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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렙 영웅님께서 귀환하신다!-207화 (206/1,559)

# 207

만렙 영웅님께서 귀환하신다!

- 9권 6화

리치 클레르 오르판은 너무 말이 많았다.

멍청이가 아니고서야 그보다 더한 적이 있을 거라는 판단을 못 할 리 없으니 나로서는 준비를 할 수밖에 없건만.

실제로 본 그 감상은 생각 이상으로 맥 빠지는 적이었다.

화아아아악!!

주변을 환하게 밝히는 빛은 주변을 어지럽게 만들던 그의 힘까지 밀어냈다.

-방황하는 어린양의 마지막 구원.

-강제하지 않으나, 은혜의 광원이 있으라.

신을 모셨던 놈이 몸 안에 스스로 저주를 담아놓고 세상의 근간인 흐름을 거부한다니.

그런 상황이기에 관심을 받아도 마냥 애정을 받을 수 없다는 사실은 잘 알고 있었다.

그렇기에 나는 신이 내게 성흔을 찍어 보낸 것은 나를 성자로 만들기 위함이 아닌, 신의 사랑을 받을 이들을 뒤에서 보호하라는 의미에 가까웠을 것이다.

-이게...... 신이 진짜 사랑하는 이를 대하는 방법인가?

'귀찮게 하네.'

갑작스레 출력된 상태창에 나타난 글귀에 내 표정이 굳었다.

"......"

-데이비?

머리에 박힌 보석이 부서지듯 사라지며 그녀의 몸이 본래의 성녀후보, 앨리스의 모습으로 돌아오기 시작하자 내 인상이 대놓고 찌푸려졌다.

정작 본인은 신을 등지겠다 그리 외쳤건만.

내가 불러들인 신의 의지의 파편은 그녀를 용서하였고.

그녀를 품었다.

당연 제대로 된 위력이 나올 수가 없었다.

본래라면 그녀의 육신까지 하나도 남김없이 불태워버렸어야 할 성화일 텐데.

"이게 뭡니까? 이런 식으로 나올 겁니까?"

투정부리듯 내가 중얼거려보지만, 답은 들려오지 않았다.

"흐읍......쿨럭! 쿨럭!"

바닥에 쓰러져 버둥거리며 신음을 흘리고 있는 앨리스는 분명 살아있었다.

그녀의 육체를 숙주 삼아 부활했던 자칭 사령왕 데이안의 흔적은 보이지 않았다.

소멸?

웃기지도 않는 소리.

8서클 최후의 경지인 구현까지 다다른 놈이다.

비록 함정이란 함정에 다 걸려서 그 꼴이 나긴 했지만.

-꼴에 불멸자라 칭하던 놈인 만큼 이렇게 쉽게 죽을 리가 없지.

가능성은 두 가지.

그녀의 안에 내가 찾을 수 없을 정도로 꼭꼭 숨어버렸거나.

아예 다른 숙주로 도망갔거나.

-다른 숙주?

"힘이 분할되어있어. 본래 힘이라면 이렇게 무력하게 당할 놈이 아니야."

놈의 힘은 세계수급은 아니라도 충분히 위협적이다.

단순 본신의 힘이라면 지금의 나로선 세심하게 준비해 퇴로를 틀어막고 잡아 쳐 죽여야 할 까다로운 적이다.

"적은 부활해버렸고, 그 분할된 영혼 하나 처리할 수 있는 절호의 기회도 놓쳤고."

이기적이다.

그렇기에 내가 이해할 수 없고. 이해하려 들지도 않는다.

신 또한 나를 이해하려 하지 않고, 이해해주지 않는다.

단순 거래만 있을 뿐.

-참......어처구니없군.

"애초에 신이라는 건 인간이 아니고 인간을 위한 존재도 아니야."

사람들이 주로 착각하는 것.

바로 주신 프리아 여신이 인간의 신이 아니라는 사실이다.

-확실히. 본녀의 생전에 주신 프리아를 모시던 마족도 더러 있었지. 해서? 어찌할 게야? 본녀가 보기엔 다른 숙주가 있을 거라는 가능성은 상당히 낮아 보이는데.

성녀 후보 정도 됐으니 일부라도 부활시킨 거지 본래라면 놈이 다시 눈을 뜨는 일은 없었어야 할 것이다.

퍽!

쓰러져 있던 앨리스의 멱살을 틀어잡아 벽에 밀어붙인 나는 몽롱한 시선으로 눈동자를 굴리는 그녀를 정확히 직시했다.

"신이 먼저 널 버렸다고?"

"......"

"그런데, 그 신은 널 살리려고 거래를 걸어왔네."

"그건......."

이쯤 되니 흐름의 전체적인 대본이 보이기 시작했다.

"재밌는 이야기 하나 해줄게."

담담하게 말하자 그녀의 시선에 초점이 서서히 잡히기 시작했다.

"성녀, 혹은 성자 같은 직위는 태어날 때부터 정해져 있어. 성흔 찍힌다고 다 성녀가 되고 성자가 되는 게 아니라고."

그렇기에 나는 명예 성자라는 칭호를 달고 있지만, 정확히는 그저 신의 흔적을 받은 인물일 뿐 진실 된 성자는 아니다.

태어날 때부터 나는 신의 관심을 받고 태어난 것이 아니니까.

반대로 눈앞의 여성은 달랐다.

"쿨럭......그건 무슨......."

"그리고, 너와 리나 성녀후보는 본래 성녀가 되기 위해 축복을 받고 태어난 인물이었고."

태어날 때부터 다이아몬드 수저를 물고 태어난 주제에 바란 것도 많다.

신은 두 명의 성녀후보에게 시험을 내렸다.

사람의 본질을 보려면 힘든 상황에 던지거나 권력을 쥐여주라 하였던가.

현재 이 대륙에는 두 명의 성녀후보가 존재한다.

리나와 앨리스.

리나의 경우 힘든 상황에 내던져지는 것으로 시험을 치렀고 그녀의 경우 후자의 경우인 권력을 주었다.

"어떻게 할까. 신은 널 살렸지만 난 널 살리고 싶지 않은데."

"죽이세요. 이제 내게 남은 건 없습니다."

미련을 놓은 듯 중얼거리는 그녀의 얼굴을 향해 손을 뻗은 내가 그대로 새파란 화염을 끌어올렸다.

8서클 화염마법인 프로메테우스.

이전엔 이 일대에 퍼진 기괴한 마나 혼란 파장으로 인해 마법의 크기가 압도적으로 작아졌지만 본래 화력면에선 최고위를 달리는 것이 화염마법이 아니던가.

그 크기부터가 이전과는 달랐다.

"본인이 죽겠다는데 말릴 이유가 있나? 최대한 고통 없이 보내줄게."

담담한 내 말에 그녀가 눈을 감았다.

화아아아아악!!

하지만.

이 엿 같은 경우는 여기서 끝이 아니었다.

마치 절대 안 된다며 감싸듯 새하얀 빛무리가 내 손을 감싸 8서클 마법인 프로메테우스를 지워버린 것이다.

내가 사용한 것도, 앨리스가 사용한 것도 아닌 상위의 신성력에 절로 인상이 찌푸려졌다.

죽이지 마라. 살려라. 구해주어라.

목소리는 들리지 않았지만, 그 의지는 분명 전해졌다.

신의 관심을 얻고 신과 거래를 했기에 얻은 신성력이 여기서 발목을 잡은 꼴이다.

물론, 그동안 내가 신성력을 이용해 해 먹은 게 있으니 마냥 이기적으로 굴 수 없는 것도 알지만.

나로선 이해할 수가 없었다.

"x랄 맞네. 진짜."

짜증 서린 목소리가 흘러나오며 손을 흩어버린 내가 물러나자 눈을 감고 있던 그녀가 천천히 고개를 들었다.

"도대체......왜."

그녀의 중얼거림이었다.

"왜 나를 살리는 거죠?"

"그걸 나한테 묻지 마라. 속 터지니까."

"지금까지 당신은 저의 모든 기도를 묵살했습니다! 당신의 선택에 부응하기 위해 필사적으로 공부했고 노력했으며 연습했어요! 그런데 그렇게 필사적으로 부르짖을 땐 듣지도 않던 분이 어째서 지금에 와서 저를 더 비참하게 만드시는 건가요!"

그녀가 소리치는 당사자는 내가 아니었다.

대답하지 않는 신을 향한 절규였다.

"너와 리나 성녀후보가 다른 건 딱 한 가지야."

신성마법을 다루는 실력과 재능?

틀려먹었다.

성녀의 조건에 그런 건 해당하지 않는다.

"그렇다면 뭘까, 남들의 눈에 띄는 빼어난 외모?"

"......"

"그것도 틀려먹었네."

내 말에 그녀가 침묵했다.

"결과적으로 내 시선에서 볼 때 리나 성녀후보는 오래 지나지 않아 성흔을 받게 될 거다. 반대로 넌 이제 언제 성흔을 받을지 모르게 됐다. 대답은 네 스스로 알아내. 그리고 뭔가 단단히 착각하는 모양인데."

담담하게 말하며 그녀의 멱살을 틀어쥔 나는 옅은 빛이 남아 은은하게 빛나는 공동의 허공을 향해 손을 휘저었다.

"넌 태어나서부터 지금까지 단 한 번도 신의 애정을 받지 않은 적이 없어."

모든 일에 가호가 깃들었고. 모든 어려움에 시련을 돌파할 길이 존재했다.

한번 꼬이면 답도 없이 꼬이는 일반적인 경우와 다르게 그녀는 신이라는 보증수표가 뒤에서 버티고 있었다.

빼어난 외모. 수많은 사람을 살릴 수 있는 힘, 그리고 모두에게 고귀하다 불릴 만큼의 신성력까지.

그녀가 알게 모르게 수많은 보이지 않는 힘과 흐름들이 그녀를 도와왔을 것이다.

사령왕 데이안의 혼을 받아들여 숙주가 될 몸을 제공했을 때도 그녀의 혼이 사멸하지 않고 버틴 것은 신의 가호 때문이었다.

"원한다면 그런 밋밋한 애정 따위 버릴 수 있는 방법이 있는데......."

담담하게 말하며 내가 그녀의 팔목을 잡아 들어 올린 뒤 손목 위로 역십자의 형태를 손가락으로 그렸다.

딱히 무언가 조치를 취한 게 아니기에 빛이 나거나 하진 않았지만 그게 무슨 형태인지는 본인도 잘 아는 듯 보였다.

신의 성흔을 가진 내가 권하기엔 조금 웃긴 모양새이긴 하지만.......

그것을 원한다면 그리 해드리지요.

주신 프리아 여신.

"주신 프리아 여신도 널 감쌀 수 없게 완전히 돌아서는 방법."

"그건......."

"그렇게 되면 지금까지 네게 전해져왔던 신의 애정이 모두 사라질 거다. 앞으로도 널 알게 모르게 보호하던 가호와 흐름은 사라질 거고."

"그게 무슨 상관이죠?! 결국, 그 가호도 당신의 앞에선 빛이 사라졌는데!"

"웃기고 자빠졌네."

짜악!

"꺅!"

죽이지 말라고 했지 손대지 말라고는 하지 않았다.

가차 없이 뺨을 쳐올린 내가 싸늘하게 그녀를 직시했다.

"방금 널 살린 건 그럼 내 변덕이냐? 열 받게 하지 마라."

신의 가호도, 흐름조차도 어찌할 수 없기에 무리하게 나서서 직접 간섭하고 개입했지 않는가.

"이번 일에 네가 생각대로 일이 풀리지 않은 건 간단해."

신의 가호가 없이, 스스로 해결해야 하는 시험이니까.

"네가 해온 공부는 인간들 사이에서 네가 진짜 성녀로서의 권위와 위엄을 가지기 위해 해온 것들이고.

네가 진짜 해야 할 공부는 신의 의지를 어떻게 해석하고 받아들이냐고.

배부르게 먹고 살아온 녀석이 부족한 것 모른다더니.

딱 그 꼴이 아닌가.

"한번 곰곰이 생각해봐."

그녀의 등을 떠밀어 균열 속으로 그녀를 밀어 넣어버린 나는 말없이 반파된 공동을 훑었다.

-이곳은 그냥 두어도 되나?

페르세르크의 질문이었다.

데이안의 존재가 완전히 소멸한 게 아닌 이상 이곳을 그냥 두는 건 멍청한 짓일 테지만.

"별로 손대기 싫네."

그 마음이 현재의 심정이었다.

완전히 사라진 그녀를 따라 균열 속으로 몸을 던진 나는 새파란 하늘과 넓은 평원이 보이는 숲의 끝자락의 모습을 보며 한걸음 내디뎠다.

"륀느, 마음대로 날뛰어. 디셉티콘 편대 전원에게 명령을 하달한다."

"륀느 대기 중. 전투능력을 매우 높게 평가.

"오염된 숲 전체를 불태워. 성화로 정화하기도 짜증 난다."

이 이상 당분간은 신성력을 쓰고 싶지 않다.

시작은 주신 프리아 여신이 먼저 시작했다.

놈의 잔재가 남아있고 완전히 사멸한 것도 아니지만, 단순한 계산을 넘어서 이 이상은 손대고 싶은 생각이 들지 않았다.

열 받을 때는 각방이 답이지.

그래, 어디 각방 써봅시다. 빌어먹을 여신님.

내가 신성력 안 쓰면 뭐 아무것도 못 하는 줄 아시나.

-그러는 그대도 신의 애정을 많이 받은 것 같은데.

"글쎄, 회랑에 간 게 유일하게 받은 애정이 아닐까 싶기도 하네."

이만한 힘을 얻기 위해 얼마나 죽도록 노력했는지 모를 거다.

* * *

클레르 오르판의 소멸 이후 주인을 잃어버린 언데드 중 대부분은 스스로 쓰러져 땅으로 돌아갔다.

반면 육체 안에 힘이 남아 단순히 배회하는 언데드들도 생겨나긴 했지만, 그것 자체는 연합군에게 크게 위협이 될만한 것도 아니었다.

유일한 문제라면 아직 죽지 않았을 거라 판단되는 사령왕 데이안이 만들어놓은 언데드들이다.

살아서 도망친 프로스트 웜 와이번.

그리고 유적의 아래에 잠들어있던 대량의 힘을 품은 초월급 언데드들.

뭐가 되었건 한 마리만 날뛰어도 난장판이 될 텐데.

어찌 된 일인지 그놈들은 단 한 마리도 보이지 않았다.

마치 다른 곳으로 집결하기 위해 도망친 것처럼 말이다.

순식간에 적의 대부분이 사라져버린 탓에 연합군은 어렵지 않게 산성을 회복했고. 이 일로 인해 생긴 사후 처리문제로 골머리를 앓기 시작했다.

지독한 사기에 오염된 땅을 다시 깨끗하게 만들려면 고위급 정화마법이나 오랜 시간 하위 신성 정화마법으로 주기적인 정화를 받아야 한다.

성녀후보 앨리스는 겉으로는 놈에게 납치되어있다가 생환한 것으로 처리가 되어버렸다.

가장 좋은 시나리오는 역시 놈과 싸우다 장렬하게 전사했다 한마디를 싸 들고 나 혼자 귀환하는 것이었지만 그녀가 살아났고 그녀를 포함한 성녀후보를 신이 작정하고 보호하기 시작한 이상 괜히 나서봐야 나만 피곤해질 뿐이다.

항거불능.

불합리의 극치.

제아무리 우주를 때려 부술 것 같은 회랑의 영웅들이라도 절대 생각하지 않는 게 신의 권위에 도전하는 것이다.

피조물이 창조주에게 덤비는 것만큼 어리석고 멍청한 짓도 없다.

그게 신이고, 세상의 의지이다.

모두가 사후처리로 바쁜 그 순간 나는 육체를 키운 페르세르크의 무릎에 머리를 베고 드러누운 채 나른한 표정을 지어 보였다.

-남들이 보면 그대의 머리가 허공에 떠 있는 것처럼 보일걸?

나긋나긋하게 웃으며 말하는 그녀의 말대로 내 머리를 받치고 있는 건 그녀의 다리이니까.

그녀를 보지 못하는 이들이 이 장면을 본다면 단순히 내 머리가 허공에 떠 있는 것처럼 보일 것이다.

"나도 어리광 좀 부리자."

김이 새버린 탓에 무력감이 전신을 감쌌다.

이렇게까지 짜증 나고 무력해진 기분이 드는 것도 정말 오랜만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삐릭!

-오염된 땅의 정화.

"안 합니다."

삐릭!

-오염된 땅의 정화. 강제력을 발휘.

"해 보시던가."

짜증스레 상태창을 꺼버리지만, 다시금 꺼진 상태창이 빛을 발했다.

동시에 내 정보창의 특이사항에 다시금 글귀가 바뀌었다.

-오염된 땅의 정화. 마의 존재의 뒤처리.

"안 한다고. 나 당분간 시댁으로 돌아가서 아무것도 안 할 거니까, 알아서 하세요."

내 성격 더럽고 당하고 그냥 안 넘어가는 거 뻔히 알면서 중요한 순간에 방해를 한 주제에 이제 와서?

코웃음을 치고 있던 나는 문득 신의 의지가 걸어온 파격적인 제안에 멈칫했다.

"아 이런 썅."

이래서 대륙급 수저들은 상대를 하면 안 되는데.

-정화 시 도력으로 인한 사신수의 잠금 해제.

"져주는 게 이기는 거지......쩝. 앞으로 진짜 마음에 드는 거래 아니면 안 받습니다."

자리에서 벌떡 일어난 내가 성큼성큼 걸음을 옮겼다.

그런 나를 보며 페르세르크가 어처구니없다는 듯 중얼거렸다.

"태세 전환 보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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