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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렙 영웅님께서 귀환하신다!-224화 (223/1,559)

# 224

만렙 영웅님께서 귀환하신다!

- 9권 23화

79. 세계수가 있는 곳

자신을 믿으며 활시위를 당기던 재니스는 모든 힘을 쥐어짜 내 화살에 담아 그대로 활시위를 놓았다.

투쾅!!!!

동시에 화살이 날아간 것이라고 보기 힘들 정도의 묵직한 소리와 함께 섬광이 결계를 때렸다.

단번에 부서지리라.

이 정도 공격이라면 수백의 엘프들이 힘을 모아 만든 신목의 결계도 몇 차례면 박살 날 것이다.

그만큼 지금의 활은 귀한 물건이었다.

그런데 그런 공격을 한낮 인간 개인이 단신으로 쳐둔 결계가 버텨봐야 어디까지 버티겠는가.

찌직 소리를 내며 흔들리는 결계를 말없이 지켜보며 엘프들이 더욱 몸을 숙여 당장에라도 튀어나갈 듯한 자세를 잡았다.

그때였다.

팅!!

결계를 강하게 압박하던 화살이.......

그대로 맥없이 힘을 잃고 무너져 내려버렸다.

버텨낸 것도 아닌. 마치 흡수가 된 것처럼 말이다.

스스슥.......

완전히 사라져 버린 공격에 재니스를 포함한 에이션트 가드급 엘프들은 할 말을 잃어버렸다.

방금 공격이 이렇게 허무하게 사라질 공격이었던가.

절대 아니었다.

단발성 공격이라 해도 방금 전의 한발은 저런 일개 개인이 친 결계는 가볍게 뚫어버릴 힘을 지니고 있었다.

그런데 튕겨 나왔다.

"이게 무슨......."

황당함에 정신을 못 차린 재니스가 뭐라 말하려던 찰나였다.

"재니스!! 피해!!"

급작스런 외침과 함께 재니스는 자신의 몸을 밀치는 힘을 느낄 수 있었고, 균형을 잡지 못한 채 그대로 바닥으로 쓰러졌다.

투쾅!!

그리고, 바닥에 쓰러진 재니스는 곧 볼 수 있었다.

자신을 밀친 에이션트 가드인 사마라의 상체가 사라져버린 것을 말이다.

명백히 자신이 쏜 화살의 위력이 그대로 되돌아온 꼴이었다.

"사......사마라......."

상체가 사라져버린 엘프이기에 대답이 들려올 순 없었다.

이런 상황에 도대체 무슨 말을 해야 할까.

멍하니 굳어있던 재니스는 이내 엉금엉금 기어 사마라의 시신이 있는 곳으로 향했다.

시신은 아직 뜨거웠다.

마치 살아있는 것처럼 말이다.

하지만 상체가 사라진 엘프가 살아있을 순 없는 법이다.

멍한 얼굴로 주저앉은 재니스는 곧 눈을 부릅뜨고 소리 질렀다.

"이게......이게 도대체 어떻게 된 거야!!"

"젠장! 함정이야! 재니스! 일단 후퇴하자!"

다른 에이션트 가드의 외침에 재니스는 한참을 멍하니 앉아 허망한 표정을 지었다.

자신이 쏘아 보낸 공격이 결계에서 튕겨 나와 제 친우를 죽였으니 그 충격은 배가 되었다.

그리고. 그런 혼란은 재니스 뿐만이 아니라 다른 모든 이들에게도 해당했다.

그그그그극!!

재앙은 거기서 끝이 아니었다.

마치, 기다렸다는 듯 숲의 형태가 변하기 시작한 것이다.

진동은 사실적이었고, 그 바람도 거짓이 없었다.

마치 숲이 진짜 살아있는 것처럼 말이다.

순식간에 변하기 시작한 숲은 더 이상 숲이 아닌 끝없이 솟아오른 미로처럼 변해버렸다.

완전히 변해버린 미로의 모습에 허망한 표정을 지은 재니스는 곧 자신들의 동료와 모조리 떨어졌다는 사실을 깨닫고 허망한 표정을 지었다.

"괴물이잖아. 이거......."

이런 말도 안 되는 결계를 개인이 쳤다고? 상식적으로 설명이 가능하단 말인가.

재니스는 그런 의문에 단호하게 고개를 저을 자신이 있었다.

불가능하다고 말이다.

하지만 현실은 일어났다.

멍한 얼굴로 천천히 일어나 벽에 손을 짚어보자 까끌까끌한 감촉이 그대로 전해져 왔다.

"환상은 아니야. 숲 전체에 영향을 주는 결계라니....... 이런 결계는 듣도 보도 못했어. 게다가 유지가 불가능할 텐데......."

도대체 무슨 수로 결계를 유지하는 것인가.

의문이 꼬리에 꼬리를 물었지만, 그녀는 더는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어두운 미로 속에서 순간적으로 전신을 굳게 만들 정도로 섬뜩한 살기가 감돈 것이다.

반사적으로 고개를 돌려 보았지만 보이는 것은 끝없이 펼쳐진 미로뿐이었다.

푸욱!!

하지만.

재니스는 아무것도 없는 허공 속에서 무언가가 자신의 심장을 꿰뚫었음을 느낄 수 있었다.

아릿한 고통에 고개를 내린 그녀는 자신의 몸에 꽂힌 대거를 볼 수 있었다.

암살자들이 주로 쓰는 검이었다.

그리고 천천히 떨리는 시선을 들어 올린 재니스는 차가운 표정으로 자신을 올려다보며 검을 뽑아내는 어두운 톤의 피부를 가진 엘프를 볼 수 있었다.

미묘하게 어디서 본 듯한 엘프였다.

분명 다크 엘프는 처음 보는데, 저 얼굴을 어디서 보았을까.

하늘빛에서 변색된 듯 보이는 남색의 머리카락을 두 갈래 아래로 늘어뜨린 쿨한 인상의 여성은 담담한 시선으로 자신을 올려다보다 조용히 읊조렸다.

"당신이 본 미로는 단순한 환상이에요. 그것도 오감까지 일부 재현하는. 그레이트 일루젼. 애석하게도 이 영지의 영주님은 상식적으로 생각할 수 없는 인간이라......."

싸늘한 말투.

낭랑한 그 말투와 음색에 재니스는 죽기 직전 깨달을 수 있었다.

"아이나......어째서 여기에......."

"언니가 동생을 지키는 게 잘못되었나요?"

심드렁하게 돌아서는 그녀를 보며 재니스는 쓴웃음을 지었다. 어릴 적 같이 궁술과 정령술을 배울 때 매번 재니스가 놀려먹던 소녀가 있었다.

가지고 있는 재능과는 별개로 워낙에 허술했던 터라 곧잘 놀리곤 했었는데.

언제부터 숲에서 사라진 그녀는 신목에 거역하고 타락한 죄인의 굴레를 덮어 썼다고 들었다.

그런데 이곳에 있었구나.

"여기......있었구나....... 그동안 찾아 헤맸었어......."

"고통은 없을 거예요. 신목의 성자와 세계수만 아니었다면 이렇게 서로를 죽일 일도 없었을 텐데, 잘 가세요. 재니스."

흐려진 시야 너머로 재니스는 미묘하게 씁쓸해 보이는 아이나의 시선을 직시하다 의식을 놓았다.

* * *

"별로 좋은 기분은 아니네요."

수정구를 통해 돌아온 보고에서 아이나가 처음 내뱉은 단어였다.

"암살자는 울지도 못하나?"

"놀리지 마세요. 받아줄 기분이 아닙니다."

담담하게 말하는 아이나의 표정은 참혹했다.

"신목의 엘프라고 해서 모두가 꽉 막힌 이들만 있는 건 아니에요. 그들 중에서도 좋은 이들은 많았으니까요."

담담한 아이나의 말이었다.

"보고는 여기까지 하겠습니다. 유리아를 탈환하기 위해 숨어들었던 에이션트 가드들은 모두 죽었습니다. 데이비님이 설치해둔 결계의 환영에 잡아먹혀 어렵지 않게 죽일 수 있었으니까요."

아이나의 말에 나는 조용히 고개를 끄덕였다.

"고생했다."

"부탁......하나 해도 될까요."

아이나의 보기 드문 약한 소리에 내가 고개를 까딱였다.

"세계수....... 그 빌어먹을 의지와 신목의 성자를 반드시 죽여주세요. 그깟 나무가 뭐기에, 이렇게 고통스러워야 하는지 나는 모르겠으니까요."

그 말과 함께 한 손으로 얼굴을 가리고는 연락을 끊어버린 아이나였다.

결과적으로 뒤통수를 치기 위해 병력을 보낼 거란 판단 하에 아이나를 남겨둔 건 옳은 선택이었다.

"불닭아."

그동안 숲을 돌아다니며 먹고 싶은 것은 다 먹고 다녔는지 불닭이의 깃털에는 윤기가 반질반질했다.

신수는 모두 성장한 채로 태어난다.

그렇기에 성장기라고 해도 전체적인 크기가 커지진 않지만, 녀석의 상태에 따라 깃털의 윤기가 좋아질 순 있었다.

"가자. 이제 네 차례다. 가서, 네가 원하는 대로 분노를 터뜨려도 좋아. 그땐 말리지 않으마."

-끼이이이이익!!

내 말에 마치 간식을 받은 고양이처럼 기뻐하며 녀석이 거대한 화염을 전신에 둘렀다.

척 보기에도 열기가 어마어마해 보였지만 녀석의 곁에 있는 나와 륀느에겐 어떤 열기도 전해지지 않았다.

"가자."

"륀느, 따라붙어."

한차례 큰 피해를 받은 엘프들이 재정비를 끝내기 전에 세계수를 찾아 끝장내야 했다.

불닭이의 등에 올라타기가 무섭게 륀느가 등허리에 달린 날개를 파닥이며 날아와 내 앞에 쏙 파고들어 앉았다.

그런 녀석이 떨어지지 않게 끌어당긴 나는 말없이 타오르는 녀석의 깃털을 쓰다듬고는 입을 열었다.

"가자."

자신이 하고 싶은 것을 원 없이 하게 해준다는 말에 뛸 듯이 기뻐한 불닭이는 자신의 존재감을 드러내듯 여지없이 날아올랐다.

* * *

신수의 비행속도는 실로 상상을 초월한다.

애초에 반 정도는 물리법칙에서 벗어나 있는 존재가 신수다.

태어나는 것부터가 인간의 염원으로 태어나는 신수답게 녀석의 비행속도는 즉 녀석의 현 상태나 힘의 보유현황에 따라 눈에 띄게 달라지니 말이다.

순식간에 변하기 시작하는 주변 경치를 무시한 채 날아가길 며칠.

그동안 불닭이는 낮에는 쉴 새 없이 날았고, 밤에는 다음날을 위해 체력을 비축하고 원 없이 맛있는 것을 먹었다.

그동안 받은 연락에 따르면 한차례 너무 큰 타격을 받은 탓인지 엘프들이 함부로 공격하지 못한 채 무언가를 준비하고 있다는 보고가 전부였다.

아직 저들에겐 내가 전장을 떠나 신목의 숲으로 향하고 있다는 사실을 모르니 말이다.

신목의 성지가 있는 숲은 서부 대륙의 북부에 위치하고 있다.

근처에 있는 국가는 콘타스 제국으로 본래 아무런 연통 없이 이렇게 타국의 왕자가 제국의 영공을 들어오는 건 무례에 해당하지만.

애초에 적에게 길을 열어준 콘타스 제국에 내가 좋은 감정이 있을 리는 없었다.

저들이 정치적인 이유로 엘프에게 호의를 보낸 건 내 알 바가 아닌 문제이니 말이다.

누구의 눈에도 띄지 않은 채 높은 고도를 타고 날기를 약 사흘.

나는 지금까지와는 비교도 할 수 없을 만큼 거대한 나무들이 즐비한 숲에 도달할 수 있었다.

"여기서 내려가자. 이 이상 접근했다간 신목에게 들킬 거다."

내 말에 신나게 날만큼 날아온 불닭이는 만족스러운 듯 부드럽게 나를 땅에 내려주었다.

"우욱......륀느, 방향 감각에 매우 큰 오류를 발견, 이것을 극심한 멀미라고 명시......."

"로봇이 멀미까지 하네."

"륀느....... 감정회로가 매우 빠르게 가열 중. 이것을 데이비님을 향한 맹렬한 분노라고 명시."

이를 부득부득 가는 녀석을 무시한 채 화염을 꺼뜨리고 날개를 접은 불닭이의 목덜미를 톡톡 두드린 내가 부적을 꺼내 들었다.

"들어가서 쉬어. 힘을 비축하고 있어. 그 후에 내가 부르면 그때 원 없이 날뛰어도 좋아."

-끼이이이이이이!!

내 말에 불닭이가 이내 거대한 포효를 흘리고는 부적에 제 부리를 콕하고 짚었다.

스스슥!!

동시에 녀석의 전신이 화염으로 변하며 부적 속으로 사라졌다.

-이대로 들어가려고? 지금까지 시선을 속이고 도착했으면서 여기서 들키면 무슨 소용인 게야.

유리아와 아이나를 통해 대략적인 위치를 들었지만 정확한 위치는 직접 확인해봐야 알 일이었다.

수색이 얼마나 걸릴지 알 수 없는 이 상황에 나 여기 있소 하며 드러내고 다닐까.

신목의 숲은 세계수의 영역.

그 안에선 누가 무엇을 하는지, 어디에 누가 있는지.

그 어떤 것도 이그드라실의 눈을 피할 수 없는 게 현실이었다.

문제는 모든 힘에 상성우위인 이그드라실의 특징상 신성마법, 마나, 사령마나, 정령에너지.

그 어떤 것도 위장용으로 쓸 수 없었다.

단 하나만을 제외하고 말이다.

"간만에 해볼까."

별로 선호하는 방식은 아니지만 애초에 이딴 방식으로 주술을 만든 스승이 잘못한 일이다.

미련 없이 머리카락 대여섯 개를 뽑아 든 내가 검은 머리카락을 손바닥에 올린 뒤 손바닥이 하늘로 향하게 펼쳤다.

그리고는 나머지 한 손의 검지와 중지 사이에 주홍빛으로 변색된 부적을 끼워 넣은 뒤 천천히 움직였다.

물결처럼 부드럽게 팔이 움직이기 시작하자 손바닥 위에 올려진 머리카락이 일제히 공명하기 시작했고 일정 거리를 움직인 내가 미련 없이 부적을 허공에 던지며 머리카락을 훅하고 불었다.

펑!!

동시에 무언가가 터지는 소리가 들리며 내 앞에 몇몇의 개체가 모습을 드러냈다.

"륀느, 재앙을 목도. 이것을 낮게 평가."

-뭐......뭐하는 게야!!

륀느는 더 볼 것도 없다는 듯 조막만 한 작은 양손으로 제 양 눈을 가려버렸고 페르세르크는 비명을 지르며 눈을 감고 내 뒤에 숨어버렸다.

그도 그럴 것이.

내가 머리카락을 흩뿌려서 소환한 건 다름 아닌 나와 똑같이 생긴 분신이었기 때문이었다.

문제는.

주술을 진행하는 과정에서 뭐가 잘못되었는지 분신들이 하나같이 나신으로 자신의 존재감을 또렷이 드러내고 있다는 점이었다.

안 그래도 전생보다 훨씬 체격이 컸던 터라 그것도 사이즈 업이 되어버려서 스스로도 깜짝깜짝 놀라는 수준이건만.

복잡한 표정을 지은 채 분신들을 보던 나는 문득 못된 짓을 하고 있는 은발의 꼬맹이의 머리를 푹 하고 눌러버렸다.

"륀느, 손가락 붙여라."

"쯧......륀느가 눈치 빠른 데이님을 낮게 평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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