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27
만렙 영웅님께서 귀환하신다!
- 10권 1화
운명 타령하는 신목의 예지는 오랜 시간 존재해온 세상을 떠받치는 거목이 가진 고유의 힘인 만큼 아마 정확할 것이다.
아무리 꼬이는 듯싶어도 결과가 한 방향으로 귀결되는 것이 큰 흐름이니까.
실제로 변수가 생긴다면 그 흐름이라는 놈은 어떻게 해서든 그 본래의 흐름대로 움직이게끔 세상을 조율하려 든다.
하지만.
다른 이는 몰라도 내게 만큼은 그것이 온전히 통할 수가 없다.
흐름 거부.
내가 가진 저주는 세상이 가지고 있는 일련의 방향으로 향하는 신의 의지가 만들어낸 그 흐름에서 벗어나 있다.
뜨드드득!!
이윽고 꽃이 서서히 개화하며 그 꽃봉오리의 중앙 수술에서 빛의 가루가 사방에 흩어지기 시작했다.
동시에 사방에 흩뿌려진 가루가 거대한 빛이 되어 하늘을 수놓는 오로라로 변하기 시작했다.
기상 징후를 깡그리 무시하는 형태에 놀랄 법도 하지만.
애초에 세계수가 보통 존재는 아니기에 놀랄 것도 없었다.
영역선포.
상위 초월의 존재가 내뿜는 힘으로, 분명 그 대단하다고들 하는 드래곤들도 엄두도 못 내는, 하나의 시스템과도 같은 힘이다.
무슨 말이냐고?
이 일대가 그녀의 완전한 영역이 되었다는 소리였다.
이 영역 안에서 그녀의 힘이 닿지 않는 곳은 존재하지 않으리라.
물론, 그에 따른 대가도 만만찮겠지만. 작정하고 나를 없애려고 한 이상 그 정도는 신경 쓰지 않겠다는 의사와도 같았다.
뜨득......뜨드드득!!
이윽고, 세계수 본체에서 파생되어나온 그녀의 모습이 서서히 변하기 시작했다.
로브 자락이 서서히 흩어지며 나무껍질 같은 것이 그녀의 팔이나 몸 일부를 갑옷처럼 감싸기 시작한 것이다.
동시에 바닥에서 튀어나온 줄기가 스스로 형태를 바꾸며 수 미터에 달하는 검처럼 변하기 시작했다.
[이곳에서, 여는 그대를 멸할지니. 그것은 운명이고, 변하지 않는 진실이로다.]
"륀느. 준비해."
내 말에 륀느가 양손에 빛으로 된 검인 라이트 세이버를 뽑아내고는 언제든지 덤벼들 준비를 마쳤다.
뜨드드득!!
완전히 변한 그녀는 인간의 형체에 나무껍질로 된 갑옷을 일부 입고 있는 형태를 취하고 있었다.
저주로 인한 여파는 그녀가 변하면서 사라졌는지 보이지 않았다.
"저주가 생각보다는 오래갈 줄 알았는데."
이렇게까지 막장으로 나올 줄이야 알았나.
콰앙!!
그런 생각이 닿기가 무섭게 연녹빛의 빛이 허공을 가르며 날아들었다.
섬뜩한 기분이 들 정도로 날카롭고, 강대한 힘이었다.
[8위계 신성마법]
우우우웅!!
[여가 말하노니, 이곳에서 신의 힘에서 파생되어나온 그 힘을 금하노라.]
콰창!!
전신의 강화를 위해 신성마법을 도핑하기가 무섭게 그녀의 말이 떨어진다.
그러자 내 몸에 감돌던 신성력이 일제히 힘을 잃고 그대로 침묵했다.
신성마법의 완전한 침묵.
실제로 겪어본 힘의 동결은 내 예상을 아득히 넘어서는 제압력을 지니고 있었다.
"기가 막히네."
터엉!!
세계수 이그드라실의 권능에 대해선 여러 번 들어본 바 있지만, 실제로 겪어본 힘은 솔직히 말해서 너무 할 정도로 이기적이었다.
순식간에 튕겨 나간 내 신형이 몇 차례 구르며 뒤쪽에 솟아있는 나무에 처박히자 이그드라실은 이제 더는 거리낄 것이 없다는 듯 그녀의 몸보다 두 배는 길어 보이는 목검을 내게 겨누고는 파고 들어왔다.
뭉툭한 목검이 분명한데.
찔렸다간 정말로 끝장날 것 같은 섬뜩한 기분이 들었다.
터엉!!
반사적으로 튕긴 홍단이가 사령마나를 잔뜩 머금은 채 그녀의 목검을 쳐내자 단단하던 목검의 일부가 그대로 잘려나갔다.
곧 죽어도 권능을 가진 홍단이의 예리함은 세계수라 해도 예사롭게 볼 힘은 아니었으니 말이다.
"노아스!"
그녀가 다음 권능을 발현하기 전에 쇼부를 쳐야 한다면.
그리하리라.
목검의 방향을 뒤틀어 쳐낸 뒤 그대로 발을 뻗어 이그드라실의 복부를 걷어차 날린 나는 정령력을 남김없이 끌어내고는 소리쳤다.
"저 미친 나무의 권능을 막아."
쿠구구구구궁!!
[정말 겁이 없는 계약자로구나!]
한낱 인간이.
세계수를.
그것도 세상을 떠받친다고 알려질 정도로 중요한 힘을 품고 있는 이 티오니스 대륙의 세계수를 상대로 단신으로 싸움을 벌이다니.
제정신이 아니라며 소리치면서도 노아스는 제 몸을 구성하는 힘까지 흩어 지면에 스며들었다.
그그극!!
그리고는 지면을 일으켜 순식간에 이그드라실의 팔을 낚아채 포박했다.
제힘을 온전히 드러낸 세계수라 하지만 역시 정령왕의 힘을 완전히 무시할 수는 없었던 모양이었다.
말없이 팔을 움직여 포박을 뜯어내어 보지만 노아스는 집요하게 그녀를 낚아챘다.
그리고, 그 틈을 타 홍단이와 청단이를 교차시킨 나는 그대로 몸을 웅크렸다.
그리고는 미련 없이 몸을 띄웠고, 그 틈을 이용하듯 륀느가 날아들어 내 발에 제 발을 끼워 맞춘 뒤 호흡을 맞춰 몸을 웅크렸다.
무공의 검법이나 보법은 그 구성 자체가 상당히 시와 같은 구석이 있다.
웅크린 화살이 품은 한은 하늘을 수놓으니.
[마황보 궁신탄영]
[일시광천]
투쾅!!
공기가 일그러지는 잔상이 생길 듯 강렬한 충격파가 일어났다.
웅크린 신체가 륀느가 가한 반탄력과 서로 맞물리며 어마어마한 속도를 가해주자 나는 미련 없이 허공에 손을 뻗어 홍단이를 당겨온 뒤 그대로 그녀의 목검을 향해 찔러넣었다.
그녀의 힘의 일부가 담긴 목검을 그냥 방치할 순 없으니 말이다.
하지만.
이그드라실이 괜히 세계수가 아니라는 것을 입증하기라도 하듯, 순간적으로 번뜩인 무언가가 모든 것을 망쳐놓았다.
"읍."
갑작스런 연녹빛의 줄기들이 순식간에 홍단이를 감싸고는 내 몸을 낚아챈 것이다.
홍단이의 예기에 잘려나가지 않는 것은 아마 저것이 물리적인 힘이 아닌 이형의 힘으로 만들어졌기 때문이리라.
츠츠츳!!
몸이 봉인되기가 무섭게 그녀가 커다란 목검을 한 차례 크게 휘둘렀다.
푸욱!!
동시에 연녹빛의 섬광들이 일제히 내 몸에 꽂힌 뒤 사라졌다.
[여의 이름으로 명하노니, 이곳에서 그림자의 마나를 금한다.]
사령마나의 유동 금지.
일순간에 또 하나의 힘을 봉인 당해버렸다.
원소 마나와 신성력, 그리고 오러블레이드를 일으켜주며 내 육체 능력을 펌프해주던 사령마나의 봉인.
정령에너지의 경우 그녀의 권능 일부를 노아스가 필사적으로 끌어안고 막고 있으니 결과적으로 네 가지 힘을 봉인 당한 꼴이었다.
[네 가지를 잃었구나. 어찌하여 그토록 많은 힘을 보유하였는지는 여로써도 알 수 없으나. 이곳에 발을 들이민 것은 그대의 죽음을 예언하는 일이로다.]
"웃기고 자빠졌네."
마무리를 지으려는 듯 거대한 목검을 빠르게 회전시키며 당긴 그녀가 뭉툭한 검 끝을 내 심장에 겨누었다.
내가 그녀에게 보여준 힘은 모조리 봉인 당한 꼴이었다.
확실히 몸이 봉해진 상황에서 육체 능력의 저하와 이형의 힘을 모조리 봉인 당했으니 결과는 뻔했다.
[여기서 죽거라. 죽어서 세상을 떠받치는 거름이 되거라.]
우웅!!
갈색빛의 목검이 스스로 빛을 내기 시작한다. 이후 피부가 저릿저릿할 정도의 힘을 끌어모은 이그드라실이 그대로 목검을 찔러 들어왔다.
-데이비!!
놀란 페르세르크의 외침이 들려 오기가 무섭게 나는 몸이 묶인 채로 눈을 감았다.
그리고는 손에 쥐고 있던 홍단이의 내면에 있던 마나를 끌어냈다.
이그드라실에겐 마나를 모조리 사용했다고 말했다.
그렇기에 이그드라실은 가장 위협적인 원소마나를 봉하지 않았다.
홍단이가 가진 원소마나가 마치 내 의지에 따르듯 끌려들어 오며 손끝이 저릿하게 모여들기 시작했다.
[이 무슨?!]
콱!!
순식간에 전신에 화염을 피워올려 나를 묶고 있던 줄기들을 불태워버린 후 그녀의 목검을 홍단이로 빗겨낸 뒤 그녀의 머리통을 낚아챘다.
그리고는 필요에 사용할 마나를 제외한 나머지 마나는 모조리 육체능력에 도핑하여 그대로 그녀의 머리통을 지면에 처박아버렸다.
콰앙!!!!
어마어마한 충격음과 함께 일면 수십 미터에 달하는 크레이터가 생겨났지만 내 손에 잡힌 채 지면에 처박힌 그녀는 그 순간에도 저항했다.
수 미터는 가볍게 상회하는 단단한 육질을 지닌 거대 갑각형 몬스터들도 한 번에 내장을 으깨버릴 충격으로 내리찍었을 텐데.
고작 나무껍질을 일부분 뒤집어썼다고 해서 그 내구성이 올라간 것을 보면 기가 막힐 따름이었다.
퍼엉!!
결국, 저항하던 이그드라실의 발이 내 복부를 걷어차 날렸고 나는 튕겨 나가면서 그대로 신창 롱기누스를 뽑아 들었다.
빛으로 휘감아진 롱기누스가 이내 반월 형태의 언월도로 변하기가 무섭게 나는 공중을 튕기듯 남은 마나를 모조리 끌어내 쏟아부어 버렸다.
[팔라디아식 행성분열창]
[맨틀 깎기]
콰드드득!!
빌어먹을 정도로 크고 아름다운 창이 순간적으로 수 미터의 지면을 뒤엎었다.
콰드득!!
그리고 연쇄적으로 충격파를 발산하며 수십 미터 내부를 완전히 황폐화시켜버렸다.
"후우...... 나름대로 숨기긴 했는데, 효과가 있을는지 모르겠네."
쌔애앵!! 콰앙!!
그러면 그렇지 라는 생각이 절로 들었다.
확실히 강한 공격인 것은 사실이다.
실제로 이그드라실의 몸을 보호하듯 감싸진 나무껍질들 중 일부가 형체를 잃고 볼품없이 부서져 내렸으니 말이다.
하지만, 그것만으론 제대로 된 타격이라고 하기에도 뭣했다.
실제로 그녀의 권능이 시간을 들여 발현될 때마다 이쪽은 하나씩 틀어막히고 있으니 말이다.
[여의 이름으로 명하노니, 이곳에 근간의 흐름을 금한다.]
결국, 원소마나 또한 완전히 봉인 당했다.
신성력과 사령마나, 그리고 원소마나가 통째로 봉인 당한 상태에선 사실상 내 공격은 거의 모두 봉인 당했다고 봐도 무방했다.
무슨 힘이건 이 세 가지 힘에서 파생되니 말이다.
갑작스레 찾아온 탈력감에 몸이 비틀거렸지만 솔직한 심정으로 이 몸을 가눌 힘도 남지 않았다.
콱!!
순식간에 파고들어 녹빛 안광을 번뜩인 이그드라실이 내 목을 틀어잡아 찍어눌렀다.
그 행동에 륀느가 빠르게 달려와 그녀를 향해 빠루를 휘둘렀지만.
[떨어지거라, 부정한 것!]
콰앙!!
가볍게 손을 휘젓는 것으로 륀느를 쳐낸 이그드라실의 힘은 륀느의 몸 안에 있던 마나도 모조리 앗아가 버렸기에 전혀 타격을 받지 않았다.
[어떠하느냐, 자랑하던 모든 힘이 소용없음을 깨달은 결과는.]
"거지 같지."
단순한 감상평에 그녀가 싸늘하게 웃어 보였다.
[운명이란 그런 것이니라, 여가 본 어떠한 운명의 미래에서도 그대가 여에게 이기는 미래 따윈 존재하지 않았음이니. 네가 다른 방법을 사용한들 여를 이길 듯싶었더냐. 어림도 없음이니.]
담담하게 말한 그녀가 한 손을 펼쳐 들었다.
동시에 그녀의 손목에 연녹빛의 빛이 머금어지기 시작했다.
[여의 힘에는 미치지 못하였으나, 그대는 뛰어난 존재였다. 추악한 인간이 아닌 엘프였다면 좋았을진저.]
"그렇게 잘난 힘이 있으면서 마왕이 겁이 나서 인간을 건드렸나?"
[그대는 심연의 마왕이 가진 힘을 모르는 게로고.]
그녀의 말에 내가 고개를 돌려 페르세르크를 보자 그녀가 안절부절못하는 표정으로 나와 이그드라실을 번갈아 보았다.
[그 어떤 존재도 마왕의 눈을 피할 수 없으며, 그 어떤 존재도 마왕의 앞에서 뻣뻣하게 고개를 들 수 없음이니.]
"웃기고 자빠졌네. 마왕은 부활하지 않을 거다."
[정해진 미래는 한낱 먼지의 바램에 좌지우지될 만큼 가볍지 않음이야.]
츠츠츠츳!!!
빛이 더욱 강렬해진다.
그 모습을 보고 있던 나는 천천히 시선을 들어 하늘을 올려다보았다가 다시 시선을 내리깔았다.
분명 저 연녹빛의 광채가 내 심장에 닿는다면 지금의 나라도 죽는다.
여분의 잔불이 있긴 하지만 이런 곳에서 쓰라고 놔둔 보험이 아니었다.
[결국 여의 권능 대부분을 쓰고 말았구나. 허나 후회는 없음이니.]
"그래, 고생했다."
[......]
내 의도를 알아보려 눈을 찌푸리는 그녀를 무시한 채 내가 한 손을 펼쳐 들었다.
스스스슥!!
동시에 스산한 바람과 함께 거대한 화염이 내 손에 머금어지기 시작했다.
이럴 거 같아서 불닭이를 준비해놨는데.
"후우...... 륀느, 시작하자."
내 말에 죽은 듯 침묵하던 륀느가 쓰러진 채로 고개만 빼꼼 들더니 푸른 눈동자를 낭랑하게 빛냈다.
동시에 녀석의 입에서 기묘한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최후 벌목 프로젝트 가동, 어벤져 편대장 에나벨, 작전개시."
이 땅은 세계수의 힘이 깊게 서려 있다.
그렇다면 끌어내려서라도 내 기준에 맞추는 수밖에.
세계수의 힘을 보조해주는 것은 그녀의 의지의 근원이 되는 근원석, 혹은 근원목.
그리고.
세계수가 고른 성자나 성녀의 존재.
근원이 되는 근원석은 아직 찾아내지 못했고, 설사 찾아낸다 해도 내가 아닌 이상 어림도 없는 힘을 지니고 있다만.
겁도 없이 엘프들 틈 사이에 숨어있던 성자 놈은 이야기가 달라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