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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렙 영웅님께서 귀환하신다!-200화 (199/1,559)

# 200

만렙 영웅님께서 귀환하신다!

- 8권 24화

73. 각자가 가진 숨겨둔 수의 차이

놈의 능력을 조금 과소평가했다는 사실을 인정하지 않을 수 없었다.

아니 정확히는 너무 예상외의 행동이라 조금 당황한 감도 없잖아 있었다.

나와 대치했던 거인족 리치, 클레르 오르판은 자신을 대신할 더미를 이용해 한순간 내 시선을 다른 곳으로 돌렸고, 그 틈을 타 이곳까지 단신으로 스며들어왔다.

결과적으로 놈을 눈치채고 내가 왔을 땐 이미 성녀 후보 앨리스는 사라진 후였고 뒤따라 클레르 오르판의 모습도 거의 흩어지기 직전이었다.

완전히 사라진 게 아니라면 막을 수 있다.

"여기가 어디라고 기어들어 와."

후웅.

옅은 바람 소리가 울려 퍼진다.

동시에 푸른 검기를 내뿜는 청단이의 날카로운 검 끝이 그대로 놈의 척추를 노리고 파고들었다.

"이미 늦었다 필멸......."

쇠가 갈리는 듯한 목소리가 짧게 울려 퍼진다.

확실히 거의 시동된 공간이동 마법이라면 별수를 써도 막지 못하는 게 정상이다.

하지만.

"커헉?!"

청단이는 그딴 건 모르겠다는 듯 그대로 놈을 공간 저편에서 끄집어낸 뒤 척추를 로브 채로 반으로 갈라버렸다.

"커헉?! 어......어떻게!?"

지독한 고통에 휩싸이기라도 했는지 바닥에 쓰러져 버둥거리는 놈의 안광이 쉴 새 없이 요동쳤다.

언데드는 기본적으로 통증을 느끼지 못한다.

그런 만큼 척추가 잘려나간다고 해서 저렇게 고통스러워 할 리가 없다는 소리였다.

하지만, 그는 한 치의 거짓도 없는 고통스런 비명을 여지없이 들려주었다.

통각이 없는 놈이 비명을 지르고 고통스러워 하는 이유는 간단했다.

놈을 베어버리는 데 사용한 검이 다름 아닌 청단이였기 때문이었다.

전신이 사령마나로 반 정도 이루어져 있는 리치에 마속성을 지닌 존재.

게다가 내가 청단이로 놈을 베어버리면서 부숴버린 것은 놈의 생명의 근원이라 불리는 외부의 심장.

즉 라이프 베슬과의 연결이었다.

라이프 베슬을 직접 부수는 건 불가능하지만, 연결고리를 끊어버리는 것은 가능하다.

"끄으으윽!!"

깔끔하게 놈의 몸을 양단해버린 청단이를 거두고 적당히 거리를 벌리자 놈의 신체가 스스로 붙으려는 듯 서서히 움직이기 시작했다.

하지만 생명력을 대부분 빨려버린 놈의 몸은 이미 복구가 불가능한 수준에 이르러있었다.

"빌어먹을."

짧게 욕지기를 토해낸 그가 붉은 안광을 번뜩이며 나를 노려보았다.

"그 검. 보통 검이 아니로구나, 방금 라이프 베슬과의 연결이 끊어졌다."

"그럼 잽싸게 죽어야지 왜 살아있나."

심드렁하게 물어보지만, 이유 자체는 이미 알고 있었다.

"크흐흐"

"산삼이라도 삶아 먹었나? 마나량이 상당히 늘었는데."

내 질문에 돌아온 것은 대답 대신 광소였다.

"크흐흐흐. 네놈은 그때 나를 죽이지 않은 것을 절대 후회하게 될 것이다. 두려워해라 필멸자여! 곧 불멸자께서 강림하시니!"

"그거야 내가 판단할 일이고."

그놈의 필멸자 타령은.

세상에 불멸자 같은 건 존재하지 않는다.

신의 의지라 불리는 주신 프리아 조차 의지의 교체가 몇억 년 단위로 이루어지는 마당에.

처음 녀석과 맞닥뜨렸을 때와 다르게 현재 놈의 몸에서 느껴지는 마나의 양은 최소한 30퍼센트 이상 늘어있었다.

적은 양 같다고?

놈의 수준이 현재의 나와 같은 무려 8서클 급의 리치라는 점을 생각하면 절대 적은 양은 아니었다.

상대가 나빴을 뿐.

그는 이미 충분히 대륙 단위로 재앙에 가까운 존재라는 사실은 변치 않았다.

"8개의 산성을 모두 점령했고 나는 그곳에 봉인되어있던 내 힘이 담긴 라이프 베슬을 모조리 되찾았다. 그런 기괴한 검에 속아 당하긴 했다만, 다음에 만날 때도 같을 거라 생각하지 마라."

[청단이 기개하지 아나!]

청단이의 뾰로통한 불만이 울려 퍼졌지만, 현재 청단이의 목소리는 남들에게 들리지 않았다.

"나는 네가 생각하는 이상의 수많은 사령마법과 저주마법을 알고 있음이니, 발버둥 쳐라. 필멸자여, 불멸자가 가진 진짜 저력을 보여 주리라."

호언장담하는 그를 보며 나는 그저 심드렁한 표정만을 지어 보였다.

"그래 그래. 나도 다음에는 다른 걸 보여줄 테니 기대하라고."

아무리 뛰어난 리치라도 라이프 베슬의 양은 한계가 존재한다.

단순히 죽이는 게 아니라 한번 죽을 때마다 라이프 베슬과의 연결을 하나씩 끊어낸다면 언젠가는 진짜 불사에 가까운 놈이라도 죽게 될 터다.

고위 뱀파이어는 불사의 핵을 체내에 보관하며 계속되는 부활을 한다.

반대로 리치라는 존재는 자신의 생명의 근원이나 다름없는 그것을 각 용기에 담아 체외에 보관하곤 한다.

그것이 라이프 포스 베슬이었다.

보통의 경우 리치들은 자신의 심장을 라이프 베슬로 삼는 편이지만 그게 꼭 심장이어야 할 이유는 없었다.

"그나저나 이렇게 망설임 없이 타락할 줄은 몰랐는데."

그에게서 관심을 끊어버린 내가 중얼거렸다.

"그녀는 나의 주인께서 다시 부활하시는데 가장 큰 매개체가 될 것이다."

"성녀후보를 매개체로 쓰겠다고?"

"빛이 강해야 어둠도 짙어지는 법. 스스로 타락한 성녀는 정말 보기 힘든 소체일 테지. 나는 보았다. 그녀의 머릿속에 있는 공허함과 분노, 그리고 좌절감을."

쓸데없는 것만 보고 있네.

좀 전까지 내뿜던 분노는 온데간데없어졌는지 그가 여유롭게 이죽거렸다.

몸의 대부분이 바스러져 먼지가 되어 버렸지만, 전혀 다급함 따위는 느껴지지 않았다.

가장 빛나는 존재였기에 가장 어두운 존재를 부활시킬 수 있다라.

퍽 웃긴 일이다.

빛이 강하면 강할수록 그림자가 커질 수밖에 없다는 사실은 하나의 법칙이나 다름없었다.

"선물을 하나 주도록 하지. 아마 네놈 같은 필멸자들은 감당키 어려운 시련이 될 것이다."

"거절하마."

따악!

단호한 거절에도 그는 멈추지 않고 아직 남아 있는 손을 움직여 핑거스냅을 튕겼다.

그러자 대량의 힘이 진동하기 시작했고 그나마 몸을 유지하고 있던 놈의 뼛가루는 완전히 흩어져 버렸다.

아마 다른 생명의 근원이 되는 곳에서 다시금 근처의 골격을 끌어모아 부활을 꾀하리라.

그가 있었다는 흔적은 그저 근처에 휘날리는 아무것도 느껴지지 않는 먼지가 전부였다.

애초에 놈의 위치를 모르는 것도 아니고, 당장 여기서 칼질을 한다고 놈에게 영향이 가는 것도 아니니 내가 한 방 먹은 꼴이다.

괜한 짜증이 밀려오기 시작했다.

"개 같은 X끼가 나와 숨겨둔 한 수 싸움을 해보자 이거지."

네가 네 주인인지 나발인지에게 받은 것들이 숨겨진 한 수라면.

나는 내가 가진 모든 기술을 동원해서라도 널 한번한번 정성 들여 뭉개 뜨려 주리라.

칠종칠금(七縱七擒)이라 하였다.

놓아주는 게 아니라 죽이는 것이지만.

어디 한번 누가 더 숨긴 게 많은지 해보자.

* * *

성녀후보 앨리스의 변절은 사실상 크게 관심 없는 일이었다.

그녀가 성녀후보가 아닌 진짜 성녀가 되기 위해 어릴 적부터 무슨 고통을 겪어왔고 또 내게 어떤 마음을 가지고 있었는지는 중요하지 않았다.

내게 중요한 것은 신의 시련을 견디지 못한 그녀가 서서히 타락하기 시작했다는 사실이고.

리치 클레르 오르판의 꼬드김에 넘어가 배신을 했다는 사실 뿐이다.

-혹여라도 그녀 때문에 큰일이 벌어진다면.

"크게 신경 쓰지 마. 고민한다고 벌어질 일이 달라지진 않으니까, 앨리스가 인간으로 남아 있다면 최소한 인간으로서의 규율에 따라 처리할 것이고."

만약, 그녀를 다시 만났을 때 그녀가 인간의 범주를 벗어난 무언가가 되어 있다면.

혹은 그에 준하는 변화를 겪었다면.

인간이 아닌 괴물로서 처리하는 수밖에.

검을 거둬들인 나는 미련 없이 그 장소를 떠나 폭음이 울려 퍼지는 곳으로 빠르게 향했다.

"아악!!! 내 팔!! 내 팔이 얼어붙었어!!"

"빌어먹을! 발리스타에 두꺼운 밧줄을 연결해! 놈을 끌어내려!"

절박한 외침과 고통스런 신음소리.

사방에서 들려오는 처절한 비명소리가 귀를 따갑게 때렸다.

순식간에 아수라장으로 변해버린 성문 쪽에는 깊은 부상에 쓰러져 허우적거리는 병사들과 즉사했는지 차갑게 굳어있는 병사들도 여럿 보였다.

츠츠츠츳.......

이윽고 하늘의 빛을 가릴 만큼 거대한 그림자가 유동하며 거체의 무언가가 괴성을 내지르기 시작했다.

-크아아아아앙!!

"성량이 장난 없네."

-성대도 없는 놈이 잘도 포효하는군.

내 눈에 보인 것은 30미터에 달하는 거대한 비룡형 언데드였다.

비록 살점은 거의 남지 않은 뼈밖에 없는 비룡이었지만 기본적으로 하늘의 왕자라 불리는 와이번의 수배는 될 법한 거대한 사이즈의 비룡이었다.

게다가 팔이 달려있지 않는 와이번과 다르게 놈은 마치 동화 속의 드래곤 마냥 팔이 달려있었고, 그 앞발의 끝에는 모든 것을 부숴버릴 법한 발톱이 달려있었다.

살점이 하나도 붙어있지 않았지만, 골격만 보고도 놈이 어떤 놈인지 알아낼 만큼 특징은 도드라졌다.

"웜 와이번......."

그 크기가 일반 와이번보다 최소 4배에서 크게는 10배까지도 거대한 와이번 과의 최고 크기 포식자.

하늘의 왕자라 불리는 것이 와이번이라면 이놈은 말 그대로 하늘의 왕이라 불리는 극소수의 개체이다.

실제로 대륙에서 아주 희귀하게 보이는 놈으로 기본적으로 놈은 드래곤의 아종이라 불리며 브레스를 마구잡이로 쏘아낼 만큼 강력한 개체이기도 했다.

단일적으로 봤을 때 놈은 와이번 과일뿐 단순히 와이번이라 분류하기엔 그 힘이 너무 강렬했다.

다행이라면 본래 화속성의 화염 브레스가 아닌 냉기 브레스라 2차 적인 피해가 그렇게 크지 않다는 점이었다.

-실제로 언데드가 된 걸 보는 건 오랜만이군. 본녀도 생전에 단 한 번밖에 보지 못할 만큼 희귀한 개체였는데.

놈은 상대할 이가 없다고 알려질 만큼 강력한 포식자다.

놈의 뼈는 드래곤 본에 비할 바는 못 되지만 어지간한 금속보다 단단했고 그 거대한 체구에서 나오는 힘은 일반 와이번과는 그 체급부터가 달랐으니까.

다만 주변의 인간들은 놈이 극소수 희귀 개체인 웜 와이번이 아니라 드래곤이라 착각한 듯 보였다.

당연 저만한 덩치에 저런 모습은 동화 속에서나 볼 법한 드래곤의 모습이 아니던가.

"드......드래곤......"

"믿을 수 없어....... 냉기 브레스 한 번에 수백 명이......."

일순간 얼음 동상이 되어버린 이들은 순식간에 급속냉동이라도 되어버린 것처럼 달리던 자세 그대로 얼어붙어 버렸다.

기본 사이즈가 최소 100미터부터 시작인 것이 드래곤이다만.

이들이 그 사실을 알 턱이 없다.

나는 곧장 놈의 출현으로 시선이 팔려있는 지휘부 천막으로 들어섰다.

그곳에는 복잡한 표정으로 하늘 위에 떠 있는 놈을 바라보고 있는 살리반 황자가 있었다.

"상황은 어떻게 되었습니까?"

"아....... 데이비 왕자님. 와주셨군요."

"보아하니 퍽 웃기게 돌아가는 꼴인데."

"드래곤이......드래곤이 나타났습니다! 언데드 드래곤이요! 놈이 빌어먹을 정도로 규격 외의 존재인 것은 알았지만 도대체가......."

그가 착잡한 심정을 숨기지 못한 채 분통을 토해냈다.

"저런 괴물은 본적이 없습니다. 와이번의 수 배에 달하는 거체에 브레스 한 번에 수백 명이 얼어붙었어요, 지금 당장은 카트린느 대공과 알라공작, 그리고 제 동생인 일리나가 놈의 시선을 끌어 브레스를 요새 바깥쪽으로 유도하고 있지만......."

그것도 오래 버티지 못할 것 같습니다.

그렇게 말하는 살리반 황자였다.

확실히 웜 와이번은 일반적인 와이번과는 그 전력부터가 다르다.

괜히 데미 드래곤 종의 일부라 부르는 게 아니니까.

"드래곤이라......저게 드래곤처럼 보입니까?"

"검기도 통하지 않는 단단한 뼈에 지독한 브레스, 게다가 저 압도적인 위용과 크기, 드래곤이 아니면 뭐란 말입니까!"

그의 질문에 나는 입을 다물었다.

굳이 정정할 이유는 없어 보였다.

때마침 빠르게 이동한 카트린느 대공이 성벽을 박차고 허공으로 튀어 올라 놈의 등위를 걷어차 찍어눌렀다.

어마어마한 힘이 담긴 공격이었지만 하늘을 나는 거대한 체격을 지닌 존재와의 싸움에 대해선 경험이 부족한지 제대로 된 유효타를 쉽게 먹이지 못하고 있었다.

"데이비 왕자님. 얼어붙은 이들을 살릴 수 있습니까?"

놈을 죽이는 게 아닌 얼어붙은 이들을 살릴 수 있냐는 말.

생각해보면 살리반 황자는 처음부터 그랬다.

살릴 수 있다면 최대한 많이 살리려는 듯한 행동거지를 보여왔으니까.

"살릴 순 있지만, 놈의 브레스가 다시 쏟아지면 희생이 더 커집니다. 우선 놈을 처리하도록 하죠."

"하지만 놈이 지상으로 내려오지 않는 이상 힘듭니다. 위험한 마법이나 포획은 대부분 높이 날아오르면서 피해버리고 있습니다."

패턴도 괴랄하고, 힘도 강하다.

흔히 말해서 놈은 레이드 보스 같은 놈이라는 소리였다.

콰앙!!

그때였다.

놈의 등위에 올라타 무차별적으로 공격을 가하던 카트린느가 놈의 발광에 균형을 잃고 추락한 것이다.

"안 돼!"

그 모습에 살리반 황자가 기겁하며 소리쳤다.

허공에서 몸을 가누지 못하는 그녀에게 마무리를 가하려는 듯 분개한 놈의 날카롭고 단단한 이빨이 날아들었다.

"살리반 황자님."

"네?"

"진군 준비해주세요. 지금부터 이곳을 떠나 놈의 근거지를 털어버려야 할 것 같으니......."

"그게 무슨......"

"그리고, 저놈은 일단 떨어뜨리고 봅시다."

내 말에 그의 눈이 크게 뜨여졌다.

말보다는 행동으로,

나는 옆이 훤히 뚫린 천막을 빠져나와 빠르게 몸을 튕겼고 애꿎은 화살을 쏘며 두려워 하고 있는 병사들 사이로 파고들어 갔다.

쿠웅!!

동시에 내 걸음 한걸음마다 커다란 고동 소리가 울려 퍼지기 시작했다.

쿠웅!

[노아스, 요구를 상납한다.]

[계약자의 요청을 소납한다.]

"지금부터 진군할 거다. 선두에 서서 닥치는 대로 부술 테니까 일단 그 뼈밖에 안 남은 닭부터 묻어버려."

드래곤처럼 보이는 와이번에게 경악을 느낀다고.

그렇다면 이쪽에선 흙의 거인을 내놓으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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