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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렙 영웅님께서 귀환하신다!-216화 (215/1,559)

# 216

만렙 영웅님께서 귀환하신다!

- 9권 15화

77. 인질에게서 정보를 얻는 방법.

말없이 그의 손을 잡아 악수를 하며 나는 담담하게 중얼거렸다.

"반대로, 저들이 일리나를 끌어들여 당신을 견제한다면요?"

"그건 불가능할 테지요. 중립의 입장에 있는 일리나까지 끌어들였다간 제가 무슨 짓을 할지 잘 아는 놈들입니다. 그리고 무엇보다......."

저들의 사상은 일리나가 극도로 혐오하는 편이니 애초에 섞일 수 없는 물과 기름입니다.

애초부터가 상극이라, 섞일 수가 없다.

"친구 좋다는 말이 뭐겠습니까. 제가, 왜 이런 이야기를 다른 사람도 아닌 왕자님께 하는지, 부디 이해해 주시길."

친구가 순수한 마음을 지킬 수 있도록.

"국혼이 성사된다면 더 바랄 게 없겠지만......."

차라리 그녀가 제국의 암투에 휘말리지 않게 타국으로 빼돌린다면, 또 그녀가 결혼할 남자가 어지간해선 휘말리지 않을 든든한 기둥이라면.

그게 가장 최상의 시나리오일 것이다.

그가 내민 악수는 이것에 대한 제안이었다.

결국, 나는 그가 내민 손을 잡았다. 적이 되면 제법 위험한 놈이다. 다만, 아군이라면 속이 시커먼 놈들보다는 신뢰도가 높다.

"희생이 뭔지 아냐고 묻던 일리나가 정말 철부지가 되어버렸네요. 언제부터였습니까?"

"형님과는 방식이 달랐을 뿐 저는 처음부터 변함없었습니다. 다만 이제 와서 나설 수 있는 게 저뿐이라는 게 문제지요."

희생이 뭔지 모른다고 화를 내던 일리나의 생각과 다르게 살리반 황자는 이미 예전부터 다른 방법으로 그녀를 지켜오고 있었다.

"아직 어린아이가 어리광을 안 피우면 누가 피울까요. 그 누구보다 정의롭게, 그리고 순수하게만 살아준다면......."

그의 마음은 한 치의 거짓도 섞여 있지 않았다.

사기적인 거짓말탐지기의 힘은 이런 곳에서 상당히 좋다.

믿을 수 있는가에 대한 요인이 크게 작용할 테니까.

그가 처음으로 다른 미소를 지어 보였다.

"서로에겐 방식이 있는 겁니다. 저는 이쪽이 익숙합니다."

그 아이가 정치라는 골치 아픈 문제의 어두운 부분을 모르고 살 수 있게 직접 정리한다.

사람은 저마다 다른 생각을 하고 살아가고 모두가 자신들이 세상의 주인공이니까.

저들이 생각하고 있는 미래의 상이 내가 생각한 것과 다르다고 뭐라 할 입장은 아니었다.

"먼저 이쪽에서 빚을 지우겠습니다. 적이라고 했습니까? 얼마 든 오라고 하십시오, 개 박살 내드리지요."

"마음은 고맙지만, 세계수가 이판사판이랍시고 나서는 순간 팔란제국도 얼마 못 버팁니다. 그러니."

그에게서 등을 돌린 내가 주먹을 살짝 쥐었다가 폈다.

"제가 하는 말 잘 들으세요."

* * *

황태자의 혼과의 대화에서 무슨 이야기를 나누었던 것일까.

오라비의 죽음으로 퀭한 모습을 보이던 그녀는 무언가 결심을 한 듯 내게 찾아와 말했다.

"네가 말했던 폐관수련. 해볼까 해."

담담하게 말하는 그녀에게 고개를 끄덕여 주었다.

"성취를 얻기 전까진 나오지 않을 거야."

"오래 걸리진 않을 거다."

그녀는 기본적으로 재능도 높지만 내가 그동안 그녀에게 해준 것들이 꽤 큰 영향을 주고 있다.

그 미약한 차이가 모인다면 큰 효과를 보는 법.

그녀는 검에 한해선 그 누구보다 빠른 시간 안에 마스터급에 들리라.

그녀와의 의도하지 않은 작별 이후 사령부를 떠나 하인스 영지로 가는 길에 올랐다.

끼이이이익!!

드워프들의 기술이 집결되어 축조된 거대한 성문이 열리며 번쩍거리는 갑옷을 입은 병사가 크게 소리쳤다.

"영주님이 돌아오십니다!!"

그 말과 함께 마치 기다렸다는 듯 병사들이 양측으로 일렬로 도열해 경례를 올리자 나는 말없이 손을 까딱인 뒤 입을 열었다.

"다들 영지 치안 담당을 하느라 피곤할 텐데 해산해. 자잘한 행사는 다 생략하지."

"알겠습니다! 전원!! 열중쉬어!!"

척!!

"쉬어!"

이어지는 명령 구호에 무기를 납도한 병사들이 일제히 한발 물러났다.

"어서 오세요, 저하. 기다리고 있었어요."

"다들 고생했어. 보고해야 할 게 있나?"

"몇 가지 있지만. 큰일은 아니라서 적절한 조율 안에서 다 해결되고 있어요."

"쉬지도 못하고 고생 많이 했다."

"헤헤, 이게 제가 할 일인걸요. 저하께서 제게 얼마나 막중하고 중요한 임무를 맡기셨고 저를 믿어주시는지 아니까 대충 할 수 없어요. 이건 제게 구원이나 다름없으니까요."

내 말에 에이미가 초롱초롱한 눈동자로 고개를 끄덕였다.

"오라버니!"

이어서 저 멀리서 후다닥 뛰어온 녹발의 소녀가 그대로 내게 안겨 왔다.

"어이구, 윈리, 잘 지냈어?"

"오라버니! 요즘 제게 너무 소원해지신 거 아닌가요?"

"하하. 미안하다."

확실히 쓸데없이 스케일만 큰일이 터져서 녀석에게 신경을 잘 못 써준 것도 사실이었다.

그런 윈리를 그동안 곁에서 계속 돌봐준 것은 율리스였지만 율리스는 이번 일의 사후 일로 인해 적탑 본부로 돌아간 터라 현재 이곳엔 없었다.

"오, 그동안 열심히 했나 보구나, 마법 실력이 그사이에 늘었어."

대견하다며 녀석의 머리를 쓰다듬어주자 놀란 듯한 시선이 내게 닿았다.

윈리의 가슴에는 마나로 이루어진 서클이 4개가 회전하고 있었다.

그것이 의미하는 바는 간단했다. 4서클 초입.

3서클에 머무르고 있던 윈리가 드디어 평균 마법사라는 굴레인 3서클을 넘어선 것이다.

영특하고 재능이 있어서 마법을 배운 것이니 당연 언젠가 도달할 거라곤 생각했지만 직접 보니 더 대견할 따름이었다.

"제법 오래된 것 같은데 왜 말하지 않았어?"

"오라버니께서 바쁘신데 어떻게 말해요. 그리고 언젠가 깜짝 놀라게 해 드리려고 그랬는걸요."

헤실거리는 윈리의 말에 나는 너무 관심이 없었음을 인정할 수밖에 없었다.

'암, 가족이 가장 소중하지.'

살리반과의 일이 있었기 때문일까.

윈리가 더욱 각별해 보인다는 느낌을 지울 수가 없는 것 또한 사실이다.

"고생했다. 오라비는 네가 자랑스럽다."

바리스도, 윈리도, 상황이 안 좋은 악조건 속에서도 이렇게 밝게 자라준 게 고마울 따름이었다.

"헤헤!"

칭찬이 그리 좋았는지 헤실거리며 내 품에 더욱 안겨드는 녀석을 토닥여주자 주변의 시선이 서서히 보이기 시작했다.

"커흠! 돌아오시었소, 은사."

"골고다 장로님, 그간 무탈하셨습니까?"

"하하하하하! 내 이래 봬도 아직 정정하외다! 마침 은사께 계획의 성과를 알려드려야 할 것 같아서 말이오. 동생 놈이 자기가 가겠다고 떼를 쓰는 걸 겨우 떼어내고 왔소이다! 껄껄껄!"

여전히 호탕한 웃음을 지어 보이는 드워프의 행동에 나는 픽 웃음이 나왔다.

사실 계획을 담당하던 건 골다 장로였지만.

그 계획에 흥미를 느낀 골고다 장로가 날름 빼앗아 먹은 모양새다.

뭐 저리 서로 투닥거려도 굉장히 우애가 깊은 형제들이니 사실상 걱정할 거리는 없겠지만 말이다.

"은공."

"유리아."

"우연이네요. 이쪽에서도 드릴 말씀이 있어요."

"인질로 잡아온 전대 신목의 성녀?"

"네. 이제 안정이 되어서 대화할 수 있을 것 같아요."

그녀의 말에 나는 안아 들고 있던 윈리를 내려주고는 골고다에게 입을 열었다.

"장로님 죄송합니다만, 우선 저쪽 문제부터 해결해야 할 것 같네요."

"하하! 걱정 마시오. 나도 눈치가 있지, 어느 쪽이 더 급한지 모르는 건 아니올시다. 공방에서 마무리를 하고 있을 테니 꼭 들려주시구려."

"고맙습니다."

"고맙긴 무슨! 내 그렇게 흥미로운 작업은 생전 처음이오! 껄껄! 다음에도 이런 작업을 한다면 꼭 좀 부탁드리오."

껄껄 웃으며 스윽 다가온 그가 주변의 시선을 살핀 뒤 조심스레 말했다.

"기대하시구려. 내 기가 막힌 놈들로 준비해두었으니."

내 등을 탕탕 두드리고는 돌아가는 그를 뒤로한 채 나는 미소를 지우고 입을 열었다.

"안내해. 지금 어디 있지?"

"숲에 있어요. 에밀리아님은 신목에서 살고 계셨던 분이니 이런 인간이 가득한 영지에선 진정되지 않을 것 같아서요."

그녀의 말에 나는 말없이 고개만 끄덕였다.

* * *

삼조관 에밀리아.

삼조관이라는 단어는 엘프에게 존재하는 특정 계급을 두고 하는 말이다.

"아저씨이이이이!"

숲에 들어서기가 무섭게 나를 반기며 나타나는 엘프들.

그리고 그 사이에서 기다렸다는 듯 후다닥 뛰어나와 안기는 녀석은 다름 아닌 뮤우였다.

"아이고, 뮤우 볼 때마다 쑥쑥 크네."

녀석을 못 본건 오래되지 않았다만.

뮤우는 확실히 이전과는 몰라보게 건강해졌다.

"아저씨이! 왜 뮤우 놔두고 막! 막! 멀리 갔어?!"

"응?"

"뮤우는 아저씨가 보고 싶었어!"

울먹거리며 내 가슴에 콩콩 주먹질을 하는 녀석을 달래주고 있자 유리아가 빙그레 웃으며 손을 뻗어왔다.

"뮤우, 은공께 그러면 못써. 이리 오렴."

"히익!! 시......시이러!"

기겁하며 내 품 안으로 파고드는 뮤우의 모습에 내가 고개를 갸웃거렸다. 어지간해선 유리아의 품 안에 파고들어 살던 뮤우였다.

그런 녀석이 왜 저렇게 유리아를 무서워하는 건지 모를 일이었다.

"어......언니 뮤, 뮤우가 잘못했어!"

"어서 이리 오렴."

"제......제발."

당황하며 눈동자를 데굴데굴 굴리던 녀석이 이내 경기를 일으키듯 물러났다.

"오셨습니까, 은공."

"아. 오랜만입니다."

베르디스라는 엘프 가디언 소속의 젊은 청년이었다.

내 미소에 그가 쓴웃음을 지었다.

"그나저나 이 녀석이 왜 이러는 겁니까?"

"그게......"

말끝을 흐린 그가 유리아의 눈치를 살폈다.

그 사이에 무슨 일이 있었던 건지.

"너무들 하세요. 여러분. 저는 그저 뮤우에게 심오한 차의 세계를 가르쳐 주려 했던 것뿐이랍니다."

"대충 알겠네. 뮤우, 당분간은 아저씨랑 같이 영지에서 지낼까?"

"응!응! 뮤우 넓은 곳 갈래! 넓고 예쁜 곳 갈래! 그리고오......그리고! 홍단이! 홍단이와 청단이!"

녀석의 말에 반응하듯 허리춤에 채워져 있던 두 자루의 검이 빛을 내뿜으며 아이의 모습으로 돌아왔다.

"와아! 청단이! 홍단이!"

"꺄르륵! 무우!!"

신이 나 서로 얼싸안고 방방 뛰는 녀석들을 보니 놔둬도 잘 지낼 듯 보였다.

"홍단이 청단이, 뮤우와 잘 놀고 있어."

"네에!"

입을 모아 대답하는 녀석들의 뺨을 살며시 꼬집어주자 륀느가 말없이 내 뒤에 쏙 숨어버렸다.

"륀느?"

"뤼......륀느, 데이비님을 따라가. 이것을 륀느가 강력하게 평가......무조건 동행, 반드시 동행!"

척 봐도 자신의 미래를 예감했는지 륀느가 파들파들 떨었다.

마침 녀석도 조금 필요했던 참이니 나는 녀석을 희생시키지 않았다.

유리아를 따라 향한 곳은 다름 아닌 숲의 안쪽, 과거 뮤우가 살던 곳이었다. 마을에서는 떨어져 있되 언제든 도착할 수 있는 공간.

이제는 주인이 없는 적적한 숲이기도 했다.

"유리아님, 은공 오셨습니까."

"에밀리아님은 어떻게 하고 계시죠?"

"그게......계속해서 정령과 교감하고 계십니다."

"알겠어요. 고생했어요."

보랏빛의 식물과 그늘진 나무를 지나 들어서자 커다란 나무 옹이에 앉아 한 손으로 허공에 있는 빛무리들을 향해 미소 짓고 있는 에메랄드빛 머리칼의 소녀가 보였다.

"일단 이곳은 그냥 대륙에 퍼져있는 작은 엘프마을이라고 속여두었어요."

"어째서?"

"저렇게 괴롭히는 맛이 좋을 것 같은 분인데 탈출하면 곤란하잖아요? 쿡쿡."

저게 제 선조를 다루는 엘프란 말인가.

"에밀리아님."

이윽고 유리아가 천천히 그녀에게 다가가 그녀를 부르자 말없이 정령과 교감하고 있던 소녀가 천천히 고개를 돌렸다.

그리고는 유리아를 보더니 이내 나를 발견하곤 눈을 부릅떴다.

"흡?! 이......인간?!"

당황한 그녀가 급히 허리춤에서 무기를 뽑아 들기 위해 손을 뻗었다.

하지만.

애석하게도 그녀는 무장해제 상태였기에 손에 잡히는 것은 없었다.

"유......유리아님?! 어떻게 된 거죠?! 어떻게 인간이 여기에!"

그녀의 말에 나는 말없이 그녀를 보다가 성큼성큼 걸어 다가갔다.

그리고는 그녀의 머리를 잡고 눈을 마주친 뒤 눈을 찌푸렸다.

"으윽! 노......놓으세요! 인간! 어찌 이리 무례하단 말입니까!"

"웃기고 있네."

"큿?!"

당황한 채 버둥거리는 그녀는 내 시선을 마주치지 않기 위해 황색의 눈동자를 이리저리 굴려 피했다.

하지만 내 눈엔 비친 그녀의 눈동자엔 엘프의 것이 아닌 다른 무언가가 섞여 있다는 느낌이 들었다.

꽤 낯설면서도 익숙한 잔향에 내 눈이 절로 가늘어졌다.

"이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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