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77
만렙 영웅님께서 귀환하신다!
- 8권 1화
인간의 욕심은 끝이 없고.......
"데이비......그만해. 벌써 3골드나 들이부었잖아. 너 미쳤어? 이제 뽑을 공도 없어, 그만해!"
같은 실수를 반복한다.
"한 번만 더......음?"
내 앞에 놓인 바구니엔 속이 개봉된 구슬이 수북하게 쌓여있었다.
멍하니 바구니를 보던 내가 골다 장로를 째려보자 그는 뭐가 그리 즐거운지 낄낄대며 내게 리스트를 보여주었다.
"은사께서는 워낙에 많이 뽑으셨으니 구슬에서 나온 것들은 전부 따로 가져다 드리리다."
"망할, 내가 뭔 짓을 한 거야."
전생에 게임을 하도 해댔던 탓인지 이런 사행성 도박의 폐해를 잘 알면서도 휘말려 들었다.
"휘유~ 아주 끝내주는 실적이로군! 파하하하하하!!"
"골다 장로님, 두고 봅시다."
"커흠! 선택은 은사께서 하신 게요. 물리는 건 없수다!"
자린고비처럼 동전 바구니를 끌어안고 있는 그의 모습에 절로 허탈한 웃음이 흘러나왔다.
"그나저나 은사께서는 데이트 중이시오?"
그의 질문에 일리나가 당황한 듯 입을 뻐끔거렸다.
"하하하하! 뭐, 이러면 어떻고 저러면 어떻소! 요 앞으로 가면 장인놈들이 만든 전시관이 있수다! 은사의 기준에는 못 미칠지 모르나 나름대로 공을 들인 예술품들이 한가득 전시되어있소, 한번 구경해보시구려."
그의 제안에 나는 말없이 고개만 끄덕여 보였다.
드워프 전시회는 대부분 그 질을 떠나서 드워프가 가진 예술적 감각이나 섬세함으로 승부를 보는 경우가 많다.
그 때문일까.
세간에 보기 힘든 아름다움과 정교함을 담은 액세서리나 여러 예술품들을 보며 일리나는 쉬이 눈을 떼지 못했다.
"와......와 이건......"
황족인 만큼 수많은 아름다운 것들을 봐왔을 텐데.
일리나는 말도 제대로 나오지 않는지 연신 감탄사만 흘려댔다.
감탄과 탄성이 사방에서 흘러나왔다.
베스트 셀러로 유명한 광산견문록에 기재된 것처럼 광산축제에 전시된 물건들은 구경하러 온 모든 이들의 기대를 저버리지 않았다.
휘황찬란한 전시물들을 사정없이 보는 이들의 안면을 후려쳐 넋을 빼놓기에 충분했다.
"아이고 은사! 오시었소?"
골고다 장로.
내 가면 따위는 없느니만 못하다는 듯 당연하게 나를 알아보는 그 모습에 절로 한숨을 쉬자 그가 껄껄 웃어 보였다.
"잘 오시었소! 역시 제일 먼저 우리 드워프를 찾아주실 거라 믿었소이다! 크흠! 이러지 말고 어서 드시오! 우리 황색바위 장인놈들이 아주 이번에 작정을 하고 만들었으니 은사의 시선에도 제법 괜찮은 게 몇 개는 보일 겝니다!"
"호오"
"그뿐인 줄 아시오? 토르스 기억하시오? 검은바위 부족 놈 말이오! 그놈이 무슨 말을 했는지 검은바위 쪽에서도 다량의 예술품을 보내왔습디다."
"조금 다른 양식의 예술가공품들이 보이더니 그게 흑색바위 부족의 것들이었나 보네요."
"껄껄껄! 그걸 한눈에 알아보시다니 역시 은사다우시오! 껄껄! 어떻소? 내년 광산축제엔 은사께서도 출품하시는 것이?"
"그거 괜찮네요."
자잘한 승리가 즐거운지 낄낄거린 골고다 장로 호언장담대로였다.
오랜 시간 이날을 위해 작품을 만들어온 드워프들답게 그들의 혼이 담긴 것들을 보고 있으니 괜히 나조차 무언가를 새로 만들어볼까 싶은 생각이 들게 만들 정도였다.
"와아......인어의 눈물을 이렇게 세공한 건 처음 봐......"
눈을 반짝이며 예쁜 푸른색을 띠는 보석을 바라보던 일리나가 그 눈동자에 아주 작은 열망을 띠었다.
가지고 싶다.
가지고 싶게 만든다.
하지만 그녀는 그 이상의 욕심을 보이지 않았다.
그러면서도 쉽게 눈을 떼지 못했다.
"......"
말없이 유리로 된 관을 바라보던 그녀의 모습에 나는 곁으로 다가와 인자한 웃음을 띠고 있는 골고다 장로를 바라보았다.
"은사."
"일부러 가면까지 썼는데 어떻게 알아보는 겁니까?"
"허허허, 거 손바닥으로 하늘을 가리시지 그러시오? 부탁하셨던 것 준비되었소."
그리 말하며 그가 작은 상자를 내밀었다.
"은사께서 말씀하신 대로 대화로에서 정확히 152시간 가열하고 식히기를 반복했소이다."
그의 말에 나는 떨떠름하게 그가 씨익 웃으며 건넨 상자를 말없이 바라보았다.
"그나저나, 이걸 받는 인간은 저 아리따운 제국 황녀님이시오?"
"예?"
"껄껄!! 원래 젊을 땐 남녀 관계에 화끈하게 뛰어드는 법이지! 나도 어릴 적에 우리 마누라를 쟁취하려고 장정 대여섯을 때려눕혔지 않소?"
헛웃음을 흘려 보지만 그는 다 안다는 듯 새끼손가락을 휘휘 흔들어 보이고는 돌아가 버렸다.
"데이비, 여긴 전부 구경한 것 같은데. 뭐 하는 거야?"
말없이 상자를 이리저리 굴리던 나는 내 등을 톡톡 두드리는 일리나의 부름에 고개를 들어 보였다.
그리고는 익숙하게 상자를 숨긴 뒤 천천히 걸음을 옮겼다.
"별거 아니야."
"어서 가자! 아직 볼 게 산더미야!"
마치 장난감을 발견한 아이처럼 그녀의 미소는 쉬이 사라지지 않았다.
* * *
"여긴......와아, 영지가 한눈에 보이잖아?"
고요한 분위기에 주변을 두리번거리던 일리나는 곧 영지의 모습이 한눈에 보이는 형태에 눈을 동그랗게 떴다.
하인스 영지에서 가장 높은 지형인 이곳은 자연적으로 영지 전체의 모습이 선명하게 내려다보이는 장소였다.
그리고, 어떤 의미로는 사람이 오지 않는 내 쉼터 같은 곳이기도 했다.
마음이 복잡할 때 머리를 식힐 겸 찾는 장소이기도 했다.
그 때문에 이곳의 구조물들은 대개 내 기준이나 취향에 맞춰져서 설치된 것들이 다수였다.
미리 설치된 해먹이나 정자, 느긋하게 앉아 영지를 내려다볼 수 있게 설치된 커다란 나무 의자까지.
"그런데 여긴 사람이 없네?"
"여긴 일단은 외부인 출입금지 구역이거든."
내 말에 고요함이 슬슬 적응이 되었는지 일리나가 몸을 빙그르르 돌리며 주변을 바라보았다.
그리고 나는 품 안에서 꺼낸 회중시계를 꺼내 현 시간을 확인했다.
"슬슬 시간이 됐네."
"시간?"
"그래, 내가 네게 부탁했던 것들을 쓸 시간."
내 말에 그녀가 무언가를 깨달은 듯 고개를 주억거렸다.
"그러고 보니, 너 팔란제국에서 대량의 플레어브레이크 스톤을 구매했지. 그것도 축제에 사용한다는 명분으로."
그녀의 표정이 복잡 미묘하게 찌푸려졌다.
"나는 아직도 이해할 수 없어. 솔직히 소드마스터에 혹해서 받아들이긴 했지만...... 플레어브레이크 스톤은 외부 수출이 극도로 엄격한 물건이라고."
작은 아이가 사용해도 장정 수십 명이 죽을 수 있다.
자침 끔찍한 테러에 이용될 가능성이 농후한 만큼 돈이 있다고 마냥 구할 수 있는 게 아니라는 소리였다.
물론 나의 경우엔 일리나의 권력을 이용해 중간과정을 생략하긴 했지만 정작 일리나 본인조차 그것이 어디 쓰이는지 모른다면 꽤 곤란하리라.
"그래서? 그 폭약을 도대체 축제 어디에다 쓰겠다는 건데?"
그녀의 질문에 나는 전망대 아래의 영지를 내려다보며 가볍게 대답했다.
"뭘 어디에 쓰긴, 다 터뜨려야지."
"터......터뜨린다고?"
그렇다. 터지는 용도를 가진 물건이라면 터뜨리는 게 답이리라.
"뭐야! 정말 저 광장에 대고 그 폭탄 마석을 죄다 터뜨리겠다는 거야?!"
"아니."
그리 말하며 내가 하늘을 가리켰다.
"저기에 터뜨릴 거다."
"하......늘?"
"어디 가서 구경하기 힘들 거다. 잘 봐."
그리고는 검지와 중지를 모아 한쪽 귀를 덮고 입을 열었다.
"륀느 들려?"
[데이비님?]
이윽고 머릿속으로 륀느의 목소리가 울려 퍼졌다.
"준비는 됐어?"
[디셉티콘 편대. 륀느의 자랑스러운 후임들, 매우 철저한 준비성을 높이 평가.]
"좋아."
아무것도 없는 허공에 내가 중얼거리기 시작하자 의아한 표정을 지어 보이는 일리나였다.
"슬슬 피날레를 할 때가 됐다. 창공의 꽃을 시작하자."
[명령수락.]
"창공의 꽃?"
"보면 알아."
티오니스 대륙에도 불꽃놀이의 개념은 분명 존재한다.
하지만.
핑!! 핑핑!!
지구의 현대식 불꽃놀이까지 재현할 정도로 기술력이 좋진 않다.
영지 각 구역에서 한발 두발씩 쏘아져 올라가는 광원들에 일리나가 고개를 갸웃거렸다.
"저건......"
"플레어브레이크 스톤.":
붉은색, 푸른색, 황금색 등등.
각양각색의 광원들이 일제히 하늘 높이 쏘아져 올라가는 모습에 의아해하던 일리나는 내 입에서 흘러나온 저 광원들의 정체를 듣고 눈을 부릅떴다.
"뭐?! 너 미쳤어?! 플레어브레이크 스톤이 터지면 무슨 일이 벌어질 줄 알고 그걸 상공에다 쏴 올린 거야?!"
"걱정 말고 보기나 해."
내 느긋한 행동에 일리나가 짜증스레 하늘을 향해 시선을 돌렸다.
퍼엉!!!
펑!!
그리고는 다시 짜증스레 나를 보려다. 깜짝 놀라 하늘을 향해 시선을 돌렸다.
동시에 그녀의 눈동자가 크게 뜨여졌다.
"저게......무슨......"
마치 하늘에 그림을 그린 것 같은 모습이었다.
하늘 높이 쏘아 올려진 광원은 일정 높이까지 올라간 뒤 스스로 폭발했고 거대한 빛의 입자가 되어 하늘을 수놓았다.
꽃의 형상, 동물의 형상.
그 종류나 색상은 가지각색이지만 한가지는 모두가 같았다.
넋을 빼놓는 아름다움을 가지고 있다는 것.
실제로 좀 전까지 미쳤다며 화를 내던 일리나는 이미 하늘을 수놓는 불꽃의 예술에 넋을 놓은 듯 시선을 떼지 못하고 멍하니 바라보았다.
피이이잉! 펑!! 타다다다다다다닥!!
수많은 빛의 가루가 퍼진 뒤 빛을 번뜩이며 스스로 불타 사라진다.
분명 아주 잠깐 타오를 찬찬하고 짧은 생명이지만 그 짧은 시간에 불꽃들은 수많은 이들의 시선을 충분히 앗아갔다.
"어때."
"세상에...... 플레어브레이크 스톤으로 저런 게......가능해?"
"마냥 그것만 쓴 건 아니지만, 조금 이용하긴 했지."
"아름다워......"
사심없는 감탄이었다.
성공적으로 시행된 불꽃놀이의 모습을 만족스레 보던 나는 곧 품 안에서 작은 상자를 꺼내 들었다.
"받아."
"응?"
"선물이다, 마나 순환에 도움이 될 거다."
의아한 얼굴로 상자를 열어 보인 그녀가 다시 한 번 놀란 듯 중얼거렸다.
"이건......"
상자 속엔 단순히 작은 사파이어 보석의 목걸이가 들어 있었다.
단순히 사파이어만 장식된 목걸이는 지금까지의 스케일을 생각하면 상당히 단순하고 작은 존재감을 지니고 있다.
실제로 구하라고 한다면 금방 구할 수 있는 흔한 보석 중 하나가 사파이어였으니 말이다.
하지만, 이건 조금 달랐다.
일반적으로 존재하는 다른 사파이어들과는 다르게 예술적으로 세공된 그 문양 사이사이로 옅은 푸른 빛이 스스로 회전하며 감돌고 있었다.
"단순한 사파이어가 아니야. 귀한 거다."
며칠 동안 드워프 대화로에서 쉬지 않고 온도를 끌어올렸다가 빠르게 식히는 무식한 작업을 진행했다.
어떤 미친놈이 목걸이에 그런 짓을 하겠나 싶지만, 결과적으로 그 작업 덕분에 흔해 빠진 보석인 사파이어가 다른 어떤 것과도 쉽게 바꿀 수 없는 형태로 변했다.
"이걸 왜 내게 주는 건데?
떨리는 눈동자를 주체하지 못한 채 그녀가 나를 올려다보았다.
이에 나는 이 목걸이의 단순한 목적에 대해 알려주었다.
"뇌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