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89
만렙 영웅님께서 귀환하신다!
- 8권 13화
"신관의 정화마법과 성수를 뿌린 검이라면!"
"먹히지 않았다고 합니다. 신관의 정화마법은 그들이 두르고 있는 사특한 힘에 막혀 더 이상 효과를 보지 못했다고 하더군요. 게다가......."
가장 큰 문제는 그 언데들이 숨 쉬면서 퍼져나가는 죽음의 독이었다.
보통 언데드의 시독은 물리면 효과가 발현된다.
다만 보통의 경우 정화마법을 받으면 회복할 수 있는 간단한 독이기도 했다.
사람을 언데드로 만들어버리는 지독한 독이라 해도 결국 숙주가 되는 인간이 죽지 않으면 병은 발병하지 않으니 말이다.
그런데.
"이번 건 상황이 다릅니다. 죽지 않아도 시독에 노출된 병사 일부가 언데드로 돌변했다더군요. 그 때문에 산성 두 채가 하루아침에 언데드의 땅이 되어버렸습니다."
"허어!!!"
"게다가......, 이번 사건......언데드를 지휘하는 괴물이 있다고 하더군요."
"지휘하는 괴물이요?"
"예, 개인적으로 알아본 바에 따르면......, 그는 자신을 데스로드라 칭했다고 합니다. 믿어지십니까? 언데드가 말을 했다는 겁니다!"
말을 하는 언데드!
이것이 의미하는 바를 모를 만큼 멍청한 이들은 단 하나도 없었다.
심각한 사태에 모두가 침묵하고 있던 찰나.
가장 상석에 앉아있던 남성이 조용히 신음을 흘렸다.
"형님을 잃었습니다. 그 전쟁터에 소중한 동생이 피눈물을 머금고 형님의 시신과 싸우고 있습니다. 언제 상황이 억제될지 모르는 이 상황을 지켜볼 순 없습니다."
"살리반 황자저하. 허면 어찌하시려고......."
"당하고만 있을 순 없지요. 다행히 성국과 마탑에서 원조를 약속받았습니다. 성녀 후보 두 명과 성기사단 6사단과 7사단을 약속받았습니다."
"호오. 역시 살리반 황자저하. 혜안에 감복했습니다."
담담하게 말한 남성이 진중하게 중얼거렸다.
"명심하십시오. 쉽지 않겠지만 물러날 수 없습니다. 이건 감히 우리 대 팔란제국에 대한 괴물놈들의 도발입니다. 단 한 놈도 살려 보낼 수 없어요."
평화와 번영의 상징이던 팔란 제국엔 그렇게 서서히 죽음의 기운이 감돌기 시작했다.
69. 각자의 방식으로 하는 참전.
선 듯 축제를 구경시켜준다는 내 말에 기뻐하던 에이리아 알 린디스는 당장에라도 울어버릴 것 같은 얼굴을 한 채 내게 몇 번이고 사과를 하고 돌아섰다.
모든 것을 중단하고 돌아오라는 린디스 제국황제의 명이 떨어졌다는 이야기였다.
딱히 내게 그녀가 사과를 해야 할 문제는 아니었지만, 그녀는 약속을 스스로 깨버린 게 그렇게 서러웠던 모양이었다.
당장 울먹거리는 그녀를 적당히 달래고 돌려보낸 지 며칠이 지났을까.
미묘하게 어수선한 분위기가 있긴 했지만, 축제는 성황리에 성공적으로 끝을 고했다.
린디스 제국의 대공 카트린느 카라벨라는 말한 그대로 행동을 옮기는 저돌적인 여자였다.
그녀는 자신이 모시는 황녀, 에이리아 알 린디스가 관심을 표하고 있는 내가 그 기준에 맞을지 직접 확인해보고 싶어 한 눈치였다.
꽤 건방진 처사였지만 나는 굳이 그것을 받아들였다.
그녀는 그녀의 목적이 있겠지만 나는 나 또한 그녀 정도의 실력가를 통해 확인해봐야 할 게 있었다.
'세계수와 전쟁을 해야 하는데 여기서 도술이 삐끗하면 안 되는데.'
세계수는 수많은 권능을 지니고 있다.
제대로 그년과 충돌할 시 가장 큰 효율을 볼 수 있는 힘이 시작부터 문제를 일으키니 골치가 아파질 지경이었다.
단순히 이미지트레이닝을 하는 것과 직접 대련하는 것, 그리고 실전에 사용하는 건 엄연한 차이가 있다.
-세계수는 모든 속성에 상성우위의 힘을 지니고 있지. 도술은 다른 세상에서 존재했던 인간만의 힘. 그리고 이 대륙에선 존재하지 않는 힘이고. 그렇군. 세계수에게 허락된 상성우위의 권능에 포함되지 않는 힘이야.
마나, 신성력, 사령마나.
그 어떤 힘도 태초의 의지에 이름을 부여받은 세계수에겐 큰 효과를 볼 수 없다.
효과가 전무한 것은 아니지만, 세계수가 멍청이도 아니고 본 힘을 다 발휘할 수 있는 상태에서 가만히 맞아줄 리가 없다.
그렇기에 가장 필요한 것이 도술이건만.
카트린느와의 대련을 통해 그 효율이 상당히 떨어지고 있다는 사실은 못내 짜증으로 다가왔다.
-해결법은?
페르세르크의 질문에 나는 아공간에 손을 넣고 아직 잡히지 않는 한 물건을 향해 손을 뻗었다.
마치 홀로그램처럼 손이 통과하지만, 분명히 존재하는 물건이 이것 또한 세계에 큰 영향을 미칠 수도 있는 물건이라 판명 난 물건이다.
그럴 리가 없어야 하는데.
단순한 보조 도구일 뿐인데.
도술이라는 힘과 관련되면서 주가가 떡상 해버린 물건에 퍽 웃음이 나왔다.
모든 힘에 상성 우위를 가지는 세계수다. 그런 세계수를 문제없이 쉽게 벌목해버리려면 이 물건이 꼭 필요했다.
문제는.......
'이걸 어떻게 꺼내냐는 건데.'
이렇게 초월급이라고 신의 의지가 못을 박아버린 물건을 꺼낼 방법은 단 하나밖에 없다.
하지만 그것을 꺼낼 수 있게 도와주어야 할 주신 프리아가 내 기도를 대놓고 씹어먹고 있다는 것이었다.
필요할 때만 찾는 얄팍한 년 같으니라고.
속으로 불경한 생각을 하면서도 고민은 멈추지 않았다.
결국, 당장 해결할 수 없는 일은 제쳐놓고 다른 방면을 준비해야 한다.
세계수와의 전쟁을 준비하기 위해 영지를 강화하고 군비를 증강하는 건 하나의 방법이 될 것이다.
하지만, 큰 효능을 볼 순 없어도 준비해야 했다.
단순한 무력충돌이라면 피가 흐르고 절규가 난무한다.
증오가 돋아날 것이고 후에 이 일로 돌이킬 수 없는 굴레가 생긴다.
그건 절대로 피해야 했다.
나는.
각자의 되먹잖은 사상과 목적 때문에 죄 없는 이들이 희생당하는 걸 원치 않는다.
하지만 피할 수 없다면.
최대한의 방비를 하고 피해가 나기 전에 제압한다.
나는 내 영지민 한 명이라도 헛되이 죽게 둘 생각이 없었다.
군세를 늘리고 무기와 방어구를 제작하고, 식량을 사들이는 건 최악의 사태를 가정한 대비일 뿐이었다.
그중에서 현재 가장 이 영지에서 부족한 부분은 식량이었다.
현재 이 영지에서 지어지는 농사는 아직 결실조차 보지 못했으니까.
"음? 에이미, 식량을 사들이기로 한 상단이 오늘 도착한다 하지 않았나?"
"그게......."
물자를 분류하던 나는 문득 보이는 식량 항목에 눈을 찌푸렸다.
"이정도 양이면 부족해. 연락을 넣어 가급적이면 다 사들이라고."
"사실......, 상단 측에서 거래를 거부했어요. 제가 어떻게든 다시 거래를 터보려 했지만......팔란 제국 황실에서 명령이 내려왔다고 해요."
에이미의 불안한 말투에 내가 멈칫했다.
"거부했다고? 이건 또 뭔 소리야."
"그게......"
어떻게 보고해야 할지 모르겠다는 듯 우물쭈물하는 에이미를 독촉하려던 찰나였다.
"보고는 제가 하겠습니다."
"아이나?"
"부탁드립니다. 잭이라 불러주십시오."
이전엔 자신의 존재를 극도로 숨기더니 이제는 어느 정도 모습을 드러내기 시작했다.
물론 그래 봐야 남성의 모습으로 제 본모습을 숨긴 사실은 변치 않지만 말이다.
"데이비님, 지금 팔란제국에서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는지 아십니까?"
"모르니 묻지."
내 질문에 그가 그럴 줄 알았다는 표정을 지어 보였다.
다크엘프 아이나 헬리사나이지만 그녀는 내가 건네준 목걸이를 요긴하게 사용해 이전과 같은 남성의 형태를 취하고 있었다.
"팔란제국의 남단에 위치한 거대한 곡창지대에 대해 알고 계시지요."
"그렇지."
대륙에 퍼져나가는 식량의 20퍼센트를 생산한다고 알려진 거대한 곡창지대.
그 비옥하고 거대한 땅덩어리는 오로지 식량의 생산에 치중된 땅으로 예전부터 수많은 국가에 식량을 수출하던 곳이기도 했다.
실제로 라운왕국 왕실이나 하인스 영지도 그곳을 통해 대량의 식량을 주기적으로 사들이고 있는 실정이기도 했다.
"문제가 생겼나?"
"네."
아이나가 전해주는 소식은 생각보다 간단했다.
현재 식량을 생산해야 할 그 땅덩어리에 침략자가 생겼다는 것이었다.
어떤 미친놈이 상식도 잊고 팔란 제국을 공격했냐고?
바로 언데드.
망자라 불리는 괴물들이다.
"대륙 최강국이라 불리는 국가가 고작 하위 언데드 하나 처리 못 해서 이 난리를 치냐?"
"보통 일이 아닙니다. 듣자 하니 전술을 사용하는 언데드 들이라고 하더군요. 병사처럼 밀집하고 유인하고 매복하며, 후퇴하기도 했다고 합니다. 고통을 느끼지도 지치지도 않고 두려움을 모르는 군단이 늘어나니 상대가 여간 어려운 게 아니랍니다."
"뭐?"
"간단히 말해서 엄청난 적이라는 소립니다. 그래 봐야 데이비님은 실감도 안 되죠?"
"알긴 아네."
"재수 없는 인간 같으니."
"뭐라고 했냐?"
"별거 아닙니다."
그 언데드가 세계수보다 위험할까.
"데이비님은 어떨지 몰라도 일반인들은 아닙니다. 그 때문에 일리나 데 팔란 황녀가 이끄는 화이트 버드가 출병했지만, 군세가 퍼지지 못하게 유지하는 게 현 상황이라고 합니다."
지지 않고 버티고는 있지만 이기지도 못하고 있다.
지성이 없는 언데드가 전술을 사용하고 밀집하며 서로 협력한다는 말은 언뜻 듣기엔 터무니없을 수도 있다.
하지만 불가능한 것은 아니었다.
"세상에....... 언데드가 지성을 가지고 있다는 말은 처음 들어봐요."
황당하다는 듯한 윈리의 말에 아이나 또한 고개를 끄덕여 보였다.
상식적으로 언데드가 지성을 가지는 건 말도 안 된다.
하지만. 아예 불가능한 것은 아니었다.
지성을 가지지 못한 언데드라도 강제적인 명령을 주입하면 그만큼 충직한 병사도 없는 법이다.
그리고, 그런 짓이 가능하게 만드는 존재는 단 하나.
-상위 네크로맨서.
망자를 다루는 힘을 가진 자들.
게다가 그 수가 보통이 아니라니 어중이떠중이와는 다를 것이다.
마치 이때를 기다려왔다는 듯 일어난 괴물의 존재에 허탈한 생각까지 들었다.
전쟁에 필요한 것은 병사도 병사지만 군수물자를 절대 무시할 수 없다.
만약 초반 진압에 실패해 전쟁이 크게 번진다면 장기전으로 이어질 가능성이 큰 만큼 비축분 식량의 존재를 마냥 등한시하는 것보단 준비해두는 게 이로웠다.
유비무환이라고 했던가.
상대가 보통 상대가 아니라면 이쪽도 철저하게 준비하는 수밖에.
"팔란제국에서는 별말이 없나?"
"안 그래도 마침 이미 각국에 원조를 요청한 모양입니다. 라운왕국에서는 다수의 병장기와 병사 일부를 지원하기로 결정을 내렸습니다. 그 선두에는 바리스 왕자님이 선다고 합니다."
내겐 그런 말이 없었는데.
이 망할 아버지가 이제는 바리스 까지 시련을 주어 강하게 키우려 들고 있다.
도대체 라운왕국에 대한 애정이 얼마나 깊어야 저렇게까지 하는 건지.
물론, 그건 크리아네스 국왕의 결정일 뿐.
이미 그와는 노선이 다른 나와는 상관없는 일이렷다.
중요한 것은 안 그래도 차선책으로 준비하고 있던 전쟁준비가 불청객에 의해 방해를 받고 있다는 사실 뿐이다.
"에이미."
생각은 오래 할 것도 없었다.
내 부름에 이때만을 기다려왔다는 듯 에이미가 활기차게 대답했다.
"명령을 내려주셔요. 저하."
"나도 참전한다. 재수가 없으면 넘어져도 코가 깨진다더니......."
세계수와의 일로 바빠 죽겠는데 뭐? 네크로맨서? 남의 집으로 와야 할 식량이 모인 창고를 점거하고 있다고?
상대가 상위 네크로맨서건 데스마스터건 상관없다. 바빠 죽겠는데 어딜 방해하려 드는가.
"명복을 빌어줘야겠군요."
"놈은 재수가 없었던 것뿐이야."
하필 자리 잡고 버티고 있는 곳이 거기만 아니었다면 살 수는 있었을지도 모를 일이다.
내 앞길에 방해가 된다면 그것이 드래곤이 된다 할지라도 치워버린다.
그것이 내 결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