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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렙 영웅님께서 귀환하신다!-210화 (209/1,559)

# 210

만렙 영웅님께서 귀환하신다!

- 9권 9화

티오니스 대륙에 풍부하게 퍼져있는 마나의 밀도는 굉장히 높다.

평균적으로 마나의 밀도가 높은 편에 속하던 세계의 기준으로 비교해보아도 그 수치가 근 10배에 달하는 만큼 어지간해선 모든 인간들이 어느 정도 마나를 가지고 살아가는 세상이 바로 이곳이기도 했다.

물론, 마나를 가지고, 마나가 풍부하다는 것과 실제 현실은 조금 다르지만 말이다.

"뭔가......뭔가 답답한 게......."

미묘하게 속이 답답한지 가슴을 쿡쿡 두드리며 불평하는 일리나의 반응은 정상적이었다.

공기가 맑은 곳에 매연이 다수 쏟아지면 당연 그곳에 살던 사람들은 공기가 이상해졌다는 사실을 깨닫게 된다.

색도 존재하지 않고, 소리도, 냄새도 존재하지 않는 새로운 힘이 일대를 장악하기 시작하자 일리나의 표정이 점차 찌푸려져 갔다.

"데이비! 도대체 뭘 하는 거야?!"

가슴을 꼭 움켜쥔 채 숨을 헐떡거리며 물어오는 그녀의 질문에 대답하는 대신 나는 곁에서 말없이 무표정한 얼굴을 하고 있는 륀느를 불렀다.

"륀느."

대답 대신 작은 머리를 갸웃거리는 녀석을 보며 간단한 요구사항을 던졌다.

"가서 기름 좀 받아와. 펄펄 끓일 수 있게 솥에 담아서. 손이 많이 가면 도움 좀 받고."

"륀느, 매우 높은 근력 수치를 보유, 데이비님의 명령 수행에 아주 적합하다고 판단. 이것을 륀느가 높게 평가. 도움 따위 필요 없다고 분석."

가느다란 팔을 붕붕 돌리며 말하는 녀석은 그저 객기를 부리는 것처럼 보이지만.

저래 보여도 수백 킬로그램짜리 물건을 한 손으로 들고 붕붕 휘두르는 근력을 소유자다.

륀느는.

애초에 생체 골렘이니 말이다.

내 말에 의문이 들 법도 했건만, 륀느는 의문을 가지지 않았다.

"그래, 높게 평가."

평시에도 칭찬에 목이 말라 있는 녀석이었다. 단순히 내가 치켜세워 주는 걸 원해서 저런 칭찬을 요구하는 건 아닐 테지만.

-륀느는 그대가 자기를 완전 신뢰하길 바라.

'륀느 만큼 내가 믿는 녀석이 어딨다고.'

-그게 아니지.

내 칭찬이 만족스러운 듯 녀석이 눈을 반짝이고는 후다닥 사라져버렸다.

"도술이라는 거다."

"도......술?"

"쉽게 말해서 인간이 자기를 보호하기 위해 만든 힘이라는 거지."

엘프가 정령술에 능한 종족이라면.

인간은 도술이라는 존재를 가진다.

너무 많이 받는 게 아니냐고?

그래서 신이 존재하는 티오니스 대륙에선 예전부터 도술의 존재가 존재하지 않았다.

마나도 희박하고, 사방에서 위협이 다가오고,

보호해줘야 할 신의 존재가 없으니.

인간은 살아남기 위해 다른 종족들의 힘을 모방해야 했다.

베껴서 무언가를 만드는 것은 인간의 종족 특성이니까.

내게 도술을 가르쳤던 영웅은 내게 무공과 검술을 가르쳤던 천마 독고준과 같은 세계의 사람이었다.

하지만 독고준이 살고 있던 땅덩어리와는 다르게 요괴라는 것들이 판을 치고 다녔던 대륙의 출신이었고.

거의 멸종 직전까지 몰린 인간의 처참한 현실을 이겨내기 위해 고서에서 선조들이 조금씩 남겨놓은 기록을 차용하고 합쳐 도술이라는 것을 만들어냈다.

사신수는 어떤 의미로는 인공적인 정령과 비슷하다.

아마 이놈들을 정령왕 노아스가 봤다면 반응 정도야 뻔하리라.

화륵.......

"으읏?! 뜨거워!"

갑작스런 열기에 일리나가 주춤거리며 두어 발자국 물러났다.

거대한 불덩어리는 마치 제 성질을 드러내듯 흉포하게 주변을 뜨겁게 달구었고, 이내 스스로의 의지를 가진 것처럼 허공에 화염으로 만들어진 거대한 꽃을 만들기 시작했다.

아직 채 만개하지 않은 꽃봉오리이지만, 소환 자체는 제법 성공적이라는 느낌이 들기 시작했다.

"불꽃?"

"음......."

열기에 노출되지 않게 일리나를 등 뒤로 당겨 가린 뒤 몸 안의 도력을 끌어올리자 한결 편안해진 얼굴로 그녀가 물어왔다.

"완성은 됐는데."

"인간만이 가지는 힘...... 이런 건 들어본 적도 없어."

"여기서 아주 먼 곳에."

내 설명에 그녀가 동그랗게 뜬 눈으로 나를 바라보았다.

"신이 없는 땅에서는 인간이 다룰 수 있는 힘은 오로지 마나 뿐이었어."

그것도 극도로 희박해 수십 년을 수련해야 이곳에서 고작 몇 년 수련한 수준의 결과가 나오는.

"그런 땅이 있단 말이야?"

"그래."

"그럴 리가......티오니스 대륙 어딜 가도 그렇게 마나가 부족한 곳은 없어. 오히려 지금 우리가 딛고 있는 이 땅의 마나 밀도도 낮은 편에 속하는데."

그녀의 의문은 당연했다.

"티오니스가 아니니까 그렇지."

"그건 또 무슨 소리람."

내가 헛소리를 한다고 생각했는지 그녀가 한숨을 포옥 내쉬었다.

"그래서? 저게 그 인간이 인간을 보호하기 위해 만든 거란 말이야? 겉보기엔 그냥 화염으로 만들어진 꽃인데?"

그 질문과 동시에 변화가 시작되기 시작했다.

굳게 말아져 있던 꽃봉오리가 서서히 펼쳐지며 새빨간 화염들이 마치 거대한 전자의 운동처럼 유영하기 시작한 것이다.

그리고.

그 뜨거운 열기 속에서 빛을 내뿜던 꽃봉오리가 완전히 만개했을 때.

"아......아름다워."

그녀의 눈앞에는 10미터는 되어 보이는 거대한 화염의 새가 위용을 드러내며 거대한 포효를 흘렸다.

-끼이이이이익!

"아......더럽게 시끄럽네."

다만, 멍한 얼굴로 화염의 주작을 바라보던 일리나와는 별개로 내 얼굴은 한없이 찌푸려졌다.

분별없이 내뿜어지는 화염, 그리고 제 존재를 알리는 거대한 포효.

내가 아는 주작의 습성을 비교해 볼 때 놈은.

갓 태어난 만큼 겁을 상실한 상태다.

* * *

-끼이이이이익!!!

거대한 화염으로 뒤덮인 새의 포효가 계속되자 이제는 머리가 아픈지 일리나가 귀를 틀어막고 눈을 살짝 찌푸렸다.

"이럴 거 같더라니."

그 말과 동시에 검지와 중지 사이에 끼운 부적을 들어 올려 그대로 도력을 끌어올린다.

도술로 이뤄지는 모든 것은 도술로 해야 한다.

간단히 부적을 태우는 행위조차 말이다.

동시에 붉은 화염이 스크롤을 불태우며 색이 연녹빛으로 변하기 시작한다.

화르르륵!!

[3급 부적.]

[주박의 인]

숫자가 낮아질수록 좋아지는 만큼 3급이라면 낮은 수준이 아니다만.

상대는 갓 태어났다 해도 엄연히 사신수.

태초부터 가진 힘이 보통 수준이 아닌 만큼 이 정도는 되어줘야 하리라.

촤르르르륵!!

일순간 부적이 타오르면서 거대한 사슬들이 내 주변을 배회하기 시작하자 나는 미련 없이 그것을 날려 보내 주작의 전신을 꽁꽁 묶어 바닥에 처박아버렸다.

-끼에에에에엑!!!

"데이비?! 뭐 하는 거야?!"

직접 소환한 존재를 묶어 패대기 쳐버리니 깜짝 놀란 목소리가 들려왔다.

"초장부터 기 안 잡아 놓으면 저 방화광 성격 못 잡는다."

"바......방화광?"

"주작의 성격은 많이 더럽거든."

놈이 성장하면서 성격이 굳어버리면 그땐 정말로 답이 없어지리라.

물론, 회초리 앞에 장사 없긴 하다만.

그런 귀찮은 짓을 감수할 필요가 있을까.

-끼에에에엑!!

바닥에 처박힌 채 버둥거리며 나를 향해 포효하는 놈은 그 성격답게 나를 공격하려는 지 입에 화염을 머금기 시작했다.

주작을 만들어낸 인간의 염원은 엄연한 분노다.

그 분노로 만들어진 만큼 놈에겐 놈이 가진 특유의 성깔이 존재한다.

분노 조절 장애.

이제 이걸 [분노 조절 잘해]로 바꿔주는 건 엄연히 도술을 사용하는 도인의 역량일 터다.

"시끄러워."

-끼이이이이익!!

분노 서린 포효와 함께 나를 향해 거대한 초고열의 브레스가 방출되기가 무섭게 나는 기다렸다는 듯 다른 부적을 꺼내 불태웠다.

[3급 부적]

[봉의 인]

파앙!!

마치 처음부터 존재하지 않았다는 것처럼 일순간 사라지는 화염 브레스에 놈의 몸이 다시 한 번 크게 들썩였다.

제 잘난 맛에 사는 주작이라 해도 일단은 염원이 모여 만들어진 신수.

영리한 영물인 만큼 뭐가 잘못되고 있다는 걸 느끼는 건 어렵지 않았을 것이다.

순식간에 브레스와 움직임을 봉해버린 나는 녀석을 압박하기 위해 두 장의 부적을 더 꺼내 허공에 던졌다.

쿠웅!!

-삐......삐이이익!

동시에 무형의 무언가가 놈의 몸을 짓누르기 시작했고 결국은 놈의 입에서 강렬한 포효 대신 죽어가는 새의 처절한 울음소리가 흘러나왔다.

"자, 우리 불닭이, 말 안 들으면 혼날 수밖에 없는데."

녀석에게 다가가 손을 뻗자 반사적으로 화염이 일렁였다.

어처구니없을 수밖에.

그 고고한 신수가 소환자에게 붙잡혀 린치를 당하고 있으니, 신수의 입장에선 아주 기가 막힐 따름이다.

어떻게든 화염을 끌어올려 내 접근을 막으려 하는 듯하지만, 나는 그런 녀석의 저항을 개무시하고 그대로 녀석의 머리에 부적을 붙여버렸다.

"봉인이다. 이놈 자식아."

철썩!

-끼이이이이익!!

기겁하며 버둥거리는 녀석의 전신에 타오르던 화염이 서서히 꺼지기 시작한다.

동시에 녀석에게 남은 것은 윤기가 도는 새빨간 깃털뿐이었다.

-끼이잉......끼익!!

이럴 순 없다며 어떻게든 억울함을 호소한다만, 아직 태어난 지 얼마 안 된 어린 신수답게 대화를 할 수준까지는 되지 못한 듯 보였다.

"데이비님. 말했던 기름 솥 대령 완료."

때마침 륀느가 커다란 수레를 한 손으로 질질 끌고 오며 말했다.

"고생했어 륀느."

"륀느, 매우 느긋한 작업. 더욱 많은 임무 수행이 가능하다 보고. 이것을 높게 평가."

"그래, 지금은 그냥 구경해."

"데이비님을 매우 낮게 평가."

입을 비쭉이며 물러나는 녀석을 둔 채 나는 다시금 주작과 눈을 마주쳤다.

"우리 불닭이."

-끼이이이익!!!

그 이름으로 부르지 말라는 듯 발버둥 친다.

"난 네 힘이 필요한데."

대답 대신 들려온 것은 분노 서린 포효였다.

"네가 쉽게 분노하는 편이고 자존심이 센 것도 아는데, 자꾸 이렇게 말을 안 들으면 혼날 수밖에 없어."

빙그레 웃으며 내가 녀석의 머리 부분을 톡톡 두드린 뒤 부드럽게 쓰다듬었다.

그리고는 부리 쪽을 가볍게 어루만져주자 녀석의 몸이 파르르 떨리기 시작했다.

내가 어린 신수들을 어디 한두 번 다뤄본 줄 아나.

[데이비, 이 말을 잘 기억해. 신수는 말이야. 아주 성질이 더럽다. 현무는 닥치는 대로 물어뜯고, 청룡은 흉폭하고, 백호는 성깔이 더러운 도도한 병신미를 가지고 있지, 개중에 주작은 최고의 분노 조절 장애를 가지고 있다.]

기억력이 좋다는 건 여러모로 좋다.

[그러니까 네가 신수를 다루는 방법 중 가장 먼저 익혀야 할 것은, 언젠가 너만을 위한 신수를 소환했을 때, 그 신수의 기를 어떻게 죽여놓느냐가 관건이지. 날 봐. 마냥 풀어줬더니 아주 미쳐 날뛰잖아?]

"형처럼요?"

[이 개새끼가!]

주작에게 가장 좋은 해결책은 자존심을 박살 내는 것.

불로 이루어진 화염의 주작이지만.

불을 잃어버린 녀석의 육체는 마냥 완전한 내성을 가지고 있지 않다.

"우리 불닭이, 말 안 들으면......."

말을 끊은 나는 륀느가 가져온 솥에 마나를 쏘아 보내 코팅을 하고는 그대로 온도를 끌어올렸다.

동시에 그 안에 담긴 기름이 일제히 끓어오르며 뜨거운 열기를 뿜어내기 시작했다.

"목을 비틀고 깃털 다 뽑아서 치킨으로 만들 거다."

치킨.

무슨 뜻인지 모르지만, 주작. 불닭이의 움직임이 아주 순간적으로 움찔거렸다.

"어때, 한번 기름 목욕해볼래? 아주 뜨끈뜨끈하게 튀길 수 있는데."

-끼......끼이이익!!

개소리하지 말라며 발버둥 치지만 이미 주도권은 내게 있다.

"뭐? 양념이 없다고? 걱정 마. 내가 또 먹고 사는 데엔 지장 없는 요리를 잘하거든."

먹을 수만 있으면 뭐든 먹다 보니, 자연스레 맛은 포기한 수준으로 떨어지긴 했다만.

-그대의 이상형 중 하나가 요리를 잘하는 여자라던 말이 여기서 나온 것이었군.

무시한다.

-끼이이이익!!

척 봐도 다른 의도로 비명을 지르는 것 같지만 나는 녀석의 말을 계속해서 무시한 채 놈의 날갯죽지를 틀어잡고 기름 솥으로 천천히 끌고 갔다.

"말 안 듣겠다고? 어쩔 수 없네. 우리 불닭이. 미안하지만 내가 맛있게 요리해줄게. 기왕이면 아주 팍팍 맵게 만들어서."

파랗게 질린 얼굴을 한 채 주작, 불닭이는 숱과 가까워질수록 점점 광적으로 발버둥 치기 시작했다.

쾅!!

그리고, 어느 정도 거리가 가까워졌을 때.

나는 실수한 척 솥을 걷어차 기름의 일부를 불닭이의 바로 옆에 조금 쏟았다.

새의 눈동자가 저렇게 확장될 수도 있구나 싶은 장면이었다.

분명 이렇게 하면 말을 잘 들을 거라 했는데.

-끼익?!

"어이쿠...... 기름이 조금 쏟아졌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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