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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렙 영웅님께서 귀환하신다!-234화 (233/1,559)

# 234

만렙 영웅님께서 귀환하신다!

- 10권 8화

"아...... 아아 프리아 여신이시여......"

어렸을 적 타냐는 신실한 프리아 교단의 신자였다.

이유야 본인의 이유가 있겠지만, 적어도 녀석의 이타심에 한몫한 것이 주신 프리아 여신의 교단에 빠져들면서 생겨난 마음이기도 했다.

정작 교단을 이끄는 이들 중엔 탐욕으로 찌든 이도, 이미 괴물 같은 마음씨를 가져버린 이도 있다만.

풋풋한 꼬마 소녀에서 이젠 제법 성숙한 티가 난다.

단발이 잘 어울리던 녀석은 '현' 국의 양식에 따라 우아하고 청초한 형식의 긴 머리를 가지고 있었다.

구불구불 웨이브 진 윈리와 다르게 찰랑거리는 생머리를 정갈하게 늘어뜨린 그녀는 저 작은 체구 어디에서 힘이 나왔는지 윈리와 바리스가 부서질 듯 강하게 끌어안았다.

"언니......정말 보고 싶었어......언니......"

"누님, 그동안 별고 없으셨던 것 맞죠? 그렇죠?"

남매는 싸우면서 큰다던데.

확실히 바리스가 윈리와 싸우는 걸 보면 그렇게 느낄 법도 한데.

타냐와는 확실히 다른 느낌이었다.

녀석이 워낙에 온화한 성격을 지니고 있었던 것도 사실이지만.

"언니! 저희가 누구랑 왔는지 알아요?"

"으......으응?"

"매번 편지를 보내드렸잖아요."

"펴......편지?"

당황하는 타냐의 모습에 윈리가 고개를 갸웃거렸다.

이에 나는 말없이 다가가 녀석의 머리를 푹푹 눌러 쓰다듬어 주었다.

"꺅!"

당연 갑작스레 뒤에서 누군가가 자신에게 손을 대면 놀랄 수밖에.

놀란 눈으로 고개를 돌린 타냐는 곧 나와 눈을 마주치더니 더욱더 크게 눈을 떴다.

"아......?"

상황을 이해하지 못한 듯 고개를 갸웃거리는 그녀는 모습은 머리는 믿고 싶어 하는데, 눈이 믿지 않아 하는 듯한 느낌이었다.

"오라......버니?"

"타냐, 오랜만이다."

빙그레 웃으며 녀석의 머리에 손을 얹자 녀석이 화들짝 놀라더니 내게서 떨어졌다.

'컥......'

반사적으로 주춤거리자 페르세르크가 잔뜩 인상을 쓴 채 내 등을 걷어찼다.

-주책 떨지 마, 보는 이가 다 부끄러워질 지경이니.

"타......타냐?"

"오라버니예요? 그럴 리가......윈리, 바리스, 내가 잘못 보고 있는 거니?"

떨떠름한 질문에 윈리가 배시시 웃어 보였다.

"언니, 진짠데요? 척 봐도 우리 데이비 오라버니잖아요."

"설마, 누님 형님의 얼굴을 까먹으신 겁이니까?"

"아......아니야!"

버럭 소리치며 그녀가 천천히 내게 다가왔다.

동시에 붉어진 눈시울에 당장에라도 눈물을 떨어뜨릴 것처럼 나를 올려다보던 녀석이 천천히 손을 뻗었다.

"오라......버니."

"그래. 나야, 타냐."

"오라버니!!"

얼마나 보고 싶었던 것인가.

결국, 눈물을 왈칵 쏟으며 내게 안겨든 녀석은 좀 전 윈리와 바리스 때와는 다르게 엉엉 울면서 내 품에 머리를 파묻었다.

분명 윈리와 바리스가 주기적으로 편지를 통해 연락을 주고받는다는 말은 들은 바 있다.

분명 내가 깨어난 지 몇 달이 지난 만큼 내 소식이 전해졌을 텐데.

-이거 왠지 느낌이 좋지 않아.

'뭐가.'

-이 냄새, 그대가 난리를 칠 냄새야, 데이비, 분명히 말하건대, 정신 바짝 차리는 게 좋을 게야.

그녀의 말을 무시한 채 엉엉 우는 타냐의 머리를 쓰다듬어 주자 녀석이 내 몸에 팔을 두른 채 끅끅거리며 더욱 서럽게 울었다.

그런 타냐의 모습에 곁에서 안절부절못하던 시녀들은 언제 불안해했는지 결국 눈시울을 붉히고 있었다.

타냐는 인성 면에선 정말 존경스러울 정도로 이타적이었다.

비슷한 존재라면 역시 두 명의 성녀후보 중 하나였던 리나 성녀후보와 비슷했다.

놀라울 정도로 지독한 이타심이 똘똘 뭉쳐진 리나 성녀후보와는 다르지만 타냐는 천성적으로 부끄럼을 많이 타고 정이 많았다.

"흐끅......오라버니, 죄송해요......크흥! 제가 이렇게 주책을......"

"괜찮아, 괜찮아."

말없이 녀석의 등을 토닥거려주자 콩닥콩닥거리던 심장 소리가 점차 안정되기 시작하는 타냐였다.

새빨개진 얼굴을 한 채 품 안에서 꺼낸 손수건으로 얼굴의 반을 가린 타냐는 곧 수줍은 듯 내 옷깃을 잡아당겼다.

"이......이럴 게 아니에요! 오라버니께 듣고 싶었던 게 너무 많아요. 윈리도, 바리스도......"

"빈 마마."

그때였다.

갑작스런 남성의 목소리에 타냐의 눈이 크게 뜨여졌다.

"다...... 단궁?!"

"빈 마마, 외람되오나 현재 빈 마마께서는 백일세례 기간 중에 계십니다. 혹여라도 외부인과 접촉을 한다는 사실이 전하나 다른 비 마마들의 귀에 들어가기라도 한다면......"

갑작스레 나타난 사내는 꽤 준수한 외향의 사내였다.

액면가의 나이는 대략 20대 초반이나 십 대 후반 정도.

긴 머리가 흘러내리지 않게 이마부터 묶어둔 천과 검은 무복은 암살자와 비슷하면서도 정갈해 보였다.

패션의 완성은 얼굴이라고 하더니.

-호오......

문득 페르세르크가 흥미롭다는 표정으로 그를 지켜보기 시작했다.

괜히 심술이 난건 덤이었던 모양이다.

나는 남들이 보지 않는 선에서 손을 뻗어 허공에 떠올라있었던 그녀를 낚아챘다.

좀 전까지 어깨에 늘어져 잠을 자고 있던 녀석이 언제 깨어난 것인지.

-꺅!

'소란피우지 말고 들어가 있어. 머리 울리니까.'

괜한 심술을 부리며 페르세르크를 커다란 정복의 주머니에 밀어 넣어버리자 안에서 항변 소리가 들려왔다.

-이......이게! 본녀가 물건인 줄 알아?!

'아아 안 들린다.'

이유는 알 수 없다만, 미묘하게 기분이 나쁘다.

오는 길에 몇몇 숨어있던 사내들과 같은 복장이 분명했다.

"그쪽은?"

갑작스런 단궁이라는 사내의 출현에 바리스가 뭐라 말하려던 찰나.

나는 녀석의 행동을 끊고 조용히 물었다.

"인사가 늦었습니다. 단궁이라 합니다. 부족하나마 정 4품의 도부사의 위치에 있습니다."

"다......단궁은 제가 이곳에 왔을 때부터 저를 곁에서 지켜준 이에요 오라버니."

"그래?"

"세 분께는 죄송합니다만, 빈 마마께서는 현재 백일세례를 받고 계십니다. 이 기간 동안 외부인과 접촉하신다면 어떤 피해가 갈지 모릅니다."

단호한 그의 말에 바리스가 인상을 찌푸렸다.

"외부인? 지금 외부인이라고 했습니까? 가족이 외부인이면 대체 누가 가까이할 수 있단 말입니까!"

"백일세례 기간 동안 빈 마마와 면회할 수 있는 분은 오로지 군왕 전하와 비 마마들뿐이십니다."

"웃기는 소리! 아직 혼례도 치르지 않은 신랑이 가족보다 중요하다 이건가요?!"

상식적으로 말도 안 되는 논리라 여겼는지 바리스와 윈리는 당연 항의하고 나섰다.

그동안 나는 상황을 지켜보았다.

이 나라의 분위기, 미묘하게 어딘가 닮았다.

-그대의 전생?

'조금 비슷하네.'

남성에 비해 여성의 인권이 굉장히 낮던 시대.

과연 '현' 국이 정말 그 정도 수준으로 막장스러운 국가인지는 알 길이 없다만, 적어도 왕의 여자가 된 이상 쓸데없는 법률이 그녀를 옭아매고 있는 건 분명해 보였다.

"단궁 그만해요."

"빈 마마."

"몇 년 만에 본 가족이에요. 제발 부탁이니 지금은 모른 척해줘요."

울먹이는 타냐의 애원에 그는 무표정한 얼굴로 그녀를 지켜보았다.

그런 그의 태도에 바리스가 화가 나 다가가려던 찰나였다.

"혹시라도 보는 이가 없는지 확인하고 시간을 벌어보겠습니다."

"늘, 고마워요. 단궁."

"부디, 후회 없는 시간을 보내시길 바랍니다. 마마."

담담하게 허리를 숙인 뒤 일순간 사라져버리는 그의 행동에 바리스는 애꿎은 대상을 잃어버리고는 짧게 혀를 찼다.

"아 참, 이럴 게 아니에요! 어서 들어요! 오라버니! 윈리, 바리스. 정말 하고 싶은 이야기가 많았어요."

그리고 시간이 그리 많지 않음을 깨달은 타냐는 부랴부랴 나를 포함한 셋의 등을 떠밀었다.

* * *

타냐가 이렇게 수다스러웠나 싶을 만큼 녀석은 말을 많이 했다.

윈리와 바리스의 이야기에 맞장구치며 적극적으로 대화하는 타냐는 그동안 얼마나 외로웠는지를 보여줄 정도로 기뻐했다.

무엇보다 타냐가 가장 기뻐한 것은 다름 아닌 내가 깨어났다는 사실이었다.

-몰랐다고?

"정말 다행이에요 오라버니, 제가 떠나기 전에 눈을 뜨신 모습을 봤다면 더 좋았겠지만......이렇게라도 다시 서로 마주 보고 대화할 수 있다는 게 꿈만 같아요."

녀석의 말에 나는 윈리를 바라보았다.

"내 이야기는 하지 않았었나?"

"그럴 리가요. 라운 왕국에서 오라버니가 깨어나시고, 있었던 일들을 전부 전했었던걸요."

윈리가 고개를 갸웃거렸다.

"누님...... 혹시 저희가 보낸 편지를 받지 못하신 겁이니까?"

그 질문에 주변의 분위기가 싸늘하게 가라앉았다.

"펴......편지? 그럴 리가, 주기적으로 라운 왕국을 통해 연락을 했었는데......"

그 말에 바리스와 윈리의 표정이 동시에 싸늘하게 굳었다.

방금 전의 대화로 무엇이 오갔는지는 볼 것도 없었다.

서로 간에 편지를 주고받았지만 단 한 통도 서로에게 전해지지 않았다.

타냐가 보낸 편지는 '현' 국을 나서지도 못했고, 라운 왕국에서 도착한 편지들은 그녀에게 닿지 못했다.

"중간 차단......"

"빌어먹을 놈들이!"

격노는 당연한 반응이었다.

벌떡 일어나는 바리스의 모습에 타냐가 눈을 부릅뜨고는 재빨리 녀석의 팔을 낚아챘다.

"안 돼!"

"놓으십시오. 누님! 이 개자식들이 누님을 가둬놓은 게 아닙니까! 연락조차 하지 못하게 막은 주제에 뭐? 백일세례? 외부인과의 접촉을 금한다고?! 이 개x끼들을 그냥!"

격분하는 바리스를 주로 말리는 건 보통 윈리였지만.

"언니, 이건 절대 그냥 넘길 문제가 아닌 것 같네요."

싸늘한 얼굴로 이를 빠득 간 윈리가 중얼거렸다.

이건 '현' 국이 일방적으로 라운 왕국을 개무시한 처사였다.

하지만 타냐는 다르게 생각하는 듯 보였다.

"안돼. 윈리, 바리스, 이런 일로 감정을 드러내선 안 돼."

"언니!"

"왕족은 언제고 체통을 지켜야 한단다. 그게 사지에 걸어 들어가는 일이라 해도."

파르르 떠는 것을 보니 타냐도 분했던 모양이었다.

"마마."

그런 격해진 분위기를 깬 이가 있었다.

"단궁?"

"속히 세분의 몸을 피하게 하셔야 합니다."

"뭐라고? 피해?!"

다시금 격해진 바리스가 이를 빠득 갈며 그의 멱살을 틀어쥐었다.

바리스의 키는 생각보다 큰 편이라 덩치 큰 녀석이 왜소한 이를 압박하는 듯한 모양새였다.

"지금 누님을 이곳에 가둬놓고, 편지까지 중간에서 강탈해간 네놈들이 무슨 배짱으로 이딴 짓을 저지르는지 해명부터 들어야겠어."

그의 행동에도 불구하고 단궁은 무표정한 얼굴로 담담히 말했다.

"팔란 제국에 가면 팔란의 법도를 따른다 하였습니다. 이곳은 '현' 국입니다. 왕자님."

"개소리!! 너희 '현' 국이 얼마나 잘났는지는 모르겠지만 이렇게 대놓고 라운 왕국을 개 무시하는 처사를 보인 주제에 무사하리라 보는 거냐?"

당장에라도 단궁을 패대기칠 듯 격분하는 바리스의 행동에 타냐가 안절부절못하며 내 소매를 잡았다.

하지만 나는 다른 생각에 빠져있었다.

-어째서 이런 일을 벌여놓고 그대와 윈리 바리스를 부른 걸까.

아무리 패쇄적인 국가라도 이렇게 무작정 일을 친다는 건 말이 되지 않았다.

그렇다면 생각할 수 있는 것은 단 한 가지.

'왕을 줘 털어보면 나오겠지.'

생각할 게 뭐 있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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