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06
만렙 영웅님께서 귀환하신다!
- 9권 5화
푸욱!
섬뜩한 파육음이 울려 퍼진다.
작디작은 맨발이 눅눅한 피부는 물론 단단한 두개골까지 가차 없이 부숴버렸다.
깨진 두개골이 날카로운 날이 되어 발을 찔렀지만 어째서인지 그 연약해 보이는 뽀얀 발에는 생채기 하나 남지 않았다.
필사적으로 저항하던 언데드들이라곤 하지만 순식간에 놈들을 박살 내버린 작은 소녀는 단순한 언데드들이 감당하기엔 너무 강한 적이었다.
"륀느, 위치확보 완료. 후임에게 명령 인계."
[메가트론, 명령 수락.]
짧은 기계음과 동시에 그녀의 뒤로 서 있던 거대한 골렘이 한 손을 몸 안에 밀어 넣었다.
그리고는 작은 무언가를 꺼내 그대로 륀느가 가리킨 지면에 꽂아넣었다.
"륀느, 후임들에게 상황보고 할 것을 요구."
[스나이퍼, 임무 성공 보고.]
[저거너트, 탱커 임무 성공입니다.]
[그림자, 크히히히히히 임무 완료.]
장거리 포격용 골렘인 스나이퍼.
방어형 골렘인 탱커와 포화용 골렘인 저거너트.
마지막으로 은밀 전략에 주로 움직이는 기동성 골렘인 퓨마의 보고였다.
단순히 제작될 때만 해도 소드익스퍼트 최상급 정도의 힘을 가지고 있던 녀석들이지만 이제는 익스퍼트급 보다는 강한 수준에 이르러 있는 놈들이기도 했다.
"과도한 경박, 무거움...... 륀느 매우 낮게 평가. 수정을 조속히 고려."
목소리를 짜깁기하여 만든 듯한 대답은 역시 만족스럽지 않았다.
실제로 륀느의 강렬한 의견반영에 따라 추가한 기능이지만 정작 본인이 듣기에도 역효과라는 생각밖에 들지 않았다.
다만, 그런 편대의 부하 골렘들의 작전 능력 하나만큼은 확실하다는 것이 못내 기분을 편안하게 만들었다.
륀느는 빈약한 제 가슴을 자랑스레 펴며 만족스러운 듯 고개를 연신 끄덕여 보였다.
"통합 임무완수. 차후 성물 가동까지, 완벽한 수비를 명령."
[명령 인수.]
[명령 인수 완료.]
5기의 디셉티콘 편대 대장 개체들이 속속들이 보고를 올려오자 륀느는 말없이 어두운 숲의 안쪽을 바라보았다.
"대량의 에너지 유동을 확인."
미묘하게 불만이 가득한 표정을 지으며 륀느가 입을 삐쭉였다.
"륀느, 전투능력 매우 우수하다고 분석. 데이비님의 륀느에 대한 신뢰능력을 낮게 평가."
그리 말하며 그녀는 가벼운 점프로 메가트론의 어깨에 올라탔다.
"메가트론, 데이비님의 신뢰능력에 대한 의견을 요구해."
[의미 불명, 세부적인 명령을 요청.]
메가트론의 답변에 륀느는 그러면 그렇지 라는 눈빛을 보냈다.
그녀와 다르게 디셉티콘 편대의 마정석 골렘들은 언 듯 보면 뛰어난 인공지능을 지닌 것처럼 보이지만 스스로 사고한다는 개념이 매우 좁은 편이다.
대부분의 행동양식은 새로이 추가되는 정보에 기인하고 대답 또한 마찬가지.
메가트론이 나머니 네기의 골렘 편대장들 보다는 나은 편이지만 그렇다고 해서 메가트론이 륀느만큼 뛰어난 사고능력을 갖추고 있는가 하면 그건 아니었다.
"......"
고요한 숲 속에서 그녀를 노리고 다가오는 듯한 움직임을 감지한 그녀는 한 손에 빠루를, 나머지 한 손에는 손등에서 뽑아낸 기검을 빛내며 조용히 입을 열었다.
"메가트론, 전투 준비."
[명령 인수. 전기톱을 가동합니다.]
"파괴적인 행동, 륀느가 매우 높게 평가. 단 하나도 성물에 닿지 못하게 할 것을 명령."
[최우선 목표 선정.]
짧은 답변과 함께 메가트론과 륀느가 있는 곳을 향해 수많은 언데드들이 몰려들기 시작했다.
* * *
푸욱!! 푹!!
수차례 날아든 무형, 무색, 무취의 말뚝이 내 몸을 관통한다.
처음에도 느꼈지만, 이 물리력이 존재하지 않는 말뚝은 이미 내 몸에 박혀 떨어지지 않았다.
따로 고통은 느껴지지 않았다.
딱히 내 몸에 무언가가 박힌 것이 보이지도 않았다.
하지만, 정상적인 시선에서 볼 경우엔 그렇고 사령안을 활성화하면, 또 아주 세심한 마나장막을 펼치면.......
-데이비?
"......"
이미 서너 개의 말뚝이 내 몸 곳곳에 박혀있는 게 흐릿하게 보이기 시작했다.
"크흐..크흐흐흐! 네놈의 몸에는 이미 주군의 힘이 스며들었다! 네가 뛰어난 성흔을 가지고 있어도 소용없음이니! 8서클 최후의 경지에 계신 주군의 힘은 네놈이 감당할 수 없음이리라!"
"[구현]의 경지라......"
8서클 부터는 초입 익스퍼트, 마스터가 아니라, 인지, 동화 구현의 단계로 나뉜다.
무슨 말이냐면 지금 내 몸에 박힌 무색무취 무형의 말뚝은 구현의 단계에 들어선 존재의 힘이라는 소리였다.
"오오. 주군이시여, 당신의 힘을 다시 이 눈으로 보게 될 줄이야. 이제 죽어도 여한이......끄륵?!"
마치 광신도처럼 머리만 남은 채 소리치는 놈이 갑자기 움찔거렸다.
동시에 머리만 남은 놈의 두개골이 앨리스의 손끝을 따라 천천히 떠오르기 시작했다.
"주......주군이시여. 저는 당신의 손에 목숨이 거둬진다 하여도 여한이 없나이다."
"오오......나의 충실한 종복, 클레르. 너의 헌신은 잊지 않으마."
그 말과 함께 클레르 오르판의 머리가 크게 경련했다.
"모든 것은 나의 주인을 위하여......."
마지막 말은 자신의 죽음에 대한 체념도, 절망도 아니었다.
자신의 주인이 다시금 부활했다는 사실에 대한 절대적인 환희였다.
완전히 바스러져 사라진 클레르 오르판은 죽었다.
본래 라이프 베슬이 파괴되지 않는 이상 놈의 목숨이 사라질 리 없지만. 이미 박살 나 몸 안에 남은 잔재로 버티고 있던 놈은 간단한 공격에도 완전히 사멸했다.
8서클에 달하는 사령술사의 죽음은 제법 허무했다.
"흐음...... 내 궁의 상태가 좋지 않구나."
분명 생긴 것은 성녀후보 앨리스이건만.
그녀의 입에서 흘러나오는 목소리는 노쇠한 노인의 목소리였다.
"게다가......더러운 신의 하수인 또한 존재하고."
담담하게 말한 그가 한 손을 휘저었다.
그그그그극!!!!
동시에 일순간 지면이 뒤틀리며 그 안에서 무언가가 튀어나오기 시작했다.
"세상에 알려라, 감히 우러러볼 수조차 없는 절대 군주, 사령왕께서 다시 강림했노라고."
그의 말에 바닥이 갈라지며 튀어나온 망령이 이리저리 움직이더니 일순간 사라졌다.
"그래, 나의 부활을 막기 위해 온 것이냐, 추악한 신의 하수인이여."
무게감을 잔뜩 실은 채 질문을 던져오는 그녀, 아니 그의 모습에 나는 심드렁하게 몸에 박힌 말뚝을 톡톡 건드려보았다.
"네가 부활하고 안 하고는 관심 없고. 네가 여기서 난리를 친 덕분에 내 영지에 식량 사정이 마냥 좋지는 않거든."
"하......가당찮은 이유로 감히 내 앞을 막아섰구나."
흥이 가신 듯 중얼거린 그가 한걸음 내디뎠다.
"뭐, 좋다. 지금은 나의 기분이 좋으니 당장의 목숨만은 거두어가지 않으마. 나의 자비에 감사하고 눈앞에서 사라져라."
완전히 반파된 공동을 향해 그가 손을 휘젓자 박살 난 벽면과 바닥이 일순간 자의를 가진 것처럼 모여들며 수복되기 시작했다.
강대한 힘이다.
확실히 8서클 초입 단계인 인지 단계에 있던 클레르 오르판과 8서클 최상위 단계인 구현단계가 눈앞에서 보니 확실히 다르긴 달랐다.
고작 8서클에 들어섰다는 이유만으로 데스로드라는 거창한 이름을 달고 있는 클레르 오르판 보다는 실속이 있지만.......
결국, 내가 볼 땐 똑같은 놈들이다.
문득 궁금해졌다.
"너도 데스로드라고 칭하나?"
"데스로드? 하! 이 몸은 그런 하찮은 위치를 초월한 지 오래, 세상의 흐름을 볼 수 있게 된 순간부터 나는 신 그 자체이니라!"
그의 외침에 페르세르크가 한심하다는 듯한 표정을 지어 보였고.
나는 정신이 아득해짐을 느꼈다.
"이쪽은 더 중증이네."
그랜드마스터의 문턱에도 도달하지 못한 놈들이 데스로드를 칭하는 꼴이 퍽 우습지 않은가.
내가 되찾은 힘이 8서클인데, 이 정도만 해도 회랑에서의 힘의 반도 못 찾은 꼴이다.
콰악!!
내 도발과 동시에 무형의 기운이 내 몸을 틀어잡아 허공으로 들어 올리기 시작했다.
가볍게 손끝을 휘저은 정도였지만 사람 하나 정도는 아무렇지도 않게 제압해서 허공으로 떠올릴 수 있다는 듯 손가락 하나부터 발끝까지 움직임을 제한당하고 있었다.
"입을 조심히 놀려라. 추악한 신의 하수인이여. 말 한마디에 수많은 목숨을 살릴 수도 있음이니, 이곳에서 절대자가 누구인지조차 알아보지 못할 정도로 안목이 나쁜 걸 보면 실망이로구나."
그리 말하며 그가 한발 내디뎠다.
"과거 나의 앞을 막아섰던 성녀, 다프네는 비록 나의 손에 죽긴 했다만 실속은 있는 신의 하수인이었다.
"뭐?"
그의 말에 내 얼굴에서 미소가 사라졌다.
* * *
"누굴 죽였다고?"
담담한 질문에 그가 코웃음을 쳤다.
"시간이 흘러 그 이름도 잊혀진 것이냐. 성녀 다프네. 그것이 내가 죽인 신의 하수인의 이름이니라."
"아니, 그건 상관없고. 다프네 그 양반을 네가 죽였다고?"
내 질문에 그가 침묵했다.
다만, 이어지는 내 말에 놈의 검은 안광이 번뜩였다.
"꼴랑 그 실력으로?"
콰앙!!
동시에 허공에 나를 떠올리고 있던 무형의 힘이 가차 없이 나를 벽에 처박아 넣어버렸다.
쾅!! 쾅!!
거기에 멈추지 않고 몸을 구속한 채 천장과 바닥을 오가며 마구잡이로 나를 패대기 친다.
격한 분노가 서린 공격이었다.
"입을 조심히 놀려라. 신의 하수인."
"......"
"네놈 같은 존재는 그저 손가락을 까딱하는 것으로 죽일 수 있다는 사실을 잊지 마라."
그 말과 함께 그가 가느다란 손을 움직여 뻗었다.
"좋다. 죽고 싶다면 못 해줄 것도 없지. 다만, 곱게 죽지는 못할 것이다. 억겁의 세월 동안 지독한 고통 속에서 헤맬 것이고, 너의 정신이 완전히 붕괴되었을 때 혼을 소멸시키리라."
"그래서, 이렇게 힘들게 부활해서 하고 싶은 게 뭔데."
추욱 늘어진 채 내가 물었다.
"추악한 인간의 멸절. 이 땅은 오래전부터 추악한 생명인 인간으로 가득했다. 이제는 그 끝을 볼 때다. 마침 나의 종복이 남겨놓은 나의 하수인들이 이 유적의 지하에 대부분 잠들어있구나."
그의 말에 나는 몸을 구속하고 있던 무형의 기운을 강제로 뒤틀어버렸다.
"진짜 식상하고 재미없네."
그래도 고인돌급 유물 같은 작자라 어디 흥미로운 사실을 가지고 있지 않을까 했더니.
"넌 라이프 베슬도 없잖아, 그냥 여기서 죽자."
내 말에 그의 검은 안광이 번뜩였다.
그의 혼을 담고 있는 그릇인 성녀후보 앨리스도 휘말리겠지만, 이미 신을 등진 시점에서 그녀의 생은 끝났다고 봐도 무방했다.
"필멸자여, 나는 진실된 불멸자. 라이프 베슬이 없다고 해서 나를 죽일 수 있다고 생각하는 것이냐?"
"그놈의 불멸자 타령은."
"천지 분간을 못 하는 아둔한 자에겐 벌이 필요한 법이지."
[죽음을 선고한다.]
단순한 언령이었다.
혼란스럽게 움직이며 마법의 사용을 저지하던 일대의 마나들이 갑작스레 그의 명령을 따라 내 몸 안에 스며들기 시작했다.
그리고 내 몸에 박혀있던, 무색, 무취, 무형의 말뚝 하나가 진동하며 지독한 저주를 내 몸에 새겨 넣기 시작했다.
"죽음의 저주다. 이만한 저주를 직접 목도하는 것에 감사를 표해도 모자랄 터."
그의 말에 나는 서서히 혼을 죄어오는 저주의 흐름을 바라보았다.
확실히, 무방비하게 당하면 죽을 수밖에 없긴 한데.
애석하게도 그는 한 가지를 모르고 있었다.
"으음?"
"신기해?"
분명 죽음의 저주가 몸 안에 서렸을 텐데.
어째서 통하지 않는가.
내가 너무 멀쩡히 서서 그에게 다가가자 그의 발이 한걸음 물러났다.
"일단, 너무 숨기면 재미가 없으니 두 가지만 알려줄게."
그리 말한 내가 그의 손을 낚아챈 뒤 말뚝이 박히지 않은 내 가슴 부분에 그의 손을 올렸다.
"너 정도면 이제 제대로 보이지?"
"......"
그의 입에서 침묵이 어렸다.
"네가 누굴 상대하고 있는지. 또 네 앞에 누가 있는지."
"이게......무슨......."
떨떠름하게 중얼거리는 그의 안광을 직시하며 내가 다시 입을 열었다.
"네 저주가 통하지 않는 이유는 간단해."
저주의 특성상, 상위 경지의 저주가 걸려있다면, 하위의 저주는 상위 저주에 스며들어 상쇄된다.
그러니까.
"그......그럴 리가 없다....... 신이 아닌 이상 이런 힘이 몸 안에 잠들어있을 수는?!"
"내 몸에는 네가 상상도 못 할 경지에 있던 흑마법사가 걸어둔 저주가 이미 하나 있는데."
[흐름 거부]
내가 운명의 흐름을 보고 벗어날 수 있게 해준 저주이다.
겉보기엔 좋아 보이지만 괜히 저주가 아니다.
그 대가는 신의 보호를 받지 못하는 이방인이 되는 것.
혼이 순환하는 윤회의 고리에서 완전한 박탈을 당하는 것이 그 대가이며, 그 내용은 이러했다.
회랑에 갈 정도의 업적을 쌓지 못한 내가 죽음을 맞이할 시, 영혼이 갈기갈기 찢겨 소멸하거나, 영원에 가까운 시간 동안 구천을 떠돌게 된다.
그만한 저주가 걸려있는데 단순한 저주 같은 것들이 내게 통하기나 할까.
"그 덕분에 어지간해선 저주면역이다. 이 새끼야."
당황한 놈이 움직이기도 전에 내 검지와 중지손가락이 그의 이마를 강하게 찔렀다.
그리고는 저항하는 놈의 이마에 박힌 보석을 강하게 틀어쥐고는 빙그레 웃었다.
"어디까지 버티는지 봅시다."
"자......잠깐?! 머......멈춰라! 멈추라 하였다!"
"아, 나는 모르겠고!!"
밖에 나서봐야 넌 혼란만 가중시킨다. 차후 세계수와의 전쟁에 아무런 도움이 안 된다면 여기서 조용히 죽으라지.
[당신의 바람에 따라, 당신의 어긋나버린 어린 양을 구원하고자 한다면. 이번엔 간섭을 할 수 있을 터. 계약자이자 거래자의 의지에 따라 그대의 의지를 보여주기를.]
[9위계 성마법]
[강신]
[신의 검지 손가락]
[대(大) 성화포(聖火砲)]
다시 한 번 신의 집게손가락이 현신하듯 놈의 전신을 찍어 누른다.
다만, 이전과는 다르게 신의 의지의 간섭이 섞인, 그리고 일대에 륀느를 통해 설치해둔 성물의 힘과 시너지를 뽑아낸 빛의 섬광이 낙하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