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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렙 영웅님께서 귀환하신다!-209화 (208/1,559)

# 209

만렙 영웅님께서 귀환하신다!

- 9권 8화

"일리나."

완전히 불타버린 숲을 뒷정리하기 위해 파견된 정화부대.

대부분의 신관들과 병사들로 이루어진 부대를 지휘하던 살리반은 말없이 데이비 왕자를 노려보고 있는 일리나를 불렀다.

"왜 그러시죠? 오라버니."

미묘하게 굳은 얼굴로 대답해오는 그녀를 보며 살리반은 쓰게 웃어 보였다.

"몸은 괜찮으냐."

"네. 이렇다 할 부상도 없고, 피로도 풀었으니까요."

"다행이구나. 네가 잘못되었다면 내 형님을 뵐 낯이 없었을 거다."

빙그레 웃으며 그가 일리나의 머리를 쓰다듬었다.

"형님이 생전에 널 그렇게 아끼지 않았니."

"......오라버니가 그런 말을 하니 신뢰가 안 가네요."

"일리나."

"그동안 오라버니와 사사건건 충돌하신 건 살리반 오라버니이십니다."

일리나의 톡 쏘는 듯한 지적에 살리반 황자가 쓰게 웃어 보였다.

"나는 형님과 정적으로 충돌했다. 실제로 형님과 많이 싸우기도 했고."

말을 끊은 그가 피로해진 눈을 보호하기 위해 쓴 안경을 고쳐 쓰고는 중얼거렸다.

"다만, 형님이 죽거나 다치기를 바란 적은 단 한 번도 없다. 그건 너도 마찬가지다."

"저는 오라버니가 멋대로 추진한 혼처 때문에 상당히 곤란할 뿐입니다."

고요한 그 말에 일리나는 심드렁하게 고개를 돌려버렸다.

"그나저나 데이비 왕자는 내가 생각한 것 이상으로 참된 인물일지도 모르겠구나."

"......"

기가 막힌다는 표정을 짓는 그녀에게 살리반이 빙그레 웃어 보였다.

"어떠하냐."

"예?"

"데이비 왕자는."

살리반의 질문의도가 무엇인지를 금방 깨달은 그녀가 놀란 듯 눈을 크게 떴다.

"그건 또 무슨."

"이래저래 알아보았다. 데이비 왕자. 그가 단기간에 해온 것들을 보면 놀라울 정도더구나. 솔직히 저만한 인물을 황실 측 편으로 끌어들일 수 있다면 나는 더 바랄 게 없을 정도다."

그 말에 검을 쥔 손에 힘을 주던 일리나는 문득 자신이 그 성격 나쁜 데이비와 혼약을 맺고 결실을 맺었을 때의 미래를 흘끗 떠올렸다.

"......"

"호오."

저도 모르게 얼굴이 붉어졌는지 고개를 휘휘 저어 보이는 그녀가 재밌다는 듯 살리반이 킥킥 웃어댔다.

"네 대답은 알겠구나, 형님의 국장이 끝나면 한번 검토해보마. 너도 이제 혼처를 구할 나이이지 않니. 린디스 제국에서 벌써 눈독을 들이고 있는 모양이다만, 까짓거 한번 힘겨루기를 해보는 것도 나쁘진 않겠지."

"그보다, 오라버니의 시신은 아직 찾지 못했나요?"

"......그래, 백방으로 수색하곤 있지만 아직까지 이렇다 할 수확이 없어. 다만, 이 속도대로라면 조만간 형님의 시신도 찾을 수 있을 거다."

"......"

표정에 그늘이 지는 그녀를 말없이 끌어안아 등을 토닥여주며 살리반이 작게 중얼거렸다.

"괜찮을 게다....... 형님의 일은 정말 안타까운 일이지만, 네가 우울해 하는 모습은 형님도 나도 원치 않아."

* * *

정화 작업 자체는 어렵지 않았다.

애초에 오염되었다 해도 그 기간이 짧고 넓었던 탓에 정화 자체에 난해한 장소는 거의 없는 편이었다.

유일한 장소라면 놈들이 존재하던 유적이 있겠지만, 이미 륀느를 통해 한차례 매장해버린 만큼 그곳을 다시 파 올릴 이유는 없었다.

몸이 안 좋은 상황에서도 무리를 해서 숲을 정화하려 하는 내 행동 때문에 급속도로 나에 대한 여론이 좋아지기 시작한다.

이미 입이 싼 이들을 통해 소문이 순식간에 퍼지기 시작했다는 사실은 잭을 통해 이미 들어 알 수 있었다.

한번 좋아지기 시작한 여론은 간단한 행위를 해도 의미가 부여된다.

애초에 힘든 일도 아니었기에 오염되어버린 숲과 평야를 돌며 땅을 정화하는 순회길에 오르자 모두의 시선이 이전과는 확실히 달라진 게 보였다.

굳이 어렵게 생각할 것 없이 나는 주신 프리아 여신과의 거래에 맞춰 움직여줄 뿐이건만.

주변에선 내 행동을 대가 없는 선행. 몸을 아끼지 않는 선행 정도로 여긴 듯 보였다.

진실 된 성자.

혹은 성인(聖人).

상당히 낯짝이 부끄러워지는 칭호지만 그런 단어들이 붙을 때마다 팔란제국이 내게 지는 빚이 커진다는 사실은 변치 않았다.

언데드를 유지하던 힘이 대부분 사라지고 언데드들의 사후 토벌이 끝난 직후.

연합군은 더 이상의 목적이 없기에 간단한 회의를 거친 후 해산을 결정했다.

고국으로 돌아가는 행렬은 간단했다.

어차피 사후 보상문제는 싸운 이들이 아닌 정치를 하는 귀족들의 담당인 만큼 남아있어 본들 연합군에게 의미는 없다고 봐도 무방했다.

그런 마당에도 나는 돌아가지 않고 팔란제국의 땅을 정화하고, 혼을 성불시키는 작업을 대가 없이 계속했다.

굳이 그렇게까지 하지 않아도 된다고. 그렇게 무리하지 않아도 된다는 주변에 만류에도 불구하고 나는 멈추지 않았다.

애초에 사기를 쳤을 뿐 힘든 일도 아니었거니와.

저들을 위해 이 일을 하는 게 아닌 주신 프리아 여신과의 거래에 충실한 것뿐이다.

다만, 그런 내 행동의 진짜 의도를 모르는 이들은 내가 억울하게 죽은 이들의 혼을 달래기 위해 스스로 이권을 포기하고 남았다고 착각한 듯 보였다.

"데이비 왕자님. 언제 한번 저희 왕국에 꼭 한번 들려주십시오. 극진하게 모시겠습니다."

"저희 왕국도 부탁드립니다. 단순한 이권 싸움을 떠나 당신은 진실로 찬사받아 마땅한 인물. 저희 왕국에 방문해주신다면 더없는 영광일 겁니다."

그나마 머리 아픈 정치질을 좋아하는 이들과 다르게 이제는 내게 호의적인 시선을 보내는 이들은 사령부를 떠나 고국으로 돌아가면서 대부분 같은 말을 했다.

한 번쯤 들려달라는 말이었다.

단순히 예의상 하는 말도 있었지만, 개중엔 정말로 그런 마음을 품고 있는 이들도 있었습니다.

"데이비 왕자님?"

"아, 네, 쿨린 장군님."

"하하, 이렇게 둘이서 대화하는 건 처음인가요."

수염이 희끗한 노인이 허허 웃으며 손을 내밀어 왔다.

"그렇네요. 이제 돌아가시는 길입니까?"

"예, 언제까지고 고국을 비워둘 순 없으니까요. 마음 같아선 남아서 왕자님을 더 돕고 싶지만."

껄껄 웃던 그가 고개를 돌렸다.

그리고는 갑옷을 입고 있는 젊은 소녀의 팔을 잡아끌었다.

"인석아, 뭐하는 게야. 목숨의 은인에게 감사 인사를 올려도 모자랄망정!"

그리 말하며 갈색빛 머리칼 소녀의 머리를 눌러 내게 인사시킨 그가 허허 웃어 보였다.

"이름은 훌라라고 합니다."

"반갑습니다. 데이비 올 라운입니다."

"후......훌라 멘데스라고 하......하합니다. 가......가......감사했어요!"

고개를 숙이며 소리치는 그 모습에 내가 의아한 표정을 지었다.

"사령부 방어전 당시, 서문에서 병사들을 이끌고 있던 녀석입니다. 언데드에게 살해당할 뻔한 것을 왕자님께서 구해주셨다고 하더군요."

"아아......."

"정말 감사합니다. 인석은 이제 제게 남은 유일한 손녀입니다. 유일한 가족이지요. 이 노인이 힘이 없어서 많은 보답은 해드릴 수 없지만......."

말끝을 흐린 그가 내 손을 꼭 잡았다.

"제 귀한 손녀를 구해주신 은혜, 절대 잊지 않겠습니다. 모쪼록, 언제고 꼭 저희 페르디샤 왕국에 들려주십시오. 제가 절대 섭섭지 않게 대접해드리겠습니다."

"전쟁에서 아군을 살리는 건 당연한 겁니다. 너무 부담 갖지 마세요."

내 미소에 그가 껄껄 웃어 보였다.

"허허, 정말 왕자님께서 왜 성흔을 받으셨는지 알 것 같습니다."

-사기꾼.......

누군가의 중얼거림이 들려오지만 무시한다.

"꼭 감사 인사를 드리고 싶었습니다. 부디, 몸 건강하시길. 가자꾸나. 훌라."

"네, 할아버님."

그리 말하며 돌아서는 건 사실 쿨린 멘데스 장군뿐만이 아니었다.

제 동생을 살려주어 고맙다며 몸을 숨이고 머리를 조아리는 병사들을 일으켜 세우느라 곤욕을 치렀다.

사령부를 습격했던 거대한 언데드인 프로스트 웜 와이번에게서 죽을 뻔한 것을 살려주어 고맙다고 말하는 이도 있었다.

알게 모르게 도움을 받았던 이들이 생각보다 되었던 탓일까.

내가 국가나 개인의 이득을 내버려둔 채 선행을 베푸는 것에 힘입기라도 한 듯 여기저기서 도움을 받아 감사하다는 말을 하는 이들도 가득했다.

'단순한 호의나 훈훈한 분위기.'

-흐음?

'나쁘진 않아.'

상대측에서 고마워하면 순수하게 호의를 받아주는 게 예의 아니겠는가.

대부분의 정화 작업이 끝난 탓에 여유가 생긴 나는 숙소에서 말없이 변이된 잔불을 손에 쥐었다 놓았다 반복하며 사색에 잠겨 들었다.

"이거 생각보다 큰 폭탄인데."

-터지면 어느 정도로 날아가는 게야?

"글쎄, 잘은 몰라도, 이론상으로만 따지면 일단 대형 폭탄인 건 맞는데 범위는 모르겠다."

-어림잡아서?

"못해도 반경 수십 킬로미터는 날아가 버릴걸?"

-그럼 세계수와의 싸움에서 써먹을 생각인 게야?

이전의 초월체와 싸웠을 때처럼.

그렇게 또 써먹을 생각이냐는 질문에 나는 고개를 저었다.

"아니."

환골탈태에 큰 도움이 되는 물건이라지만 이번엔 단순히 그렇게 사용할 순 없다.

"이건 남겨둘 거야, 여분의 생명 정도는 가지고 있어야지."

내 말에 페르세르크가 공감한다는 듯 고개를 끄덕여 보였다.

-확실히, 그대가 하는 행동거지를 보면 목숨이 몇 개라도 모자랄 게야.

그나마 지금 내가 강한 수준이니 여기에서 그쳤지 앞으로도 이렇게 쉬우라는 보장은 없다.

현재 이 대륙은 무력의 수준이 과거와는 비교도 할 수 없을 만큼 낮다.

그런 마당에 과거에 파묻힌 적대 세력이 다시 깨어난다면.

지금의 사령왕 데이안같은 존재가 또 없으리란 보장은 없다.

"우선 사신수부터 불러보자."

그리 말하며 자리에서 일어난 나는 망설임 없이 굳게 닫혀있던 방문을 열었다.

"핫?!"

동시에 문앞에서 고개를 숙이고 고민하고 있던 금발의 소녀가 화들짝 놀라며 내게 고개를 들어 보였다.

"여기서 뭐 해."

"아......그, 그게......."

당황한 듯 횡설수설하는 그 모양새를 보니 그리 중요한 일은 아닌 모양이었다.

말없이 그녀를 지켜보던 나는 이내 그녀의 머리를 푹푹 눌러 쓰다듬고는 걸음을 옮겼다.

"필요한 물건이 조금 있는데."

내 말에 그녀가 고개를 갸웃거렸다.

"필요한 거? 말만 해! 내가 다 구해줄 테니!"

그제야 정신을 차린 듯 그녀가 힘있게 대답해왔다.

이에 나는 생각해두었던 물품을 요청했다.

"괴황지를 조금 만들어야 하거든. 아니면 창호지도 좋고."

"괴......괴황 뭐?"

그게 뭔지 모르겠다는 듯 고개를 갸웃거리는 일리나였다.

확실히 여기에선 괴황지를 만들어 사용하는 부적 같은 게 있을 리 없다.

"비어있는 공 스크롤로 부탁하자."

아직 마법 부여가 되지 않은 빈 종이.

내 요구에 의아한 표정을 지으면서도 일리나는 금방 고개를 끄덕였다.

"보급담당에게 남는 게 있는지 알아볼게. 그런데 남는 물량이 있을지는......."

그런 그녀의 우려와는 다르게 나는 필요량의 공 스크롤 종이를 얻어낼 수 있었다.

부적을 만들 때 사용하는 괴황지는 주로 나무의 열매의 즙을 뿌리거나 해서 여러 가지 가공을 거치고는 한다.

물론, 티오니스 대륙에선 그런 기술이 크게 발달한 적이 없었기에 내가 원하는 최상품질의 괴황지를 구하는 건 사실상 불가능했다.

직접 재배한다면 모르겠지만 당장 필요한 물량을 확보하기엔 불가능하다는 게 현실이니 말이다.

물론, 내가 하려는 직종은 괴황지가 가장 큰 효능을 지닌 만큼 마법에 사용되는 스크롤의 종이는 효율이 떨어질 수밖에 없다.

다만, 이 대신 잇몸이라고 했던가.

안 되도 되게 하는 게 프로페셔널인 법이렷다.

일리나가 가져다준 공 스크롤은 생각보다 양이 많았다.

"네가 쓸 거라고 하니까 아주 퍼주더라? 난 이 나라의 황족이 내가 아니라 너라는 생각이 들기 시작했어."

"그쪽에서도 제법 호의적이라 다행이네."

"호의? 웃기지도 않으셔. 너 지금 이 사령부에서 뭐라고 불리는지 잊은 건 아니지?"

진실 된 성자.

헌신하는 성인(聖人).

뭐가 되었건 오글거리긴 해도 나쁘진 않았다.

"제 목숨 아끼지 않고 억울하게 다치고 죽은 이들을 위해 노력했다고 아주 난리야 난리. 네 진면목을 아는 사람이라면 한숨부터 나올걸?"

"쓸데없는 소리나 할 거면 돌아가."

"도대체 뭘 하려고 공 스크롤을 이렇게 많이 요청한 거야?"

그녀의 말에 나는 말없이 스크롤 한 장을 펼쳐 들고는 두꺼운 깃펜을 이용해 그 스크롤 위에 기묘한 문양을 그려내기 시작했다.

"좋은 거."

그렇게 말하면서도 내 손은 쉬지 않는다. 기억력이 좋은 편에 속하고 감각이 어디 사라지지는 않았는지 익숙하게 특이한 문양이 스크롤에 새겨지자 일리나가 호기심 가득한 표정으로 종이를 내려다보았다.

"일반 마법 스크롤과는 다르네?"

"다르지. 마법이 아니니까."

"또 이상한 거야? 넌 도대체 가지고 있는 재주가 몇 개야?"

"궁금해?"

내 질문에 그녀의 표정이 짜게 식었다.

"계속 궁금해해."

"계속 궁금해해."

마치 나를 잘 안다는 듯 일리나가 내가 할 말을 타이밍 좋게 내뱉었다.

"그럴 줄 알았어, 이 나쁜 자식아."

"눈치 빠르긴."

스크롤을 사용한 이유는 단순히 힘의 사용에 부작용이 적은 불순물 없는 종이가 필요했을 뿐이었다.

마치 기계로 찍어내는 것처럼 순식간에 부적을 열댓장 만들어낸 나는 이내 부적의 잉크들이 마르기도 전에 뭉쳐 쥔 뒤 허공에 던져 올렸다. 주신 프리아 여신이 나와의 약속을 지켜 사신수의 잠금을 해제했다면.

반응이 있으리라.

"종이가 멋대로 날아올랐어."

"소환진이야."

정말 세계를 이루는 규칙이 바뀌었는지 확인하려면, 역시 직접 소환해보는 것만큼 좋은 방법이 없다.

"새, 도마뱀, 거북이, 고양이."

내 말에 일리나가 의아한 듯 고개를 갸웃거렸다.

"새......뭐?"

"뭐가 좋냐고."

"굳이 말하자면...... 새가 좋아. 창공을 날아다니는 새. 자유로워 보이잖아?"

"불닭이라 이거지."

떨떠름한 그 대답에 나는 한 손을 그대로 휘저었다.

"나의 이름 아래에 현현하라."

너희에게 거부권 따위는 없다.

쿠웅!!!!

이윽고 내 손을 따라 거대한 불의 움직임이 일어나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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