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76
만렙 영웅님께서 귀환하신다!
- 7권 25화
하루 벌어 하루 먹고 살기 힘든 평민들도 즐길 수 있도록. 기회의 문을 연다.
그렇게 하인스 영지의 뽕에 취해 이주해 오면 나로서는 이득이리라.
"한데, 저하, 듣자 하니 드워프와 엘프들과 내기를 하셨다고요."
"너무 양쪽만 경쟁을 시키면 골이 깊어질 수 있으니까. 적당히 간을 봐준 거지."
"하지만...... 모니카라면 시중에 내놓는 순간 부르는 게 값인 값비싼 보석입니다."
"걱정 마. 마냥 자선사업 하는 게 아니야. 이쪽도 준비는 끝났어."
"그......폭탄 마석......말씀이시군요."
"걱정돼?"
"저하께서 하시는 일에 제가 어찌 의심을 하겠습니까."
사람을 의심하는 것도 한두 번이지 매번 상상 이상의 결과를 내놓으면 맹신할 수밖에 없다는 게 베르닐 시종장을 포함한 나를 따르는 이들의 의견이다.
"그런 내기 따위 이기건 지건 상관없어, 모니카야 다시 만들면 그만인 거고."
하나 만드는데 1년은 잡아야 하지만 아공간 속에 넘치는 게 실패작들이다.
"허허허"
제 귀로 듣고도 황당했는지 베르닐 시종장이 허탈하게 웃어 보였다.
"이런 기회 흔하지 않은데 베르닐 시종장도 축제 구경을 해보는 건 어때."
내 제안에 그가 희미하게 웃고는 고개를 저어 보였다.
"에이미 그 아이가 그동안 많은 고생을 했습니다. 저하. 이때가 아니라면 언제 마음 놓고 쉬게 해주겠습니까."
영지의 크고 작은 문제를 담당할 이는 필요하다. 본래엔 에이미가 했던 일이지만 이번만큼은 에이미에게 꿀 같은 휴식을 주고 싶다는 게 베르닐 시종장의 의견이었다.
"많이 신경을 써줘서 고마워 그동안 에이미에게 너무 무심했나 보다."
그래도 나를 따라와 주었고, 내가 혼수상태일 때 나를 돌봐준 고마운 아이다.
"매번 부족하다, 모자라다 다그치긴 했지만 그 아이는 영특한 아이입니다. 늘그막에 이 노인네에게 남은 유일한 즐거움이지요. 다만, 최근 너무 열심히 한 탓에 조금 지쳐있을 겁니다. 이때가 아니면 언제 쉬게 해주겠습니까."
"그래. 시종장이 그렇다면 존중해줄게. 다만, 반드시 하루는 축제를 즐기도록 해. 축제 현황이 어떻게 돌아가는지 몰라선 곤란하니까, 이건 명령이다."
내 말에 그가 조용히 고개를 끄덕여 보였다.
"명을 받잡겠사옵니다."
그리 말하며 방을 나서는 베르닐 시종장을 보던 나는 환하게 비치는 영지의 모습을 창밖으로 슬쩍 바라보았다.
"그래서? 넌 구경하러 가지 않을 거야?"
심드렁하게 나를 바라보던 일리나가 의아하게 물어왔다.
"가야지, 베르닐 시종장에게 그렇게 말해놓고 정작 내가 안 지킬 순 없으니."
그리 말하며 나는 서랍을 열고 손에 쥐어진 무언가를 꺼내 들었다.
"응? 가면? 그건 왜."
"괜히 나를 알아보고 귀찮게 구는 이들은 없어야지. 지금부터 나는 데이비가 아니라 데이비드다."
"웃기고 있네."
어처구니가 없다는 표정을 지으면서도 그녀의 표정은 썩 유쾌했다.
"호박에 줄 긋는다고 수박이 돼? 거추장스럽기만 하게."
"그럼 다 집어치울까?"
"자, 그럼 어디 왕자님, 에스코트를 부탁드려도 될까요?"
창문에 한 발 걸치고 가볍게 올라선 그녀가 빙그르르 몸을 돌린 채 장난스레 물어왔다.
"적어도 후회는 안 할 거다."
광산축제든, 정령제든. 내가 준비한 피날레가 되었든 말이다.
* * *
영지 전체가 축제 분위기로 들뜬 탓일까.
생각 이상으로 많은 인파 때문에 평소보다 더욱 부산스러운 느낌이 존재했지만, 생각했던 것보다는 질서가 잘 잡혀있었다.
드워프의 광산축제는 주로 오랜 시간 작품을 준비해온 드워프들의 자랑 축제라고 봐도 무방했다.
물론, 그런 예술품이나 역작들은 대부분 전시장에 걸리는 게 대부분이라 이외의 거리에는 드워프 특유의 음식이나 주점, 혹은 즐길 수 있는 도박거리가 가득했다.
길거리를 장식하는 수많은 예술품들이 눈을 자극하고 드워프 특제의 음식과 술이 코를 자극한다.
화끈한 음식을 좋아하는 드워프인 탓에 보기만 해도 군침이 도는 식의 음식들을 대놓고 조리하는 곳도 더러 보였다.
일반적인 인간과는 문화가 다른 그 풍경에 놀라워하는 사람들 사이에서 유별 날 정도로 일리나는 신이 난 표정을 지어 보였다.
"데,데이비! 이것 봐!"
내 손을 잡아끌며 내달린 그녀는 거대한 멧돼지가 통째로 구워지고 있는 모습을 보고 신기한 듯 눈을 동그랗게 떴다.
"윤기가 보통이 아니야. 기사단 훈련 때문에 통구이를 하는 걸 많이 봐왔지만 이건 특등급이야!"
눈을 반짝거리는 그녀의 모습에 내가 앞치마를 두르고 요리를 하는 남성 드워프를 향해 물었다.
"얼맙니까?"
"응?"
내 질문에 고개를 든 남성 드워프가 눈을 가늘게 떴다.
"왜 그러십니까?"
"아니! 은사가 아니시오!"
"은사라니요. 무슨 말입니까?"
내 대답에 그가 의아한 듯 고개를 갸웃거렸다.
그리고는 뭔가 이해한 듯 옅게 탄성을 흘리고는 고개를 주억거렸다.
"아이고, 분위기 좋은 커플 인간이로군! 환영하오! 한 접시에 인간의 통화로 5실버올시다! 맛은 정할 수 있소, 어떤 거로 하시겠소?"
5실버.
사실상 금화 단위로 놀긴 했지만, 이곳의 물가를 생각하면 평범한 가격이다.
"음...... 이 울트라 바이올런스라는 이름은 굉장히 독특하네요. 어떤 거죠?"
여러 가지 소스가 있다는 말에 대답한 것은 일리나였다.
"음? 아아, 아주 강렬한 놈이지! 먹고 나면 절대 기억에서 쉽게 사라지지 않을게요. 하지만 인간은 이 강렬한 맛을 잘 버티지 못하지, 이 노멀 맛은 어떻소? 이건 제법 담백한 편이......"
승부욕에 불붙는 건 한순간이다.
"울트라 바이올런스!"
단호하게 외치는 그녀의 모습에 드워프가 깜짝 놀라 나를 바라보았다.
그 시선에 담긴 심정은 걱정이었다.
"은사, 정말 괜찮겠소?"
"사람 잘못 보셨습니다."
내 대답에 드워프는 피식 웃어 보일 뿐 아무런 말도 하지 않았다.
다만, 드워프가 했던 말 대로 나는 괜한 노파심에 경고하듯 물어보았다.
"생각보다 맛이 강할 텐데, 먹을 수 있겠냐?"
"당연하지! 나는 먹을 수만 있으면 뭐든 먹을 만큼 비위가 좋아."
살아있는 벌레를 눈앞에 들이밀어도 그런 말을 할 수 있을는지.
"후회할 텐데?"
위협하는 듯한 내 질문에 움찔거리지만 승부욕이 붙은 듯 그녀의 눈에 열망이 어렸다.
"향이 지독하게 강한 서부 음식도 먹은 나야, 팔란제국의 독녀를 우습게 보지 마."
자신만만하게 대답하는 모습만 보면 별문제는 없어 보인다.
하지만 그녀는 드워프의 특산 음식이 얼마나 맛이 강렬한지를 전혀 모르고 있었다.
혀를 무자비하게 폭행하는 것만 같은 매운맛!
통상적으로 고양이 혓바닥을 가진 동부와 중부대륙 사람의 기준으로 드워프의 매운맛은 함부로 적응하기 힘든 무언가가 있다.
"허허허허! 조금 많이 매울지도 모르오."
너털웃음을 흘리며 한 접시 건네는 드워프의 말에 일리나가 침을 꿀꺽 삼키며 접시 위에 놓인 고기를 포크로 푹 찍었다.
고풍스러운 식사를 해온 황족의 입장에서 이런 싼 티 나는 느낌의 식사는 조금 거부감이 들 법도 하지만, 그녀는 뭐가 그리 즐거운지 기대감이 가득한 표정이었다.
그리고, 자리에 앉은 채 긴장한 얼굴로 새빨갛게 익은 고기를 한 점 입에 살짝 밀어 넣었다.
'어떻게 될 거 같아?'
-그대처럼 독특한 입맛을 가진 게 아니라면 비명을 지르겠지.
"흐으읍!!!"
드워프가 선호하는 매운맛은 내 전생의 나라였던 한국의 음식 중에서도 최상위에 달하는 매운맛을 자랑한다.
주먹이 부서질 듯 꽉 쥔 채 이를 악물고 있는 그녀의 눈동자에 투명한 눈물이 그렁그렁하게 맺혔다.
당장 비명을 지르고 바닥을 뒹굴고 싶은데 체면과 자존심 때문에 억지로 참고 있는 꼴을 보라.
눈물까지 그렁그렁하게 맺혀 나를 원망스레 바라보는 꼴이 퍽 우습게 느껴졌다.
* * *
"껄껄껄! 괜찮으시오?"
"괘......괜찮습니다."
억지로 표정을 관리하며 대답하는 일리나였지만 얼굴은 매운맛으로 인해 새빨개진 후였다.
제법 강렬한 맛은 이미 황색바위 부족에 갔을 때 먹어본 바 있었다.
"거봐, 내가 그럴 줄 알았지."
"괘......괜찮다고! 그리고 네가 먹어봐!"
반응하기도 전에 고기 한 점을 집어, 내 입속으로 밀어 넣어버리는 그녀의 행동에 나는 익숙하게 마나를 슬며시 끌어 올렸다.
그리고는 아무도 듣지 못하게 의지 영창을 병행했다.
[통각 경감]
[후각 둔화]
매운맛은 어떤 의미로는 통증이다.
이 두 가지 마법만 해도......
"음, 맛있네."
"마......말도 안 돼. 너 사람이야?!"
기겁하는 일리나와 다르게 내가 무슨 짓을 했는지 알고 있는 페르세르크는 눈을 가늘게 뜨고 나를 노려보았다.
-이런 사기꾼.
속은 놈이 잘못이다.
매운맛이라는 게 본래 한번 맛을 보면 당장 매운맛이 사라져도 다시금 찾아오는 법이다.
좀 괜찮아졌다 싶어지자마자 다시 찾아오는 매운맛에 그녀가 경직된 얼굴로 내 팔을 부서져라, 강하게 틀어잡았다.
어찌나 억지로 참고 있는 건지 눈물이 그렁그렁하게 맺혀있다.
"마......맛있게 먹었어요! 데,데이비 가자."
"하하하하하하! 은사! 다음에 또 들려주시오! 은사께는 내 가문의 비전인 하이퍼 바이올런스 맛을 대접해드리리다!"
은사 아니라니까.
가면 따윈 상관없다는 듯 나를 알아보는 드워프들 때문에 곤욕이 이만저만이 아니다.
애초에 이들을 속이기 위해 쓴 가면이 아닌 건 맞지만, 너무 당연하게 구분해버리니 허탈한 심정까지 들었다.
드워프의 축제는 생각 이상으로 활기차고 다양했다.
"이봐! 엘프 쪽에서 정령무를 한다더군!"
"정령무? 그게 뭐야."
"정령들과 함께 추는 춤이라고 하던데? 정말 신기하다고 난리가 났더라."
축제를 구경하러 온 용병들이 왁자지껄 떠들며 우르르 몰려가는 꼴을 보던 나는 문득 익숙한 얼굴을 발견했다.
"골다 장로님?"
"음? 은사 아니시오?"
가면을 분명 쓰고 있는데. 어떻게 알아보는 건지.
"크흠, 사람 잘못 보셨습니다."
"껄껄껄! 은사께서 그렇다면 그런 거겠지! 어떻소! 이거 한번 해보시겠소?"
커다란 노점에서 위풍당당하게 자리를 지키고 있던 그는 마치 기다렸다는 듯 커다란 상자 하나를 꺼내 내밀었다.
"이건 뭡니까?"
"드워프의 명물! 랜덤 박스요! 이 안에 수많은 공중에 하나를 뽑는 게요. 당첨을 뽑는다면, 일확천금인게지! 인간 대륙의 시가로 몇십에서 몇백 골드 하는 물건도 더러 있소이다. 더 놀라운 것은 꽝이 없다는 거요! 어떠오? 솔깃하지 않소?"
"흐음......한번 뽑는데 얼마인데요?"
"은사께는 내 싸게 드리리다. 개당 2실버요.
한 개에 2실버. 내용물은 알 수 없지만, 일확천금의 보상이 숨어 있다.
'이거 완전......'
게임에서나 보는 사행성 도박 상자.
역시 도박을 좋아하는 드워프다운 모습이다.
"오오오오!! 드워프제 미스릴이 도금된 검이잖아!? 대박이다!"
그때 한 인간이 환호성을 지르며 시선을 끌어모았다.
"이거 보라고! 이 광택! 틀림없는 진품이야!"
"오오오오!"
"나......나도 해볼까."
"2실버면......그리 비싼 것도 아니고."
신이나 소리치는 용병의 모습에 여기저기서 몰려들기 시작하자 골다는 뭐가 그리 즐거운지 킬킬대며 내게 말을 걸어왔다.
"보시오, 어떻소? 해보시겠소? 확률은 제법이외다."
은근히 꼬드기는 골다 장로의 말에 일리나는 이미 반쯤 넘어간 듯 멍한 눈으로 상자를 바라보고 있었다.
"한 개에 2실버면......1골드면 50번......"
조용히 중얼거리는 그 모습에 나는 말없이 그녀의 손을 잡아끌었다.
"저런 사행성에 한 번 빠져들면 자본주의의 개돼지가 되는 거다."
바람잡이까지 쓰시는 모양이 아주 제법이십니다.
이어지는 내 말에 골다 장로가 킬킬거렸다.
"정말 후회하지 않으실게요. 뭐, 은사께는 내 서비스로 10번 정도는 공짜로 드리리다."
그 말에 내 입꼬리가 씨익 올라갔다.
"하하, 골다 장로님, 저 데이비입니다. 제가 그런 거에 속아 넘어갈 것 같습니까?"
"껄껄껄!"
그런 감언이설에 속아 넘어갈 내가 아니다.
전생에 사행성 랜덤 박스로 얼마나 인간이 바닥에 처박힐 수 있는지 직접 겪어보지 않았던가.
다시 그런 실수를 반복할 순 없는 노릇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