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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렙 영웅님께서 귀환하신다!-230화 (229/1,559)

# 230

만렙 영웅님께서 귀환하신다!

- 10권 4화

81. 은퇴 거부. 신목의 예언과, 보옥.

순식간에 제압당했다는 사실에 몇몇 엘프는 발버둥 쳤고.

몇몇은 좌절한 표정을 지었다.

싸움도 하기 전에 제압을 당해버렸으니 의욕이 생길 리가 없다.

이윽고 말없이 엘프들을 노려보던 노아스가 다시 힘을 끌어올리려던 찰나.

나는 녀석에게 흘러들어 가던 힘을 잠시 중단시켰다.

"기다려봐."

[계약자여?]

"넌 어떻게 돼먹은 게 엘프들 다 죽이라는데 그렇게 망설임도 없냐?"

내 질문에 노아스의 흙으로 이루어진 얼굴이 찌푸려졌다.

[이놈을 쳐 죽일 수도 없고.......]

목숨을 건졌다는 사실에 안도한 것일까.

가장 선두에 있던 장로복을 입은 엘프가 격분하며 소리쳤다.

"저......정령왕이시여!! 어찌 저희를 막아서시는 겁니까!! 자연의 섭리를 관장하시는 분께서는 저 극악무도한 인간을 도우시려는 것입니까?!"

대노한 엘프 장로 하나가 피를 토하는 표정으로 외쳤다.

[섭리를 거부하고 위반한 것은 세계수다. 무기를 거두어라, 그렇지 않으면 나는 너희들을 죽일 수밖에 없다.]

"그런 일은 있을 수 없습니다! 세계수께서 섭리를 거부하고 위반하셨다니요!"

위반했지.

신목을 벗어나면 안 된다는 규칙도 사실 위반이나 다름없다. 거대한 힘을 지닌 세계수는 본래 태생의 특성상 다른 장소로 화신체를 보내는 것 또한 불가능하니까.

조금 불쌍한 입장이긴 하지만, 평생을 자신의 본체에서 벗어날 수 없는 것이 세계수다.

물론, 노아스가 자연적인 형태로 나타난 게 아닌 내가 소환함으로써 나타난 계약 정령인 만큼 곱게 보이진 않았던 모양이다.

"물러설 수 없습니다! 우리 엘프는 절대 저 극악무도한 작자에게 고개를 숙이지 않을 것이오!!"

"두 번 자비를 바라지 마. 세계수와의 싸움이기에 너희는 그냥 뒀으니."

"웃기지 마라. 인간! 아무리 네놈이 강하다 해도 이곳에 있는 수많은 숲의 주민들을 이길성 싶으냐?!"

전투 요원도 아닌 주제에 끽해야 남은 에이션트 가드도 극소수였다.

본인들도 그 사실을 모르진 않을 것이다.

조금만 더 해라. 더 더 상황을 악화시켜라!

말없이 침묵을 유지하자 엘프와 정령왕의 싸움이 터지기 일보 직전까지 향했다.

그리고, 그런 상황은.

우웅......우우우웅!!

이 상황을 처음부터 보고 있던 한 엘프의 결심을 불러일으켰다.

품 안에서 꺼낸 육각형의 마석을 빛의 구체를 쥐지 않은 남은 손으로 쥔 뒤 목소리가 모두에게 들리게끔 높이 들어 올렸다.

[그만하세요!! 제발......제발 그만하세요!]

필사적인 외침에 좌중은 침묵했다.

"에......에밀리아님?"

"삼조관께서......살아계셨던 건가?!"

나는 모두가 들릴 수 있게끔 수정구의 음향을 최대로 키우고는 물었다.

"뭘 그만해. 저 작자들이 공격하려는 거 안 보이냐? 애초에 수틀리면 멸절까지 계산하고 싸운 전쟁 아니었나?"

내 질문에 수정구가 침묵했다.

"맞네! 에밀리아! 하늘 아래 저 극악무도한 작자와는 절대 함께할 수 없는 노릇일세!!"

분명 에밀리아는 직책을 떠나 저들에겐 선조와 같은 존재일 텐데.

생각해보면 에밀리아에게 존대하는 이는 그리 많이 보지 않았다.

[저희의 패배를 인정하겠어요! 더는 죽이지 말아주세요......제발.......]

울음 기가 섞인 그 말투에 나는 침묵으로 일관했고 엘프들의 표정이 기괴하게 뒤틀렸다.

"항복이라니......절대 있을 수 없소! 삼조관 에밀리아! 당신은 지금 개개인의 목숨이 아까워 엘프의 전통과 자존심을 짓밟으려는......!"

[당신이!! 당신이...... 무슨 권한으로 우리 수십만 동족을 죽이려 드는 건가요?! 아직 상황파악이 안 되세요?! 지금 그렇게 무작정 덤벼서 어쩌겠다는 건가요?!]

"......"

처절한 그녀의 외침이 들려오자 모두가 침묵했다.

[살아있는 이는 살아야 하잖아요......대화로 해결할 수 있잖아요......왜 검과 창을 들고 서로 죽여야 하는 거죠?! 틀리 장로님! 제발.......]

그녀의 외침에 몇몇 엘프들의 표정이 참혹하게 일그러졌다.

"어림없는 소리! 저자는 우리의 영역을 침범했고! 수많은 동족을 학살했으며! 종래엔 신목의 어머니까지 살해했소! 그런 상황에 평화?! 대화?! 하! 웃기지도 않지!"

그에 동조하듯 다른 엘프들도 크게 외쳤다.

"눈이 있다면 주변을 보시오! 지금 저 인간이 이 성지에 들어와서 무슨 일을 벌였는지! 나무는 불타오르고 꽃은 메말랐소! 정령수들은 모두 도망쳐버렸고! 우리들의 근간인 세계수님의 모습은 어떠한가! 예전의 그 초록을 찾을 수 있소?!"

하나둘 동조하며 소리치려던 찰나.

나는 에밀리아와 연결된 통신 수정 마석이 아닌 다른 손에 쥐고 있던 빛의 구체가 스스로 진동하며 떠오르는 것을 볼 수 있었다.

우웅......파아앙!!

그리고, 그 힘과 동시에 어마어마한 빛이 일대를 완전히 휘감았다.

신목의 성지는 세계수의 영향을 받는다.

세계수가 건강하고 튼튼한 모습으로 있다면 언제든 예전의 아름다운 모습을 되찾을 수 있다는 소리였다.

현재는 이그드라실의 혼의 소멸로 인해 숲이 죽어가기 시작했지만.

결과적으로 새로이 세계수가 태어난다면 이야기는 달라질 터다.

거대한 빛이 사방을 휘감으며 보랏빛의 은은한 빛이 사방에 퍼져나갔다.

동시에 눈을 감고 있던 엘프들은 다시금 뜬 시야로 비치는 놀라운 광경에 모두가 침묵했다.

죽어가던 숲이 다시금 빛을 되찾기 시작한 것이다.

메마른 꽃은 다시 빛을 머금고 활짝 피었고, 새카맣게 타오른 나무들은 새살이 생긴 것처럼 탈바꿈했다.

가장 극심한 피해를 입은 것처럼 여기저기 상처가 가득했던 세계수의 한쪽 표면은 마치 주인이 바뀌며 인테리어라도 한 것처럼 본래의 모습을 되찾고 본래의 힘을 내뿜기 시작했다.

숲의 정화는 정말 한순간이었다.

그리고, 그 빛의 향연 속에서 거대한 힘이 응축되며 모두의 시선을 잡아끌었다.

[이 의미 없는 싸움을 멈추거라.]

목소리는 익숙하지만. 전혀 다른 느낌이었다.

숲의 주민들인 엘프들은 본능적으로 그 목소리의 주인공이 누구인지 알아챈 듯 보였다.

"아......아아......세계수시여......"

광채가 일대를 뒤덮고 마치 춤을 추듯 노니는 광채들이 모여들며 한 여성의 형체를 만들어 냈다.

거목 그 자체이며, 그 영혼이라 부를 수 있는 다음 세대의 이그드라실이었다.

전신에 풍기는 싱그러운 기운이나 그 눈빛에 담긴 분위기는 비슷했다.

하지만, 말투나 전체적인 온화함은 전과는 확실히 다르게 진실적이었으며, 생김새도 미묘하게 달랐다.

이번 대의 세계수는 환한 빛의 금발을 가지고 있었기 때문이다.

'저 정도면 일리나보다 더 밝은색인데.'

기존의 초월적인 생명체이니 나올 수 있는 색이라는 느낌이 들었다.

[이 이상의 싸움은 내가 허락하지 않겠으니.]

담담하게 말하며 천천히 엘프와 나의 사이에 다가온 그녀는 곧 내게 시선을 돌렸다.

미묘한 기시감이 든다. 아무리 세계수가 위대한 혼이라고 해도 태어나자마자 저런 분위기를 가질 수 있는가.

절대 안 된다는 것에 손모가지와 내 전 재산을 건다.

-확실하지도 않으면서 승부를 봐?

'쫄리면 죽으시던가.'

-오냐, 어디 한번 해보자꾸나.

"신생 세계수가 아니구나."

[그래, 네가 이번 일의 원흉이로구나.]

"단어 선정이 틀려먹은 것 같은데."

[그래, 그렇구나.]

담담하게 말하며 반짝거리는 눈매를 번뜩인 그녀는 마치 자신의 존재를 실감하듯 크게 숨을 들이켰다.

그리고는 눈을 가늘게 뜨며 옅게 중얼거렸다.

[흐음......연결이 끊어지지 않았구나......아직 그 아이가 살아있었던 겐가?]

담담하게 중얼거린 그녀가 손을 휘저었다.

동시에, 그녀의 곁으로 모여든 초록빛의 광채들이 이내 여성의 형태를 만들어 내기 시작했고 아직은 어려 보이는 엘프의 형상을 만들어 냈다.

갑작스런 변화에 당황한 듯 눈을 동그랗게 뜨고 주변을 둘러보던 그녀는 이내 그녀의 앞에 있는 여성을 보고는 눈을 더욱 크게 떴다.

"시.신목의 어머니, 설마......."

눈물범벅이 된 소녀는 다름 아닌 에밀리아였다.

눈물을 트리거로 발동되는 그녀의 지독한 매료는 내가 한차례 봉인해두었기에 큰 사단이 벌어지진 않았지만, 만약 손대지 않았다면 그녀의 모습은 대형 사고를 유발해도 이상하지 않을 정도로 측은하고 보호 본능을 자극했다.

아무리 워프 마법 있어도 이렇게 장거리를 단번에 이동하는 건 쉽지 않을 텐데.

그런 생각을 하고 있는 내 눈치를 깨달은 것일까.

이번 대의 이그드라실이 쿡쿡 웃어 보였다.

[생각보다 마음이 잘 드러나는 녀석이로구나, 그래, 에밀리아를 이렇게 먼 곳까지 단번에 불러올 수 있는 건 이 세상에 단 한 명뿐이지.]

신목의 성자나 성녀는 엘프이되 엘프를 초월해 세계수와 교감하는 존재라 할 수 있다.

그런 만큼.

기본 외향이나 삶은 엘프와 같아도 그 구성이 다르다.

그런 전대 신목의 성녀와 연결된 세계수의 혼이라면.

단 하나뿐이다.

"세계수의 혼은 재활용도 됩니까?"

문득 그런 생각이 들었다.

상식적으로는 그럴 리 없다고 생각하는데.

애초에 상식이 안 통하는 내가 있는 마당에 무슨 일이 벌어져도 무슨 상관일까 싶은 느낌이었다.

[어디, 초월체의 혼이 그리 쉽게 태어나겠느냐. 다만, 이런 경우는 그리 흔한 경우는 아닌 게지.]

어떤 미친놈이 세상을 떠받치는 중요한 초월체를 죽이겠는가.

목적도 불순하기 그지없는 데다 사실상 그럴 능력이 되는 이는 거의 없다고 봐도 무방했다.

그러니까.

'단순히 직장 상사급인 주신 프리아 여신에게 은퇴 거부를 당하고 다시 끌려 나왔다는 소리 같은데.'

-그런 게......가능해?

'확실히 초월급 영혼은 마구잡이로 찍어내는 게 불가능하니까. 실제로 회랑의 영웅들도 윤회의 고리에 오르진 않았잖아.'

-흐음.......

'됐고, 내가 이겼네?'

-빌어먹을 뭘 원하는 게야.

'나중에 부탁할게.'

내가 괴롭히는 것에 상당히 취향이 있어서, 기왕이면 아주 수치스러운 거로 준비해드리지요, 마왕님.

내 미소에 페르세르크는 파랗게 질린 얼굴로 륀느의 뒤에 숨어버렸다.

-악독한 놈.......

정작 륀느는 자신의 뒤에 누가 숨었는지도 모르는 듯했지만 말이다.

어찌 되었건, 내 손에 죽은 이그드라실의 전대가 영면에 들고 혼이 소멸하지 않았다는 소리인데.

이렇게 될 줄 알고?

이쯤 되면 주신 프리아 여신의 큰 그림에 의심이 들 지경이었다.

쿡쿡 웃어 보인 그녀는 곧 양팔을 벌린 채 에밀리아를 향해 빙그레 웃어 보였다.

[어서 오려무나. 어미의 품에 안겨보렴.]

자애로운 미소와 함께 그녀가 양팔을 벌리자 에밀리아가 울먹거리는 얼굴로 주저앉은 채 어렵게 중얼거렸다.

"정말......정말 신목의 어머니세요?"

[그렇구나, 내가 너를 남겨두고 먼저 떠나 어찌나 마음이 쓰였는데, 이리되는구나. 어찌 이리 수척해졌을꼬, 그간 고생이 많았구나.]

자애로운 어머니가 아이를 품듯, 에밀리아를 꼭 안아 주는 모습은 확실히 다른 느낌이 있었다.

"그......그러니까......어머니......저는......그러니까......흑......"

결국, 울음을 터뜨리는 에밀리아의 등을 토닥여주던 세계수는 엉엉 우는 그녀를 품 안에 더욱 당긴 뒤 내게 말했다.

[그래, 염치가 있다면 이번 일을 비단 네 탓으로 돌릴 순 없겠지.]

"세......세계수시여......그게 무슨......"

[모두 무기를 거두거라. 정령왕께서도, 분노를 거두어 주시게.]

그녀의 말에 노아스의 시선이 내게 닿았다. 이에 고개를 까딱여주자 그는 거대한 전신을 무너뜨리며 엘프들을 포박하고 있던 흙들을 모두 흩어버렸다.

[따라오겠느냐? 나의 공간에 초대하마. 이 일의 처우에 관해서도 네가 내게 하고 싶은 말이 많을 것이 아니더냐.]

"본인이 한 게 아닌데도?"

[숲의 아이를 지키는 건 내 책임인 게지. 어찌하겠느냐, 칼자루를 쥔 것은 네 쪽이거늘. 그보다, 내 중히 그대에게 전해 줄 물건이 있다.]

물건? 이제 갓 다시 태어난 세계수가 내게 전해줄 것이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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