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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렙 영웅님께서 귀환하신다!-188화 (187/1,559)

# 188

만렙 영웅님께서 귀환하신다!

- 8권 12화

* * *

치지직!

옅은 노이즈와 함께 투명한 구슬 위로 한 남성이 모습을 드러냈다.

[카트린느 대공, 가셨던 일은 잘되었습니까?]

"생각 이상으로요."

[호오....... 그 왕자가 대공의 마음에 들었다 이 말입니까?]

의외라는 듯한 말투였다.

"마음에 들고 자시고, 인정할 건 인정해야지요. 적어도 우리 황녀 저하가 다칠 일은 없겠어. 꼭 우군으로 두어야 할 사람입니다."

[깐깐한 대공이 그리 말할 정도라니, 폐하와의 약속을 그가 악용하지 않을까 조금 우려가 있던 참에 잘되었습니다.]

에이리아는 제국 내에 숨겨진 적이 많다.

카트린느 대공과 알버스 황태자, 그리고 절대 황제라 불리는 데오르트 황제까지 비호하고 있어도 수인 천대 사상이 너무 뿌리 깊게 남아있었던 탓에 아직도 그녀를 고깝게 보는 이들이 종종 있었다.

그렇기에 지켜줄 이가 필요했다.

[불쑥 찾아가서 대련을 신청했으니 본인도 당황스러웠겠지, 아마 에이리아가 알면 당신에게 화를 낼 겁니다. 순수하고 착한 아이이지만 어떤 면에선 똑 부러지는 성미이니.]

"황녀님에게 이런 복잡한 정체문제를 떠넘길 생각은 없어요. 그분은 그저 풋풋한 사랑만 하면 됩니다. 첩이든 정실이든 그게 황녀님의 선택이라면 나는 그분의 결정에 따를 뿐."

담담하게 말하는 그녀가 미소를 지웠다.

"하지만 그렇게 시간을 끌다간, 언제 큰 사고가 터질지 몰라."

[확실히 그 숙맥 같은 성미에 그 목석 같은 왕자라면 두 사람이 자연스레 서로를 마주하게 되는데 몇 년이 더 걸릴지 모르지.]

"왕자님은 약혼제의를 거절했습니다. 그냥 찔러본 건데 역시나더군요. 사람이 신중해요. 신중하고 배려도 있어."

[이런, 막내가 고생이 심하겠군. 방법이 있습니까?]

"당장 확정할 순 없으나......."

카트린느가 시선을 내리깔았다.

"라운왕국 왕실에 정식으로 약혼제의를 보내면 어떨까요. 왕자는 그렇다지만 라운왕국의 국왕은 기회를 놓치지 않을 텐데."

데이비는 강하다. 그것은 직접 대련하고 확인해본 카트린느가 분명 느낄 수 있었다.

그렇기에 그를 놓쳐선 안 되었다.

에이리아를 노리는 이들이 절대 그녀를 건드릴 생각도 할 수 없는 괴물을 곁에 두어야 했다.

그것이 두 사람이 생각하는 단순하고도 풋풋한 연애를 뒤흔든다 해도 말이다.

"좋게 생각하죠. 우리는 뒤에서 밀어주는 겁니다. 아마 라운왕국에선 국혼을 긍정적으로 검토할 겁니다."

그 말에 영상 속에 서 있던 알버스가 픽 웃어 보였다.

[데이비 왕자가 그렇게 마음에 들었나 보군?]

"들다마다요. 나는 살면서 그렇게 말도 안 되게 강한 인물은 처음 봅니다. 마지막에 그가 멈추지 않았으면 이렇게 대화도 못 했을 거예요."

수인족의 무인들은 강자를 대우하는 경향이 있다.

그 와중에 다른 이도 아니고 카트린느를 이긴 존재라면 대접받을 가치는 충분하다 여기는 그였다.

카트린느의 말에 알버스가 의외라는 듯 중얼거렸다.

[소문은 익히 들어 알고 있었습니다만, 당신이 그렇게 느낄 정도라고요? 다른 이도 아니고 카트린느 대공이?]

"애초에 주 무기라는 검도 쓰지 않았어, 실력 차이가 명확하게 드러난 것도 있고요....... 특히 마지막에 들어온 진짜 공격은......."

그때 당시를 떠올리기가 무섭게 온몸에 닭살이 돋는 기분이 들었다.

전신을 옥죄는 듯한 상위 포식자의 눈동자에 노출된 것 같은 공포는 진짜였다.

수십 년간 거의 느껴보지 못했던 압도적인 강자에게서 느낄 수 있는 힘의 격차.

[대공이 그렇게 말할 정도라면 보통 일이 아니라는 것이군. 도대체 그런 인물이 어디서 갑자기 튀어나온 건지.......]

"그냥 어린애가 아니야. 가금씩 나를 파악하는 시선도 그렇고....... 그냥 그 나잇대 아이라고 보기엔 숨기는 게 너무 많아요."

상상 이상이라는 듯 그가 침음을 삼켰다.

"더 놓치고 싶지 않아요. 그만한 남자라면 우리 황녀 저하를 맡겨도 좋다는 생각뿐이니까."

키득거린 그녀는 곧 연락을 끊은 뒤 음산하게 웃어 보였다.

날이 저물어 다시금 활기를 띠기 시작한 축제.

에이리아는 데이비의 안내를 받아 축제를 구경할 준비를 하느라 한창일 것이다.

그 두 사람 사이에 그 빨간 머리와 파란 머리 쌍둥이 꼬마가 끼인 게 조금 걸리긴 했다.

홍단이와 청단이.

조금 특이한 이름이지만 분명 데이비왕자가 딸처럼 키우고 있는 아이들이라고 했다.

'귀여우니 상관없나?'

애들을 원체 좋아하는 에이리아이니 크게 문제 되진 않으리라.

[다만 워낙에 완고한 성격이라, 정식 공문을 보낸다고 해도 성사가 될는지.......]

"상황을 만들어야죠. 상황을."

안 되면 되게 해야지.

보아하니 왕자 쪽에서도 딱히 에이리아가 싫다는 눈치는 아니다.

문제는 귀여운 동생 보는 정도로 보는듯한 그 태도가 문제일 뿐.

선남선녀.

솔직히 카트린느는 부러울 정도로 두 사람이 잘 어울린다고 생각하는 편이었다.

"우리 황녀 저하 몸매가 얼마나 예쁜데. 그 왕자님 진짜 눈이 삔 거야. 나였으면 넙죽 받아먹었을 텐데."

[내 동생에게 이상한 짓을 하면 당신도 무사하진 못할 겁니다.]

황태자 알버스의 으름장에 카트린느가 손사래를 쳤다.

"어머 왜 이래, 나 대공이에요, 불여우 대공. 남자 마음을 후려잡는 건 내가 우리 어머니께 배울 대로 배웠지."

자고로 배고픈 자, 주는 떡을 마다하지 않는다 했다.

"약 먹이고 방에 가둬놓아 봐야 역효과만 날 테니 살살 뒤에서 밀어줘야지요. 마침 축제도 하고 있겠다. 인파도 많은데."

음산하게 웃는 카트린느의 말에 식은땀을 흘리는 알버스가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그때였다.

[음? 그게 사실이라고?]

갑작스런 보고를 받은 알버스의 표정이 굳어버렸다.

"무슨 일입니까?"

[미안하지만 대공, 계획은 전면 철수하겠습니다. 지금 당장 에이리아를 호위하고 황실로 복귀하세요.]

"예? 지금 기회를 만들기 위해 저하와 제가 무슨 노력을 했는지 모르는 게 아니잖아요. 갑자기 왜......."

[팔란제국의 사자가 찾아왔습니다. 아무래도 뭔가 심각한 일이 터진 것 같습니다.]

그 말에 짜증이 어려있던 카트린느의 얼굴이 대번에 찡그려졌다.

다 된 밥에 재를 뿌려도 유분수지!

* * *

"휴우"

긴장한 얼굴로 거울 앞에 선 에이리아는 짧게 한숨을 내쉰 채 긴장을 가라앉혔다.

이날을 얼마나 기다렸는지 모른다.

그와 처음 만난 날 이후로 이날이 오기만을 손꼽아 기다려왔다.

그녀는 왕국이나 제국의 입지 같은 건 상관없이 그저 데이비라는 한 남자와 남자 대 여자로서 서로 알아가고 싶었다.

잘만 된다면.

'평화로운 집에 아이는......, 아니야, 청단이 홍단이라고 했나? 그 아이들이 있으니 꼭 아이는 필요하지 않아도 괜찮지 않을까? 두 아이와 함께 그분과.......'

정원에서 뛰어노는 두 작은 아이를 구경하는 그와 그에게 무릎베개를 해주는 자신의 모습을 상상한 그녀는 금방 잘못이라도 지은 아이처럼 얼굴을 빨갛게 물들이고 고개를 휙휙 저어 보였다.

마치 나쁜 상상 하다 걸린 아이처럼 그녀의 표정은 불안해 보였다.

"정말 아름다우셔요. 황녀 저하!"

"고마워. 힘내야지. 그분께 잘 보여야 하는걸."

그렇게 하기 위해선 자신의 매력을 어필할 필요가 있었다.

애석하게도 그는 아직까지 자신에게 매력을 느끼지 못했지만 안 되면 되게 해서라도 그의 곁에 서고 싶었다.

그녀에게 산수유의 향은 가장 좋아하는 향기가 된 지 오래였다.

이 순간만큼은 그녀가 대륙의 6대 미녀 중 하나로 자리매김한 자신의 외향이 너무 고마워졌다.

흉측한 몰골일 때엔 생각지도 못했던 일이지만 이제는 가능했다.

귀여움과 청초함을 머금은 화장을 마치고 몽환적인 이미지를 돋보이게 하는 드레스도 입었다.

혹시 몰라 시녀들에게 부탁해 속옷까지 준비하지 않았던가.

반전의 미?

부끄럽긴 하지만, 그에게 잘 보일 수 있다면 뭐든 할 수 있는 에이리아였다.

행복한 웃음을 짓고 있던 그녀는 곧 자신을 데리러 올 데이비의 체향을 되새기듯 미소를 지어 보였다.

아름다운 경치를 지닌 축제가 끝나면 이제 준비해둔 마지막 선물을 건네주면 되는 일이었다.

선물의 내용물은 자그마한 펜던트.

바로 그녀가 가지고 있는 펜던트와 같은 모양의 쌍둥이 액세서리였다.

받아줄진 모르겠지만, 그녀와 그가 같은 펜던트를 지니고 있기만 해도 행복할 것 같았다.

달칵.

"아, 카트린느?"

의외의 인물이 들어서자 귀를 쫑긋거리던 에이리아가 의아한 표정을 지어 보였다.

하지만 카트린느의 표정은 그리 좋지 않았다.

하지만 곧 있을 두근거리는 일 때문에 눈치채지 못한 에이리아는 평소보다 용기를 내어 상자를 쥐지 않은 한 손으로 제 드레스 자락을 이리저리 흔들어 보였다.

"카트린느, 이 드레스 어떤가요? 그분이 좋아하실......."

"미안해요. 황녀 저하."

"무슨......."

"지금 당장 궁으로 복귀하라는 폐하의 명이 떨어졌습니다."

그녀의 말에 손에 쥐고 있던 작은 상자가 툭 떨어졌다.

에이리아는 재수가 없으면 넘어져도 코가 깨진다는 옛 격언이 그렇게 원망스러울 수가 없었다.

* * *

세계수의 주도 아래에 천천히, 아주 천천히 전쟁의 바람이 불기 시작할 그 시각.

팔란제국은 의도하지 않은 작은 사고가 극도로 커져 혼란에 혼란을 거듭하고 있었다.

아니, 정확히는 일이 벌어진 팔란제국의 남부지방인 헬로 산성을 포함한 다수의 산성이 포진하고 있는 곡창지대를 끼고 있는 대부분의 국가들이 그러했다.

음울한 분위기가 풍기는 거대한 회의장.

그곳에서 몇몇 남녀가 서로를 향해 말없이 침묵한 채 시선을 주고받았다.

"황녀 저하께서 보내오신 전갈에 따르면 전장의 상황이 좋지 않다고 합니다. 현재로썬 가진바 모든 힘을 쏟아부어 전선이 밀리지 않도록 버티는 게 고작이라고 하더군요. 원군을 보내야 합니다."

"세상에......, 화이트 버드가 그렇게 수세에 몰렸단 말입니까?"

일리나를 필두로 한 수많은 기사단과 병사들이 모인 거대한 전투병대.

본래엔 작은 기사단의 이름이었지만 이제는 팔란 제국의 한 축을 담당하는 거대한 사단이다.

화이트 버드.

그 위명은 수년 전 그녀를 필두로 똘똘 뭉친 그들의 전적이 화려하게 드러나며 절대적인 팔란 제국의 힘의 일부가 된 지 오래였다.

"도대체 그 정체 모를 괴물이 무엇이란 말입니까."

"글쎄요......, 생전 처음 듣도 보도 못한 괴물이었습니다. 단일 개체의 언데드가 그렇게 강하다는 말은 새삼 처음 들어봅니다."

낡은 로브 하나만 뒤집어쓴 거대한 체격의 언데드.

고대 던전에서 깨어난 그 괴물은 고작 며칠 만에 일대 영지를 집어삼켰고 지금도 그 수를 불려가며 북진하고 있다.

"그래 봐야 언데드 아닙니까! 치밀한 전략을 사용한다면......."

"언데드가 전략을 사용하고 있답니다. 매복, 유인, 후퇴, 포위."

말도 안 되는 소리라며 귀족들 몇몇이 기함을 토해냈다.

"현실적으로 보시지요. 토벌을 위해 떠나셨던 황태자 저하께서 전사하셨습니다. 이건 이제 간단한 사건이 아니에요."

인간과 던전에서 깨어난 괴물 간의 전쟁입니다.

뒤이어 들려온 목소리에 좌중이 침묵했다.

"황태자 저하께선 어릴 적부터 영민하시기로 소문이 자자하셨던 분입니다. 학문에 이어 전술에도 뛰어난 두각을 보이셨지요. 그런 황태자 저하께서 전사하실 거라고 누가 예상이나 했습니까."

"절대 그냥 넘겨선 안 됩니다. 적은 황태자 저하의 시신까지 되살려 군세에 합류시켰다고 하더군요."

언데드의 군세는 인간도, 몬스터도 가리지 않았다.

죽인 자는 모두가 되살아나 그들의 군세가 되었다.

죽여도 죽여도 끝이 없는 괴물의 행진은 악몽 그 자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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