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20
만렙 영웅님께서 귀환하신다!
- 9권 19화
전체적으로 전방에 나서서 임무를 수행하는 디셉티콘 편대와는 다르게 이번에 새로 만든 에나벨은 말 그대로 특수 작전용 서포트 부대에 가까운 형태를 지니고 있었다.
전체적인 살상능력에 한해서는 디셉티콘이 높을 수도 있으나.
다방면으로 통하는 여러 가지 상황에선 에나벨의 힘이 더 효율이 좋을 수도 있다는 소리였다.
애초에 제작 목적부터가 다른 녀석이니까.
"오오....... 륀느의 후임, 매우 흡족!"
완성된 에나벨의 모습을 본 륀느가 눈을 반짝였다.
백옥처럼 뽀얀 피부에 청초한 분위기를 주는 분홍빛의 머리카락.
마지막으로 눈을 감은 채 흔들의자에 앉아있는 에나벨의 모습은 그 아름다움에서 비롯되는 음욕보다도 성스러운 느낌이 들게 만들었다.
장인정신이란 이런 것이다! 라는 것을 보여주듯 에나벨의 모습은 상상 이상이었다.
그녀의 외향을 만든 것은 다름 아닌 골고다 장로였다.
당연 섬세함 면에선 페어리종족 다음으로 최고의 종족이라 불리는 드워프답게 그는 세심한 부분 하나하나까지 신경 써서 온 힘을 다해 만들었다.
공방 바닥에 늘어져 잠들어버린 골고다 장로의 앞에 앉아 눈을 감고 있는 에나벨의은 전체적으로 성인 여성의 모습을 하고 있었다.
겉보기엔 정말로 아름다운 여성이다.
하지만 에나벨은 단 한 가지 면에서 인간과 달랐다.
"데이비님, 어째서 륀느의 후임을 엘프로 제작?"
"대엘프 대적용 골렘인데 엘프여야지."
그래야 파고들기 좋으니까.
내 설명에 그제야 이해가 된 듯 륀느가 조용히 고개를 끄덕여 보였다.
겉보기엔 멀쩡한 녀석이었다.
하지만 의외의 부분에서, 나는 벽에 가로막힐 수밖에 없었다.
"좋아, 기동 체크."
우우웅......
옅은 공명음과 함께 녀석의 감겨 있던 눈이 천천히 뜨여진다.
푸른색의 눈동자가 일순간 분홍빛으로 번뜩이는 듯싶더니 녀석은 다시 눈을 감고 품에서 꺼낸 종이에 빠르게 글귀를 적어 보여주었다.
[기동 개시, 이상 없음.]
"말하는 부분은 금방 개편해줄 테니 조금만 참아."
[대화 방법 매우 만족. 이것을 높게 평가.]
어디서 많이 본 말투인데.......
"좋아, 그럼 간단한 회화를 해보자, 네 이름은?"
스륵.
내 질문에 녀석이 품 안에서 꺼낸 수첩에 글귀를 빠르게 적어 보여주었다.
[에나벨]
아무리 뛰어난 기술이 들어가도 결국은 골렘이다.
상식적으로 해명 불가능한 기술력이 접합된 상황에다가 데우스 엑스마키나 (성장하는 기계 심장).
즉 사기적인 부품을 장착하면서 자아가 확립된 륀느와는 다르게 녀석에겐 그런 사기적인 부품 따윈 존재하지 않았다.
최근 몇 달간 어렵게 구상해왔다곤 해도 인공지능의 한계는 나도 어쩔 수가 없었다.
수동적이고, 단편적인 대화만 가능하다는 소리였다.
결국, 이 녀석들도 브레인을 륀느의 연산에 맡기는 수밖에 없으리라.
실제로 디셉티콘 편대도 가장 큰 문제였던 인공지능 부분을 륀느의 연산에 연동시키면서 상당히 호전되었으니 말이다.
"좋아. 네 키는?"
스윽......스윽.
[162cm]
"좋아, 몸무게는?"
[여자의 몸무게는 비밀입니다. 이것을 에나벨이 낮게 평가합니다.]
"륀느."
내가 눈을 흘기며 륀느를 흘기자 녀석이 딴청을 피우며 시선을 돌렸다.
인공지능의 확립에 녀석의 데이터를 조금 받아 쓰긴 했다만. 이런 쓸데없는 것을 넣어뒀을 줄이야.
"뤼......륀느, 후임의 자유로운 행동패턴을 위한 안배라고 변명해."
"......그래, 마음대로 해라. 다음 질문이다. 좋아하는 건?"
내 질문에 나신으로 무표정한 얼굴을 짓고 있던 녀석이 천천히 손을 뻗었다.
그리고는 내 뺨에 손을 올리더니 입꼬리를 아주 살며시 끌어올렸다.
교과서에나 나올법한 너무도 정직한 미소였다.
말없이 내 뺨을 쓸어내리던 녀석이 이내 손을 놀려 종이에 글귀를 적기 시작했다.
그리고는 조용히 내게 그것을 보여주었다.
그녀가 내민 종이엔 많은 글귀가 적혀있었다.
좋아하는 게 이렇게 많았나 싶어서 그 항목을 읽어내리던 나는 문득 보이는 글귀들에 표정을 굳히고 입을 다물어버렸다.
"데이비님?"
내 행동에 의아한 표정을 짓던 륀느는 곧 내가 건네주는 종이를 보고 눈을 살짝 찌푸렸다.
[흔들의자. 술래잡기, 데이비님, 데이비님, 데이비님, 데이비님......데이비님, 데이비님.......]
종이에는 내 예상과는 다른 것들이 적혀있었다.
"륀느, 도대체 인공지능에 무슨 짓을 해놓은 거야."
"뤼......륀느가 하지 않았다고 해명! 이건 륀느가 낮게 평가! 이런 자아확립은 륀느의 예상을 아득히 초월!"
떨리는 동공을 주체하지 못한 채 녀석이 소리쳤다.
거짓은 분명 아닌데.
어째서 이런 대답이 나온 거지 싶은 기분이었다.
말없이 대기하고 있는 에나벨의 모습에 문득 구경하고 있던 페르세르크가 조심스레 다가왔다.
그리고는 떨떠름한 어조로 조심스레 말했다.
-데이비, 그대...... 에나벨을 만들 때 그대의 사령마나를 순환시켜서 만든 흑마정석을 넣어두지 않았던가?
"설마......."
아니겠지 하면서도 나는 설마 그런 건가 싶은 생각이 들었다.
에나벨의 몸 안에 부착한 마정석은 일반적인 디셉티콘 편대의 골렘과 같이 7개 가까이 사용되었다.
그중 두 개가 정령 에너지를 이용해 내부 순환을 시키는 정령석이었고.
녀석의 힘의 근원이나 인공지능을 담당하는 마정석은 사령마법이나 흑마법을 사용할 수 있게끔 흑마정석을 박아넣어 두었다.
문제는 여기서 발생했다.
내가 상상하지 못한.
동화의 경지에 든 마법사가 일깨워내는 각 마나의 성질.
내가 가진 사령마나의 성질은 한결같을 정도로 일관적이다.
그리고, 그 성질머리는 분명 내가 기억하기로도 정상적인 성격과는 거리가 멀다고 봐도 무방했다.
"......이건 좀 의의의 발견이네."
륀느의 연산 보조와 고대기술이 집약된 회로 석판. 그리고 각 힘을 가진 마정석들.
마지막으로 륀느의 인공지능이 일정 영향을 주자 완전히 새로운 무언가가 나타났다.
과학자와 연금술사는 종이 한 장 차이라고 한다.
-본녀가 볼 땐......그대가 넣은 대량의 사령마나의 성질이 마정석에 스며든 것처럼 보이는데.
"흐음......"
일반적으로 자연 마나를 끌어모은 디셉티콘 편대와는 다르게 이 녀석은 특수한 마나를 사용하기 위해 내 마나를 넣어 가동시켰다.
그 미세한 차이가 이런 결과를 낳을 거라곤 나로서도 예상 못 한 범위였다.
"전투 요소까지 미쳐 날뛰진 않겠지?"
출력량의 한계는 5서클에서 6서클 마법정도.
하지만 이 정도의 수준도 어지간해선 재앙에 가까울 테니 가급적 미쳐 날뛰지 말았으면 하는 심정이었다.
"지금부터 네 전투능력을 테스트해볼 거야. 필요한 게 있어?"
녀석의 인공지능을 더욱 활성화하기 위해 굳이 하지 않아도 될 질문을 던졌던 나는 녀석이 해온 요구에 의아한 표정을 지었다.
"이건 왜?"
* * *
하인스 영지에서 멀리 빠져나오면 거대한 대숲이 위치한다.
본래는 엘프의 영역이라고 할 수 있지만 실상 엘프의 숲은 결계의 바깥까지 이어지지 않는 만큼 결계의 바깥에서 조금만 숲으로 들어가도 흉악한 몬스터들이 진을 치고 있다고 봐도 무방했다.
하나하나 처리하기엔 그 수가 많았기 때문이었다.
-키에에에에엑!!!
대숲에 자리한 작은 부락의 소속 고블린인 [구룩구룩]은 손에 쥔 긴 귀를 가진 작은 동물의 사체를 보며 흉측하게 웃음 지었다.
이것으로 자신의 새끼들을 먹일 식량을 구했다. 감히 부족 최고의 전사라 불리는 자신을 이토록 고생시키다니!
이놈의 작은 생물을 잡기 위해 몇 날 며칠을 고생했던가!
당장 부락으로 돌아가면 그를 기다리고 있을 새끼들이 있다.
이 숲으로 오기 전 습격했던 인간 마을에서 잡아온 인간 암컷들을 이용해 낳게 한 구룩구룩의 새끼들이었다.
이 작은 생물의 고기를 뜯어 먹을 새끼들을 생각한 구룩구룩은 더욱 가벼워진 발걸음으로 재빠르게 부락으로 향했다.
그날따라 미묘하게 공기가 차가운 느낌이었다.
구룩구룩의 부락은 고블린의 총수가 100여 마리가 되는 중소규모의 부락이었다.
대규모 부락이 200여 마리에서 300마리 가까이 된다는 점을 생각해보면 구룩구룩의 부락은 정말로 보잘것없었지만 괜찮았다.
위엄이 넘치지만 부락의 고블린들을 지키는 용맹한 족장 고블린과 용맹한 고블린들은 고블린들 사이에서도 지옥이라 여겨지는 이곳에 자리를 잡았고, 몇 주에 가까운 시간을 무탈하게 생존했다.
다른 고블린들이, 특히 대형 부락의 족장들도 두려워하는 이 숲에 자리를 잡고 버틴 자신들이 과연 모자란 존재일까.
그렇지 않다.
가능성이 많은 존재이리라.
비록 작은 부락이지만, 시간이 흐르면 그 수가 많아질 것이고.
고블린들 사이에서도 절대 무시하지 못할 부락이 될 거라 의심하지 않았다.
더욱 많이 사냥하고, 더욱 많이 약탈하리라!
그리고, 이 숲을 지옥으로 만든 인간들을 씹어먹으리라!
그렇게 생각하며 힘차게 발을 놀려 부락으로 돌아간 구룩구룩은 문득 자신의 부락이 있는 동굴이 미묘하게 조용하다는 느낌을 받을 수밖에 없었다.
-키이익? 키에에엑!
구룩구룩은 고블린들 중에서도 자신이 똑똑하다고 여기는 편이었다.
그렇기에 자신은 이 위화감을 눈치챌 수 있다고 생각하기도 했다.
평소와는 다른 그 형태에 의아한 표정을 지은 구룩구룩은 흉측한 황색 안광을 이리저리 돌리며 미묘한 분위기에 속도를 줄였다.
손에 쥐고 있던 긴 귀를 가진 작은 동물의 사체를 더욱 강하게 틀어쥔 뒤 천천히 들어갔을까.
평소에 맡아지는 소변 냄새 사이사이에 코를 찌르는 미묘한 냄새가 섞여 있음을 깨달은 구룩구룩은 엉성하게 엮여있는 나무줄기를 걷어 젖히고는 그 안으로 들어갔다.
그리고는......굳어버렸다.
-키이이이이이이익!!!!
그도 그럴 것이 구룩구룩의 눈앞에 지옥이 펼쳐져 있었기 때문이었다.
분명 자신이 오기만을 기다리며 끼익끼익 울던 자신의 새끼들.
그리고, 다른 용감무쌍한 동료 고블린들!
강력한 족장 고블린까지!
너무 고요했다.
사방을 찌르는 냄새는 자신들의 몸에 상처가 났을 때 흘러내리는 액체의 냄새가 분명했다.
본능적으로 위험을 감지했지만 구룩구룩은 자신의 어린 새끼를 죽인 범인에 대한 적개심으로 눈이 반쯤 뒤집혔다.
자박!! 자박!!
이윽고 미친 듯이 동굴 안쪽으로 뛰어들어간 구룩구룩은 이내 평소보다 동굴이 밝다는 느낌을 받았다.
끼익......끼익.......
그리고, 예리한 구룩구룩의 귓가로 미묘한 나무 삐걱거림 소리가 들려왔다.
그곳에는 용감한 동료 고블린들이 주워온 밝은 빛을 내는 돌멩이들이 사방에 흩뿌려져 있었다.
분명 구멍 난 동불의 벽에 꽂아둔 것들인데 어째서인지 바닥에 널브러져 있었다.
그리고, 그런 빛을 내는 돌멩이들 사이사이로 구룩구룩이 알고 있는 익숙한 동료 고블린들의 시신이 즐비해 있었다.
참혹했다.
이를 부득부득 갈고 그르렁 소리를 내며 한 손에 들고 있던 나무 몽둥이를 험악하게 휘두른 구룩구룩은 이내 시신들 사이에서 자신의 부락을 이 지경으로 만든 악마를 발견할 수 있었다.
나무로 된 기이한 무언가에 앉아있는 것은 분명 인간이었다.
그것도 긴 머리를 가진 인간 여성.
긴 귀를 가졌지만 구룩구룩은 관심 없었다.
저런 피부에 형태를 지닌 건 인간뿐이었으니까!
빌어먹을 인간 여성이 자신의 부락 동료들을 모두 죽인 것이다.
죽이겠다. 죽이고 범하겠다! 그 입에서 비명이 나오도록 해주겠다.
섬뜩한 살기가 흘러나오며 구룩구룩은 부족 최고의 전사라는 호칭을 가진 자신의 투기를 발산했다.
툭.......
하지만 흔들흔들거리는 나무에 앉아있는 여성은 자신을 볼 생각도 하지 않는지 그저 아무것도 없는 벽면을 보며 몸을 흔들흔들거렸다.
그리고,
기다렸다는 듯 구룩구룩의 앞에 피가 묻은 무언가가 떨어졌다.
-끼리리릭...... 키익! 키아아아악!!
격하게 포효하며 종이를 집어 든 구룩구룩은 이내 그 안에 적혀있는 알 수 없는 그림에 인상을 더욱 찌푸렸다.
이게 뭔지는 모르겠지만, 저 빌어먹을 인간 여자는 자신의 부족을 죽였다.
죽이리라!
그렇게 생각한 구룩구룩이 괴성을 지르며 달려들었다.
콰득!!
동시에, 새카만 무언가가 날아들었고 구룩구룩은 자신의 몸이 무언가에 잡혔다는 사실을 깨달을 수 있었다.
다만,
자신의 시야가 이렇게 높았던가.
그런 생각이 든 구룩구룩은 문득 검은색으로 된 거대한 형체를 지닌 무언가를 발견할 수 있었다.
숲에서 가장 무서운 황색의 오우거보다 큰 체격. 하지만 몸이 연기처럼 특이했다.
그리고, 그 괴물의 한 손에는.
익숙한 자신의 몸이 쥐어져 있었고, 자신의 시야는 그 몸에서 한참을 떨어진 채 무언가에 대롱대롱 들려졌다.
고블린부락 최고의 전사라 불리던 구룩구룩의 시야에 천천히 일어나며 미소를 지어 보이는 인간 여성 들어왔다.
천천히 돌아서는 인간 여성의 얼굴은 섬뜩하면서도 기괴하고 구룩구룩이 아는 인간의 표정과는 미묘하게 달랐다.
구룩구룩은 알지 못했다. 죽기 전 날아든 종이에 적힌 글귀가 인간의 문자이며 거기에는.......
[같이......놀자. 술래잡기. 내가 술래.]
라고 적혀있다는 사실을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