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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렙 영웅님께서 귀환하신다!-239화 (238/1,559)

# 239

만렙 영웅님께서 귀환하신다!

- 10권 13화

84. 활의 시험, 커닝페이퍼.

타냐가 머무르던 빈궁은 상당히 관리가 부실하긴 해도 있을 것들은 다 있는 구조로 되어있었다.

녀석이 활의 시험을 치를 때까지는 좋은 방에서 머무르게 해주고 싶었지만 타냐는 이곳이 가장 자신에게 익숙하며 편하다는 핑계로 자리를 옮기길 거부했다.

핑!! 쌔애앵 타앙!

가늘고 날카로운 무언가의 바람 찢는 소리가 울려 퍼진다.

그리고 그 소리의 끝은 청명한 나무와 쇠의 부딪힘 소리였다.

하얀 빛깔의 단아한 복장을 한 채 숨을 천천히 고르고 다시 한 번 활시위를 당긴다.

타냐는 어릴 적부터 굉장히 조용하고 침착한 성격이었다.

그 탓일까.

심신을 안정시키는 활쏘기에 한해선 타냐의 취향에 제법 꼭 맞는 부분이 많았다.

-침착하게 잘 쏘는군. 복잡한 일이 터져서 마음이 심란하기도 할 터인데.

페르세르크의 말대로 현재 상황에서 가장 심란한 존재는 타냐일 것이다.

하지만 녀석은 자신의 심신을 안정시키듯 일정한 힘과 방향으로 화살을 쏘아대고 있었다.

"활의 시험이라는 건 뭐지?"

내 질문에 말없이 침묵하고 있던 사내, 단궁이 조용히 고개를 들어 보였다.

"활의 시험......말입니까?"

"그래. 그게 뭔데 저 녀석이 저렇게 열심히 하는지."

타냐의 성격상 무슨 일이 터지면 자신의 욕망을 뒤로하고 다른 이들을 위해 먼저 움직이곤 했다.

그리고 그 성격이 조금이나마 외향적으로 변한 지금에 와서도 변함이 없었다.

그런 녀석이.

처음으로 자신의 욕심을 드러내 부탁을 해왔던 일인만큼 호기심이 생길 수밖에 없었다.

홍단이를 검집 채로 무릎 위에 올려놓고 홍단이의 내부에 내재된 두 가지 힘과 내 힘을 교류하던 나는 대답하지 않는 그를 굳이 재촉하지 않았다.

퍼엉!!

그때였다.

갑작스레 홍단이의 검신 전체가 붉게 빛나더니 이내 커다란 소리와 함께 붉은 머리칼의 작은 소녀로 돌변했다.

"아빠!"

그리고는 마치 기다렸다는 듯 해맑게 웃으며 내게 안겨들었다.

"어이구, 홍단이. 이제 아빠 발음 잘되는구나."

"홍다니 잘해! 막!막! 잘해!"

아직 조금 어눌하긴 하지만 기본적인 발음 자체는 상당히 교정된듯한 모습이었다.

그래 봐야 아직은 아이이지만 말이다.

간질거리자 꺄르륵 거리며 더욱 파고드는 홍단이의 모습에 미묘한 시선이 느껴진다.

고개를 돌려보니 놀란 얼굴로 나와 홍단이를 바라보는 단궁이 보였다.

외모가 잘난 놈은 뭘 해도 잘났다더니.

놀란 표정까지도 질투심을 불러일으킬 지경이다.

"왜."

"검이......인간으로......"

"사람으로 변하는 검 처음 봐? 촌놈."

내가 혀를 쯧쯧 차자 페르세르크가 한심하다는 듯 나를 바라봤다.

"애초에......그런 게 가능합니까?"

"왜 안돼. 검이라고 인간 되지 말라는 법이 어디 있나. 그렇지 홍단아?"

빙그레 웃으며 홍단이의 뺨을 살짝 꼬집어주자 녀석이 꺄르륵 웃으며 양팔을 벌려 내 목을 끌어안았다.

"홍다니 막 뽀뽀!"

"그래. 여기."

내가 뺨을 톡톡 두드리자 녀석은 거리낌 없이 내 뺨에 제 입을 맞춰왔다.

딸자식의 애교를 보는 아비의 마음이 이러할까.

황당하다는 듯 바라보는 단궁을 흘낏 보며 내가 홍단이를 향해 말했다.

"홍단이, 아빠랑 그거 할까?"

"우응?"

"그거."

"그거어? 응! 할래! 홍다니 할래!"

팔짝팔짝 뛰며 내 허리를 다리로 감아 올라앉은 녀석이 볼을 빵빵하게 부풀렸다.

그리고는 조막만 한 작은 손을 제 귀에 가져다 대고는 장난스런 눈웃음을 쳤다.

동글동글하고 큰 눈동자가 닿자 나 또한 똑같이 양손을 들어 살짝 웅크렸다가 펼쳤다.

"뿌뿌!"

그러자 홍단이가 꺄르르륵 웃으며 제 손을 활짝 폈고 동시에 놀라운 변화가 생기기 시작했다.

홍단이의 뭉툭하고 둥글던 귀가 엘프의 귀처럼 길고 뾰족하게 변한 것이다.

"뿌뿌!"

이윽고 홍단이는 이뿐만이 아니라는 듯 작은 손을 머리 위에 올려 문지르고는 다시 손을 펴고 떼어냈다.

퐁!

동시에 녀석의 머리 위로 토끼와 같은 귀가 펑하고 돋아났다.

녀석이 손을 웅크리면 본래대로 돌아오고 손을 펼치면 뭔가가 변한다,

본래엔 자아를 가진 검답게 스스로의 힘을 제어하게 하도록 가르쳐준 놀이였지만 이런 홍단이의 모습은 어지간한 이들이 넋을 놓고 볼만큼 아찔하게 귀여웠다.

'침 흐른다.'

-쓰읍!

여기 전(前) 마왕님처럼 말이다.

"크흠!"

그건 단궁도 마찬가지였던 모양이었다.

멍한 얼굴로 홍단이의 애교를 지켜보던 단궁은 이내 자신의 추태를 깨달았는지 반사적으로 홍단이를 향해 뻗던 손을 거둬들였다.

"크흠!"

"어때, 우리 딸 귀엽지?"

"......그.......그렇군요."

퍼엉!!

동시에 다시 한 번 무언가 터지는 소리가 들려온다.

"처......청다니도 할 수 이써!!"

그리고는 그 연기 속에서 튀어나온 푸른 머리카락의 소녀가 홍단이의 어깨를 잡아 당겨내고는 내게 달라붙었다.

흔한 아이의 질투였다.

"홍단이가 더 잘해!"

"처......청다니도 할 수 이써!"

그리 말하고는 청단이는 몸을 팔짝팔짝 뛰며 홍단이와는 다르게 엉덩이 쪽에 푹신푹신한 꼬리를 만들어냈다.

고양이의 꼬리부터 커다란 여우 꼬리.

그리고 푹신푹신한 9개의 꼬리까지.

방식은 다르지만, 쌍둥이 검답게 두 아이의 성장 속도는 비슷했다.

"청단이 화났어?"

"청다니......청다니 잘할 수 있어!"

울먹거리며 자신을 어필하는 청단이의 모습에 내가 빙그레 웃어 보였다.

"그래, 청단이도 잘한다."

머리를 쓰다듬어주자 홍단이가 불만스런 표정을 지어 보였지만.

페르세르크와 유일하게 대화할 수 있는 두 아이답게 페르세르크가 심어준 교육의 효과를 보았다.

"크흠......!! 정말 왕자님의 정체는 알다가도 모르겠습니다."

"굳이 알려고 들 필요는 없지. 그나저나, 활의 시험은?"

"활의 시험은......"

시선은 두 아이의 애교에 어쩔 줄 몰라하면서도 단궁은 천천히 입을 열었다.

활의 시험이 어떤 것인지에 대해 말이다.

그리고, 그의 설명이 끝났을 때.

나는 다리에 올라앉아 동요를 부르고 있던 홍단이와 청단이를 천천히 내려놓고 천천히 걸음을 옮겼다.

그리고는 말없이 활쏘기에 집중하고 있던 타냐의 곁으로 다가갔다.

어찌나 노력했는지 땀이 송골송골 맺혀있고 피로로 인해 근육이 저린지 팔이 잘게 떨리고 있었다.

"타냐."

"아......오라버니?"

활시위를 다시 놓으며 고개를 돌린 타냐가 환하게 웃으며 내게 다가왔다.

"자세 잡아봐."

내 말에 녀석이 의아한 표정을 지어 보였다.

"한번 쏴봐."

"네?"

"봐줄 테니 쏴보라고."

내 말에 타냐는 의아한 표정을 지으면서도 평소의 차분함을 드러내며 활시위를 당겼다.

피잉!! 탕~!

그리고 청명한 소리와 함께 화살이 빠르게 날아가 과녁의 중앙에 꽂혔다.

분명 잘 쏘는 실력이다.

타냐는 확실히 활을 쏘는 데에 재능을 가지고 있었다. 저격수의 가장 중요한 점은 침착함이니 말이다.

타냐는 그런 의미에선 천부적이나 다름없다.

하지만, 그래도 아직 경험이 부족하고 배운 게 적은 탓에 미숙한 부분이 보였다.

이에 나는 말없이 다가가 녀석의 뒤에 밀착한 뒤 왼손으로 녀석의 왼손을 덮어 잡고 나머지 오른손으로 녀석의 오른손에 포개었다.

"오......오오오오라버니?!"

갑작스런 내 행동에 깜짝 놀란 녀석이 얼굴을 시뻘겋게 물들이며 버둥거리지만 나는 차분하게 자세를 고정한 뒤 빙그레 웃어 보였다.

"힘 빼고."

내 말에 녀석의 저항이 일순간 굳었다.

"시험은 언제라고 했지?"

"나......나흘 뒤에요. 오라버니."

기어들어가는 듯한 목소리로 대답하는 녀석의 말에 나는 조용히 고개를 끄덕여 보였다.

"그 정도면 충분하겠다."

빌어먹을 바람둥이에, 기회만 생기면 미간에 화살을 박아버리고 싶은 작자지만.

궁술 실력 하나만큼은 회랑 최고봉이었던 아폴론의 궁술을 네게 일부 가르쳐줄 테니까.

그 말을 하진 않았지만 나는 부드럽게 녀석의 자세를 교정시키고는 조용히 말했다.

"천천히, 숨을 들이켜고."

"후웁!"

긴장한 듯 숨을 들이켜는 녀석을 무시한 채 내가 조용히 말을 했다.

"허리 펴고 줄을 당겨."

내 말에 녀석이 조심스레 활시위를 당겼다.

"지금부터 내가 도와주는 걸 기억해 둬. 그리고 직접 해보는 거야. 할 수 있지?"

"네? 아아......네."

담담하게 말하며 활시위를 천천히 당기자 긴장한 타냐의 손끝에서 잔 떨림이 느껴져 왔다.

"왕자님."

물론, 초를 치는 놈도 있었다.

"뭔데."

"외람되오나 타냐 왕녀님께서는 활의 명국이라 불리는 '현' 국의 오랫동안 집약된 궁술을 배워 오셨습니다."

"그래서."

"왕자님이 강하신 건 알겠습니다만......활에 관해선......"

괜히 이상한 걸 가르쳐줘서 시험을 망칠지도 모른다.

뭐 그런 우려인 듯 보였다.

확실히 검을 잘 쓰는 인간이 활까지 잘 쓰는 건 실상 잘 보기 힘들긴 하다만.

나는 단궁의 그런 우려를 개 무시하고 타냐에게 다시 부드럽게 말했다.

"속으로 셋을 세고."

조용히 말하며 나는 천천히 마나를 끌어올려 타냐의 몸을 한 바퀴 돌린 뒤 통과시켜 활에 스며들게 했다.

"지금."

내 말이 신호가 되듯 타냐가 눈을 꼭 감고는 그대로 활시위를 잡고 있던 손을 놓았다.

파앙!!

동시에 일반화살과는 다른 새파랗고 가느다란 섬광이 허공을 수놓았다.

푸른 가루가 흩날리는 한발의 화살은 예리하다 못해 아름다울 정도였다.

"꺅?!"

자신이 쏘고도 놀랐는지 녀석이 눈을 크게 떴다.

깔끔하게 날아가 박혔던 화살이 아니었다.

과녁이 아닌 이상한 방향으로 날아간 화살이 마치 살아있는 것처럼 허공에서 방향을 선회하기 시작한 것이다.

동시에 이미 박혀있던 정중앙의 화살을 정확히 중앙에서 쪼개버리고는 그대로 파고들었다.

단순히 쪼개는 게 아니라 선회하면서 생긴 회전력이 더해진 것인지 마치 드릴로 후벼 판 것처럼 과녁 일부에 거대한 흉터가 생겼다.

"오......오라버니......이게 무슨......"

"환사라는 기술이야. 할 수 있겠어?"

"그......그게......"

"다시 해보자. 다섯 가지를 가르쳐줄 테니까. 천천히."

내 말에 타냐는 놀랍다는 표정을 지어 보였다.

동시에 단궁 또한 믿을 수 없다는 표정으로 눈을 크게 떴다.

"활의 명국? 너희 왕국이 만들어진 지 몇 년 됐어. 200년도 안 됐지?"

이쪽은 신궁이라 불리던 아폴론이 회랑에서 천 년 이상 발전시켜 온 특유의 궁술인데.

헛웃음을 지으며 단궁을 보자 그는 이제는 허탈함까지 들었는지 헛숨을 내뱉었다.

* * *

"재상, '현' 국까지는 얼마나 남았는가."

젊은 소년의 목소리에 맞은편에 앉아있던 두 명의 인물 중 한 노인이 껄껄 웃어 보였다.

"신하, 곧 '현' 국의 수도이옵니다. 무료하시옵니까?"

"......무료하지 않다면 거짓말이겠지."

"어떠하시옵니까. 잠시 행차를 멈추시고 흥미를 돋우시는 것이."

노인의 말에 소년이 심드렁하게 밖을 바라보았다.

"그게 다 무슨 소용인가, 그 시간에 빠르게 도착하도록 하지."

담담하게 말하는 소년의 나이는 고작해야 12살 정도.

게다가 소년이라고 부르기엔 어폐가 있을 만큼 곱상한 외모를 지니고 있었다.

물론, 복장이나 밖에서 그를 부르는 호칭을 보면 분명 남자라는 것을 알 수 있지만 말이다.

도저히 왕이라고 부를 수 없을 정도로 어린 나이의 소년이었지만, 소년은 엄연히 '명' 국에서 가장 중요한 인물이었다.

신의 아들.

천자라 불리는 존재.

창의 국가이자 거대한 대륙, 다수의 인구를 지닌 왕국의 왕이 바로 그였다.

"호호, 신하. 조금만 참으시어요. 곧 '현' 국에 도달할 테니 말입니다. 신하께서는 그저 가만히 계시면 됩니다. 이 어미와 태평 재상께서 모두 해결할 터이니. 신하께서는 그저 당당하게 위에서 군림하시면 되는 것이지요."

이윽고 노인의 곁에 앉아있던 여성이 호호 웃으며 말하자 소년이 조용히 고개를 끄덕여 보였다.

"예...... 어머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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