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32
만렙 영웅님께서 귀환하신다!
- 10권 6화
82. 활의 명국 '현'과 창의 국가 '명'
신속하게 돌입한 전쟁은 오래가지 않아 종전을 선고했다.
침략군으로 진군하던 엘프들과 그들의 수장 유르겐은 당연 반발했다.
하지만, 새로운 세계수의 의지를, 또 그 세계수의 대리인으로 다시 활동을 시작한 에밀리아의 명을 거역할 명분도, 자격도 되지 않았다.
쉽게 말해서.
위에서 까라니 까는 것일 뿐.
애초에 원한과 집착보다는 전대 세계수의 명령으로 시작된 싸움인 만큼 새로이 돌아온 세계수의 명령을 어길 순 없었다.
단순히 새로 태어난 세계수라면 반발을 할 수도 있었겠지만.
애석하게도 현재 이그드라실인 '알'은 무려 2대 전의 세계수의 혼이 소멸하지 않고 다시 안착한 특이한 경우였다.
다만, 한가지.
에나벨의 공격을 받았던 전대 신목의 성자에 대한 소재 문제가 있었다.
에나벨이 놈을 감당하지 못하는 건 아니었지만. 최후의 순간에 놈의 몸이 기이한 무언가에 휘말려 빨려 들어갔다는 보고를 받았다.
결과적으로는 놓쳐버린 꼴이지만 결과적으로 그가 다른 엘프들을 두고 도망가버린 이상 그에게 남은 권한은 없다고 봐도 무방했다.
결과적으로 소수라면 소수, 다수라면 다수의 희생을 치르고 나서야 하인스 영지와 신목의 성지와의 전쟁은 끝을 맺었다.
당연 여기저기서 잡음이 들려오는 건 사실이었다.
단번에 쳐들어가 내가 그들의 전권을 장악해버린 꼴이니 말이다.
가장 크게 반발한 것은 나를 견제하는 콘타스 제국과.
그리고 실질적으로 신목의 성지가 있는 숲과 마주한 영역에 위치한 '명' 국이었다.
다만, 콘타스 제국은 팔란 제국과 린디스 제국을 우려한 나머지 소극적으로 밀고 나왔지만.
나머지 한 국가는 달랐다.
스스로를 신의 아들이라 칭하는 '태왕제'가 집권하고 있는 대국인 '명' 국은 작정하고 자신들의 땅을 빼앗긴 것처럼 거품을 물고 땅의 외교권을 자신들에게 반환하라 악을 썼다.
그러니까.
남이 요리를 다 해놨더니 멀찍이서 구경하다가 이제 와서 내놓으라?
'명' 국이라면 기마병과 창병으로 유명하고 넓은 땅덩어리를 지닌 대국 중 하나이다.
강대국의 깽판도 이 정도면 어처구니가 없을 지경이다.
"그러고 보니...... 서부 대륙에 그 녀석이 가 있었던가?"
내 중얼거림에 앞에 앉아 마법을 연습하고 있던 윈리가 눈을 동그랗게 떴다.
"'현' 국이요?"
"그래."
[천자께서 명하시니, 즉각 신목의 성지에 가한 압박을 철회하고 외교권을 반환하시오.]
명령조에 가까운 '명'의 서신을 더 볼 것도 없다는 듯 찢어버렸다.
이 새끼들은 겁이 너무 없어.
"그러네요....... 타냐 언니가 서부 대륙으로 시집을 갔죠. '현' 국은 지금 오라버니와 실랑이를 벌이고 있는 '명' 국의 바로 아래에 위치한 소국이구요."
성년도 되지 못한 나이에 시집을 간 공주라.
라운 왕국의 1왕자가 나라면.
사실상 라운 왕국의 1왕녀는 윈리가 아니라 윈리와 바리스의 바로 손위 누이인 타냐 올 라운이 있다.
녹빛의 단발이 청초한 느낌을 주는 단아한 녀석이었다.
윈리가 왈가닥에 밝은 성미라면 녀석은 우아하면서 착한 성품을 지니고 있었었다.
뭐라 해도 타냐든 윈리와 바리스 세 사람 모두 아니샤 후궁의 소생이었으니 말이다.
현재 왕실에 남은 왕족은 총 넷.
1왕자인 나와 4왕자인 바리스. 그리고 2왕녀인 윈리와.
반란을 주도하여 죽임을 당한 리네스 바리에타의 막내딸인 에오니샤가 남아있다. 본래라면 녀석도 반란 혐의로 같이 형장의 이슬이 되는 게 법도이긴 하지만.
나는 그 녀석만큼은 건들지 않았다.
애초에 녀석과 나의 나이 차는 6살.
이제 11살밖에 되지 않은 그 작은 아이가 무슨 잘못이 있겠는가.
실제로 녀석은 눈치가 빠른 건지, 아니면 흥미가 없는 건지 나와의 접점은 거의 없는 편이었다.
국정에도 잘 나서지 않았고 말이다.
좋게 말하면 처신이 좋고. 나쁘게 말하면 겁이 많다.
"그동안 잘 지내고 있었을까요. 그곳은 워낙에 멀기도 하고 패쇄적인 곳이라 그저 살아있다는 연통을 받는 게 전부였는데."
"타냐와 정략혼으로 묶인 게 누구라고?"
"'현'의 군왕이에요. 언니와 아직 혼례를 올리진 않았지만, 언니가 혼례를 치른다면 분명 14번째 부인이 될 거라는 말을 들은 적이 있어요. 나이 차가 제법 많이 난다고 들었는데."
절륜한 도둑놈 새끼.
정략혼이 당연한 세상이라지만, 인상이 살짝 찌푸려졌다.
* * *
'현' 국은 라운 왕국과 거리도 멀지만 미묘한 교류가 존재하는 국가였다.
지금 나와 불화를 겪고 있는 '명' 국의 바로 아래에 위치한 '현' 국은 특히나 그런 문제가 복잡한 국가이기도 했다.
"'현' 국......말씀이십니까? 갑자기 그곳은 왜......"
"아는 게 있나?"
담담한 내 답변에 베르닐 시종장이 쓰게 한숨을 내쉬었다.
상황을 모르는 에이미는 고개를 갸우뚱거릴 뿐이었지만 오랜 시간 왕실에서 근무해온 베르닐 시종장은 과거의 일도 하나하나 다 기억하고 있으니 말이다.
"그렇군요. 분명 '현' 국이라면 타냐 왕녀 저하께서 정략혼을 위해 떠나셨던 곳이로군요."
"따로 소식이 온 적은 없었던 것 같은데."
"맞습니다. '현' 국은 특히나 출가외인이라는 사상이 강한 국가인 데다 부모국이라 말하는 명국의 영향을 많이 받은 탓에 타 국가와는 상당히 교류가 적은 편이지요."
안 그래도 타 대륙과 교류가 적은 서부 국가들 사이에서도 유별날 정도로 패쇄적인 국가다.
"과거 '현' 국은 수많은 작은 부족국가들로 이루어져 있었습니다. 현재의 '현' 국은 그런 국가들이 모두 합쳐져서 만들어진 연합국가이지요."
그러니까.
각 세력이 합쳐지면서 그 결합력을 유지하기 위해서.......
"닥치는 대로 결혼 동맹을 추진했구만."
"네, 그렇습니다."
"지가 무슨 왕건이야?"
"예?"
내 투덜거림에 그가 의아한 표정을 지어 보였다. 확실히 지구의 인간을 그가 알 리는 없다.
"별거 아니야. 그럼 타냐는 왜지? 라운 왕국과 사실 큰 접점이 있는 국가도 아닌데."
내 질문에 그가 조용히 고개를 끄덕여 보였다.
"이 문제는......폐하께 직접 들으시는 게 어떠하신지요."
"시험하려 들지 마, 베르닐 시종장."
"아무리 그래도 아바마마이십니다. 지금 폐하께선......저하가 한마디라도 걸어주시길 고대하고 계실지도 모릅니다. 아무리 국왕이라 해도 폐하께서도 사람입니다. 아비란 그런 존재이니까요."
"......"
그의 말에 나는 대화를 하면서도 멈추지 않고 그려나가던 설계도를 덮어버렸다.
확실히 이번 일이 작은 일도 아니니 보고는 필수적이긴 했다.
그동안 차일피일 미뤘다만.
그런다고 해결될 간단한 문제는 분명 아니었다.
왕자라면, 적어도 최소한의 의무는 다해야 할 테니까.
"골고다 장로에게 보내. 가능한지 물어보고. 메인 동력에 관해선 이그드라실 열매로 촉매를 만들어줄 거니까 신경 쓰지 말라고 전해주고."
하인스 영지 삶의 질 끌어올리기 프로젝트는 끝나지 않았다.
드워프들과 대량의 자본을 때려 박았다.
수질관리 시설에서 달의 숲 엘프들 중 물의 정령사들이 나서준 덕분에 사실상 영지에는 깨끗한 물이 집마다 보급되기 시작했다.
이게 무엇을 의미하냐고?
기본적인 삶의 질이 올라간다는 소리다.
거기에 멈추지 않고 나는 의학도라는 명목을 내세워 그들에게 세뇌하듯 교육을 시켰다.
위생이 목숨줄을 붙여줄 거다.
사람은 깨끗해야 한다.
당연 한 번 씻을 때마다 대량의 물을 길어와야 했던 과거와 다르게 지금은 하인스 영지에 너나 할 것 없이 물을 끌어다 쓸 수 있으니 실상 어렵지 않은 요구였다.
처음엔 휘청거리던 변화였지만 시간이 흐르면서 그 효율과 뽕 맛을 기억한 영지민들은 이제 자발적으로 자신들의 위생을 관리하기 시작했다.
당연 이 같은 기술력에 감탄한 황색바위 부족은 이 기술력을 직접 황색바위 마을에도 도입해보고자 했고. 나의 도움을 받아 무리 없이 부족 내에도 이 같은 수로 시설을 설치해버린 전적이 있다.
"물이 됐으면 이제 동력이지."
밤길이 어두운 영지는 사절이다.
때마침 하인스 영지의 구조상 영지의 중앙 바로 위쪽에 거대한 호수가 존재한다.
그리고, 이렇게 발전하는 영지의 기술은 온전히 나의 것이 될 것이며.
이것은 곧.
돈줄이 될 것이다.
남이 예쁘고 멋진 걸 가지고 있으면 나도 하고 싶은 게 인간의 심리거든.
"이게......무엇입니까?"
"수력 발전기. 마나로 불을 밝히는 건 상당히 효율이 떨어져. 얼마나 걸릴 거 같아?"
"글쎄요....... 기입된 내용만 보면 상당한 시간이 걸릴 듯합니다. 물을 고아 움직이지 못하게 만드는 것부터 구조물을 세우는 데까지 시간이 오래 걸릴 테니까요.
"한 달 안에 완공되게 해보자고. 다만, 이 일에 관해선 함구하라고 해. 투자자를 얻는 것도 아니고, 괜히 소문 퍼져서 좋을 것 없으니."
현대 기술은 대단하다. 중장비를 쓰고 뛰어난 소재와 기술력이 동원되니까.
하지만. 이곳에는 그런 것이 존재하지 않는다.
그렇다면 정말 불가능한가.
나는 아니라고 대답할 자신이 있었다. 현대 지구에서 없는 게 이곳에 존재한다.
바로.
마법과 정령마법, 그리고. 지구와는 다른 의미로 발전했던 세계의 기술력이.
마지막으로.
대량의 힘을 끌어낼 수 있는 정령 노예 1호가 존재하지 않는가.
* * *
"전해 올려."
담담한 내 발언에 기사들이 침을 꼴깍 삼켰다.
달칵......
동시에 마침 알현을 마치고 나왔는지 몇몇 귀족들이 나를 발견하고 눈을 부릅떴다.
"데......데이비 왕자님!"
"오랜만입니다. 들."
"그......그렇습니다. 그......그간 강녕하셨습니까?"
"덕분에 잘 지내고 있습니다."
"그, 그거 다행이로군요."
잔뜩 긴장한 얼굴로 답하는 그들을 보며 나는 그들을 지나치다 멈췄다.
"참, 오리온 백작."
"예......예! 말씀하십시오. 저하."
"듣자 하니 식품 사업을 하고 계신다고요."
"예......그......그렇습니다만......"
"사실 나도 백작이 추진하는 사업의 식품을 자주 이용하는 편입니다. 제법 맛이 좋던데요."
말끝을 흐린 내가 빙그레 웃자 그가 눈을 부릅뜨며 허허 웃어 보였다.
"그......그렇군요! 왕자 저하께서 그리 마음에 들어 하실 줄 몰랐습니다! 말씀만 하신다면 고정적으로 일부 양을 제공......"
"아니, 그럴 필요는 없습니다. 상품을 돈도 내지 않고 받을 만큼 염치가 없진 않아요."
"아하하! 그렇군요! 역시 왕자님이십니다! 이 나라의 청렴한 왕족의 표본이십니다!"
마음에도 없는 소리.
내 말에 그가 눈동자를 데굴데굴 굴렸다.
반대로 나와 접점을 만들 수 있는 기회라 여겼는지 머리를 굴리는 소리가 여기까지 들려왔다.
"저......왕자저하, 괜찮으시다면 조만간 조찬에 한번 왕자님을 모셔도......"
"그런데 말입니다. 백작. 가끔씩. 판매가격에 비해 내용물이 너무 부실한 경우가 많더군요."
"예, 예? 그것은......."
"아 물론, 백작이 이유 없이 그랬을 리는 없겠지요. 안 그렇습니까?"
"아. 하하......그......그렇지요."
"다만, 모르는 사람이 보면 먹을 것으로 장난친 것처럼 보이지 뭡니까. 안 그래도 하인스 영지에도 백작이 추진하고 있는 기호식품들을 대량으로 받아오고 있는 실정인데."
부드럽게 웃자 그가 침을 꿀꺽 삼켰다.
먹을 거로 장난치다 걸리면 뒤진다?
내 경고를 알아먹었으면 알아서 잘 처신하길 바란다는 시선을 보내자 그가 크게 헛기침을 하며 허허 웃어 보였다.
"여......여부가 있겠습니까! 맡겨만 주십시오. 라운 왕국의 앞날에 도움이 되도록 최선을 다하겠습니다!"
"백작만 믿겠습니다."
내 말에 그는 잘못을 했다가 걸린 아이처럼 불안한 얼굴로 황급히 떠나갔다.
"폐하. 데이비입니다."
"들라."
내 목소리가 울려 퍼지기가 무섭게 안쪽에서 국왕 크리아네스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오랜만에 들린 왕의 접견실엔 고요함이 가득했다.
옥좌에는 베스퍼스 시종장과 국왕 크리아네스 두 사람만이 존재했다.
분명 차기 왕태자로 내정된 바리스가 그의 곁에서 정치를 배우고 있다고 들었는데.
"1왕자, 데이비 올 라운. 왕국의 태양을 뵙습니다."
"허례허식은 되었다. 그래...... 다친 곳은 없느냐."
"신경 써주신 결과 크게 다친 곳은 없습니다."
상처가 있다고 해도 보통 보이지 않는 곳에 있으니까.
"이번 일은 조금 경솔했구나. 영특하던 네가 어찌 그리 과감한 선택을 내렸던 것이냐."
"송구합니다. 폐하. 단순히 미루기엔 문제의 크기가 컸던 탓에 보고가 늦어졌습니다."
"그래....... 신목에서도 실권자가 바뀌고 큰 문제가 없이 해결이 되었으니 망정이지, 자칫 했다간 돌이킬 수 없는 사태가 벌어졌을 게다."
"유념하겠습니다."
잘잘못을 떠나서 그의 타박에 내가 할 수 있는 말은 없었다.
그는 이 나라의 모든 상황을 정해야 할 국왕이고.
나는 단순히 왕자일 뿐이니 말이다.
물론, 실제로 나를 무시할 작자는 거의 남아있지 않겠지만.
"받거라."
"이게 무엇입니까?"
"네게 전해 주려 했던 것이다."
"서부 대륙의 서신이군요."
서부 대륙국가 특유의 두루마리를 쭉 펼쳐 든 내가 눈을 가늘게 떴다.
"결혼식이라......"
그 안에는 라운 왕국의 1왕녀인 타냐 올 라운이 성년을 치름으로 인해 활의 시험을 치르고 혼인을 올릴 거라는 내용이 담겨있었다.
"너에겐 탐탁지 않은 일일 수도 있다. 허나......지금이 아니면 동생을 볼 기회는 영영 없을지도 모른다."
"타냐......."
"가보겠느냐?"
그의 질문에 나는 망설임 없이 고개를 끄덕여 보였다.
마침 '현' 국과 붙어있는 '명' 국 쪽에서도 사신이 온다고 하니, 거기에 한 번 경고도 심어줄 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