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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렙 영웅님께서 귀환하신다!-217화 (216/1,559)

# 217

만렙 영웅님께서 귀환하신다!

- 9권 16화

그녀의 내면에 숨어든 옅은 빛은 익숙하면서도 약간 괴리감이 들었다.

분명 어디서 본 건데. 왜 이렇게 낯이 익으면서도 생소한 느낌이 드는지.

그 욕심이 들어, 나는 한 차례 더욱 깊숙하게 파고들어 페르세르크의 심연의 권능을 사용했다.

그리고, 그 내면 안에서 나는 거대한 섬광에 그대로 집어삼켜졌다.

"놔......놔주세요!"

내게서 빠져나가려 버둥거리는 그녀였지만 체격이 작은 탓인지 아니면 몸이 좋지 않은 것인지 저항하는 힘이 그리 강하지 않다.

평소에 대부분의 육체를 강화시켜놓는 편이지만 자잘한 힘 조절 정도는 본능적으로 하는 편이니 말이다.

"으윽......유......유리아님! 이......이 무례한 남자를!"

그녀가 구조요청을 하듯 유리아에게 소리쳤지만.......

내게 가려진 유리아의 표정은.

"흐흐......."

그야말로 소름이 쫙 돋게 하는 희열 어린 미소를 짓고 있었다.

저게 평화를 사랑하는 숲의 엘프가 짓는 표정인 건지.

다른 엘프들에겐 죽어도 숨기는 저 미소를 내게 만큼은 숨기지 않는 꼴에 퍽 웃음이 나온다.

"됐다."

"푸핫!"

이윽고 내가 손을 놓자 그녀가 내게서 서너 발자국 물러난 뒤 경계 어린 시선으로 째려보았다.

"정말 무례하시네요! 인간이 막무가내라는 건 알고 있었습니다! 하지만 300여 년 만에 이렇게 변했을 거라곤 생각지도 못했어요!"

그녀의 외침에 나는 아무것도 모르는 척 중얼거렸다.

"좋아, 꼬마 아가씨."

"꼬......꼬마라고 하지 마세요! 이래 봬도 엘프들 중에는 최연장자입니다!"

"그럼 꼰대 아가씨라고 해줄까?"

"이익!!"

"애초에 150도 안 되는 키를 보고 있으면 어른보다는 아직 덜 자란 애 같은데."

내 질문에 그녀가 이를 악물고 고개를 숙였다.

"......후우, 유리아...... 잠시 둘이서 대화를 했으면 싶은데."

내 말에 유리아는 의중을 파악하려는 듯 한참 고민하다 고개를 끄덕여 보였다.

"주변의 가드 분들도 물릴게요. 어차피 은공께서 계신다면, 큰 문제는 없을 테니."

"그래......빨리."

"에밀리아님. 애석하지만 차를 대접하는 건 나중으로 미뤄야겠네요."

그 모습에 에밀리아가 경계 어린 표정으로 나를 째려보았다.

엘프들이 인간을 이렇게 옹호하는 모습이 그녀에겐 조금 특이하게 보였던 모양이었다.

이윽고 유리아가 시야에서 멀어지기가 무섭게 나는 그대로 몸을 웅크리며 한 손으로 테이블을 짚고는 크게 숨을 들이켰다.

"후웁......이건 진짜 예상 못 했네."

입술을 살짝 깨물어 멍해지는 정신을 다잡은 뒤 내가 외쳤다.

"폭탄!"

-데이비?

"폭탄 제거반 투입!"

"륀느, 초고속 투입! 정밀 작업 매우 높게 평가!"

내 외침에 륀느가 섬광처럼 파고들어 그녀를 제압한다. 그리고는 입자를 뭉쳐 익숙한 공구를 만들어내고는 그녀의 목에 가져다 대었다.

공돌이의 상징.

공돌이의 파트너.

니퍼였다.

내 기억을 파고들어 빠루까지 구현하던 녀석이 니퍼 하나 못 만들까.

쿠웅!!

동시에 륀느의 몸을 감싸고 있는 넓은 코트 주머니에서 두 개의 큐브가 허공으로 튕겨 오르며 거대한 골렘인 탱커와 스나이퍼가 모습을 드러냈다.

탱커는 순식간에 그녀를 기준으로 방패를 펼쳐 나를 보호하듯 막아섰고 스나이퍼는 자신의 거대한 총을 그대로 에밀리아의 머리에 겨눈 뒤 눈을 번뜩였다.

장담컨대, 조금만 수상한 움직임을 보여도 마탄환이 그녀의 머리통을 뚫어버리라.

"꺄 꺄악?! 이게 무슨?!"

갑작스런 륀느의 제압과 두기의 골렘 때문에 깜짝 놀란 그녀가 발버둥 치지만 륀느의 완력을 이길 순 없는지 꼼짝없이 포박당한 채로 끙끙댔다.

"데이비님. 어떤 폭탄?"

"하아......미쳐 돌아가는구나 아주."

숨을 크게 고르며 내가 인상을 찌푸렸다.

이래서 무슨 일을 해도 신중하게 해야 하는 건데.

너무 안일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우리가 심연을 들여다볼 때.

심연은 우리를 본다.

나는 페르세르크의 권능을 이용해 그녀의 내면을 들여다보았고.

그녀의 내면에 숨어있던 것이 눈을 뜨며 정확히 나를 직시했다.

반사적으로 한 손을 들어 눈을 가린 채 숨을 고른 뒤 마나를 끌어 올리자 온몸에 미친 듯이 활보하던 혈류가 서서히 진정되기 시작했다.

이런 상황을 조금이라도 예상했다면.

이렇게 황당하게 노출되지도 않았을 것이다.

"데이비님, 심박수가 비정상적으로 상승됨을 감지. 륀느, 대기 중. 당장 동맥을 끊어버릴 수 있어."

"그만해."

거칠게 숨을 내쉬며 내가 비틀거리자 륀느가 짧게 혀를 차며 더욱더 강하게 에밀리아의 몸을 옭아맸다.

"꺄악! 아......아파요!"

짜증스레 더욱 힘을 주는 륀느 때문에 에밀리아가 울음기 섞인 목소리로 절박하게 외쳤다.

"매료......"

이윽고 천천히 눈을 가리던 손을 떼어낸 내 중얼거림에 륀느가 고개를 갸웃거렸다.

"매료? 좀 더 자세한 정보를 요구."

하지만 륀느의 질문에 답하기보다 나는 그녀의 멱살을 틀어쥐고 인상을 찌푸렸다.

"너 뭐냐. 양심이 있냐?"

"무......무슨 소리를 하시는......꺄악! 아......아파요! 제발......제발 놓아주세요!"

울먹거리며 소리치는 그녀는 정말로 고통스러워 보였다.

-데이비.......

"몸 안에 매료능력이 숨어있었어. 그걸 그대로 들여다봤으니 효과가 직방으로 올 수밖에.

다행이라면 그녀가 성년이라고 보기엔 너무 앳된 얼굴이라 평정심이 큰 도움이 되었다고 봐도 무방했다.

"누굴 사회적으로 매장시키려고 그렇게 흉악한 걸 몸 안에 숨기고 있는 거야."

보통 상대의 감정을 증폭시키는 계열의 힘은 정도라는 게 있다.

하지만 그녀가 가지고 있는 매료는 내가 겪어본 마족, 서큐버스라는 존재들과 비교해도 전혀 밀리지 않았다.

아니.

그들보다 수십 배는 더 강하다고 봐도 무방했다.

"너 양심이 있는 거냐?"

"흐윽......"

"그 몸으로 매료를 발산해? 누굴 사회적으로 매장시키려고 작정했나?"

"뭐......뭐라고요?!"

그제야 내가 정확히 뭘 보고 이런 행동을 보이는 건지 깨달은 그녀가 얼굴을 붉히고는 바락바락 소리쳤다.

"내가 뭐 크기 싫어서 안 큰 것인지 알아요?! 나......나도 크고 싶은데 안 크는 걸 어쩌라고! 그리고 또 매료는 또 뭔데요!"

존댓말도 잊은 채 바락바락 소리치는 그 모습을 보니 어지간히도 스트레스를 받았다는 느낌을 피할 수가 없다.

"데이비님, 매료의 매개체는?"

"눈."

"눈을 뽑아?"

"히익!"

비명을 지르는 에밀리아를 무시한 채 내가 고개를 저었다.

"빌어먹을 사기 눈깔, 뽑아버려."

"롸저."

흉악한 소리를 아무렇지도 않게 하는 륀느가 니퍼를 들어 그녀의 눈을 찌를 듯하자 그녀가 비명을 지르며 온몸을 버둥거렸다.

"꺄아아아악!! 하지 말아요! 하지 말아요!!"

"저항할 시 정밀한 안구적출 불가. 다치기 싫으면 가만히 있으라고 경고. 이것을 륀느가 높게 평가."

"시......싫어! 이봐요! 내가 뭘 잘못했다고 이러는 거예요! 싫어요! 그만두라고 해줘요!"

그녀의 외침에도 불구하고 륀느가 니퍼를 높게 들었다.

"그만."

"명령 인수."

동시에 내 명령이 다시 떨어졌고 니퍼의 끝이 그녀의 눈을 찌르기 직전에 멈췄다.

"흑......흐흑......"

두려움에 눈을 꼭 감은 채 흐느끼는 걸 보니 얼마나 무서웠던 것인지 절절히 느껴질 정도였다.

다만, 내가 생각하지 못한 것이 있었다.

"아......돌아버리겠네."

그녀의 몸 안에 잠들어있던 매료가 발현되는 트리거가.

하필 눈물이라는 점이었다.

순식간에 손을 뻗은 내가 그녀의 눈물을 손으로 닦아버리고는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리고는 심호흡을 하듯 숨을 크게 들이켰다.

"와 이거......"

연구가치가 급속도로 상승하는 이 정체가 궁금한 엘프 때문에 내 인상이 찌푸려졌다.

결국, 나는 반사적으로 마나를 끌어 올렸다.

[8서클]

[mind evolution(정신 진화)]

투웅!!

동시에 나를 향해 눈물을 보이던 에밀리아의 몸이 크게 움찔거렸다.

효과가 없진 않은 모양이다.

굳어버린 에밀리아를 지켜보던 나는 혹여나 더 흘러나올지 모를 매료의 힘을 경계하며 단호하게 명령을 내렸다.

"륀느, 쟤 기절시켜."

"롸져."

퍽!!

행동은 빨랐다.

순식간에 뒷목을 후려쳐 기절시킨 륀느가 양손을 허리에 올리고는 자랑스레 말했다.

"륀느, 기절 기술 매우 높게 평가. 힘 조절 매우 완벽."

"니퍼......"

"니퍼?"

"빨리!"

숨을 고르는 내 말에 들고 있던 니퍼를 내게 던져주는 륀느였다.

푸욱!!

그리고, 내가 니퍼를 받아들기가 무섭게 섬뜩한 파육음이 울려 퍼졌다.

* * *

"유리아."

"어머, 은공? 왜 벌써......어머, 그 상처는 뭔가요?!"

생각보다 일찍 돌아온 내 모습에 놀란 유리아는 숨을 거칠게 쉬고 있는 내 모습을 보고 놀란 듯한 표정을 지었다.

그녀의 눈이 살짝 찌푸려졌다.

"별거 아니야. 여유 부리다가 된통 당한 것뿐이야."

"설마......에밀리아님을 겁간하신 건 아니겠죠?"

"......"

확실히 그냥 보기엔 그런 오해를 살 수도 있다.

숨이 거칠어져 있고 옷 여기저기 찢어져 무언가 날카로운 것으로 상처를 낸 것 같은 모양새이니 말이다.

언 듯 보면 손톱으로 난 상처처럼 보일 수도 있긴 했다.

실상은 멍청한 짓을 한 탓에 매료에 노출된 내가 특정 누군가를 보호하기 위해 일부러 상처를 낸 것이지만 말이다.

"안 돼요. 에밀리아님은 엘프 중에서도 최연장자에 속하시지만, 외형은 성년이 되기도 전에 고정되셨기 때문에......"

"피곤하니까 장난은 집어치우자."

단호한 내 말에 그녀가 입을 다물었다.

"대체 무슨 일이 있으셨던 거죠?"

"에밀리아라는 엘프, 매료의 힘을 가지고 있었나?"

내 질문에 그녀가 고개를 갸웃거렸다.

"매료......요?"

"그래."

"아뇨. 어릴 적 어머니께 듣기로는 그런 이야기는 들은 적이 없어요."

"그래? 이상한데......."

"아. 비슷한 힘은 가지고 계셨던 것 같아요."

"비슷한 힘?"

내 질문에 그녀가 빙그레 웃어 보였다.

"네, 예전부터 동물들이 유난스러울 정도로 에밀리아님을 따랐다고 해요. 저는 직접 본 적이 없지만, 할머니 대의 엘프 분들이나 어머니 대의 엘프분들 중 나이가 있으신 분들 중엔 에밀리아님의 과거 모습을 보신 분들도 있으니까요."

"그 외엔?"

"그 외엔 듣지 못했어요. 정말 매료의 힘을 가지고 계셨다면 어른들이 알고 계셨을 거랍니다."

그녀의 말에 내가 침묵을 유지했다.

동물이 유별나게 따르는 체질.

페로몬에 가까운 체질이다.

당연 엘프보다 감이 뛰어난 동물이라면 그녀의 몸에서 흘러나오던 미약한 매료의 기운에 취해도 이상할 것은 없었다.

다만.

'그래도 너무 짙은데.'

내가 그녀의 몸 안에 숨겨진 매료의 힘의 근원을 직접 들여다보았기 때문에 더 큰 문제도 있었지만, 그래도 이건 도가 지나쳤다.

단순 느끼는 수준으론 몽마라 불리는 마족 서큐버스.

그중에서도 상위 서큐버스인 서큐버스 퀸들 그 이상에 달하는 매료였다.

상대가 본질적으로 호의를 품게 만들고 더욱 심해지면 연심을 품게 만드는 힘.

이런 힘을 가지고 태어나는 존재는 극히 드물지만 없는 것은 아니다.

특별히 압도적인 외모를 지닌 것도 아닌 데 그저 가만히 있는 것만으로도 주변인을 매료하는 존재들.

그들은 각기 일정량의 매료를 가지고 태어나기도 한다.

에밀리아 또한 그런 케이스였던 모양이었다.

하지만, 그녀가 가지고 있는 말도 안 되는 매료의 힘은 도대체 무엇으로 설명해야 할까.

한번 견뎌냈으니 점차 내성이 생기겠지만. 보통 사람이라면 남녀 관계없이 그녀의 눈물을 보는 순간 눈이 뒤집힐 게 뻔했다.

유리아를 통해 에밀리아에 대한 정보를 대충 조합한 나는 그녀가 있는 집을 떠나 다시 에밀리아가 기절한 곳으로 발걸음을 돌렸다.

-그 아이의 외견은 실제 나이를 떠나서 아직 미성년 엘프의 모습이야. 데이비, 그 아이에게 음심을 품는 건 그만둬.

페르세르크의 조언에 내가 인상을 찌푸렸다.

"뭐? 이건 또 뭔 개소리야."

-개소리는 무슨 개소리야, 그대, 지금 그 아이의 몸에 있는 매료의 힘에 휘둘려서 그 아이에게 음심을 품지 않았는가.

그녀의 말에 내가 픽 웃음을 흘렸다.

"내가? 그 쥐콩알만 한 엘프에게 홀려서 음심을 품었다고?"

-그럼? 틀린가? 그럼 왜 그랬던 게야. 왜 참지 못해서 스스로 상처를 내서 평정심을 찾고.

"너."

-엥?

내 말에 그녀가 눈을 크게 떴다.

"너 때문이라고 너 임마!"

-아?

에밀리아와의 대면 중에 있던 여성체는 총 셋.

쥐콩알만한 엘프는 때려치우고, 골렘인 륀느는 성년의 모습이라곤 해도 내가 그녀를 향해 갑자기 음심을 품을 만큼 자제심이 없진 않다.

기본적으로 나는 육체관계를 맺더라도 마음에 없는 상대는 절대 품지 않으니까.

하지만.

페르세르크는 달랐다.

-......

"부탁이니까 제발 그 입 다물어. 놀리고 싶어도 참고 잊어. 큰일 나기 싫으면."

진정이 될 때까진 최대한 마음을 다스리는 수밖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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