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23
만렙 영웅님께서 귀환하신다!
- 9권 22화
거대한 화염 폭발을 일으키는 익스플로전은 그 위력만 따지면 마나석을 고도로 과부하 시켜 수십 미터를 날려버리는 위력과 흡사했다.
그리고 그 상위의 마법인 멀티 익스플로전은 5서클 익스플로전을 단번에 세 차례 이상 발현하는 한 단계 높은 서클의 마법이다.
하지만 초월의 종언이 가진 연산 보조와 대량의 마나. 그리고 동화 이상급의 마법사의 경지는 그것의 한계를 시원하게 부숴버렸다.
십여 발에 걸친 폭발에 당황한 엘프 군세는 제대로 반격조차 하지 못한 채 정신없이 얻어맞았다.
"살리반 황자님. 지금입니다."
한쪽이 뒤집히기 시작한 이상 갑작스런 기습에 당황한 이들에겐 틈이 생긴다.
[알겠습니다.]
와아아아아아아!!
기다렸다는 듯 진격하는 인간측 병사들의 진군이 시작되자 사방에서 함성소리와 금속 병장기가 부딪히는 소리가 들리기 시작했다.
원거리에 더욱 강한 힘을 발휘하는 엘프들인 만큼 갑작스런 폭발에 정신을 못 차리는 틈을 타 밀고 들어오는 병사들은 그야말로 허를 찔린 일격이나 다름없었다.
순식간에 엘프들의 비명이 사방에 속출하기 시작했다.
거의 한차례 유린에 가까운 공격이 시작되자 엘프 군세의 기세가 눈에 띌 정도로 줄어들었다.
게다가 주기적으로 일어나는 멀티 익스플로전은 그 폭발위치가 사전에 드러나지 않기 때문에 엘프들은 눈앞의 병사와 쉴 새 없이 터지는 익스플로전을 모두 신경 쓸 수밖에 없었다.
아무리 많은 수라도, 밀집된 상황에서 이렇게 양측을 얻어맞으면 결과는 뻔하다.
하지만.
엘프들도 마냥 당하지만은 않았다.
선두에 있던 엘프의 사령관인 사조관 유르겐이 뭐라 소리치기가 무섭게 그들이 반격을 개시하기 시작한 것이다.
전방에 서 있던 엘프들이 활을 버리고 레이피어를 뽑아 들었고 후방에서 버티고 있던 엘프들은 쏟아지는 포격을 피해내며 능숙하게 화살을 활시위에 걸어 당겼다.
슈슈슈슈슈슉!!
하늘을 수놓는 수많은 검은 화살이 인간측으로 쏟아진다.
당연 일반적인 화살과 다르게 그 엘프의 궁술은 치명적이었다.
전장에 비명이 난무하고 난전으로 변하는 것도 한순간이었다.
게다가 유르겐은 여기서 멈추지 않고 다음 수를 꺼내놓았다.
어디서 가져왔는지 모를 커다란 목재 구조물을 수레에 실어 전장의 한복판에 배치했다.
투웅!!
그리고.
그 구조물은 자신의 역할을 톡톡히 해내기 시작했다.
엘프들의 신경을 계속해서 분산시키던 포격들이 무형의 장막에 부딪혀 허공에서 폭발하기 시작한 것이다.
당연 폭발의 위험에서 벗어난 엘프들의 반격은 더욱 거세지기 시작했고 순식간에 인간측 병력들이 밀려나기 시작했다.
기본적으로 숫자의 차이도 상당했으니 말이다.
"하, 사기 치고 있네."
세계수, 이그드라실의 힘은 모든 마나에 상성 우위의 힘을 지니고 있다.
이그드라실이 멍청이가 아닌 이상 내가 나서면 저들의 피해가 극심해질 거라는 사실을 알고 있다.
애초에 엘프의 군세는 단순 간 보기였을지 몰라도 자신이 아끼는 엘프들은 굉장히 아끼던 성격을 지니고 있었으니 대비책을 쥐여주지 않았을 리 없었다.
익스플로전 마법이 막히고, 골렘들의 마탄이 튕겨 나간다. 외부에서 날아드는 공격을 차단하는 배리어는 내부의 엘프들을 보호했고, 포격을 지원받아 돌진하던 인간측 병사에겐 팔 한쪽을 잘리고 싸우는 꼴이 되어버렸다.
무엇보다 무슨 힘이 더 섞인 것인지 장막이 펼쳐지며 엘프들의 움직임이 훨씬 더 날렵하고 민첩해져 있다는 건 눈으로 봐도 알 수 있었다.
이에 나는 미련 없이 초월의 종언을 허공에 띄워 놓고는 다시 아공간에 손을 넣어 다른 물건 하나를 또 꺼내 들었다.
십자가 형태를 지닌 거대한 창.
디바인 크로스 형태의 신창 롱기누스였다.
거기에 멈추지 않고 나는 주머니에서 꺼낸 부적 몇 장을 롱기누스의 장대에 달라붙도록 말아 붙였다.
상대가 강력한 은총으로 자신을 보호한다면, 이쪽은 더한 놈으로 그걸 깨부숴주는 수밖에.
[만물을 굽어살피시는 주신 프리아시여.]
당신은 세계수를 지키지 않기로 결정을 내렸습니다.
그렇다면, 한 번 더 기적을 보여주시죠.
빠르고 강하게 양손을 모아 기도하듯 한쪽 무릎을 꿇은 내가 눈을 감았다.
그리고는 빠르게 기도를 올리기 위해 눈을 감았다.
[치직....... 데이비 왕자님! 저들의 공세가 점점 거세지고 있습니다! 빨리 해결해주셔야 합니다!]
거 참 더럽게 보채시네.
수정구를 통해 들려오는 외침을 무시한 채 나는 몸 안의 신성력을 억지로 두들겨 깨워 활성화 시켰다.
[당신의 육신은 존재하지 않으나 반대로 이 세상에 존재하는 것. 당신의 손가락은 세상 모든 곳에 닿을지니.]
진지한 기도는 취향에 맞지 않는다만.
신의 기적에 가까운 마법들은 다루기가 여간 까다로운 게 아니다.
[당신의 검지는 자비를.]
다시 한 번 내 몸을 통해 9위계 급의 성마법이 발현되기 시작했다.
[당신의 중지는 마를 모독하고 멸하오니.]
폭발하듯 터져 나오는 기류를 제어하지 않은 채 무분별하게 퍼뜨린 내가 그것들의 방향을 한곳에 모으기 시작했다.
[기도하옵건대, 알아서 허락해주소서.]
목적지는 엘프들이 친 이그드라실의 가호가 위치한 장막의 바로 위였다.
[가로되, 여신께서 이르시길.]
[엿이나 먹으라 하시었도다.]
-무슨 주문이.......
[9위계 최후 성마법]
[신의 중지 손가락.]
쩌억!!
시동어와 함께.
하늘이 갈라지며 쏟아진 굵직한 빛의 기둥이 이그드라실의 가호로 펼쳐진 배리어를 그대로 부숴버리며 낙하했다.
콰아아아앙!!!!
배리어를 강하게 때려 부숴버리는 것도 모자라 배리어를 만들고 있던 나무 구조물까지 완전히 신열에 불태워버리고 나서야 멎는 빛의 기둥을 보며 나는 아찔해지는 정신을 붙잡고 수정구를 향해 말했다.
"시작하세요."
슈슈슈슈슈슉!!!!
순식간에 배리어가 깨졌고. 기다렸다는 듯 앞뒤가 막혀 오도 가도 못하던 인간측 병사들이 빠르게 후퇴하기 시작했다.
자신들을 지켜주던 배리어가 갑자기 거대한 빛에 박살이 나버린 엘프들은 인간을 뒤쫓는 것도 잊은 채 더욱 심하게 우왕좌왕했다.
그리고, 그렇게 오합지졸마냥 당황한 이들의 말로는 제법 훤하게 보였다.
검은빛의 수많은 발리스타의 화살이 하늘을 수놓기 시작한 것이다.
단순히 발리스타였다면 큰 효과를 보지 못했을 수도 있지만.
괜히 신무기가 드글드글한 팔란 제국이 아니다.
허공에 떠오른 발리스타들은 일제히 어느 정도 시간을 기준으로 허공에서 폭발하여 비산했다.
당연 파편이 된 발리스타의 조각들은 하나같이 치명적인 무기가 되어 빠르게 쏟아져 내렸다.
팔란 제국만이 가지고 있는 신무기로 분명 이름이 [이그나이트]
전쟁이고 전투고 결국은 서로 간의 수 싸움이다.
첫 전투는 이쪽이 한 수 위였고.
저쪽은 그저 수 싸움에서 말린 것뿐이리라.
오도 가도 못한 채 자신들을 보호해주던 힘을 잃어버린 엘프들은 자신감의 원천을 빼앗긴 탓에 사기가 극도로 떨어졌다는 게 보일 정도였다.
골렘 편대장들의 포화가 각기 역할 군에 맞춰 종횡무진 날뛴다.
하늘에서 쏟아지는 이그나이트의 파편은 가차 없이 엘프들을 찢어발겼고 그 뒤를 이어 후퇴했던 인간측 병사들이 긴 장창을 겨누고는 전처마냥 돌진하기 시작했다.
엘프들의 처절한 비명이 울려 퍼지고 뜨겁고 비릿한 피가 사방에 튀기기 시작하는 건 한순간이었다.
좀 전까지 멀쩡한 모습을 하고 있던 엘프들이었지만 지금 바닥을 내려다보면 사지 하나는 정상적이지 않은 참혹한 시체들이 즐비했다.
미의 종족이라고 볼 수 없을 만큼 참혹한 모습들이었다.
-빌어먹을 전쟁.......
"거지 같네."
하지만 멈추진 않았다.
"살리반 황자님. 이대로 저는 서부대륙으로 향하겠습니다. 아마, 엘프들은 재정비를 위해 시간을 끌 테지요. 마음껏 어울려 주십시오. 저들이 다음 공격 준비를 할 때 즈음엔 모두 끝낼 테니."
[거리가 상당할 텐데.......]
"불닭이를 타고 갈 겁니다."
좌표를 모르니 직접 날아가는 수밖에.
[아......그 신묘한 새를 말씀하시는 거군요....... 알겠습니다. 맡겨주시죠.]
전쟁은 잔인할수록 좋다.
그래야 빨리 끝날 테니.
나는 그 단어를 반 정도는 인정하는 편이었다.
* * *
순백의 폭격이 쏟아지며 일대 지면이 일그러지고 부풀려 터져나갔다.
그곳에 휘말린 엘프들은 너 나 할 것 없이 비명조차 지르지 못한 채 사라졌다.
자애를 상징하는 주신 프리아의 힘치고는 너무 파괴적인 힘이었지만.
마치 그것이 본래의 진실이었다는 것처럼 한편으론 신성하게 느껴졌다.
"세상에......"
기가 막힌다는 말이 여기서 나오는 것일까.
전장을 멀리서 지켜보던 살리반과 그를 따르는 귀족들은 기겁한 표정을 지었다.
신의 힘이 강림한 것 같은 새하얀 백광의 섬광이 한 차례 추락하기가 무섭게 세상에 뒤집히는 느낌이 들었다.
마법도 사용할 수 있고, 그 마법이 보통 수준 이상이라는 것도 놀랍지만. 데이비 왕자가 보인 신성 마법은 명백히 궤도가 달랐다.
과거 역사에서 나왔던 성자 성녀들은 하나같이 이렇게 강했던 것일까.
자신만만한 태도에서 그가 가지고 있는 힘이 거짓이 아니라는 건 알았지만, 실제로 본 데이비 왕자는 그의 예상을 아득히 넘어섰다.
게다가 무엇보다 놀라운 것은.
그가 대동한 골렘의 존재였다.
일반적으로 연금술사 학파에서 만드는 아이언 골렘과 머드골렘과는 다른 정교한 형체를 지닌 골렘들은 마치 금속이 살아있는 것처럼 변하는 모습을 보였고. 진짜 생명체처럼 움직이며 모든 것을 파괴했다.
그 화력이 약한가? 그건 아니었다.
어떤 골렘은 수백 수천 미터 밖에서 적의 머리통을 수십 개 이상 날려버렸고 어떤 골렘은 거대한 폭발 마법을 쉴 새 없이 쏘아 보냈다.
어떤 골렘은 거대한 방패로 적을 틀어막아 버렸고 어떤 골렘은 골렘이 맞는지 의심스러울 정도로 기민하게 움직이며 중요한 적을 베어 넘겼다.
그리고, 어떤 골렘은, 쉴 새 없이 회전하는 기이한 막대기에서 쏟아져 나오는 마탄을 거침없이 방출해 적을 벌집으로 만들어버렸다.
'강하다....... 너무 위험할 정도로 강해. 드워프와 손을 잡고 만든 것이 저 골렘인가? 그렇다고 해도 저건 상식적으로 설명이 불가능한 기술력이다!'
가지고 싶다.
그 기술력을 빼앗고 그를 견제하고 싶다!
영락없이 욕심이 앞섰다.
하지만 그는 영리했다.
굳이 데이비 왕자와 척을 졌다간. 언젠가 자신들이 엘프들과 같은 꼴이 날 것이다.
제국의 힘은 강하지만.
반대로 데이비 왕자는 일개 개인이 제국에 버금가는 무언가를 품고 있었다.
무엇보다, 그의 감이 부르짖길 그가 가진 건 이게 전부가 아니라는 생각마저 들게 하였다.
섬뜩한 생각이 들었지만 살리반은 이내 고개를 저었다.
'그와는 가급적 척을 지면 안 되겠군.'
자신뿐만 아니라 모두가 같은 생각을 하고 있는 것인지 굳은 표정들이 여기저기서 보였다.
보고 있는 자신들이 이럴진대. 직접 전장에서 싸우고 있는 이들은 얼마나 황당할지. 더 생각해볼 것도 없다고 여기는 살리반이었다.
* * *
운명이란 확률을 필요로 하지 않는다.
에이션트 가드 엘프 재니스는 고요하고, 평화로운 영지와 붙어있는 대숲을 바라보며 차갑게 침묵했다.
[너희들은 경로를 우회하여 그곳으로 가거라. 너희들이 얼마나 빠르게 임무를 완수하는가에 따라 동족들의 목숨이 걸려있음이니. 달의 숲으로 가서 유리아를 꼭 데려오 거라. 상처 없이 데려와야 한다, 반드시.]
자신들이 따르는 신목의 어머니께서는 자신들 엘프의 군대가 팔란 제국을 넘어 이곳까지 오지 못할 거라 말했다.
실제로 인간이 엘프에 대해 잘 모르듯, 엘프 또한 인간에 대해 그리 많이 알지 못하니 말이다.
게다가 적측엔 그 인간이 존재했다.
5명의 에이션트 가드와 신목의 어머니까지 단신으로 죽여 없앤 악마와 같은 인간이 말이다.
개인적인 힘은 모르겠으나 하필 그 인간은 일국의 왕자.
게다가 생각보다 인맥이 넓은지 많은 곳에서 그 인간을 도울 거라는 판단이었다.
상식적으로 설명이 불가능한 괴물이지만 그 인간이 정령왕의 계약자라는 점을 생각하면 완전히 불가능하진 않다고 여기는 재니스였다.
"재니스, 결계다."
담담하게 의견을 피력해오는 동료의 말에 재니스는 조용히 고개를 끄덕여 보였다.
"잘 들어, 이곳은 적진이야. 어디에 뭐가 있을지 모르는 곳이고."
익숙하디익숙한 숲이지만, 이곳만큼은 신목의 엘프인 그들로서도 괴리감이 들 수밖에 없었다.
서로의 시선을 마주하는 이들은 하나같이 에이션트 가드 이상급의 엘프들이었다.
그들은 다른 에이션트 가드들처럼 전쟁에 참가하지 않았다.
몇몇은 신목을 방어하기 위해 남았고, 몇몇은 재니스를 필두로 이곳으로 우회하여 도달했다.
적의 본거지.
하인스 영지로 말이다.
"현재 우리가 탈환해야 할 신관, 유리아 헬리샤나는 이곳, 달의 숲에서 체류 중이야. 실상 이곳의 병력은 그리 대단할 수준이 못돼. 어렵지 않게 돌파할 수 있는 수준이다."
재니스의 말에 모두가 고개를 끄덕여 보였다.
꼴에 새로이 결계를 치고 유리아 헬리샤나를 보호하려 한 모양이다만.
에이션트 가드. 그중에서도 이곳에 모인 인원들이라면 결계가 얼마나 단단하건 상관없이 부술 수 있다 자부하는 재니스였다.
"콥스. 활을 줘."
재니스는 눈앞을 가로막는 결계를 보며 곁에 있는 엘프를 향해 손을 뻗었다.
동시에 미리 준비된 듯한 아름다운 보석이 박힌 나무로 된 활이 쥐어졌다.
세계수의 가지에 정령석을 박아넣은 활이었다.
다름 아닌 신목의 성지에서 몇 없는 보물이기도 했다.
이만한 활이라면 부수지 못할 것은 없다.
빠르게 활시위를 매긴 재니스의 곁으로 바람의 상급 정령이 서서히 모여들기 시작하자 그녀의 전신에 옅은 바람이 일어나기 시작했다.
결계는 특별할 것 없어 보였다.
"결계가 뚫리는 순간 진입해. 신호는 내가 한다."
재니스의 말에 다른 에이션트 가드급 엘프들이 각자 무기를 뽑아 들고 돌입할 준비를 했다.
[정령화살]
눈을 감은 채 힘을 집중하던 재니스가 이내 활시위를 강하게 당겼다.
장력으로 인해 활대에서 거친 소리가 흘러나왔지만, 그와 동시에 활을 포함한 재니스의 전신에 바람의 기운이 흉폭하게 감돌았다.
상급 정령의 힘이 담긴 화살과, 세계수의 가지로 만든 활이 공명하며 강대한 힘을 만들어내자 멀지 않은 곳에서 기척들이 느껴지기 시작했다.
저들도 눈치를 챈 것이다.
하지만.
'이미 늦었어, 결계는 부서진다.'
이깟 결계가 강해 봤자지.
그렇게 생각하는 재니스의 생각이 뒤집히는 데엔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그들은 몰랐다.
이 결계가 만들어지는데 들어간 8서클 이상급 수준의 마법이 몇 개가 뒤섞였고, 겨우 손바닥만큼 만들어낸 결계를 어떤 방식을 이용해서 숲 전체를 뒤덮게끔 키워냈는지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