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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렙 영웅님께서 귀환하신다!-185화 (184/1,559)

# 185

만렙 영웅님께서 귀환하신다!

- 8권 9화

-그 설명...... 왠지 그대에게 딱 맞다는 생각은 들지 않아?

'내가 그럴 리가 있나.'

어디 그 싸이코 영웅들과 나를 비교하려 들어.

웃는 낯짝으로 남들이 보이지 않게 페르세르크의 머리를 푹 눌러버린 나는 눈앞에 있는 여성이 무언가를 파악하듯 바라보고 있는 게 느껴졌다.

"왜 그러십니까?"

"별건 아니고, 듣자 하니 그쪽 왕자님은 정말 강한 분이라고 들었거든요. 조금 호기심이 동해서 말이죠."

격식을 차리는 게 상당히 버거운지 그녀의 말투가 상당히 오락가락하기 시작했다.

그런 그녀의 모습에 내가 싱긋 웃었다.

"격식 차릴 거 없습니다. 대공. 보아하니 이런 상황이 상당히 곤혹스러우신 모양인데 가급적이면 편하게 대화하지요."

"그럴까요?"

마치 기다렸다는 듯, 먹이를 낚아채는 맹수처럼 그녀가 위험하게 웃어 보였다.

"그럼 왕자님, 황녀 저하께서도 가셨으니 황태자 저하의 전언을 전하겠습니다."

'이거 하려고 내가 받아먹은 게 많아서 말이죠.'

잘 들리지 않게 중얼거린 그녀가 내게 작은 서류를 내밀었다.

느낌이 싸늘하다.

"이건 뭡니까?"

"약혼 제의서입니다."

그녀의 제안에 내 얼굴이 굳었다.

"솔직히 말해도 되죠? 알버스 황태자 저하도 그렇고 지금 왕자님을 보고 있는 나도 같은 입장입니다만 황제 폐하가 워낙에 완고하셔서 말이죠."

히히덕거리며 그녀가 마치 장난을 꾸미는 악동처럼 중얼거렸다.

"솔직히 우리 황녀 저하 귀엽잖아? 예쁘지 않아요? 몇 년만 지나면 저 절벽 같은 가슴도 사과처럼 봉긋해질 텐데. 이거 받아요. 이거."

그녀가 품 안에서 기묘하게 생긴 작은 약병을 건넨다.

"이건 또 뭡니까."

내 말에 그녀가 키득거렸다.

"중부대륙에서 유명한 묘약이에요 묘약. 이거 먹고 확 덮쳐요. 우리 귀여우신 황녀 저하만 한 신붓감, 어디서 구하기 힘들 걸요?"

이건 또 무슨 소리인지.

허탈한 심정에 그녀를 말없이 지켜보고 있자 그녀가 마치 약을 파는 약장수처럼 은근한 표정으로 내게 접근해왔다.

"우리 황녀 저하 말입니다. 몸매도 끝내주고 목소리도 얼마나 귀여워. 솔직히 그렇게 생각하죠? 맞죠? 저는 말입니다. 우리 황녀 저하가 아침에 일어나서 기지개를 켜는 모습을 보고 있으면 당장에라도 납치해서 대공저에 데려다 놓고 싶어요."

저돌적인 질문에 나도 모르게 고개를 끄덕였다.

천적 같은 스타일과 대화하다 보면 나도 모르게 휘말리는 느낌이다.

"그러니까 이런 기회 잘 없다고! 황족이라고 손자 손녀 싫어할까! 처음에야 아주 부득부득 이를 갈아도 결국은 허허 넘긴다 이겁니다."

그녀의 말에 나는 물론, 내 곁에 떠서 다리를 꼬고 턱을 괴고 있던 페르세르크도 한참 동안 벙찐 표정에서 빠져나오지 못했다.

-그대......가 말한 위험한 싸이코 냄새가 난다는 거......, 확실한 거 같군.

내 직감은 가끔씩 무서우리만치 예리한 편이라는 사실을 다시금 깨닫게 해주는 그녀였다.

불여우 대공.

카트린느 카라벨라는 특유의 익살스러운 미소로 나를 몰아붙였다.

장사치를 했다 하면 물건을 파는 게 아니라 강매를 해버릴 것 같은 속도와 분위기로 몰아붙이는 그녀다.

정신을 차리고 보니 어느덧 내 손엔 깃펜이 쥐어져 있었고 펜의 끝엔 잉크가 잔뜩 묻힌 채로 내 이름을 쓰는 사인 공란에 다다라있었다.

자고 일어나 보니 유명해 져 있더라.

정신 차리고 보니 사인하고 있더라.

이게 뭐가 다른지.......

순간적으로 정신을 차린 내가 눈을 부릅뜨고 펜을 내려놓았다.

확실히 대공 카트린느 카라벨라의 말처럼 에이리아는 매력적인 약혼 후보였다.

지금도 자신을 경계하는 홍단이와 청단이를 향해 부단히 노력하고 쩔쩔매고 있는 그녀는 그야말로 소설 속에서 튀어나온 것만 같은 귀여움과 청초함을 지니고 있지 않던가.

내 주변에는 그런 이들이 존재하지 않았던 만큼 사실 끌리지 않았다고 하면 거짓말일 만큼 매력적인 것 또한 사실이었다.

실제로 누군가와 꼭 결혼해야 한다면 그녀가 가장 제격일 만큼 호의적인 소녀이기도 했다.

하지만.

"이거...... 사인하는 순간 우방이고 나발이고 린디스 제국과 전쟁 터질 거 같은데요?"

그리고 나는 그 선전포고 합의서에 서명을 하고 있는 꼴이고.

장난스런 내 물음에 그녀가 쓰게 웃었다.

하지만 곧 호탕한 웃음소리를 냈다.

"아하하하! 걱정 말아요. 왕자님. 이건 저뿐만 아니라 알버스 황태자 저하의 제안이기도 해서 말이죠."

"그래서 두 분이 린디스 제국의 황제 폐하를 막을 자신이 있으시다?"

내 말에 그녀가 손으로 턱을 어루만졌다.

"황태자 저하께서 어떻게 해주지 않을까 하는데......, 여차하면 까짓거 내가 팍팍 도와드릴게. 왕자님은 우리 황녀님만 아껴주시면 됩니다. 자잘한 건 내가 다 처리할 테니!"

"그거 반역 아닙니까?"

"나는 그 누구의 편도 아닙니다. 제국에 충성하고 있지만 내 주군은 어디까지나 에이리아 저하뿐이니까요."

이게 제국의 기둥이라 불리는 대공의 입에서 나올 말인가.

그제야 그녀가 내가 상상한 이상의 비정상인이라는 확신이 들었다.

-데이비......카트린느 대공은 꽤 유명해. 일리나 그 아이가 하는 말을 여러 번 들어본 것을 조합해보면 오래전부터 귀족보다는 자유분방한 용병에 가까운 성미를 지니고 있다고 들었음이지.

그녀의 설명에 나는 말없이 그녀의 그런 격식 없는 태도를 높게 평가했다.

격식도 중요하지만, 격식에 너무 얽매이는 자는 현실을 보지 못한다.

반대의 경우 또한 마찬가지.

다만 카트린느 카라벨라 라는 이 여성은 단순히 생각이 가는 대로 앞뒤 없이 움직이는 멍청이는 아니라는 게 분명히 보였다.

그러니까.

저렇게 보여도 그냥 겉모습을 믿는 순간 밑천 홀라당 털어먹을 여자라는 소리였다.

어쩌면 저 털털한 속내 속에 이미 다른 정치적 요소를 품고 있을지도 모를 일이다.

"아무리 생각해도 황녀님과의 약혼은 황녀님께 너무 손해가 크네요."

"아하하하! 왜 그러실까, 왕자님이 괜찮으시다면 그런 자잘한 건 하등 문제가 되지 않아요. 아니면 뭐. 정치적인 이점을 원해요? 돈? 말만 해요. 이쪽에서 다 지원할 테니."

"......"

퇴로를 막아버린다.

정상적인 귀족이나 왕족이라면 절대 거부할 수 없는 제안이다.

사람도 좋아, 정치적인 이점도 좋아, 전혀 손해 볼 게 없다.

생각 이상의 정보력에 나는 이 상황을 깨버리기로 마음먹었다.

"이 내용을 정작 황녀님 본인은 알고 있습니까?"

"아...... 그건."

"거봐, 그럴 줄 알았네."

에이리아가 매력적인 황녀인 건 사실이지만 현재 나는 그녀의 기대에 충족해줄 여력이 없다는 게 판단이었다.

담담하게 말한 내가 말없이 계약서를 부욱 찢어버렸다.

"황녀님 정도 되면 정략혼에 목멜 이유가 있습니까? 본인이 스스로 원하면 그때 다시 제안하시죠."

"와...... 소문이 사실이었습니까?"

"소문이요?"

"저......그게 이건 꽤 무례한 질문일 수도 있지만......."

"알면 하지 마세요."

믿을 수 없다는 듯 중얼거리던 그녀는 곧 화려한 웃음을 지어 보였다.

뭐가 그리 즐거운 것인지.

숨기지 않은 채 키득거린 그녀가 미련 없이 내게 악수를 청해왔다.

"뭐, 좋아요. 단숨에 해결하는 게 취향이긴 하지만, 이런 느릿느릿한 것도 가끔씩은 좋겠죠. 다만 우리 황녀 저하, 잘 부탁드려요."

"흐음......."

"그렇게만 해준다면, 저와 알버스 황태자 저하께선 왕자님께 황제 폐하와는 다른 우방이 되어드리겠습니다."

그리 말한 카트린느가 익살스런 미소를 지어 보였다.

"지금 우리 귀여운 황녀 저하 눈에 다른 남자 하나도 없어. 전부 왕자님만 담고 있다고."

반말이 뒤섞인 쾌활한 말투.

불쾌함보다는 편안함이 앞섰다.

"정말 곤란하다면...... 첩이라도 좋아요. 폐하께선 길길이 날뛰겠지만, 일부다처제가 어디 불법도 아니고, 길길이 날뛸 폐하도 결국 부인만 일곱 분이 넘는데. 뭐 어때."

다른 이도 아니고 제국의 황녀를 첩으로라도 보낼 수 있다는 이들의 결심에 나는 어처구니가 없어질 지경이었다.

다만, 그것이 에이리아를 향한 그들만의 애정이라면 내가 왈가왈부할 수 있는 일은 아니리라.

"첩이라....... 서로에게 좋은 수단은 아니네요."

"어머나, 뜻하지 않게 순애보 주의자셨네. 그렇다면 저도 강요할 순 없지요. 아이 불쌍한 우리 저하...... 흑흑."

거짓으로 우는 척까지.

정말 가만두면 정신이 혼미해지는 여자였다.

첩이라.

퍽 웃음이 나왔다.

여러 부인을 두고 그 부인들 간에 질투가 해결되지 못해서 무슨 꼴이 벌어졌는지 실제로 보고 겪지 않았던가.

그렇기에 나는 그런 점에 대해선 마냥 달가울 수가 없었다.

다만 이 세계의 풍습을 뜯어고쳐 혼자 잘났다고 떠들고 싶은 게 아니라면 최소한의 여지만 남겨둔 채 모조리 쳐내는 게 옳으리라.

"귀한 시간 빼앗아서 미안해요."

"아닙니다. 그 유명한 제국의 영웅을 봤으니 저도 만족해야지요."

"정말 그렇게 생각해요?"

"예?"

갑자기 그녀의 표정이 돌변했다.

마치 먹이를 노리는 야수 같은 눈빛이었다.

그 눈빛 안에 서린 갈망을 모를 순 없었다.

마침 필요했는데 잘됐네.

"하죠."

"네?"

"대련, 하고 싶으셨던 것 아닙니까? 저도 마침 대공의 힘을 직접 확인해보고 싶었던 참이니 한번 해보죠."

내 말에 그녀는 놀랍다는 듯 눈을 크게 떴다가 이내 고개를 끄덕였다.

"그럼 부탁드리겠습니다."

* * *

갑작스런 린디스 제국 황녀의 방문과 그녀를 수행하러 온 대공 카트린느.

그리고 카트린느 카라벨라가 내게 요청한 대련.

갑작스런 소식이 퍼지기가 무섭게 영주성의 뒤편에 설치된 연무장에는 많은 이들이 고개를 들이밀었다.

윈리의 마법 수련을 보조해주던 율리스와 그에게 마법을 배우던 윈리.

그리고 축제 준비를 점검하던 드워프 족장인 골다와 유리아 헬리샤나.

한켠에는 륀느의 뺨을 마구잡이로 잡아당기며 즐거워하는 홍단이와 청단이가 보인다.

그리고 언제 왔는지 세 녀석과 까르륵거리며 웃고 즐거워하는 뮤우도 보였다.

"저하. 주변의 사용인들은 모두 물렸어요. 충격흡수 아티펙트도 모두 가동해 두었구요."

"고생했어, 적당히 떨어져 있어."

"네!"

내 말에 고개를 끄덕이며 종종걸음으로 물러나는 에이미가 눈을 초롱초롱 빛내며 나를 바라보았다.

"저하! 꼭 이기셔야 해요!"

양 주먹을 불끈 쥐며 응원하는 귀여운 외침에 나는 말없이 고개만 끄덕인 채 발치에 떨어져 있는 목검을 가볍게 차 올려 손에 쥐었다.

전날 이그드라실이 뽑아 올린 거대한 나무줄기를 대량으로 벌목하면서 생긴 목재로 만들었더니 내구성부터가 보통이 아니다.

덕분에 철심 하나 박지 않았음에도 불구하고 부서질 걱정은 전혀 없어 보였다.

메가트론의 톱에서 나오는 그 무식하고 흉포한 절삭력으로도 한참이 걸렸으니 어찌 보면 당연한 결과이리라.

"왕자님은 마법을 쓰신다고 들었는데."

카트린느가 키득거리며 물어왔다.

"어지간한 공격은 다 받아낼 자신이 있으니 마음껏 공격하셔도 좋아요."

그녀의 말에 나는 피식 웃음을 흘리고는 목검을 휙 던져버렸다.

이 여자가 겁이 없네.

원한다면 신출귀몰한 걸 보여드릴 수밖에.

훈련용 무기 거치대를 스윽 둘러보던 나는 이내 망설임 없이 하나를 집어 들었다.

세계수와의 전쟁을 위해서 꼭 필요한 힘을 끌어내려면 이것이 필요하다.

"음?"

"이걸로 가죠."

"호오? 그건......."

"밸런스 조정입니다."

빙그레 웃는 내 도발에 카트린느의 미소가 더욱 짙어졌다.

내가 고른 것은 다름 아닌.......

섭선.

꽤 커다란 부채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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