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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렙 영웅님께서 귀환하신다!-187화 (186/1,559)

# 187

만렙 영웅님께서 귀환하신다!

- 8권 11화

그녀가 저 정도로 나서주지 않으면 오히려 이쪽에서 곤란했다.

굳이 대련을 받아들이고 일부러 섭선을 꺼내 든 이유가 그저 단순히 흥미 때문은 아니라는 소리였다.

다른 힘과 다르게 도술은 이 세계에선 굉장한 제약이 있다.

그만큼 다양한 능력을 보일 수 있지만, 출력의 한계는 분명했다.

그렇기에 직접 부딪혀서 비교해볼 필요가 있는 나였다.

스윽.......

한쪽 발을 가볍게 미끄러뜨리며 그녀가 숨을 짧게 들이쉰다.

투웅!!

동시에 순간적으로 공간이 일렁일 만큼 빠른 속도로 그녀의 신형이 사라졌다.

-세상에...... 무슨 속도가.......

'거의 이기어검에 달하는 경지에 발을 들이미는 수준이다.'

마스터라고 해서 모두가 같은 실력은 아니다.

전력을 드러낸 채 움직이는 카트린느 카라벨라의 움직임은 엄연히 기본적인 마스터급 경지의 무투가 이상의 수준이었다.

깨달음을 얻고 벽을 넘어서는 순간 상대의 흐름까지 지배하게 되는 경지.

검사의 경우엔 검선이라 부르는 경지라고 하였던가.

이 땅에 돌아온 이후 내게 가장 많이 닿은 수준이었다.

큰 차이가 없다고 해도 그녀의 노력은 분명 찬사를 받을 가치가 존재한다.

투웅.

이윽고 고요한 허공이 튕기며 순간적으로 흐릿하게 나타난 카트린느가 진지한 얼굴로 나를 향해 파고들어 왔다.

투쾅!!

동시에 거대한 공기 충격파가 그녀가 있는 곳으로 날아들었다.

본래대로라면 자신의 힘을 이기지 못한 그녀는 다시 그 충격파에 휩쓸려 튕겨 나갔어야 했다.

하지만.

-피했어?!

보이지도, 느껴지지도 않으면서 그녀는 내 공격을 아슬아슬할 정도의 거리를 두고 피해냈다.

공격을 알고 피한 것은 아니었다.

본능에 가까운 회피.

실로 섬뜩할 정도로 본능에 충실한 움직임이었다.

파악!!

순식간에 파고든 그녀는 내가 다시 공격할 틈 따윈 주지 않겠다는 듯 그대로 주먹을 뻗어왔다.

권강이 지독하게 머금어진 강렬한 일격에 미리 접어둔 부채를 뻗어 쳐낸다.

가볍게 그녀의 손목을 타격하는 것으로 방향을 틀었지만, 그녀는 그것에 멈추지 않고 추가로 공격을 퍼부었다.

마치 약속이라도 한 듯 공격을 내지르는 그녀와 그녀의 공격을 차단해 튕겨내는 공방이 이뤄졌다.

순식간에 수십 번의 공방이 오가며 서로의 틈을 파고들었다.

한번 한 번의 공격이 계속될 때마다 카트린느의 몸에는 충격이 누적되었지만, 그녀는 멈추지 않고 파고들었다.

마치 4족 보행 동물이 된 것처럼 움직이며 내 뒤를 잡은 그녀가 마치 발톱을 세우듯 주먹을 풀었다.

그리고는 내 틈을 정확히 놓치지 않고 파고들었다.

"쯧."

과한 것은 좋지 않다.

자신이 설렁설렁 상대해도 되는 존재가 아니라는 것을 확실히 깨달은 그녀는 전투 센스의 천재답게 그녀가 가진 모든 것을 때려 넣었다.

순식간에 내 얼굴로 날아드는 그녀의 공격을 본 나는 섭선을 빠르게 펼치며 빙그르르 돌렸고 남은 한 손을 허공에 뻗었다.

딸랑!

청명한 소리와 함께 파장이 생겨난 허공 속에서 자그마한 나뭇가지가 끌려 나왔다.

검은 나뭇가지의 끝엔 황금색의 작은 방울들이 달려있다.

"방울?!"

섭선이 방어형 무기라면.

이 벼락 맞은 방울가지는 엄연히 공격용 무기.

현재 내가 회복한 힘의 기준으로 볼 때, 그녀는 강하다.

그렇기에 단순히 장난스레 상대했다간 오히려 이쪽에서 낭패를 볼 수도 있는 만큼 어느 정도 진지하게 그녀의 공격에 대비했다.

[염열지옥(炎熱地獄)]

[주작의 인(刃)]

[진(眞) 화열참주]

신수의 화염은 대지를 불태우고 태양을 집어삼킨다.

마법의 불꽃에 거의 완벽한 내성을 지닌 세계수라 하여도 견딜 수 없을 속성의 힘이리라.

딸랑!

그리고 마치 싸움의 끝을 알리듯 청명하고, 예쁜 방울 소리가 다시 한 번 들려왔다.

대련은 그것으로 끝이었다.

털썩.......

결국, 카트린느의 공격은 내게 닿지 못했고 새빨간 권강이 머금어진 그녀의 손은 내 얼굴이 닿기 직전에 멈춰졌다.

마찬가지로 내 공격 또한 그녀에게 닿지 않았다.

방울이 달린 새카만 나뭇가지가 그저 그녀의 복부에 아슬아슬하게 닿을 거리에 도착한 게 전부였다.

그 탓인지 나뭇가지에 걸린 방울에 머금어진 아주 미약한 화염이 허공에서 증발하듯 흩어졌다.

"흐읏......"

서로의 공격은 타격 직전에 멈췄다.

하지만 승패는 명확하게 드러났다.

식은땀을 흘리며 눈동자를 데구루루 굴린 카트린느는 제정신을 찾기라도 했는지 숨을 헐떡이고는 물러났다.

"흐읍! 쿨럭!"

이후, 제 몸을 가누지 못한 채 그대로 무릎을 꿇고 헛구역질을 해댔다.

그녀의 눈동자에 순간적으로 비친 감정은.

상위 포식자에게 압도된 피 포식자의 눈매였다.

반사적으로 나간 살기가 제어되지 않은 탓에 여과 없이 그녀에게 그대로 쏟아져 버린 꼴이다.

"괜찮으십니까?"

지은 죄가 있기에 괜히 떨떠름한 기분을 숨기며 조심스레 묻자 주저앉아 있던 그녀의 시선에 내게 닿았다.

"......"

공격이 닿지 않았음에도 자신이 압도적으로 저버렸다는 사실을 아주 잘 느낀 모양이었다.

대답하지도 못한 채 제 가슴을 압박하는 카트린느의 표정엔 뭐 이딴 괴물이 다 있냐는 시선이 가득해 보였다.

* * *

"저하! 준비가 다 되었습니다!"

"그래요."

어두운 방 안.

말없이 손에 쥐어진 백은의 거검을 바라보던 소녀는 급히 들려오는 목소리에 천천히 몸을 일으켰다.

잘그락 잘그락.

그녀는 평소 금속을 덧붙인 갑옷을 잘 입지 않는 편이었지만 이번엔 달랐다.

미스릴과 오리하르콘이 섞여 있다고 알려진 갑옷을 내려다보던 그녀는 곧 자신의 희고 깨끗한 팔에 금속 보호대를 채우고 서클렛과 같은 투구를 썼다.

하인스 영지에서 돌아온 지 얼마 되지도 않았는데 그때와는 완전히 180도 달라진 기분이 들었다.

어쩌다 이렇게 된 것일까.

그녀는 자조 섞인 미소를 지을 힘도 없다는 듯 그저 묵묵히 제 손을 내려다보았다.

곱디고운 손이지만. 이제 이 손엔 사람의 피를 묻혀야 했다.

이러기 위해서 배운 검이 아닌데.

같은 사람을 도륙하기 위해서 배운 검이 아닌데.

그런 복잡한 생각이 끝도 없이 몰아친다.

-일리나, 정신 차려, 네가 아니면 피해는 더 커질 거야. 사람이라고 생각하지 마. 넌 네가 맞다고 생각하는 일을 해.

칼디라스의 조언에도 불구하고 그녀는 이를 약물뿐이었다.

"대의를 위해서, 모두를 위해서라 해도 결국 내가 사람을 베는 건 변치 않아. 칼디라스."

-기사의 덕목은 약자를 지키는 것이라고 네가 입이 닳도록 말했잖아. 그리고 말은 똑바로 해, 그들은 시신이야. 사람이 아니라 괴물이지, 껍데기일 뿐이라고.

머리를 보호하는 용도로는 보이지 않지만 실상 그 안에 담긴 보호 마법을 생각하면 어지간한 방어구보다 훨씬 성능이 좋은 물건이기도 했다.

휘황찬란한 갑주를 입은 기사 수십 명이 천막을 걷고 걸어 나오는 그녀를 향해 검을 뽑고 예를 취했다.

그들의 표정에는 한치의 장난기도 느껴지지 않았다.

비통함과 비장함이 가득했다.

말없이 기사들의 뒤로 도열해 있는 수천의 병사들을 바라보던 소녀, 일리나는 눈을 감은 채 한참을 침묵하다 천천히 고개를 들어 보였다.

팔란 제국 최대 세력 중 하나인 화이트 버드.

그녀를 위해 충성을 맹세한 기사단들과 병사들이다.

팔란 제국에선 굴지의 결사대라고 불리기도 하는 위명 높은 군대였다.

이곳에 데이비가 있었다면 어땠을까.

고민할 것도 없이 일이 쉽게 풀리지 않았을까.

그런 생각도 들지만, 그녀는 그런 생각 자체가 염치없다고 느껴졌다.

강하다고 해서 데이비가 위험한 일을 처리해야 할 이유는 없다. 이건 엄연히 팔란 제국 내부의 문제. 그렇다면 자신의 손에서 끝내는 게 맞으리라.

짧은 상념을 털어버린 그녀는 가라앉은 시선을 유지한 채 담담하게 입을 열었다.

"화이트 버드,"

비장한 각오를 하듯 그녀가 눈을 반짝였다.

"지금부터 전군, 진군을 개시합니다."

그녀의 표정엔 쓰디쓴 감정을 억누른 듯한 슬픔이 어려있었다.

* * *

"아하하하! 완전히 개미 밟히듯 밟혀버렸네!"

"정말! 갑자기 왜 그러신 거예요!"

"그러지 말고 저하, 나 간호해줘요. 나 아파."

아프니까 호 해주세요! 하면서 달라붙는 카트린느를 밀어내며 에이리아가 얼굴을 빨갛게 물들였다.

'하지만...... 어떻게 해! 너무 멋졌어.'

솔직히 이런 결과가 나리라곤 생각지 못한 에이리아였다.

그녀가 아는 데이비는 그런 남자였다.

눈매가 조금 사나운 것이 무서워 보이긴 하지만 실상은 따뜻한 마음을 품고 있는 분.

자신을 위해 아무런 대가 없이 병을 치료해주었고 구원을 내려준 사람이다.

암살자에게 쫓길 때도.

병에 좌절해 무너져 자살을 시도하려 했을 때도 그랬다.

그는 묵묵히 자신에게 도움을 주었다.

남성은 세상에 자신을 끼워 맞추고 여성은 자신에게 세상을 끼워 맞춘다고 하였던가.

에이리아는 다른 건 몰라도 자신을 향해 그렇게까지 해주는 멋진 왕자님에 대한 호감이 더욱 커지는 걸 느낄 수밖에 없었다.

그가 강한 것은 알고 있었다.

실제로 오르뎀 숲에서 보여준 모습은 어떠했던가.

마치 천재지변을 일으키는 듯한 마법으로 자신을 구해주던 그였다.

그런 그가 상상 이상의 의술을 지닌 것도 알고 있었다.

신성력의 상징인 성흔을 가지고 성자의 칭호를 가지고 있는 것도 알고 있었다.

하지만. 근접 대련은 생각지 못했다.

인간은 다른 이가 하나를 잘한다면 나머지는 못하지 않을까 그런 생각을 주로 하곤 한다.

실제로 모든 것을 잘하는 인간은 존재할 수 없다 여기는 그였다.

그런 마당에 자신이 사모하는 왕자님이 다른 이도 아니고 카트린느와 대련을 한다니 겁이 날 수밖에.

뛰어난 마법사도 대인전으로 좁은 곳에서 싸우면 실력 차가 많이 나지 않는 이상 불리할 수밖에 없다.

그렇기에 데이비도 이번엔 큰일 나는 게 아닌가 걱정이 어리던 그녀였다.

혹여라도 다치면 어떻게 하나, 상대가 상대인데 혹시 뼈라도 부러지면 어떻게 하나.

간호해줘야 할까, 머리 숙여 사과해야 할까.

그런 고민은.

대련이 시작되고 완전히 엎어져 버렸다.

카트린느는 인재가 충분한 제국에서도 이길 자가 없는 절대 강자.

너무 할 정도로 강한 그녀가 그렇게 패배를 시인하는 모습에 그녀는 저도 모르게 그때 당시의 모습을 떠올렸다.

그리고는 침착한 얼굴로 전력까지 발휘한 카트린느에게 물러서지 않고 반격까지 가하려 한 데이비를 떠올리고 고개를 푹 숙여버렸다.

그리고는 양손으로 얼굴을 감싸 쥐고 헤실헤실 웃어 보였다.

콩깍지가 씌인 사람은 상대가 뭘 해도 멋있어 보이고 예뻐 보이는 법이다.

사랑에 빠진 소녀는 마음속으로나마 저돌적이었다.

그리고는 금방 무언가 떠오른 듯 자신의 차림을 바라보았다.

'어떻게 해?! 혹시 이 모습이 마음에 안 드시면 어떻게 하지? 예쁘게 봐주지 않으시면 어떻게 하지?'

그 모습을 눈치 빠른 카트린느는 흥미롭다는 듯, 차라리 잘되었다는 듯한 표정으로 바라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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