살이라는 것을 잘 알고 있다, 계약자여. 현재 현신 가능한 나의 힘을 그대가 감당 못할 리가 없다.]

"와아!!"

신이나 팔짝팔짝 뛰던 뮤우는 곧 거대한 체격을 자랑하는 흙의 거인 노아스를 발견하고 신기한 듯 탄성을 흘렸다.

"우우와....... 디따 커! 어~엄청 커!"

신이 난 듯 쪼르르 달려가 노아스의 거대한 발을 이리저리 툭툭 두드리자 한 손을 땅에 박아 넣었던 노아스가 나머지 한손을 천천히 움직이기 시작했다.

그리고 뮤우를 천천히 들어 제 어깨에 올리고는 거대한 형체를 움직였다.

이 자식이, 막 움직이지 말라니까.

내 짜증스런 시선에 노아스는 보란 듯 더욱 움직이며 뮤우를 즐겁게 만들었다.

이렇게 보니, 무슨 아이에게 말을 태워주는 할아버지 같은 느낌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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