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93
만렙 영웅님께서 귀환하신다!
- 8권 17화
의료라는 행위는 상당히 전문적인 지식과 경험을 요구한다.
당연 일반적인 의원도 아니고 무려 중앙 질병 관리단이라는 타이틀을 지닌 의원들의 자존심은 보통의 수준이라 보기도 힘들었다.
이런 상황에 겉모습만 보면 그들의 반도 살지 않은 것 같은 내가 갑자기 끼어들었으니.
불협화음이 나는 건 당연했다.
물론 이것은, 어디까지나 내가 정말 아무것도 모르는 객기만 충분한 귀족가 도련님일 경우만 해당했다.
"이건...... 제국 황실의 신분 보증패. 시......실례지만 누구십니까."
"라운 왕국의 1왕자, 데이비 올 라운이다. 그대들은 적어도 뻔한 답변을 내놓진 않을 거라 믿고 싶은데."
"헉!"
머저리가 아닌 이상 자신의 업계에 어떤 반향을 일으킨 인물이 있으면 그걸 모를 순 없을 거다.
모르긴 몰라도 수년간 질병 관리단이 해결책도 찾지 못하던 질병을 고쳤고.
신에게 유일하게 성흔을 부여받았으며.
그 외에도 현재 의학계에 거대한 신드롬을 일으킨 침술의 일부를 공개한 천재 의술을 가진 왕자.
그제야 내 정체를 깨달은 의원들이 눈을 크게 떴다.
믿기지 않는다는 표정을 지어 보이는 모양새에 내 표정이 더욱 험악하게 일그러졌다.
"구경났나?"
"예......예?"
"벌써 한 명 더 죽었다. 몇 명이나 더 죽일 거지?"
"아......알겠습니다!"
그제야 사태를 파악한 의원들이 하나같이 크게 소리치며 움직였다.
나를 막아서다 보니 치료를 위해 뛰어다녀야 할 의원들 다수가 멍하니 서 있는 꼴이었다.
이름값이라곤 해도 결국 저들에게 나는 아직 자신들의 반도 살지 않은 어린 애송이 도련님일 텐데.
좀 전 그들이 보인 눈동자는 그런 질시와는 달랐다.
"역시 전문직. 자존심이나 열정 없으면 못 해먹는 일답다."
예술이 그렇듯 의학도 그런 면이 없잖아 있다.
자신의 일에 열정이 없으면 발전을 할 수 없는 직종.
어느 직종이든 그렇지만 머리를 쓰는 쪽의 업계는 대부분 비슷한 경향을 지니고 있는 편이기도 했다.
내가 누구인지 눈치채기가 무섭게 재깍재깍 움직이는 이들을 보던 나는 아공간에서 내가 자주 사용하던 평범한 침 세트를 꺼내 정리한 뒤 눈을 살며시 감았다.
2만 명.
이곳에 있는 모든 이들을 치료해도 모자란 숫자이다.
하지만 그게 무슨 상관인가.
거래의 내용은 질병으로 고통받는 자의 구원이지 네크로맨서로 인해 생겨난 피해의 복구가 아닌 것을.
-이 일로 수천 명, 혹은 수만 명이 죽을지 몰라 데이비. 전쟁은 앗 하는 순간 수만 명이 죽어 나가는 끔찍한 미친 짓이니까.
전쟁이라는 단어가 굉장히 거슬리는지 페르세르크가 인상을 찌푸리며 말했다.
-자, 말해 보아. 본녀는 그대의 편, 그렇기에 그냥 넘길 수 없어. 이번 일은 그대의 고집대로 움직이기엔 너무 많은 희생이 뒤따를 게야. 굳이 이 방법을 쓰지 않아도 좋은 방법이 많다는 것을 알았을 텐데?
정론을 꺼내 드는 그녀를 향해 나는 말없이 고개를 끄덕여 보였다.
"그래, 네 말이 다 맞아."
사람 사는 세상은 참 불공평하다.
힘은 나의 것이지만 그 힘을 자신을 위해 써주지 않았다고 수많은 이들이 손가락질을 할 수도 있는 웃기는 세상이 아닌가.
"다만, 앞으로 이것보다 더한 일이 벌어질 거다."
의외의 부분에서 직감이 잘 맞을 때가 있다.
원인 없는 결과는 없다고 했던가.
고작 1년도 안 된 시간 안에 너무 큰 일들이 계속해서 터지는데 모르면 멍청이이리라.
-앞으로 이것보다 더 한 일이 벌어진다고? 그것과 이번 일이 무슨 상관인 게지?
나 또한 마냥 수많은 사람들이 이 말 같지도 않은 땅따먹기에 희생되는 걸 즐기진 않는다.
"초장부터 기를 잡아놔야지."
-또 그 섬뜩한 웃음!
페르세르크의 타박을 무시한 채 나는 있는 대로 킬킬거렸다.
유적에서 깨어난 네크로맨서는 이 이상 진격하지 못할 것이고.
토벌대는 절대 그놈을 토벌하지 못할 것이다.
비난의 화살은 모두 이번 사태를 책임지는 놈들에게 굴러갈 것이고.
나는 적당히 정치질이나 하면서 떡이나 챙겨 먹으면 되는 일이다.
그래야 앞으로 편해질 테니까.
* * *
성녀와 후보는 다르다.
성국이 보유한 성녀후보, 앨리스와 리나는 두 사람 모두 동부 소국의 왕자와 같은 케이스와 달랐다.
성흔의 부재.
성녀 후보, 혹은 성자 후보는 말 그대로 후보일 뿐 본인이 아니었다.
태어날 때부터 축복을 받아 대량의 신성력을 보유한 남아(男兒)는 성국에 소속되며 성자 후보로서 자라고, 여아(女兒)는 성녀 후보로서 교육을 받게 된다.
앨리스 또한 그런 케이스였다.
다량의 신성력은 보유하고 있었지만 성흔까지는 내려받지 못했다.
어릴 적부터 성흔을 받는 것에 인생을 바쳐온 앨리스로서는 뜬금없이 선택을 받은 데이비 왕자에게 더욱 질투 날 수밖에 없었다.
성지라 불리는 성국 발샤스에서 신을 모시고, 신의 말씀을 새겨듣고 전파한 것은 그녀였다.
신의 가르침을 행한 것 또한 그녀였다.
힘든 일을 꾹 참아내며 만면에 미소를 띠고 싫고 궂은일도 마다하지 않고 참아왔건만.
왜 6년간 혼수상태였다는 소국의 왕자가, 그것도 신과는 거의 접점도 없는 평범한 왕자가 성흔을 내려받은 것인가.
25년생을 송두리째 바쳐와도 응답하지 않던 신이 고작 한 소년에게 성흔을 하사했다는 건 그녀의 안에 있던 울분을 폭발하게 만들었다.
그래서 심술을 부렸다.
성녀 후보라고 해도 가벼운 자리는 아니기에 매사 공적으로 생각해야 하지만 이번만큼은 절대 그러고 싶지 않았던 그녀였다.
그 자리는 자신의 자리여야 하는데.
왜 뜬금없이 굴러들어온 돌이 자신을 빼낸단 말인가!
같은 성녀 후보는 다 신의 뜻이라며 받아들인 모양이지만 그녀로선 도저히 납득할 수가 없었다.
'프리아 여신이시여, 어째서 당신을 그토록 섬기고 기도하는 제게는 왜 아무런 답변을 주지 않으시는 건가요.'
고요한 천막 내부에서 경건하게 기도를 올리던 앨리스는 문득 닿는 인기척에 천천히 몸을 일으켰다.
전쟁터의 한복판인 산성에 도달한 탓인지 주변에서 죽음의 냄새가 짙게 베여왔다.
"회의 준비가 되었습니다. 성녀님."
후보가 아닌 성녀.
그녀를 따르는 성기사의 말을 정정하지 않은 채 앨리스는 굳은 얼굴로 조용히 말했다.
"신의 섭리를 거부한 자는 반드시 제 손에서 해결될 겁니다."
단호한 그녀의 얼굴은 펴질 줄을 몰랐다.
* * *
줄타기를 시작한 이상 끝장을 봐야 하는 법이다.
생각 없이 난장판을 부리면 오래 가지 못한다.
치밀하게 난장판을 치면 그것을 적절하게 이용해서 모두를 엿먹일 수 있다.
기왕 깽판을 치고 싶으면 치밀하게 난동을 부려라.
그것이 내가 배운 바였다.
적당히 시간을 끌어야 하되 절대 일정 이상 적이 접근해선 안 되었다.
스스슷!! 파앙!!
워프 마법이건, 텔레포트 마법이건, 가장 기본이 되는 것은 내가 있는 곳과 가려는 곳의 좌표라 할 수 있다.
솔직한 심정으로 설명할 때 가장 위험한 마법 중 하나가 바로 이 텔레포트 마법이기도 하니까.
예를 들어서 내가 텔레포트를 한 곳이 절벽의 한중간이라면?
촘촘한 바위 분자 사이에 끼여서 형체도 만들지 못하고 한 줌의 핏가루가 되는 것도 한순간이리라.
텔레포트는 존재를 분자화시켜서 움직이는 방식.
워프는 공간 전체를 접어서 이동하는 방식.
그렇기에 워프는 텔레포트보다 반동도 적고 안정적이지만 그렇다고 해서 좌표를 마냥 무시할 만큼 무지막지한 사기 마법이라 할 순 없었다.
그나마 다행이라면 워프는 이동지점에 무언가가 있으면 그것을 시전자의 힘에 따라 철저하게 밀어내고 침투한다는 점을 볼 수 있었다.
그것도 시전자의 마나가 형편없이 적으면 소용없지만.
그런 상황에서 내가 어떻게 한 번도 와본 적이 없는 이곳에서 워프를 해올 수 있었는가.
그 해결책은 의외의 부분에서 찾을 수 있었다.
마나게이트.
다름 아닌 지금은 굳게 닫힌 마나게이트가 내가 가려는 점령된 도시에 설치되어있다는 사실이었다.
마나게이트는 기본적으로 정해진 좌표를 미리 기입해두고 장시간 공간전이를 열어두는 방식을 택한다.
모로 가든 좌표가 있다면 굳이 고생할 필요 있을까.
까드드득.......
까득.......
단점이라면.......
이미 점령된 도시의 마나게이트 좌표를 가져와 마법에 사용한 탓에 내가 이동할 수 있는 공간은 이미 정해져 있다는 점뿐이었다.
-세상에....... 겁도 없지. 그대는 세상이 만만하지? 막 그 어떤 놈도 그대를 헤치지 못할 것 같지?
"이거 왜 이래. 나도 믿는 구석이 있으니까 나대는 거야."
정말 내가 손도 못 쓸 만큼 강한 존재가 나타난다면.
그래, 예를 들어서 세계수의 본체 정도.
힘이 멀쩡한 세계수의 본체급의 괴물과 싸운다면 지금의 내 힘으로도 편법을 찾지 않는 적이라면 내가 숨겨둔 유일한 수를 사용할 수밖에 없다.
-세계수가 그렇게 강하다면 어째서 겁도 없이 싸움을 받아들인 게지?
"세계수는 편법이 있으니까."
그것도 안 된다면?
로 아이아스에게 배운 유일한 공격계통 흑마법을 사용하는 수밖에.
대부분의 마법을 방어 용도로 가르쳤기에 그녀가 가르쳐 준 마법들은 공격적인 것들도 대부분은 내가 독학한 방식이었다.
그녀는 흑마법이나 사령마법으로 내가 누군가를 헤치는 것을 극도로 꺼려했으니 말이다.
그런 그녀가 나를 지키기 위해 유일하게 가르친 마법은 분명 존재한다.
"내가 죽을 일은 없으니까 걱정 마."
-흥! 누가 그대 같은 막무가내를 걱정한단 말인가. 상식도 안 통하고, 말도 안 통하고, 멋대로 일이나 저지르는 민폐 덩어리 같으니라고.
미묘하게 데자뷰가 일어나는 기분이다만.
까드드득!!
으어어어어.......
생자인 나를 발견하기가 무섭게 수많은 스켈레톤과 언데드들이 점차 모여들기 시작했다.
명령 없이 그저 방황하며 도시를 배회하던 언데드들은 유일한 생자인 나를 향한 적대감을 절대 숨기지 않았다.
"완전히 죽은 도시가 되어버렸네."
생존자 하나 없는 지독한 도시.
생기라곤 하나도 느껴지지 않고 보이는 것이라곤 파괴의 흔적뿐이다.
스르릉.
익숙하게 허공에서 청단이와 홍단이를 꺼내 든 뒤 검집 채로 허리에 채워 넣었다.
그리고는 다시 아공간에 손을 넣은 뒤 스태프, 초월의 종언을 꺼내 들었다.
"칠종칠금(七縱七擒)."
지금부터 해야 할 일은 단 한 가지.
고대 유적에 숨어 이 사태를 웃기게 관망하며, 전쟁을 즐기고 있는 이 겁대가리 없는 네크로맨서를 끄집어낸 다음.
먼지 나도록 쥐어팬다.
스태프를 가볍게 회전시킨 내가 사령마나를 서서히 움직이기 시작했다.
어서 자신을 사용하라고, 이제야 자신을 사용하냐며 소리를 지르듯 공명하는 사령마나를 숨김없이 털어내기 시작하자 일대를 장악하던 사기와는 완전히 다른 느낌의 어둡고 차가운 기류가 사방으로 흩어지기 시작했다.
[망자는 불을 보고 모여드는 법이니.]
가볍게 중얼거린 내가 초월의 종언을 움직인 뒤 바닥을 한번 두드렸다.
[그 아래에서 잡을 수 없는 빛을 갈망하리라.]
입 밖으로 나오지 않는 의지로 만들어진 언령이 내 몸에서 흘러나오기 시작했다.
주문이 아닌, 시와 같은 느낌의 시동어.
그것이 터지며 눈앞이 환하게 비추어지기 시작했다.
[내가 바로 너희들의 지휘자이니라.]
까드드드득!
으어어어어.......
나를 향해 맹렬한 적의를 내비치며 서서히 모여들던 놈들의 움직임이 서서히 멎어가기 시작했다.
이후 내가 씨익 웃으며 가장 가까이에 있던 스켈레톤 하나를 마주 보고 오른손을 들어 올렸다.
까드드득.
동시에 스켈레톤의 왼손이 올라와 나와 손을 맞춘다.
짝!
뼈와 살이 부딪히는 소리가 가볍게 울려 퍼졌다.
이후 내가 양손을 펴고 가볍게 반짝반짝하는 모션을 취하자 눈두덩이가 검게 비어 있던 스켈레톤 또한 무기를 바닥에 던져버린 채 나를 따라 손을 까딱거렸다.
"반짝, 반짝 작은 별."
까드드드드드득!!
성대가 없어서 노래까지 따라 하진 못하는 모양이었다.
[홍다니 더 잘 부를 수 이써!]
[청다니도 노래 부르고 싶은데.......]
분위기에 맞지 않는 동요 때문일까.
검집에 들어가 있던 홍단이와 청단이가 옅게 공명하며 의지를 보내왔다.
평소라면 그냥 놀아주겠다만, 애석하게도 지금은 그럴 수가 없다.
"의도한 것은 아니다만, 주는데 거절할 수야 있나."
-이 사기꾼.
"전부 내가 받아 가마. 애들아, 연장 챙겨라."
내 말에 일대에 있던 언데드들이 퀭한 얼굴로 천천히 움직이더니 제 무기를 집어 들고 나를 호위하듯 모여 방향을 틀기 시작했다.
"밖에서 보면 그저 우린 반란이 일어난 것처럼 보이면 된다."
까짓거, 언데드 몇백이 죽건 그것은 중요하지 않다.
어둠 속에서 노역을 해줄 노역꾼 수천, 수만을 챙기는 방법은 생각보다 간단했다.
-작가의 말-
안녕하세요.
부덕한 작가 악마꼬리입니다.
처음엔 단순히 다 해먹는 주인공이 보고 싶어서 쓰기 시작한 데이비에 관한 이야기를 서술한 지 벌써 8권 정도가 나와버렸네요.
전작을 쓴 이후로 장시간 공백기를 거치다 보니 예전처럼 빠른 속도로 연재가 되지 못했던 점 때문에 연참을 해드리지도 못했는데, 이렇게 과분한 관심을 가져주셔서 정말 감사하다는 말씀밖에 드릴 수가 없습니다. ㅠㅠ
사실 저도 이렇게 과분한 관심을 받을 줄은 몰랐거든요. ㅎㄷㄷ
하루하루 더 나은 모습을 보여드리며 짬짬이 연참도 해드리고, 그렇게 하고 싶은 마음은 정말 굴뚝 같습니다. 실제로 지금도 그래요.
마음 같아선 벌써 아주 그냥 연참을 야구방망이로 홈런 때리듯 때려 넣었을 겁니다.
그런데 생각과 다르게 몸이 따라주질 못하네요.
결론부터 말해서 컨디션이 너무 나빠졌습니다. ㅠㅠ 머릿속이 뒤죽박죽이라 기존의 연재 분량을 맞추는데에도 머리가 띵해질 지경입니다.
네, 욕심만 앞서고 제 관리 스스로 못한 제가 멍청했죠. ㅠ
벌써 휴재만 두 번이었던가요....... 이러면 안 되는데.......
본 작품 만렙 영웅님께서 귀환하신다는 당분간, 아주 당분간만 주 5일제로 월~금 연재로 바꿀 예정입니다.
기다려주시는 분들께는 정말 죄송하지만, 최대한 빠른 시일 내에 비축분을 채워 주 7일 연재로 돌아오도록 하겠습니다.
절대 오래 걸리지 않겠다고 약속드리겠습니다. 최소한의 컨디션만 회복하는 대로 본래의 연재 주기로 되돌아갈 테니 조금만 기다려주세요.
정말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