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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렙 영웅님께서 귀환하신다!-190화 (189/1,559)

# 190

만렙 영웅님께서 귀환하신다!

- 8권 14화

* * *

평화에 슬슬 익숙해져 가던 대부분의 대륙 국가들은 갑자기 나타난 범국가적 재앙에 가까운 이번 사태를 절대 좌시하지 않았다.

게다가 나라와 나라 간의 싸움도 아닌 부정한 존재라 불리는 언데드의 창궐이지 않은가.

대량의 전염병이 나돌기 시작했고, 식량의 주 생산지가 언데드에게 장악당했다.

팔란이 흔들리면 다음은 타국이다.

모든 국가들이 그 사실을 모르는 바가 아니었기에 이번 일은 마치 하나가 된 듯 합심하여 움직이기 시작한 것이다.

린디스 제국에선 다수의 물자와 단일 전력인 카트린느 대공이 참전했다.

성국에서는 무려 성녀후보라 불리는 두 소녀와 함께 신실한 성기사단인 6사단과 7사단, 그리고 다수의 병사가 차출되었다.

이외 여러 국가에서 다수의 병사와 물자들이 팔란제국으로 모여들었다.

그뿐인가.

그동안 팔란제국과 눈치 싸움을 하던 서부의 제국.

콘타스 제국의 황제인 콘타스 대제가 황실친위대 소속의 소드마스터 3명을 보내왔다.

이렇게까지 다수의 국가가 단합한 경우가 있던가.

내가 기억하는 바엔 아마 없었을 것이다.

내가 팔란 제국에 도착한 것은 참전 결정을 내린 직후 약 나흘 후였다.

그도 그럴 것이 미묘한 기분을 피할 수가 없었던 탓에 아이나를 통해 정보를 좀 더 파악하고 움직일 필요가 있었기 때문이었다.

때문에 이미 먼저 도착한 이들은 전쟁에 합류한 상황이기도 했다.

대륙전쟁을 방불케 하는 대규모 전력.

이 같은 상황이 빠르게 이루어진 것은 팔란제국이 그동안 쌓아온 것도 있지만 팔란 제국의 황태자가 전사해버렸다는 황당한 소식 때문이기도 했다.

"황태자의 전사....... 창궐한 언데드의 수가 수만에 지금도 늘어나고 있다라......."

싸우면서 죽어간 병사들이 언데드가 되는 양도 보통이 아닌데 이 일의 근원인 고대 던전에서 꾸역꾸역 기어 나오는 언데드의 수가 상상을 초월한다.

규모는 작지만 이미 대륙전쟁의 일부라 봐도 무방했다.

전쟁이 벌어지고 있는 헬로 산성을 포함한 다수의 산성의 뒤편에 위치한 후방의 사령부.

그곳에 워프 마법을 사용해 먼저 도착한 나는 두리번거리며 코를 킁킁거리는 륀느의 팔을 잡아끌었다.

"멈추십시오! 어디서 오신 분들입니까!"

병사나 시종도 대동하지 않은 채 젊은 소년과 청년이 하나.

그리고 로브를 뒤집어쓴 작은 소녀가 하나.

당연 의심스레 볼 수밖에 없는 조합이었다.

이에 륀느가 나서서 말하려던 찰나였다.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어서 오십시오, 율리스 5급. 그리고, 데이비 왕자님."

나를 알아보는 듯한 목소리에 절로 시선이 돌아갔다.

그곳엔 휘황찬란한 갑옷을 입고 있는 한 청년이 부드러운 미소를 지은 채 나를 바라보고 있었다.

"아, 살리반황자님이시군요. 오랜만에 뵙습니다."

"하하, 상황이 여의치 못해 대접이 소홀한 점 사과드리겠습니다."

사람 좋게 웃으며 대화를 나누는 두 사람이었다.

"처음 뵙겠습니다. 데이비 올 라운입니다."

"왕자님에 대한 소문은 익히 들어 알고 있습니다. 예비라곤 해도 신의 선택을 받으신 성자님의 참전에 정말 감사드립니다. 저는 살리반 데 팔란. 팔란제국의 황자입니다."

자신을 살리반이라 소개한 청년이 악수를 청해왔다.

율리스보다는 길고 부드러운 느낌을 주는 더벅머리에 사각형의 뿔테 안경.

그리고 부드러운 미소는 율리스와는 다른 의미로 굉장히 온화한 느낌을 주는 사내였다.

"일리나 그 아이가 최근에 사귄 친구가 누구인지 궁금했는데, 이렇게 만나 뵙게 되어 영광입니다."

"아......네. 일리나는 무사합니까?"

"그 고집불통. 후우......, 최전방에서 아직도 돌아오지 않고 있습니다. 자, 세분 모두 드시지요. 이미 각국에서 오신 분들이 모여 계십니다."

그의 말에 나는 어디론가 세어버릴 듯 눈동자를 굴려대는 륀느의 팔을 잡아끌었다.

7~8곳의 산성이 둘러싼 채 적들을 막아내고 그 뒤로 팔란제국의 수도로 통하는 유일한 길목을 틀어막는 천연 요새가 있다.

팔란제국의 군세는 일차적으로 각 산성에 대규모의 병력과 숨겨둔 신무기들을 배치해두었고 후방에 존재하는 요새에 지휘사령부를 세웠다.

그리고 각 국가에서 원조를 하러 온 수많은 병사와 기사들이, 그리고 마법사들이 보였다.

"성국의 표식이군요. 저들은 성기사단인 것 같습니다. 아 저쪽의 마법사들은 물의 마법을 주로 연구하는 청탑 콜로네드의 문양입니다."

율리스는 무리를 지어 움직이고 있는 이들을 하나하나 내게 소개해주며 걸었다.

"정말 살면서 이렇게 많고 다양한 병력이 모인 것을 보는 건 처음입니다. 수를 떠나서 이렇게 한가지의 목적으로 각 단체가 단합하긴 쉽지 않지요."

공공의 적이 존재한다는 점에서 처음으로 손을 마주 잡았다곤 하지만.

-이 와중에도 잇속을 챙기는 게 인간이지.

페르세르크의 말대로였다.

사령부의 지휘관들이 모여있는 막사 천막으로 들어서자 수십 쌍의 눈동자가 나와 율리스를 향해 들어왔다.

"율리스 5급."

당연 율리스의 경우 소문이 무성하던 천재 마법사이자 최연소 장로인 만큼 수많은 이들에게도 알려져 있었다.

그 반면.

"저 소년은 누구지?"

"그러게요. 처음 보는 인물인데......, 수뇌부의 작전회의에 참석할 권한을 가진 이라면......."

나를 알아보는 이는 상당히 적은 편이었다.

이름은 어느 정도 알려졌을 것이다.

데이비 올 라운이라고 한다면야 '아, 그 왕자!'라고 할 순 있겠지만 실상 내 얼굴을 아는 이가 몇이나 될까.

게다가 이 상황에는 전혀 어울리지 않는 무표정한 인상의 소녀까지 대동하고 나타났으니.

좋든 싫든 시선을 끌 수밖에 없는 게 현실이다.

다만 그런 그들 와중에도 나를 알아보는 이는 있었다.

"하하하하! 데이비 왕자님, 또 뵙네요. 이렇게 다시 보다니 인연이 깊은가 봐요?"

속내를 알 수 없는 미소를 지으며 친한 척 말을 걸어오는 호박색 머리칼의 여성, 카트린느의 행동에 모두의 시선이 다시금 내게 꽂혔다.

일부러 굳이 이 상황에서 나를 소개해서 귀찮게 만들었다.

그냥 단순하게 생각하고 싶지만, 상대가 상대이다 보니 괜한 의심이 드는 지경이었다.

"카트린느 대공, 가셨던 일은 잘되셨습니까?"

"그러게 말이죠. 설마 이렇게 파병을 오게 될 줄은 몰랐지 뭡니까 아하핫! 그나저나 이렇게 금방 다시 뵐 줄 몰랐는데, 정말 인연이 있는 거 아닌가요?"

그녀의 질문에 절로 쓴웃음이 나왔다.

"괜한 오해를 살만한 발언으로 떠보는 건 자제해주시죠. 수틀리면 대공의 부군께 모조리 고자질하는 수가 있으니."

"하하하 안됩니다. 제 부군이 얼마나 귀여운 사람인데. 그 사람을 울릴 수야 있나."

여성의 인권이 막돼먹은 세상은 아니지만 그렇다고 마냥 좋은 세상도 아니다.

그런 사회 풍습이 가득한 이 세상에서 여성이 저만한 입지를 가지는 건 정말 쉽지 않은 일이기도 했다.

"아쉽다, 우리 황녀저하만 아니었으면 확 잡아먹어 버릴 만큼 매력적인데."

-아...... 못을 박았군.

빌어먹을 여자.

이럴 줄 알았다.

순식간에 술렁거리는 모습에 나는 절로 한숨이 나오는 것을 느꼈다.

"잡담은 딴 곳에 가서 하세요. 지금 장난치는 거로 보입니까?"

그때였다.

마뜩잖아 보이는 표정으로 한 여성이 짜증스레 입을 연 것이다.

"지금 우리는 대륙의 존망을 걸고 모여있는 겁니다. 같잖은 사담이나 하려거든 떠나세요."

싸늘한 일갈에 카트린느 대공이 씨익 웃어 보였다.

"어머나, 성녀후보께서 상당히 골이 쌓이신 모양입니다."

빙그레 웃던 그녀는 자리에서 일어난 채 손으로 테이블을 똑똑 두드렸다.

투쾅!!

동시에 누가 말릴 새도 없이 그녀에게 덤벼들었다.

스릉!! 콰앙!!

수수한 백색에 고풍스러운 금 자수가 된 복장을 한 여성은 카트린느의 돌격에도 눈 하나 깜짝하지 않았다.

"멈추시오. 대공, 이 이상 성녀후보께 위해를 가한다면 린디스 제국의 공적인 견해로 받아들이겠소."

그녀를 막아선 것은 성녀후보가 아니었다.

카트린느의 손이 그녀에게 닿기 직전 멈춘 것이다.

그리고, 그녀를 멈춰 세운 건 다름 아닌 성녀 후보라 불린 여성의 뒤에 서 있던 한 여기사였다.

"뭐?"

실실 웃는 얼굴로 카트린느가 눈을 가늘게 떴다.

"전쟁을 원한다면."

"깝치지 마. 네까짓 게 제국과 성국을 이간질하려는 거냐?"

"네 이년......."

"x랄하고 자빠졌네, 어디서 굴러먹다 왔는지도 모를 년이 어딜 끼어들어. 네까짓 게 함부로 말을 걸 상대로 보였나, 내가?"

굉장히 과한 모욕이었다.

하지만 카트린느는 웃는 얼굴 그대로 어조를 느긋하게 바꾸었다.

"서열정리는 딴 데 가서 하려무나, 꼬맹아. 천지 분간 못 하고 날뛰다가 성국이고 나발이고 날아가 버리면 널 지켜줄 방패도 없어질 테니."

그녀의 미소에 진득한 살기가 어리자 그녀를 막아선 기사의 얼굴이 창백하게 질렸다.

순간적으로 터져 나온 살기는 이곳에 모인 모든 이가 보기에도 섬뜩할 정도로 무게감이 짙었다.

-그대와의 대련에서 어처구니없이 패배했다 해도.......

그녀는 대륙 전체를 뒤져도 대적수가 거의 없는 정상급 강자라는 게 확연히 보일 정도였다.

게다가 무엇보다 그녀를 함부로 대하기 어렵게 만드는 것은.

능글맞은 태도 속에 숨겨진 행동력과 계산.

눈싸움의 결과는 결국 성국의 패배 쪽으로 이어졌다.

"......과하게 말했던 점은 사과드리지요. 하지만 카트린느 대공도 지금 상황에 대해 조금 진지해질 필요가 있다고 봅니다. 우린 지금 놀러 온 게 아니에요."

물러섬 없이 똑바로 그녀를 직시하며 말하는 여성의 모습에 카트린느가 스산하게 웃으며 고개를 끄덕여 보였다.

"그렇다면 남을 깔보는 시선은 자제하는 게 좋을 거야, 성녀 후보님. 솔직히 불쾌함을 넘어서 당장 죽여버리고 싶은 걸 참은 거니까."

"......"

"데이비 왕자님은 우리 황녀저하의 부군이 되실 테니까. 곧 내가 충성을 맹세한 황녀저하와 같은 분이다. 언동에 조심하는 게 좋아."

한번 공표한 것도 모자라 못을 박아버리는 그 말에 내가 눈을 가늘게 떴다.

이 여자가 앞뒤 분간 없이 자꾸 선동과 날조를 하고 있다.

어떻게 할까. 엎을까 엎어버릴까.

그런 생각이 그대로 전해진 탓인지 페르세르크는 말없이 내 손등 위에 올라앉아 조용히 고개를 저었다.

-그만두어, 이번엔 그대가 한 방 먹은 게야. 그대가 나서본들 납득하는 이 하나 없을 테고, 꼴불견이 될 뿐이지.

'x병. 저 싸이코 같은 여자가 아주 판을 깔아놓네.'

속으로 씁쓸하게 중얼거린 나는 곧 카트린느의 옆자리에 천천히 착석했다.

남은 자리가 거의 없었던 만큼 나로서도 별수 없는 처사였다.

"이로써 모두가 모였군요. 저는 팔란제국의 살리반 데 팔란입니다. 부족하나마, 이번 전투의 참모 자리를 위임받았습니다."

부드러운 살리반의 말투에 좌중이 침묵했다.

린디스 제국에서 온 카트린느 대공.

성국에서 온 두 명의 성녀후보 중 한 명인 앨리스.

율리스를 포함하여 각 마탑에서 온 마법사들과 기술고문을 맡기 위해 파견되어온 연금술사.

이외에 전쟁이 터지면서 시시각각 발명하는 전염병을 총괄하는 중앙 질병 관리단의 의회원도 존재했다.

서부 대륙의 패권국가이자 팔란 제국과 사사건건 기 싸움을 하던 콘타스 제국에서 온 대체 직속 처단부대 까지.

이렇게까지 한 국가에 대륙 각지의 전력이 모여든 건 거의 불가능하지만, 이번 일이 그만큼 중요한 일이라는 것을 암시하듯 하나같이 이렇게 모인 것에 관해 불만이 있지는 않은 듯 보였다.

물론, 서로 간에 기 싸움은 기본적으로 탑재한 꼴이지만 말이다.

"우선 상황을 설명 들으셨을 겁니다. 앞서 정보를 먼저 접하신 분들은 이번 일이 절대 가볍지 않은지는 알고 계시겠지요. 이번 전투는 이곳 팔란제국뿐만 아니라 모두에게 중요할 겁니다."

이곳이 뚫리면 다음 타겟은 너희들이 될 테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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