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만렙 영웅님께서 귀환하신다!-201화 (200/1,559)

# 201

만렙 영웅님께서 귀환하신다!

- 8권 25화

언데드가 물러가고 소강상태에 접어들며 한숨 돌리게 된 병사들은 참혹한 전투의 현장에서 쉬이 눈을 떼지 못했다.

좀 전까지 살아서 돌아가자며 전의를 다지던 전우들은 피를 토하며 살려달라 외치다 결국 같은 언데드가 되어 전우의 목덜미를 물어뜯었다.

단순히 육탄전이었다면, 또 팔란제국에서 심혈을 기울여 준비한 방어 태세와 신무기가 아니었다면.

결국, 자신들도 똑같이 절뚝거리며 생자를 향해 맹렬한 분노를 내뿜고 있었을지도 모를 일이었다.

결국, 처참한 희생 끝에 살아남은 이들에게 보이는 것은 이 사태를 만든 그 괴물 같은 존재에 대한 맹렬한 분노와 성녀후보 앨리스를 향한 원망이었다.

데이비 왕자와 충돌했기에 그를 밀어내 버렸다는 소문은 익히 들어 알고 있었다.

처음엔 병사들도 그러려니 했었다.

사람 하나 끼인다고 전쟁이 바뀔까.

그런데 소문이 들려왔다.

서문이 뚫리기 직전 홀연히 나타난 데이비 왕자가 단신으로 놈들을 모조리 불태워 버렸다는 이야기였다.

솔직히 허황된 이야기였다.

그렇기에 그저 과장되었겠거니 하는 이들이 대부분의 의견이기도 했다.

그런 그들의 생각은 갑작스레 요새를 공격하기 시작한 거대한 존재.

입에서 초저온의 냉기 브레스를 내뿜는 거대한 골룡의 존재 때문에 완전히 뒤집힐 수밖에 없었다.

* * *

한 명으로 감당이 힘든 괴물이다.

소드마스터의 검기로도 쉽게 잘리지 않는 뼈와 닿는 것만으로 죄다 얼려버리는 냉기 브레스까지.

단신으로 상대하기엔 어렵다는 판단이 내려졌기에 누군가가 객기를 부리는 사태를 보이진 않았다.

대화가 오가지 않았음에도 불구하고 린디스 제국의 불여우 대공, 카트린느 카라벨라와 팔란제국의 황녀이며 화이트 버드의 수장인 일리나 데 팔란. 그리고 콘타스 제국의 처단부대 단장인 알라 공작의 합공이 시작되었다.

뜻하지 않게 삼제국의 주축들이 힘을 모은 꼴이었다.

굳이 자신들의 위치가 아니라, 자신들이 나서서 피해를 최소화하겠다는 행동거지였다.

그들은 놈을 처리하는 것보다 놈의 시선을 끌어 공격 루트를 요새의 바깥쪽을 향하게 만들었다.

덕분에 큰 피해는 처음 내리꽂혔던 기습적인 브레스 이외엔 크게 닿지 않았다.

물론, 그 거체가 날뛰면서 성벽의 일부가 무너지긴 했지만, 인명피해는 처음의 수백 명을 제외하면 아직까진 크지 않았다.

병사들은 제발 저 세 사람이 놈의 시선을 끌어낸 뒤 숨통을 끊어주길 바랐다.

다시 한 번 그 차가운 브레스가 자신들을 향해 날아오는 모습을 볼 자신이 없었기 때문이었다.

다행이라면 다행이었다.

타오를 듯한 머리카락과 꼬리를 번뜩이며 종횡무진 놈을 유린하고 있는 카트린느 대공은 확실히 놀라울 정도로 강한 존재였다.

한 생명체가 저렇게까지 강해질 수 있는 것일까 싶을 정도로 현란했고, 강렬했으며. 압도적이었다.

갑작스레 나타난 드래곤의 존재에 겁을 먹을 법도 하건만, 그녀는 멈추지 않고 맹공을 가했다.

그리고 그 뒤를 이어 일리나와 콘타스 제국의 처단부대 단장인 알라 공작이 나서서 그녀를 보조했다.

뭣 모르는 이들의 시선에는 분명 그 셋이 거대한 냉기의 골룡을 이길 수 있을 것이라 보기도 했다.

하지만 그것은 안일한 생각이었다.

그저 놀아나듯 당하기만 하던 놈이 거대한 포효를 흘리기가 무섭게 그 틈을 파고들어 카트린느 대공을 꼬리로 쳐 날려버린 것이다.

갑작스런 공격에 대응하지 못한 카트린느는 그대로 추가 공격에 노출되었고 그대로 당하는 듯싶었다.

모두가 입을 다물지 못하고 눈을 부릅뜬 그 순간.

성벽을 지키던 병사 '알'은 문득 자신의 어깨를 잡아 뒤로 당기는 손길을 느낄 수 있었다.

"비켜."

그리고 그 뒤를 이어 심드렁한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노아스, 요구를 상납한다."

짧은 중얼거림.

그 끝의 결과는 가볍지 않았다.

땅속에서 지름 수 미터에 길이만 수십 미터에 달하는 거대한 흙의 팔이 돋아나며 미친 듯 날뛰던 골룡의 꼬리, 날개, 몸채를 낚아채 그대로 땅에 처박아버린 것이다.

그리고.

"세상에......."

"저게 뭐야......."

마치 수면 아래에서 무언가가 튀어나오듯 자연스러웠다.

거대한 골룡과 비슷한 크기의.

아니 정확히는 그보다 더 거대한 흙의 거인이 모습을 드러낸 것이다.

[섭리를 거부당한 미물이여, 편히 잠들라.]

웅장하며, 묵직한 목소리와 함께 흙의 거인의 주먹이 골룡을 향해 내리꽂혔다.

반사적으로 골룡이 흙의 거인을 향해 냉기 브레스를 쏘아 보냈지만.......

시뻘겋게 달아오른 흙의 거인의 주먹은 냉기 브레스와 닿기가 무섭게 어마어마한 수증기를 내뿜으며 그대로 놈의 머리통을 으깨버렸다.

소드마스터의 공격에도 버티던 놈이다.

단번에 죽지는 않았는지 필사적으로 버둥거렸지만, 놈을 구속하던 거대한 흙의 팔은 점차 놈을 땅속으로 끌어당겨 더욱 강하게 구속했다.

콰아앙!!!!

쾅!!

연달아 묵직한 주먹이 내리꽂힌다.

새빨간 용암이 흘러내리는 주먹으로 몇 차례고 골룡을 후려쳐 부숴버린 흙의 거인은 곧 서서히 힘을 잃고 늘어지는 골룡 채로 땅속으로 들어가며 놈을 집어 삼켜버렸다.

"전투 준비해. 곧바로 출정한다."

이윽고 멍하니 흙의 거인을 바라보던 병사 '알'은 자신의 옆에 올라왔던 소년의 목소리에 눈을 부릅떴다.

아직 어린 소년이었다.

날카로운 눈매가 그를 대하기 어렵게 만들었지만, 무엇보다 놀라운 것은.

방금 나타난 그 흙의 거인이 소년이 불러낸 존재라는 것이라는 점이었다.

직접 보았나 하면 사실 본인도 알 수 없었다.

그저 그랬을 것 같다는 생각뿐이었다.

"아!"

멍하니 소년의 뒷모습을 바라보던 알은 문득 소년의 얼굴이 어디서 한번 본 인상이라는 것을 깨달을 수 있었다.

그리고.

눈을 부릅뜬 그가 소년의 정체를 기억해낼 수 있었다.

간단한 감기였지만 지독하게 변질되어 죽어가던 그를 살려주던 성자.

차갑게 말하면서도 치료 자체는 세심하게 해주던 성격 나쁜 왕자.

데이비 올 라운.

성흔을 받아 성자로 알려졌으며.

성녀후보 앨리스로 인해 전장에 참여하지 않다가 이제와서 나서기 시작한 존재다.

그리고.

단신으로 나타나 서문의 성벽이 뚫리던 것을 막아낸 존재가 아니던가.

그저 소문이 과장된 것이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그게 아니었다.

대륙 최강의 무인 중 하나인 카트린느 대공을 포함한 강자 셋이서 달려들어 큰 공격을 가하지 못했던 괴물이 고작 몇 분 만에 뼛조각이 되어 땅속으로 사라졌다.

그리고 그 사태를 일으킨 소년은 이런 일이 익숙하다는 듯 그저 담담하게 움직일 뿐이었다.

"내가 뭘 본 거지......."

그 생각은 비단 그뿐만이 아니었던 모양이었다.

* * *

"수가 너무 줄었어. 처음에 비해 이렇게 빈약해질 줄이야.

"지들이 무덤 판 거지."

느긋한 걸음으로 지휘부 막사로 들어서자 다수의 눈동자가 내게 꽂히는 게 보였다.

"다들 점심들 맛있게 드셨습니까? 저녁은 지옥에서 먹을 건데."

우스갯소리로 내던진 소리였지만 그 누구도 반응하지 않았다.

"한가지...... 질문들 드려도 되겠습니까?"

그리고 그 무거운 침묵 속에서 한 남성이 조심스레 손을 들어 보였다.

"말씀하세요."

"좀 전 그 거대한 언데드 드래곤을 짓눌러버린 땅의 거인은...... 혹시, 데이비 왕자님이 소환하신 겁니까?"

"흙의 정령입니다. 끝내주죠?"

장난기 서린 내 말에 주변의 눈동자에 경악이 어렸다.

"정령이라니......, 도대체가......."

"성흔을 받아서 신성력을 사용하는 게 아니었나?"

수군거리는 소리가 점차 커지자 살리반 황자가 불편한 헛기침을 하며 좌중을 침묵시키려 했다.

하지만 내가 담담하게 던진 폭탄이 생각보다 거대했는지 그 수군거림은 잦아들 줄을 몰랐다.

내용을 대충 요약하자면.

말도 안 된다.

혹, 정말 사실이라면 무서운 일이다.

또는, 정말 사람이 맞는 것인가.

뭐가 되었건 눈으로 보고도 쉽게 믿기지 않는다는 듯한 태도였다.

"허면......, 그 정령은......"

"거기까지 하죠. 오는 길에 봤습니다. 병사의 수가 반 이상 날아갔던데.........."

내가 말끝을 흐리자 살리반이 시선을 회피했다.

"부끄럽지만 그렇습니다. 생각 이상으로 적이 너무 강했습니다."

"안일했던 게 아니고?"

"그건!"

내 질문에 그가 움찔거렸다.

"처음부터 내가 말했을 텐데요. 상대 우습게 보다가 난리 날 거라고. 그런데 내가 보기엔 내 말을 귓등으로밖에 듣지 않았던 것처럼 움직이던데."

"어......어쩔 수 없지 않소, 여기 모인 이들이 어디 보통 분들이외까. 너그러운 마음으로 이해해주시구려."

인자한 웃음을 띠며 어떻게든 상황을 무마시켜보려 하지만 나는 한가지는 확실히 해야 했다.

"정 감이 안 잡히면 일단 믿고 보세요."

"데이비 왕자님!"

"아는 것에 한해선 그래도 될 만큼 정보를 줄 테니."

"......"

내 말에 불쾌한 심정을 숨기지 못해 소리치려던 사내 몇몇의 목소리가 들려왔지만, 그 이상의 발언은 모조리 무시해버렸다.

"그럼 시간이 많지 않으니 간단하게 브리핑부터 하겠습니다."

"브리핑?"

"상황 설명."

짧게 일축하며 나는 한쪽 벽면에 걸친 지도를 향해 고개를 까딱였다.

"놈은 최소 8서클이상의 사령술사입니다. 이 사실, 알고 계셨습니까?"

내 질문에 다시 주변의 수군거림이 들려왔다.

"몰랐겠지요. 8서클이 어디 흔한 것도 아니고."

"그럴 수밖에요. 대륙 최고 마법사가 아직 7서클입니다. 8서클이라고 누가 생각이나 했겠습니까."

"적은 이쪽의 사정에 맞춰주지 않습니다. 율리스님."

내 말에 그가 쓰게 웃어 보였다.

"헌데 굳이 지금 상황에 그걸 언급하시는 건......, 그 말씀을 하시는 건......."

"단순히 염두에 두라는 소리입니다. 다음으로 넘어가죠. 이제부터는 우리가 해야 할 일과 관련이 있으니."

그렇게 말한 내가 이미 점령당한 8개의 산성을 가리켰다.

"네크로맨서 리치는 이곳 8개의 산성을 굳이 무리해서 점령했습니다. 왜인지 알겠습니까?"

"전쟁놀이를 하는......."

"틀렸죠. 전쟁놀이를 계속할 생각이었으면 이렇게 무식하게 밀어붙이지도 않았을 겁니다. 살살 간을 보면서 희망 고문이나 하고 있었겠지."

내 말에 어렵사리 입을 열었던 사내가 고개를 푹 숙였다.

"결과적으로 모종의 이유로 놈은 여유를 잃었습니다. 그 때문에 무리하게 8개의 산성을 점령했고요."

"어째서......라고 생각하십니까?"

"라이프 베슬. 리치에겐 생명이자 힘의 근원입니다. 살리반 황자님, 뭔가 아시는 게 있을 텐데요."

내 미소에 그가 시선을 피하다 조용히 고개를 끄덕였다.

"후우...... 맞습니다. 8개의 산성엔 각기 산성을 보호해주던 대마석들이 있었습니다. 설마 그게 라이프 베슬일거라곤......."

"보통 라이프 베슬이라면 고기 파편으로 이루어진 심장을 생각할 테니 틀린 말은 아니지요."

"그럼 그 말씀을 하시는 이유가 뭐죠?"

공적인 자리.

일리나가 존대를 섞어 내게 물어왔다.

"그러니까 지금부터 우리가 이 지겨운 토벌을 끝내려면, 그놈을 7번 더 죽여야 한다는 소리입니다."

"죽여요? 그리고 7번?"

의아한 표정을 지어 보이는 이들을 향해 내가 고개를 끄덕여 보였다.

"예, 정확히 7번. 시간은 많지 않습니다."

"어째서 7번이죠? 앞서 말한 데로라면 놈이 가진 라이프 베슬은 8개일 텐데?"

"7번 맞습니다."

내가 담담하게 말하며 산성모형 하나를 튕겼다.

"방금 내 손에 한 번 뒤졌으니까요."

"흡?!"

내 말에 경악한 시선이 닿았다.

"출정 준비는 어떻게 됐습니까?"

"물자는 충분합니다만......, 사실 사기가 말이 아닙니다. 데이비 왕자님이 계셔서 그나마 나은 편인 수준이라......."

"전부 모아주세요. 사기를 끌어올리는 대로 거치지 않고 출정할 테니."

세 치 혓바닥 놀리는 게 또 내 전문인데.

전쟁에서 군사의 사기를 높이는 데에 논리가 필요할 것 같은가? 사기를 올리는 데 필요한 것은 공감, 그리고 군중심리뿐이다.

천막을 나서며 내가 허공에 대고 중얼거렸다.

"잭, 가서 바람잡이로 쓸 믿을 놈을 몇몇 구해와."

밑 작업은 기본이다.

* * *

출정 전에 장군들이 왜 병사들을 모아놓고 연설을 하는가.

병사에게 가장 크고 빠르게 영향을 미치는 건 다름 아닌 사기라 할 수 있다.

그리고, 나는 그 사기를 적절하게 잘 이용해 온 케이스였다.

애초에 신성력으로 만들어진 버프마법은 받는 이의 전의가 굳셀수록, 신념이 강할수록 위력이 배가 된다.

그것이 내가 지금껏 버프마법을 사용하기 전 병사들을 모아놓고 주저리주저리 떠들어댄 이유이기도 했다.

게다가 이번엔 그 수가 지금까지와는 비교도 할 수 없을 만큼의 방대한 숫자.

한둘도 아니고 최소 선두에 서는 인원 전원에겐 버프가 쉬지 않고 돌아가려면 효율을 최대한 끌어올리는 수밖에.......

성벽 위에 올라선 채 성 바깥으로 도열하고 있는 5만가량의 병사들을 내려다보면 내가 천천히 한걸음 내디뎠다.

"처음에 10만이었다. 갈수록 줄어서 이제 싸울 수 있는 인원은 꼴랑 4만에서 5만 정도. 그래, 당할 대로 당했으니 이해는 하지, 두렵나?"

담담한 목소리지만 내 목소리는 분명 모두에게 전해져 왔다.

"사실대로 말하지. 놈은 8서클 재앙급의 괴물이다. 게다가 좀 전 요새를 습격했던 비룡을 몇 마리 더 가지고 있을 확률도 높다."

"......"

고요한 분위기 속에서 나는 한마디 더 붙였다.

좋든 싫든 사기를 깎아 먹을 이야기라면 차라리 그걸 역이용하리라.

분노와 허탈함 대신.

전의와 결합으로.

"좀 전 우리가 토벌해야 할 대상인 리치가 언데드인 프로스트 웜 와이번을 미끼로 이 도시에 침투했다."

사방에서 놀란 목소리가 울려 퍼져온다.

한둘도 아니고 5만에 달하는 병사들이 술렁이니 시장바닥이 따로 없다.

"다들 닥쳐."

싸늘하게 일갈한 내 목소리에 마치 좌중은 찬물을 끼얹은 것처럼 차가워졌다.

"본래 나는 연합의 수장도 참모도 아니기에 이렇게 너희들에게 연설이나 할 위치는 되지 못해."

"......"

"다만, 이것 하나만큼은 확실히 하도록 하지. 너희들을 이끌고 적과 맞서 싸우던 성녀후보 앨리스는 요새를 침투한 놈을 알아채고 공격을 가했고 놈에게 패배했다."

싸늘한 침묵 속에서 내가 말을 이었다.

"그리고 놈에게 납치를 당했다."

자신들을 지키기 위해 성녀후보가 목숨을 걸고 싸웠고 패배했으며, 그 대가로 납치를 당했다.

어디서 많이 본 시나리오다.

그녀의 여론이 안 좋은 것은 사실이지만.

다른 의미로 보면 얼마든지 이용할 수 있는 요소이기도 했다.

그녀가 생환하면 그녀에 대한 여론이 좋아질 거라고?

웃기는 소리.

이번 전쟁이 끝나면 앨리스라는 이름의 성녀후보는 이미 죽은 자가 되어있을 것이다.

까짓거 죽은 이에게 1계급 특진시켜주고 화관 씌워주는 것 정도야 무에 어려울까.

"이렇게 당하고 그냥 넘어갈 건가? 이길 방법이 있는데?"

사기를 북돋는 용도로 잘 써먹어 주마.

놈이 부활시키려는 놈이 무엇인지는 모르겠다만, 일부라도 부활하게 될 경우를 생각해서라도 힘을 최대한 아껴놔야 하는 법이다.

마치 장사라도 하듯 내가 느긋하게 질문을 던졌다.

"겁나는 놈은 짐 싸서 돌아가라. 말리지 않을 테니. 다만 싸울 놈은 남아라. 너희들의 눈앞에 있는 나는 누구냐."

"성자님이십니다!"

"성자입니다!"

몇몇의 외침이 들려온다.

음 그래.

역시 바람잡이를 심어놓길 잘했다는 생각부터 들었다.

한 명이 소리 지르기 시작하니 다른 이들도 덩달아 분위기에 편승하기 시작했다.

쩌렁쩌렁하게 울려 퍼지는 외침을 가볍게 저지하며 내가 천천히 입을 열었다.

"그래. 적어도 이전과는 다른 전쟁을 경험하게 해주마. 생환할 준비가 된 놈들은 남아도 좋다."

모두의 생존은 절대 불가능할 테지만. 죽을 거면 차라리 싸우다 죽어라.

그 말과 함께 나는 기다렸다는 듯 십자가 형태를 한 신창 롱기누스를 꺼내 높게 들어 올렸다.

동시에 십자가의 끝으로 퍼져 나오기 시작한 대량의 빛의 가루들이 선두에 포함될 병사들에게 빠르게 스며들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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