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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렙 영웅님께서 귀환하신다!-196화 (195/1,559)

# 196

만렙 영웅님께서 귀환하신다!

- 8권 20화

무영창때문에 대처가 극도로 어렵고 속도 또한 자신보다 월등히 빠르다는 사실을 금방 알 수 있었다.

단순히 마법의 싸움이었다면 여지라도 있었을지 모른다.

실제로 그는 오랜 시간 전투를 해온 경험이 있으니까.

그가 마법을 배워온 시간은 무려 300여 년.

당시 천재라 불리던 재능에 300년에 달하는 쉬지 않는 수련과 기연 덕분에 그 어떤 존재보다 마법사로서의 소양이 뒤처지지 않는다고 스스로 자부하는 그였다.

하지만 이건 달랐다.

소년의 마법은 그가 알던 마법 체계와는 다른 방식을 보여주었다.

소년은 자신을 상대하는 데에 단순히 마법만 사용하지도 않았다.

조금이라도 긴장을 놓았다간 전신을 베어버릴 것 같은 예리한 검술.

검술 후에 견제하듯 파고들지만 한번 잘못 맞았다간 좋은 꼴 보지 못할 것 같은 상위 마법.

이외에 여러 가지.

소년은 상식적으로 이해할 수 없는 다수의 힘을 자유자재로 구사하며 그를 몰아넣었다.

섬뜩한 점은 네크로 폴리스를 무력화시키기 위해 소년이 사용했던 초고위급 신성마법의 존재 유무였다.

척 봐도 몸 안에 있는 신성력을 모조리 끌어다 쓴 것 같은데, 어느 마나건 바닥을 드러낼 만큼 사용하면 돌아오는 건 죽음을 각오한 리바운드뿐이다.

하지만 소년은 그런 리바운드 따윈 상관없다는 듯 맹렬하게 몰아붙여 들어왔다.

그쯤 되니 현재 자신이 언데드를 모두 부리고 있었다 해도 그를 이길 수 있을까 의심이 들기 시작했다.

물론, 자신 또한 사령술사의 근원인 본래의 힘 대부분을 사용할 수 없는 상황이었기에 같다곤 해도 지금의 상황이 나아지진 않았다.

인정할 건 해야 했다.

눈앞의 소년은 도저히 이해할 수 없지만, 자신과 동급, 혹은 다양성에선 그 이상으로 강했다.

'정체를 파악해야 한다.'

욕심과 사명이 그의 머릿속을 잡았다.

그의 주군이었던 사령왕 데이안은 이미 죽어 없어진 존재이지만 마치 사령왕 데이안이 살아있을 때처럼 행동했다.

소년의 몸 안에 숨겨진 것들을 보고 싶다는 욕심이 든 것도 사실이었다.

탐구에 한해서 정신병에 가까운 집착을 보이는 건 흑마법사나 일반 마법사나 별반 다를 바 없으니까.

'나는 8서클 마법사. 설령 9서클 마법사라 해도 그의 눈을 피하진 못하리라!'

계속해서 날아드는 섬뜩한 공격을 재차 피해내며 소년에게 접근한 그는 보이지 않는 영혼의 손을 발현시켜 순식간에 소년의 움직임을 막아냈고 그대로 육탄돌격하듯 소년과 접촉했다.

멀리서 소년의 모든 것을 파악할 수 없다면 직접 확인하리라.

-네놈이 가지고 있는 것이 무엇인지 이 두 눈으로 똑똑히.......

소리치던 그가 그대로 멈췄다.

아주 짧은 고요함이 이어진 것도 동시였다.

소년의 몸 안에 들어있는 것들을 모조리 확인하는 데에 성공한 엘더리치 클레르 오르판의 붉은 안광은 지독한 불신으로 가득 찬 채 파르르 떨렸다.

결과적으로.

그는 소년에게서 본 것은.

단순한 벽이었다.

다만, 벽이기에 더욱 놀라울 수밖에 없었다.

"오만 떨지 마. 몸 안의 마나가 초월의 경지에 오르면 존재하는 것만으로도 여파가 미쳐, 스스로 은폐하려는 습성을 지닌다."

8서클이 세 단계로 나뉘어서 경지가 존재한다면, 9서클 또한 마찬가지.

"서클을 초월한 마법사가 남긴 말이니 잘 새겨들으라고, 마법은 8서클부터 시작이야. 이지가 없는 언데드를 강제로 부리는 주제에 뭐? 데스로드? 이게 돌았나."

소년의 말은 귓가에 들려오지 않는 듯 클레르 오르판이 그대로 무너져 내렸다.

콰자작!!

동시에 소년의 손이 그의 머리통을 잡고 그대로 바닥에 찍어버렸다.

"필사적으로 싸워. 그렇다고 죽이진 말고."

스스로를 데스로드라 칭하던 거인족 리치, 클레르 오르판의 의식은 거기서 한번 끊어졌다.

* * *

"성자님! 환자입니다! 돌림병이 돌았어요! 모두가 같은 증상입니다!"

"륀느, 반복 노가다, 탈주하려는 이의 단속, 되지도 않은 연극, 매우 낮게 평가."

"예?"

"아......아니다. 가자 치료."

떠듬거리며 답하는 데이비의 표정이 일그러지자 보고를 위해 다가왔던 의원 하나가 의아한 표정을 지었다.

세상에 완벽한 사람은 없다더니,

수백 년 만에 나타난 진짜 성흔을 받은 성자의 존재에 환상을 지니고 있던 의원은 가끔씩 기묘한 짓을 하는 이 젊은 소년의 모습에 고개를 주억거렸다.

그가 가진 의료지식은 놀라운 수준이었다.

실제로 이번 사태가 벌어지면서 질병이 지금껏 알려졌던 것들과는 다르게 변하는 모습에 모두가 혼란스러워했다.

지금껏 쌓여온 기록들은 아무짝에도 쓸모가 없었고 아주 조심스레 상황을 봐가며 하나둘 치료하는 수밖에 없었다.

그뿐이면 다행이리라.

분명 같은 질병을 지닌 환자인데 어째서인지 같은 약을 투여해서 누군가는 살아남았고, 누군가는 피를 토하며 괴로워하다 죽어 나갔다.

이게 현실인가.

이건 꿈이다.

모두가 그렇게 생각하고 있었다.

그때 나타난 게 눈앞에 걸어가고 있는 이 젊은 소년이었다.

소년은 지금껏 질병 관리단이 가지고 있던 환자 구분법 이외에 구분법을 제시했고 그에 따라 생각지도 못한 제조방식의 약을 투여했다.

당연 검증되지 않은 의약품을 투여할 수 없다 반발하는 이들도 있었지만.

그들 모두 치료 시작 몇 시간 만에 모두 입을 다물어버렸다.

단 한 명도 빠짐없이 모두가 차도를 보이기 시작했기 때문이었다.

그가 나서기 시작하면서 치료된 환자의 수가 수명, 혹은 수십 명에서 수백 명 수천 명이 되기 시작하는 건 한순간이었다.

게다가 가장 걱정스럽던 부작용 하나 없었으니.

이건 말 그대로 대륙 의학계에 신드롬이나 다름없었다.

-그 대단한 의회원 고르네오 남작님이 왜 그렇게 침을 튀겨가며 데이비 왕자의 업적을 주장했는지 알 것 같더라.

제 선배이자 상위 의원 중 하나인 슈트룸이 했던 말이 새삼 실감이 나는 그였다.

다만, 그의 실력과 다르게 실제로 본 데이비 왕자의 성격은 조금 특이한 소년이었다.

가만히 두면 한참 동안이고 멍하니 한 곳만 바라보는 것은 기본이오, 주변에 나비라도 날아다니면 그 시선이 한없이 나비만을 쫓았다.

그뿐 아니라 가끔씩 기괴한 말투를 사용하기도 했다.

그것이 그의 단점이 되는가 하면 사실 그 정도는 아니었지만. 그래도 조금 특이한 성격이라는 것은 부정할 수 없었다.

데이비 왕자를 안내해 치료소로 들어선 그는 지독한 혈향과 고통스러워 하는 이들의 신음소리에 인상을 찌푸렸다.

언제고 의술을 행하는 것은 자랑스럽지만, 고통스러워 하는 이들을 보는 건 결코 기분이 좋지 않았다.

"데이비 왕자님?"

"효율을 낮게 평가."

낮게 평가라니, 이건 또 무슨 말투인지.

인상을 찌푸린 체 곧바로 치료하지 않고 상황을 둘러보는 데이비 왕자의 모습을 발견한 다른 의원들이 다급히 뛰어왔다.

"데이비 왕자님! 확인 부탁드리겠습니다! 완전히 다른 방식의 환자라 함부로 손을 쓸 수가 없습니다!"

"도와주십시오!"

처음엔 그를 경계했던 의원들은 이제 남아있지 않았다.

조금이라도 그가 더욱 많은 기적을 보여주길 바라는 이들이 대부분이었다.

그런 의원들의 요청에도 불구하고 말없이 상황을 지켜보던 데이비 왕자가 입을 다물었다.

"일단 보도록 하지."

무엇을 생각하는지 분명 무표정인데 무언가를 고민하는 듯한 얼굴이었다.

이윽고 가장 가까이 있던 환자를 바라본 그의 표정이 살짝 찌푸려졌다.

"맥박 저하, 체온 불균형, 생체 신호 매우 위험한 수준. 그에 따른 대처법 검색."

"탈출 기회."

그때, 데이비 왕자가 눈을 부릅뜨더니 어디론 가로 뛰어가기 시작했다.

"데...... 데이비 왕자님?!"

마치 환자를 두고 도망치는 듯한 그 태도에 모두가 말을 잃었다.

몇몇은 역시 성자인 그라고 해도 모든 것은 알 수 없는 거라는 반응을 보였다.

"뭣들 하나! 데이비 왕자님이 없다고 우리가 아무것도 할 수 없는가! 뭐라도 해야지!"

한 의원의 외침에 다른 의원들이 동조하며 움직이기 시작했다.

하지만 곧 다시 돌아온 소년의 말 때문에 다시 상황이 멈춰졌다.

"다들 정지, 치료 방법을 바꾼다. 같은 증상을 지닌 이들은 체온과 동공의 상태로 구분해서 모두 따로 격리시켜! 그에 따른 의약품은 내가 따로 제조방법을 전파해줄 테니까. 빨리들 움직여! 전염되기 전에!"

"데이비 왕자님?"

미묘하게 감정의 고저가 느껴지지 않던 전과는 완전히 다른 말투였다.

험악하고, 거침없는 그 외침에 의원들은 갑작스레 변한 그의 행동에 당황해하면서도 거침없이 움직이기 시작했다.

"그리고 거기!"

"예? 예!"

"처음 보는데, 어디 소속?"

"예? 좀 전까지 같이 보시지 않으셨습니까요?"

마치 자신을 처음 보는 것처럼 대하는 데이비 왕자의 모습에 그의 얼굴이 당혹스러움으로 더욱 일그러졌다.

다만 데이비 왕자는 무대뽀 같은 성미 그대로 밀어붙여 왔다.

"어디 소속이냐고."

"야......약품 제조 쪽입니다!"

"그래, 여기 적힌 대로 준비해서 내 천막으로 가져와,"

"예?"

"두 번 말하게 하고 환자 수십 죽일래. 아니면 기억해내고 빠르게 튀어갈래."

"흡?! 지금 가겠습니다!"

지는 방금까지 느긋하게 멍때리고 있었으면서!

그의 호령에 당황한 그는 역시 세상엔 완벽한 인간은 없다 생각하며 고개를 절레절레 젓고 급히 뛰어가기 시작했다.

* * *

이번 사태의 원흉.

토벌 대상인 거인족 리치, 클레르 오르판과의 싸움은 생각보다 길지 않았다.

고위 존재라고 해서 싸움이 몇 날 며칠 이어지진 않는다.

외려 강하기에 더욱 빠른 시간 안에 끝나는 경우도 다수였다.

실제로 나를 과소평가한 그는 내게 그렇게 당했고 머릿속에 한가지 명령어를 세뇌당했다.

"륀느, 매우 힘들다고 불평, 그에 따른 보상은 높게 평가."

양손을 허리에 올린 채 당당히 요구하는 륀느였다. 다만 내가 자리를 비운 동안 나를 대신해 내 흉내를 내주었던 게 보통 일은 아니었기에 좋게 받아들이기로 마음먹었다.

"그래, 나중에 시원한 아이스크림이라도 사줄게."

"아이스크림, 륀느가 매우 높게 평가!"

"그래, 바리스는?"

"바리스님, 현재 륀느와 후임들이 철저하게 제압 중. 최전방으로 나가고 싶다고 땡깡을 피워댔다고 보고."

"그래서?"

"가볍게 기절, 인간의 급소, 매우 의식을 빼놓기에 쉬운 난이도, 륀느가 이 기술을 높게 평가."

"잘했다."

율리스나 일리나는 스스로를 관리할 줄 아는 이들이니 그나마 괜찮지만 바리스는 아니었다.

이 정의감 투철한 녀석은 분명 전쟁터의 현상을 보면 당장에라도 진군하겠다며 악을 써댈 녀석이니 말이다.

"데이비님, 갔던 일은 잘되었어?"

쓰러져 신음하는 환자의 맥을 짚어보던 내게 륀느가 조심스레 물어왔다.

"그래, 조만간 큰 소식이 전해져 올 거야."

내 말에 륀느가 고개를 갸웃거렸다.

그리고, 정확히 내가 예견한 며칠 뒤.

사령부에는 큰 소식이 전해져 오기 시작했다.

그 소식은 수많은 이들을 충격으로 밀어 넣기에 충분했다.

지금껏 전쟁놀이를 하는 듯했던 언데드 군단이 드디어 앞뒤 안 가리고 밀어붙이기 시작했다는 이야기였다.

단순히 치고빠지고 간을 보던 언데드들이 죽자고 달려들기 시작했다.

진짜 망자가 된 것처럼.

게다가 사기가 더욱 짙어지며 기괴한 질병들이 더욱 기승을 부렸고 수많은 병사들이 병을 호소하며 후송되기 시작했다.

연합군은 갑작스레 강해진 돌림병으로 휘청이는 데 비해 언데드의 군단은 갑자기 마스터급 데스나이트가 전쟁에 참여하고 대형 몬스터들까지 밀고 들어오기 시작했다.

영령 몬스터인 스펙터는 물론이오, 이번 일의 주축인.......

자신을 데스로드라 지칭하는 리치, 클레르 오르판지 직접 움직이기 시작한 것이다.

한번 물리거나 상처 입으면 끝장이기에 제대로 싸울 수 없는 연합군이 퇴각하는 건 별수 없는 일이기도 했다.

결과는 연합군 대패.

화이트 버드를 이끌던 일리나가 필사적으로 막고 버티던 있던 8산성 중 3곳을 동시에 언데드에게 빼앗겼다는 소식이었다.

연합군이 무리하게 밀고 들어가려 한 것부터 시작된 반격의 불씨라 그런지 화이트 버드의 사령관인 일리나 데 팔란 황녀와 살리반 황자 사이에 불화가 일어났다는 소식도 전해져왔다.

언데드의 총공세는 결과적으로 늦든 빠르든 일어날 일이었다.

차라리 그사이에 희생되는 이들을 최대한 줄이는 게 더 이득이리라.

조만간 발등에 불 떨어졌다는 사실을 깨달은 이들은 사태를 파악하고 도움을 요청해올 것이다.

바로 지금처럼.

"데이비."

가장 먼저 보인 것은 피가 덕지덕지 붙은 갑옷을 입었음에도 그 수려한 미모가 채 가시지 못한 일리나가 가장 먼저 내게 다가왔다.

그리고 연합의 참모인 살리반 황자였다.

성녀 후보 앨리스는 보이지 않았다.

"도움이 필요합니다. 데이비 왕자님."

"그래요?"

"소식 들으셨습니까?"

"발 없는 말이 대륙을 횡단한다고 하지 않습니까. 덕분에 사령부의 사기가 말이 아닙니다."

"그건......."

"그래서, 하고 싶은 말이 있습니까?"

"도와 주......."

"싫습니다."

단호하게 말하며 내가 그를 직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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