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37
만렙 영웅님께서 귀환하신다!
- 10권 11화
콰앙!!
"전하!!"
"전하를 뫼셔라!"
"저 자를 제압해!"
하늘이 돕지 않는다.
그 말이 딱이다.
순식간에 들이닥치는 수많은 병사들의 모습에 군왕의 표정이 잔뜩 일그러졌다.
지금 막 들이닥친 이들은 바깥의 상황만 보고 급히 이곳으로 온 것이니 내부의 상황을 모른다.
당연 테러를 일으킨 존재를 빠르게 제압하기 위해 온 것 일터다.
그러니 복장이 뒤집힐 수밖에 없다.
어떻게든 상황이 수습되는가 싶었는데 거기에 기름을 끼얹었으니 눈앞이 캄캄해졌으리라.
'현' 국의 군왕은 눈치가 느리지 않았다.
지금 상황에서 내가 얼마나 열이 받아있는지를 잘 눈치챘고, 앞으로 무슨 일이 벌어질지 또한 너무 잘 알았다.
스릉.
"커헉?!"
"그만!! 당장 그만두라! 어명이다!"
급히 외쳐보지만, 상황이 상황인지라 그것이 먹히는 게 쉽지는 않았다.
"이......이 무슨! 전하! 신이 왔사옵니다! 데이비 왕자!! 당장 검을 거두시오! 감히 여기가 어디라고 살기를 풍기는가!"
그리고, 그런 병사들을 지휘하며 나타난 고풍스러운 갑주의 중년 사내가 내게 검을 겨누었다.
그는 내가 어전에서 살기를 드러내고 이 사태를 만들었다는 점에 대해서 어떤 타협안을 내놓을 생각도 없어 보였다.
"대장군!! 그만두라!"
"아닙니다. 전하! 저 자는 전하를 겁박하고 이 나라의 상징인 이 왕궁을 능멸하였나이다! 이 사태는 그 어떤 이유로도 납득할 수 없는......!"
카앙!!
순식간에 날아든 철검 한 자루가 그의 어깨를 정확히 노리고 날아들었다.
"큭......커헉?!"
반응 못 할 속도로 날아든 검격은 분명 어지간해선 그대로 당할법한 공격이었지만.
상대 또한 가볍지는 않았다.
"제아무리 타국의 왕족이라 하여도! 감히 이 나라의 지존이신 군왕전하께 행한 이 무례는 절대 묵과할 수 없다!!"
결국, 내 선공에 분노한 사내가 허리춤에서 커다란 검을 꺼내 들고는 그대로 오러블레이드를 피워 올렸다.
푸른색의 검강이 넘실거리는 모습은 확실히 검사들이 꿈에 그리는 경지인 소드마스터의 경지가 분명하다.
실제로 이 경지에 오르는 인간은 수천만 인간 중에서도 극소수에 달할 만큼 어려우며, 그만큼 많은 시간을 요구하기도 한다.
카앙!!!
순식간에 파고드는 검을 쳐내고 내게 반격을 가하기 위해 그가 몸을 움츠렸다.
그리고는 마치 스프링 터지듯 내게 쏘아져 들어왔다.
"아......안 됩니다. 대장군!!"
"이리 오시면 안 됩니다!!"
모든 사태를 지켜봤던 무관들조차 입을 모아 외쳤다.
처음 내게 검을 겨누었다가 한 번에 제압당한 무관들이었다.
"자네들은 닥치게! 어찌 군왕전하께서 위험에 처해있는데 움직이지 않는단 말인가!! 내 이 일이 끝나면 자네들을 엄히 문책할 것이네!"
움직이지 않는 게 아니라 못 움직이는 것이지만.
그걸 그가 알 리는 없었다.
분명 그와 충돌한다 해도 그를 제압하는 건 어렵지 않다.
다만, 내 손에는 기절한 타냐가 안겨있다.
남의 귀한 동생이 잠들어있는데 흔들려서야 쓰나.
"'현' 국의 대장군."
들어본 적은 있다.
제법 실력이 뛰어난 '현' 국 최고의 무장이라고 했던 것 같은데.
그그그극!!
내 의지에 맞추듯 몇 자루의 철검이 허공에 떠오르더니 스스로 검 끝을 그에게 겨눈다.
칼군무를 추듯 일제히 움직인 검은 마치 개틀링 건처럼 그에게 쏘아져 들어갔다.
"네놈 무슨 수로 이런 술수를 부리는지는 알 수 없다만 각오하는 게 좋을 거다!"
패기롭게 외치며 파고드는 그는 순식간에 날아드는 검을 쳐낼 듯 강하게 검을 휘둘렀다.
하지만.
츠츠츠츳!!!!
그를 향해 날아들던 검 두 자루에서 갑작스레 푸른 기류가 폭발적으로 터져 나오며 거대한 검강을 만들어내자 완전히 상황이 뒤바뀌었다.
"무슨?!"
카앙!!
한 자루의 검이 섬광이 되어 그의 검 끝을 강제로 틀어 바꾸고는 자세를 흩어버렸다.
두 번째 검은 그의 검을 검강 째로 갈라버리는 기염을 토해냈고.
세 번째 검은 빠르게 유영하며 그의 다리를 얇게 베어내 자세를 무너뜨렸다.
그리고 나머지 한 자루의 검이 그대로 그의 어깨를 관통해 그대로 허공에 띄워 올렸다.
물론, 그 과정에서 홍단이나 청단이를 쓰지는 않았다.
"커헉?!"
어깨 한 부분을 검에 꽂힌 채 날아오른 그는 눈앞에서 벌어지는 상황을 이해하지 못한 듯 눈을 부릅떴고 그대로 바닥에 낙하하여 그대로 처박혔다.
심검의 아래 단계인 검선의 경지는 이기어검을 다룬다.
하지만, 내 손을 벗어난 검에서 일대의 마나를 끌어들여 검강을 씌우는 것은.
검선의 경지로 불가능하다.
그런 사실을 알았다면 저들과 나 사이에 얼마나 큰 차이가 있는지 알 테지만.
사실상 검에 대해 배웠다 해도 이기어검과 심기지체의 검강을 덧씌운 이기어검을 구분할 수 있는 인간은 거의 없었다.
과거 판도라 영역의 견습생 중 하나가 내가 보여주었던 이기어검을 보고 놀라긴 했지만 심화한 그 경지가 어느 정도인지는 몰랐던 것처럼 말이다.
상황 꼬인다.
순식간에 장군을 제압한 내가 섬뜩한 미소를 지으며 돌아보자 군왕의 표정이 더욱 찡그려졌다.
속으로 나와 이 상황을 악화시킨 장군, 그리고 이런 일이 벌어지게 한 하늘을 원망하고 있으리라.
"이게 군왕전하의 답변이십니까?"
"아닐세! 그만하게! 장군! 당장 검을 거두라! 뭣들 하는가! 장군과 부상자를 어서 의원으로 이송하라!!"
장군이라 불린 사내 또한 뛰어난 실력가였다.
그의 경지는 엄연한 소드마스터.
본인이 이리 쉽게 당할 거라곤 생각지 못했는지 쓰러진 그의 얼굴엔 당혹스러움이 가득 담겨있었다.
"쿨럭....... 어......어찌 손을 떠난 검이 스스로 오러블레이드를......"
"궁금합니까?"
"크윽?!"
"계속 궁금해하시면 됩니다."
푸욱!!
순식간에 검을 빼낸 내가 손을 까딱이자 이번엔 수십 자루의 검들이 일제히 끝을 아래로 가리키고는 뒤이어 들어온 병사들을 정확히 노렸다.
"그만!! 그만하게! 더 이상의 피해는 내가 용납할 수 없네!"
"전하, 지금 상황에서 전하가 뭔가 요구할 수 있는 상황이라 보십니까?"
"차라리 나를 죽여라! 죄 없는 나의 백성들을! 궁을 지키는 무관들을 헤치지 말고 나를 죽이란 말이다!"
이쯤 되면 내가 극악무도한 작자가 된 기분이다.
그러니까.
"전하."
"......"
"제가 극악무도한 놈이 된 것 같은데, 그저 제 기분 탓이겠지요."
"그......그것은......"
"맞지요?"
"마......맞네. 자네의 분노는 과인이 인정하는바! 허나, 교양을 익힌 왕족으로서 자비를 베풀어주시게."
"정 그러시다면야, 그렇다면 분노한 저희 라운 왕국에게 보상을 해주셔야지요."
빙그레 웃자 그의 머릿속에서 오만가지 욕이 들려오는 기분이 들었다.
콰아앙!!!!!
일제히 검강을 피워 올린 움직이던 검들이 일제히 바닥에 다시 내리꽂히며 주변을 싸늘하게 만들었다.
동시에 오만상 구겨졌던 그의 표정이 다시금 굳었다.
"싫으십니까?"
"아닐세......말하게, 과인이 들어줄 테니."
"타냐와의 혼담부터 이야기하죠, 없던 것으로 하겠습니다."
고요한 어전에서 들려오는 내 말에 그 누구도 입을 열지 못했다.
* * *
희비라 불린 여인은 이 상황에 파랗게 질려있었으면서도 자리를 비키지 않았다.
"그......그것만큼은 절대 안 되네."
"안된다고 하실 상황은 아니지요. 그런 말을 할 자격도 안 되고."
담담하게 말하며 나는 눈앞에 놓인 잔을 달그락거렸다.
"애초에 라운 왕국과 우리 '현' 국 사이의 약속은 유효하네. 아무리 왕자가 분노했다 한들, 이것은 국가 간의 계약 위반일세."
그가 굳이 타냐와의 정략혼을 고집하는 이유를 나는 아직 알 수 없었다.
그의 나이는 어림잡아도 50대.
그리고 타냐는 이제 성년이 된 나이라 할 수 있다.
그 나이 차이만 따져도 30 이상이 난다는 소리였다.
특별히 소아성애자 같은 면모를 보인 적이 없던 그였기에 사실 그가 왜 이렇게 정략혼을 고집하는 건지 이해할 수가 없었다.
특히나 '현' 국은 각 부족연합과의 결속을 위해 결혼 동맹을 추진하고 있다.
그런 마당에 타국의 왕녀를 굳이 정략혼의 대상으로 삼아야 하는가.
내가 군왕이었다면.
긁어 부스럼에, 거의 폭탄이나 다름없게 되어버린 타냐를 당장에라도 데려가라 할 줄 알았는데.
"혹시, 타냐와의 정략혼 당시 라운 왕국에 보낸 재화가 아까워서 그렇습니까?"
"과인을 모독하는 건 당장 그만두게. 과인은 고작 그런 재화 때문에 왕녀를 포기하지 않으려는 게 아니니!"
"그럼 별수 없지요. 평행선을 그리겠다면 이쪽에서는 강압적으로 나가는 수밖에."
어차피 결과는 파혼입니다. 당장 내일 모래가 결혼식이라도 식을 올린 건 아니니까.
내 말에 그가 이를 악물었다.
"어찌......선처해 줄 순 없는가. 연 비의 그런 과격한 행동이 설마 도를 넘어섰을 줄은 몰랐네. 차후 앞으로도 왕녀가 이곳에서 지내는 데에 어떤 불편함도 없게 하겠네. 그 누구도 타냐 왕녀를 무시하지 못하게 과인이 직접 타냐 왕녀를 지켜줄......"
"그 정도 경고는 저도 할 수 있습니다. 안 들으면 날려버리면 되거든요, 다만, 그런 번거로운 짓까지 해가면서 타냐를 이곳에 둘 생각은 없습니다."
라운 왕국과 '현' 국.
약소국들이지만 국가 간의 자존심이 있다.
제국이라면 몰라도 지금의 라운 왕국은 '현' 국에서 타냐가 이런 취급을 당하고 있었다는 것을 아는 즉시 불같이 분노할 것이다.
담담하게 말한 내가 조용히 비워진 찻잔을 톡톡 건드렸다.
"화르르륵!"
동시에 찻잔에 새빨간 화염이 머금어졌다.
"제가 알던 어떤 곳에선 그런 말을 합니다. 전하."
감히 어디서 굴러먹다 온 건지 모를 놈팡이가 내 딸과 결혼해?
"......"
"그리 말하며 물을 끼얹더군요. 전하께서는 '현' 국의 국왕이시니 감히 어디서 굴러먹다 온 건지 모를 놈팡이는 아니지만, 지금 상황은 굉장히 불쾌하기 그지없습니다."
그 말과 함께 화염이 일렁거리는 찻잔을 달그락거리자 그의 표정이 대번에 굳어졌다.
"불 끼얹어 드릴까요?"
"왕자."
"경고하건대, 전하. 협상이나 요청을 요구와 착각하지 마십시오."
"요구......"
"이 나라의 미래와 정략혼, 둘 중에 고르시면 될 듯합니다."
내 미소에 그가 이를 악물었다.
-이 상황에서도 정략혼을 포기하지 않는다고?
기가 막힌다는 듯 페르세르크가 내 주머니 속에서 고개를 쏘옥 내밀고는 중얼거렸다.
'이쯤 되면 타냐에게 뭔가 있는 건데.'
-흐음......
"어찌하시겠습니까."
"전하,"
"희비는 나서지 마시오."
"아니요. 저는 그깟 점괘보다 전하의 안위가 중요하옵니다."
"그깟 점괘라 말하지 마시오. 신관의 점괘는 30년 전부터 단 한 번도 틀린 적이 없으니."
"그 점괘가 지금 무슨 상황을 초래하였나이까!"
그녀의 외침에 군왕은 이를 악물었다.
"그 어떤 상황에서도 혼약을 추진할 생각은 없는 겐가......"
"두 번 말 안 하겠습니다."
"만약......왕녀가 이 결혼을 원한다 하여도?"
"그러면 이야기가 달라지겠죠."
내 말뜻에 담긴 의미를 깨달은 그의 표정이 찌푸려졌다.
"저는 왕국의 입장을 떠나서 제 동생이 이곳에 남게 된다면 그 어떤 누구도 제 동생에게 함부로 하지 못하게 만들어놓고 떠날 겁니다. 당연 인간이라는 족속은 말 한마디 한다고 알아 들어먹을 인간보다 못 알아듣는 인간이 더 많지요."
"......"
결국, 그가 한발 물러났다.
"후우......알겠네. 정식 협의 후에 파혼을 추진하지. 되었는가?"
"그게 끝은 아닙니다."
"또 뭔가!!"
또 뭘 요구하려고 이러느냐며 소리치는 그 모습에 내가 고개를 갸웃거렸다.
"아직 시작도 안 했습니다."
"......빌어먹을, 극악무도하기 짝이 없군,"
그의 말에 나는 생각해두었던 것을 그대로 요구했다.
"첫째, 저는 그 연 비라는 왕비가 합당한 대가를 치르길 바랍니다. 대역죄인은 대역죄인답게 처벌해야지요."
"선처를 바라네. 이번 일은 비단 연 비 한 명의 문제가 아닐세. 연 비는 엄연히 '명' 국에서 온 귀족의 여식일세. 만약......자네가 연 비를 끝끝내 무너뜨리겠다면, 당연 '명' 국에서도......"
"'명' 국."
"......"
"'명' 국 좋네요. 마침 그쪽에도 할 말이 좀 있거든요."
사실 '현' 국과는 대립할 생각도 없었는데, 참 유감입니다?
그쪽 동네 양반들은 아직 사태파악을 못 하시는 것 같더라고요.
"왕자는 전쟁이 우습게 보이는가."
"전쟁이요? 제가 그 여자를 죽인다고 했습니까?"
"뭐라? 대역죄인은 반드시 사형일세."
"죽이지 마세요. 그리고 원하는 대로 들어주시면 됩니다."
빙그레 웃으며 내가 손가락을 까딱였다.
-지독한 놈......탈모도 모자라서 이번엔......
페르세르크의 중얼거림을 무시한 채 나는 미소를 지은 체로 조용히 말했다.
"연 비께서는 몸이 꽤 마르셨더군요, 사는 게 사는 게 아닐 겁니다."
거 몸보신 좀 해드렸는데, 체격 좋아지셔야지.
명확히 말해서 이번엔 저주가 아니라 축복이다. 받아들이는 것이야 본인 마음이다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