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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렙 영웅님께서 귀환하신다!-218화 (217/1,559)

# 218

만렙 영웅님께서 귀환하신다!

- 9권 17화

기절한 에밀리아가 누워있는 해먹의 곁에 편안하게 앉은 나는 숨을 고르며 천천히 눈을 감았다.

"륀느, 디셉티콘 편대 편대장들 모조리 동원해. 당분간 주변을 완전 차단해."

"데이비님, 정신적인 쇼크가 상당해?"

"멍청한 짓 했다가 제대로 욕봤다. 부탁하마."

"륀느, 호위 임무 또한 매우 높은 효율. 이것을 륀느가 높게 평가."

그리 말하며 륀느가 눈을 감았다가 천천히 뜬다.

동시에 푸른색으로 반짝인 눈동자와 함께 녀석의 입에서 신비로운 음성이 흘러나왔다.

[디셉티콘 편대, 륀느의 후임들에게 명령하달. 작전명 그물망 개시.]

키이잉!!!

철컹!

녀석의 코트에서 튕겨 나와 허공으로 떠오른 큐브들이 일제히 그 덩치를 불리며 거대한 골렘의 형태를 취하기 시작했다.

한번 파고든 매료의 기운을 완전히 털어내는 건 쉬운 일이 아니었다.

'세계수도 눈이 없는 게 아니면 저 녀석이 저런 걸 품고 있다는 걸 알 텐데. 뭘 노린 거지.'

평소라면 조잘거리며 자신의 의견을 피력해왔을 이가 침묵한다.

'페르세르크.'

마나를 끌어모으며 여력을 이용해 그녀를 불러보지만 돌아온 것은 침묵뿐이었다.

그렇게 한참 동안 불편한 침묵이 오갔을까.

-이간계.......

기어들어가는 듯한 작은 목소리가 내 귓가를 때렸다.

순간적인 목소리에 움찔거린 나는 누가 볼세라 고개를 스윽 돌렸고 이내 나무 뒤에서 살짝 튀어나와 있던 뿔이 쏙 하고 사라지는 걸 볼 수 있었다.

"이간계라......"

세계수가 향하던 방향을 짐작해보면 동부대륙으로 향하는 길에 있었다.

'그러네.'

곰곰이 생각하던 나는 그 경로에 있는 국가가 어디인지를 깨달을 수 있었다.

대륙 최대, 최강 국가.

검의 국가. 팔란 제국.

인간들의 기준으로 팔란제국의 힘은 절대 무시할 수 있는 것이 못 된다.

그러니까.

이놈의 세계수는 에밀리아의 매료가 상상 이상으로 강해진 것을 알고 그녀를 이용해 팔란제국을 구워삶을 생각이었다는 소리였다.

화아아악!!

그쯤 생각이 미치자 온몸에 날뛰던 혈기가 일순간에 차갑게 식는 느낌이 들었다.

"아무리 자신과 교감하는 엘프가 아니라지만, 조공질이라고? 어떻게 양파도 아니고 까도 까도 계속 나오네."

그녀의 매료는 옅은 상황에선 호의, 호감 정도로 나온다.

하지만 그 정도로 팔란제국이 이유 없이 나를 적대할 만큼 인간이 안일한 존재인가 하면 그건 분명 아니었다.

즉, 세계수 이그드라실은 그녀의 안에 내재된 매료의 힘을 터뜨려 팔란제국을 주물러버릴 생각이었다는 소리였다.

이미 반쯤 돌아버리면 그런 자잘한 정치적인 문제 따윈 신경 쓰지 않을 테니까.

한가지 부작용이라면.......

압도적인 매료에 완전히 넘어가 버린 인간.

즉 고위 귀족이나 황족이라면 매료의 힘을 발산하는 그녀를 그냥 둘 리 없다는 점이다.

자식처럼 아낀다던 엘프를 조공해 바치는 그 작태에 헛웃음이 나왔다.

"확률은 얼마나 될 것 같아?"

내 질문에 나무 뒤에서 페르세르크의 기어들어가는 듯한 목소리가 다시 들려왔다.

-배......백 퍼센트.......

"그래......."

그녀와 나 사이에 기묘한 기류가 감돌기 시작하자 정신이 아찔한 느낌이었다.

그동안 이런 적이 있었던가.

처음 그녀와 대면했을 땐 서로를 경계하고 적의를 지니고 있었다.

그 후엔 서로 의견을 주고받는 사이 정도였다.

어쩌다가 이런 상황까지 오게 된 것인지.

"하지만 이런 시한폭탄을 혼자 보내진 않았을 텐데?"

자신에게 매료라는 힘이 어마어마하게 숨어있다는 사실도 모르는 듯 보이는 본인이다.

그렇다면 그걸 제어하지 못하는 이상 자칫하다간 대형참사 터지는 것도 한순간이다.

인간, 동물을 안 가리는데.

몬스터라고 가릴까.

그녀의 존재는 말 그대로 대형 시한폭탄이었다.

-동행자. 가능성이 커.......

"나와, 나와서 이야기해, 제대로 안 들려."

내 말에도 불구하고 그녀는 모습을 드러내지 않았다.

이에 결국 내가 한 손을 튕기자 그녀를 가리고 있던 나무가 그대로 우지끈 부서지며 넘어가 버렸다.

꽤 무식한 행위라고 지탄받아 이상할 게 없다만.

운기 조식 상태에선 말을 하는 것도 기적에 가깝다.

움직일 수도 없는데 어쩌리요.

-앗! 아.......

당황한 페르세르크의 목소리에 내가 눈을 가늘게 뜨고 그녀를 바라보자 그녀는 마치 죄라도 지은 것처럼 양손으로 얼굴을 가리고는 부서진 나무 밑동에 숨어버렸다.

-나중에......나중에 이야기해 데이비.

"......"

다시 한 번 미묘한 기류가 감돌자 더는 그녀를 재촉하기 힘들다는 생각이 들었다.

"으읏......."

그때였다.

고요히 기절해있던 에밀리아가 뒷목을 부여잡고 신음을 흘리며 천천히 일어나기 시작한 것이다.

"여......여긴......핫?!"

멍한 얼굴로 신음하며 일어난 그녀는 곧 눈앞에 앉아있는 나를 발견했는지 멍한 얼굴로 중얼거렸다.

그리고는 순간적으로 눈을 부릅뜨며 뒷걸음질 쳤다.

휘리리릭!

"으앗?!

다만, 해먹의 특성상 앉은 이가 함부로 무게중심을 옮겼다간.......

"꺄아악!!

"......"

순식간에 김밥 말이 되는 것도 한순간이다.

해먹에 칭칭 감겨 스스로 포박되어버리는 모양새를 보고 있자면 상당히 맹한 성격이라는 것도 분명 알 수 있다.

체형이 작긴 하지만 상식을 거부하는 매료의 힘 앞에 그게 무슨 소용일까.

어지간한 인간을 간단히 초월하는 내게도 영향이 올 정도면 일반인들에겐 거의 재앙에 가까운 효과를 지닐 텐데 말이다.

"륀느."

조용히 륀느를 부르자 근처의 나무가 바스락거리며 은발의 소녀가 가볍게 바닥에 내려섰다.

그리고는 오른팔의 손등에 커다란 광선 검을 뽑아내며 해먹의 한쪽 끝을 깔끔하게 베어버렸다.

"꺄악!!"

비명을 지르며 바닥에 쓰러진 에밀리아가 버둥거리며 그물로 만들어진 해먹에서 빠져나오며 울상을 지어 보였다.

그리고는 제 잘못으로 그 꼴이 났음에도 불구하고 나를 한껏 째려보며 입을 삐쭉였다.

겁이 없네.

행동 하나하나에 지금 목숨의 처우가 달린 인질이.

"경국지색."

다 자라지도 못한 저 몸에 경국지색이라는 말은 정말 이 세상 미녀들에 대한 모독에 가까운 행위지만.

나라를 기울게 할 만한 미모라는 말은 틀릴 수가 없다. 정확히는 미모보다는 그녀의 존재 자체지만 말이다.

그녀가 작정하고 매료의 힘을 뿌려대기 시작하면 이놈의 대륙, 전쟁터에 휩싸이는 것도 한순간일 것이다.

어떻게 하냐고?

두 제국 이상 모이는 곳의 실세들이 있는 곳에 그녀가 나타나 매료를 뿌리는 순간 게임은 끝나는 것이다.

그녀가 무언가를 하지 않아도 저들이 설레발을 칠 것이고.

급기야 경쟁자를 제거하기 위해 난장판을 부릴 터.

저만한 위험요소를 그냥 두라?

-죽이면 안 돼 데이비.......

그때였다.

부서진 나무 밑동 너머로 페르세르크가 조심스레 고개를 내밀었다.

-불안정해. 세계수가 그냥 두었을 리 없어. 분명 그녀의 신변에 큰 문제가 생겼을 시.......

그녀의 말에 나는 문득 고개를 끄덕였다.

그녀는 못해도 전대 신목의 성녀다.

당연 그녀의 머릿속엔 신목의 성지에 관한 수많은 기억과 정보들이 있다는 소리였다.

만약 일이 틀어져서 잘못된다면?

내가 세계수였고, 에밀리아를 버림패로 사용한다고 한다면.......

그녀의 안에 숨어있는 매료의 힘 뒤에 대형 폭탄을 심어놓았을 것이다.

일이 틀어지는 순간.

일대를 포함해 모조리 날아가 버리게 말이다.

엘프의 고고한 자존심을 지키고, 인간에게 큰 손해를 끼칠 수도 있고. 정보 또한 지킬 수 있다.

매료의 빛 때문에 어그로가 제대로 끌려서 제대로 확인 못 했던 부분이지만 페르세르크는 그런 매료의 덫을 알고 파고들었기에 그 뒤의 모습도 알 수 있었다.

"경국지색? 그게 무슨 뜻이죠?"

"나라를 기울게 할 미인이라는 뜻이다."

"갑자기 그 말이 왜......."

"네가 지금 그 상황이라고."

내 말에 그녀의 표정이 찌푸려졌다.

"거북하네요."

"거북해? 양심이 있냐?"

"전에도 그러더니 도대체 왜 그러시는 건데요!"

"소리 지르지 마라. 머리 울리니까."

속도가 줄어드는 운기를 서서히 갈무리하며 천천히 일어난 내가 그녀의 멱살을 틀어잡아 그녀를 나무에 처박았다.

"크윽?!"

"지금 네 몸이 무슨 꼴인지도 모르고 겁도 없이 밖을 나돌아다니고 있지?"

"그건 무슨......."

"세계수가 널 팔란 제국으로 보낼 때 무슨 말을 했나."

추측과 확정은 다르다. 페르세르크의 의견은 거의 십중팔구의 확률로 맞을 테지만, 한번 대비 없이 일을 당해본 만큼 신중해질 수밖에 없었다.

"다......당신......."

"이쯤 되면 여기가 어딘지, 내가 누군지 눈치챌 때도 됐지?"

"설마......"

"그래, 내가 너희들이 죽이려고 이를 부득부득 갈고 있는 데이비 올 라운이다."

내 말에 그녀의 눈이 크게 뜨여졌다.

"넌 지금 네가 무슨 상황인지 전혀 모르는 모양인데. 네가 남자 앞에서 눈물이라도 보이는 순간 그날로 대륙에 전쟁 터지는 건 한순간이라는 소리다."

"그게 무슨......"

"매료. 네 몸 안에 숨어있는 매료가 정도를 넘어서서 계속해서 강해지고 있다고."

자신이 적진 한가운데 잡혀 왔다는 사실을 정확히 인지한 것도 당혹스러운데 자신의 몸 안에 그런 황당한 힘이 있다는 사실까지 들은 탓인지 그녀의 표정이 심상찮게 구겨졌다.

애초에 그녀는 나와 접촉하기 위해 숲을 나온 게 아니었을 테니 말이다.

중간 공작을 펼치기 위해 숲을 빠져나왔는데 느닷없이 습격을 당하고, 정신을 차리니 적의 수장이 눈앞에 있다.

당황하지 않을 리가 있을까.

이윽고 그녀를 놓아준 나는 나무 옹이로 만들어진 테이블 위에 유리아가 만들던 찻잔을 가볍게 세팅했다.

"넌 지금 인질이다. 그리고 난 네게서 세계수 이그드라실의 머릿속에 들어있는 걸 죄다 뽑아낼 생각이고."

진실을 말하지 않아도 된다. 퍼즐을 맞추는 건 내가 할 테니, 넌 그냥 아는 것 모르는 것 모조리 털어놓으면 되는 거야.

그녀가 불쌍하다 여길 수도 있다.

그녀 또한 세계수가 내놓은 버림 말일 테니까.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적에게 자비를 베풀 만큼 세계수가 가벼운 적이 아니라는 것은 내가 가장 잘 알고 있었다.

"제......제가 말할 것 같나요?"

두려움에 시선을 계속 회피하면서도 그녀는 자존심을 굽히지 않았다.

다 좋다. 확실히 나쁘진 않다.

그래, 그래 줘야 이쪽도 의욕이 생기는 법이다.

"우리 그럼 평화롭게 차나 마시면서 대화나 해보자고."

쪼르륵 소리와 함께 준비된 뜨거운 물이 찻잔에 담기자 그윽한 향이 올라오기 시작했다.

"도대체 당신은......"

"아, 그렇다고 너무 좋아하진 마. 노파심에 하는 말이지만, 이 숲의 수장 아가씨는 도전정신이 너무 강해서 말이야......."

내 말을 이해하지 못한 그녀가 의문 어린 표정을 지었다.

"이건, 귀뚜라미 날개를 우려낸 차야."

"뭐라고요? 귀......귀뚜라미?!"

기겁하는 그녀를 향해 나는 한 치의 거짓 없는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여 보였다.

"지금부터 나는 너에게 이걸 먹일 거다. 그래도 대답하지 않으면."

"......"

"다음은 사마귀 눈알을 잔뜩 짜서 만든 액기스를 오랜 시간 숙성시켜서 굳힌 거로 우려낸 차를 먹일 거다."

"미.......미쳤어!"

"그걸로 겁먹게? 참고로 바퀴벌레 알을 소독한 뒤 말려서 우려낸 차도 있는데."

시도하는 놈이 비정상이긴 하다만.

마치 아침에 일어나 아침 식사를 한다는 듯 너무 자연스레 말하자 그녀의 표정이 새파랗게 질리기 시작했다.

"륀느, 잡아."

"......륀느, 데이비님의 인성을 낮게 평가. 이것은 비위에 매우 중대한 오류를 일으킬 가능성이 농후하다고 분석."

미각 데이터 노래를 부르면서 매번 먹을 것을 찾는 륀느도 이건 아니라고 생각하는지 그 특유의 무표정에 거부감이 잔뜩 서려 있다.

다만, 그렇게 말하면서도 녀석은 순식간에 에밀리아의 팔다리를 붙잡아 제압시킨 뒤 그대로 무릎을 꿇렸다.

당연 그 상황에 노출된 에밀리아는 파랗게 질린 얼굴로 온몸을 버둥거린다.

"걱정 마라, 맛이나 향은 기가 막히더라."

"마......말할게요! 그러니까 그만!!"

"말하지 않을 거라고? 뭐, 괜찮아. 시간은 많고 널 구하러 올 엘프는 없으니까."

"꺄아아아아악!!"

다른 이는 몰라도 나는 비위가 좋다 보니 그녀가 만든 차를 대부분 마셔본 경험이 있다.

냉정하게 평가하자면, 생각 이상의 맛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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