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40
만렙 영웅님께서 귀환하신다!
- 10권 14화
한차례의 난장판으로 인해, '현' 국의 왕궁 내부는 굉장히 정신이 없는 모습이었다.
"뭐야, 어디 가는 거야?"
"후우...... 옥으로 가."
한숨 쉬며 답하는 시녀의 손에는 따끈따끈한 음식이 담긴 쟁반이 덮개에 덮여 운반되고 있었다.
"옥? 옥에 웬 음식?"
"못 들었어? 연 비 마마의 명이야."
명령이란다.
"아까도 가더니?"
"누가 아니라니, 벌써 이것만 해도 12번째야."
장정 한 명이 먹어치울 분량의 식사를 벌써 12번째 배달하고 있다.
그것도 며칠 단위가 아니라 반나절 만에 말이다.
"한 명이 그것들을 다 먹었다고? 하하, 정말 그랬다간 배가 터져 죽을걸?"
"옥에서 근무하는 옥졸분들 말로는 정말 한 치의 망설임 없이 다 먹어치웠다던데? 그리고는 계속 가져오라 패악질이래."
사람이 그렇게 많은 음식을 쑤셔 넣을 수 있을까.
상식적으로 이해할 수 없는데 그게 현실이 되고 있다.
"그러면 그렇지, 그 성격 어디 가겠니? 그 동부왕국의 왕녀님만 봐도 알잖아? 고생해."
"후우...... 나는 그 왕자님 같은 분 어디서 안 나타나나?"
의외의 분위기였다.
동부왕국의 작은 왕국에서 찾아온 데이비 왕자라는 존재가 말이다.
괴롭힘을 당하는 힘없던 왕국 소녀의 현실을 발견한 오라비가. 절대 항거할 수 없을 것 같던 왕궁 전체를 뒤집어엎었다.
보는 사람이 속이 시원할 정도로 갈아엎어 버린 탓에 궁에 있던 시녀들 중에선 그것으로 대리만족을 느끼는 이 까지 나올 지경이었다.
물론, 그것을 대놓고 티 내다간 경을 치니 입을 다물고 있을 뿐.
* * *
타냐는 내가 가르쳐준 기술을 익히는 데에 상당한 노력을 쏟아부었다.
내가 흘려준 마나의 흐름과 배열, 그리고 방식.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처음 쏘았을 때처럼 제대로 그 기술을 구현해내는 건 쉬운 일이 아니었다.
시험은 결국 타냐가 치르는 것이다.
내가 도와준다면 몇 번이고 쏘아 보낼 수 있지만, 시험에서까지 내 도움을 바랄 순 없었다.
그렇다고 부정행위를 원하는 것은 아니었기에 타냐는 스스로 그때의 그 기술을 재현해내려 부단히 애를 썼다.
이른 아침부터 활시위를 잡아당겼고 부드러운 살갗이 부르트고 찢어질 정도로 연습을 했다.
당연 그런 타냐의 행동에 바리스와 윈리가 걱정스레 바라보았지만 제 누이가 그렇게 욕심을 부리고 노력하는 건 본적이 없었기에 쉽게 말리지 못했다.
그렇게 시간이 점차 흘렀고, 시험이 바로 다음 날로 다가왔을 즈음.
나는 나를 찾아온 내관이라는 자와 대면했다.
"참석해달라고?"
"예, 왕자님, '명' 국의 천자께서 왕자님을 보기를 청하십니다."
"흐음......"
안 그래도 '명' 국에서는 내게 끊임없이 신목의 성지에 관한 문제로 공문을 보내온 적이 있다.
"그런데, 천자가 직접 왔다고?"
예를 챙기지 않는 말투에 내관이 움찔거렸지만, 그것을 대놓고 티 내진 않았다.
아쉬운 쪽은 내가 아니다.
"그......그것이......본래엔 태평재상과 대장군만 사신단으로 도착하려 하였습니다만......갑작스레 '명' 국에서 일정을 변경하는 바람에......"
"......뭐, 좋아. 안내해."
두 국가가 회담을 가지는 장소에 타국의 왕자인 내가 끼어드는 것도 웃긴 노릇이지만.
"저......"
안내하라고 하자 그가 우물쭈물하며 나를 바라보았다.
"할 말 있나?"
"그것이......왕자님, 천자께서 선물을 보내셨습니다."
그리 말하며 고갯짓을 한 그의 행동거지에 나는 조용히 뒤따라 나온 관리가 주는 상자를 받아들었다.
그 안에는.
작은 브로치가 담겨있었다.
척 봐도 비싸 보이는 보석이 박혀 음각되어있는 형태는 놀라울 정도로 깔끔했다.
"천자께서 왕자님의 무용담에 굉장히 관심을 두고 계십니다. 가능하면 이것을......"
"알겠네."
담담하게 말하고는 브로치를 꺼내 가볍게 손에 쥔 나는 비릿하게 웃어 보였다.
* * *
명국의 천자, 그리고 태후.
그리고 '현' 국의 군왕이 대면하는 자리인 만큼 사방에는 대담장소를 지키는 이들로 가득했다.
'현' 국의 정예 병사들과 '명' 국에서 온 것으로 보이는 병사들까지.
개미 새끼 하나라도 지나가지 못하게 하겠다는 듯한 그 모양새에 퍽 웃음이 나왔다.
"멈추십시오. 함부로 들어가실 수 없습니다."
입구에서 나를 막아서는 병사의 모습에 나를 안내하던 관리가 인상을 살짝 찌푸렸다.
"이게 무슨 짓인가. 당장 비키게!"
"이곳은 천자 신하와 '현' 국의 군왕전하께서 대담을 나누고 계신 곳입니다. 누구신진 모르겠으나 함부로 들어갈 순......
철썩!!
자신의 일을 하겠다는 듯 당당하게 소리치는 문지기의 뺨이 돌아가는 건 한순간이었다.
내관이 엄한 표정을 지으며 그의 뺨을 쳐올린 것이다.
"신하께서 만나기를 원하시는 분이시다. 감히 네까짓 놈이 이분의 앞길을 막겠다는 것이더냐!"
그 호통에 문지기가 눈을 크게 뜨고 당황한 표정을 지었다.
하지만 눈치가 없진 않은지 금방 고개를 퍼뜩 숙이며 물러났다.
"시......실례 했습니다!"
제대로 연통조차 넣지 않았다라.......
마치 시험하는 듯한 그 태도에 나는 표정이 절로 굳었다.
"죄송합니다. 드시지요. 왕자님."
"그러지."
어디 얼마나 잘난 놈인지 모르겠다만.
한번 보는 것도 좋겠지.
대담장은 거대하고 웅장했으며, 화려했다.
왕이 머무는 궁조차 이렇지는 않을진대.
그런 느낌이 들었다.
"이곳은 '명' 국의 사신들이 오면 머무는 장소입니다. 어떠하십니까."
"배보다 배꼽이 크네."
"......"
내 신랄한 비판에 내관이 쓰게 웃어 보였다.
'명' 국은 오랜 시간 '현' 국의 부모국을 자처하며 많은 내정간섭을 해왔다.
당연 '명' 국이 '현' 국에서 가지는 위세가 보통이 아니라는 것을 알 수 있는 장소였다.
"신하! 라운 왕국의 1왕자, 데이비 올 라운 왕자 들었사옵니다!"
이윽고 거대한 문지방 너머로 내관이 긴장한 듯 크게 소리쳤다.
동시에 고요하던 문 너머에서 낭랑한 어린아이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드......들라 하라!"
덜컹!!
"드시지요."
"......"
내게 고개를 숙인 뒤 물러나는 내관을 흘끗 본 나는 말없이 걸음을 옮겼다.
대담장의 내부엔 커다란 테이블이 배치되어있었고 가장 상석의 한 명, 그리고 그 좌우로 사람이 두엇 정도 더 앉아있었다.
"라운 왕국의 1왕자 데이비 올 라운입니다. '명' 국의 천자를 만나 뵙게 되어 영광입니다."
담담하게 한쪽 무릎을 꿇고 예를 표해준 나는 이윽고 들려오는 목소리에 고개를 들었다.
"자......잘 와주었다. 데이비 왕자."
긴장한듯한 그 목소리에 고개를 든 나는 조금 놀란 표정을 지었다가 일순간 지웠다.
'어린애?'
-'명' 국의 천자라더니, 아직 국정을 보기도 힘든 어린아이였을 줄이야.
페르세르크도 제법 놀란 듯 보였다.
가장 상석에 앉은 소녀, 아니 소년은 솔직히 성별이 의심될 정도로 곱상하고 앳된 외모를 지니고 있었다.
잘 쳐줘 봐야 12세에서 13살 정도로.
지구의 기준으로 치면 고작 초등학생 정도의 나이였다.
아무리 성장이 빠르고 교육 시기가 빠른 게 이 세상이라지만, 천자의 나잇대는 일국을 이끌어나가기엔 너무 어려 보였다.
"어허! 무엄하시오! 왕자! 어찌 신하의 눈을 마주하신단 말이오!"
그때였다.
곁에 있던 한 남성의 호통에 내 시선이 그에게로 향했다.
"그......그만하라. 대장군!!"
당황한 천자의 외침에 대장군이라 불린 중후한 인상의 사내가 고개를 절도있게 숙여 보였다.
"하오나, 신하!"
"어......어명이다!"
"......예 신하......"
그리 말하면서도 대장군이라는 사내는 내게 상당히 불쾌한 감정을 숨기지 못했다.
"어......어서 오시게, 왕자. 짐이 왕자를 만나고 싶어 연고도 없이 그대를 불렀음이니. 서......선물은 마음에 들었는가?"
"신하께서 보내주신 귀물은 감사히 받았습니다. 이 은혜는 잊지 않도록 하겠습니다."
담담하게 말하며 빈 자리에 착석한 나는 대담장 내부의 인물들을 하나하나 훑어보았다.
가장 좌측에 앉은 것은 군왕이었다.
그는 복잡한 심정이 담긴 얼굴로 침묵하고 있었다.
그리고 가장 상석에 앉은 천자를 지나 우측에는 노령의 사내와 젊은 여인이 앉아있었다.
"어머, 대륙을 떠들썩하게 하신 장본인이라 소문은 익히 들었습니다만. 이리도 멋진 분이신 줄은 몰랐습니다. 안 그렇습니까? 재상."
"허허, 그렇습니다. 태후마마."
허허 웃어 보인 사내가 사람 좋은 미소를 지어 보였다.
"무언가 대단한 힘이 숨겨져 있는 귀물 같은데 이것을 제가 받아도 될런지요."
내 질문에 천자가 놀란 듯 태후를 바라보았다.
"어머, 그걸 눈치채시다니 정말 대단하시군요. 맞아요. 왕자, 착용자의 마음을 편안하게 만들어주는 '명' 국의 보물 중 하나랍니다."
그 질문에 내가 빙그레 웃어 보였다.
"마음을 편안하게 한다라......확실히 대단하긴 하네요."
내 중얼거림에 태후가 마음에 드는 듯 느긋한 미소를 지어 보였다.
"사실 마침 천자께서 왕자를 그리 보고 싶어 하셨습니다."
"저를 말입니까?"
"예, 왕자께선 대륙에서 소문이 자자하신 분이시니까요. 실은 천자께서 왕자의 무용담을 듣고 싶어 하시지 뭡니까. 호호호."
그 미소에 나 또한 웃음으로 답해주었다.
"어렵지 않습니다. 딱히 대단한 것은 없습니다만."
"어머, 그렇다면 다행이군요."
호호 웃어 보이는 태후의 모습에 나는 괜히 시간을 끌 생각이 사라져 버렸다.
"다만 그 전에 해결해야 할 것이 있지요."
내 말에 태후가 눈을 가늘게 떴다.
"해결해야 할 것이라 하면......"
"'명' 국에서 신목의 성지의 일로 라운 왕국에 제법 재밌는 것을 보내셨더군요."
그리 말하며 내가 아공간에서 미리 꺼내둔 서신을 툭 올렸다.
내용이 복잡하게 쓰여있지만 간단하게 줄이면 이런 글귀가 나온다.
[천자께서 명하시니, 즉각 신목의 성지에 가한 압박을 철회하고 외교권을 반환하시오.]
"무슨 의미인지 물어도 되겠습니까?"
"이게......무엇인가?"
천자가 당황한 듯 중얼거렸다.
모른다고?
"모르신다고요?"
"그......그러네. 어......어머니 이게 무엇이옵니까?"
천자의 질문에 태후가 눈을 가늘게 떴다.
"그렇군요. 이것은 분명 '명' 국에서 보낸 서신입니다만......"
마치 처음 본다는 듯 중얼거리는 그 모양새에 내 눈이 가늘어졌다.
"지......짐은 라운 왕국에 이런 서신을 보낸 적이 없네."
"옥쇄는 거짓입니까?"
지금 나랑 장난합니까?
순간적으로 분위기가 싸늘해지자 반사적으로 뒤편에 있던 대장군이 두꺼운 손을 말아 쥐었다.
"이......이건 누군가의 누명일세, 지......짐은 맹세코, 이런 서신을 라운 왕국과 왕자에게 보낸 적이 없어!"
마치 잘못하지 않았다 필사적으로 외치는 아이처럼 천자의 목소리가 울려 퍼졌다.
'현' 국과 나 사이에 있었던 누군가의 이간질.
그리고 그 전부터 도달했던 '명' 국의 서신까지.
중간에서 누군가가 작정하고 장난을 쳤다.
그렇다면 그들이 원한 것은 무엇인가.
그런 생각이 들었다.
"겁도 없이 나를 이곳으로 유인했구나."
조용한 내 중얼거림에 좌중이 침묵했다.
숨 막히는 중압감이 일순간 좌중을 짓눌렀다.
유인은 상관없는데.
감히 나를 제 뜻대로 움직였다는 게 상당히 거슬린다.
천자는 정말로 모른다는 표정이었지만.
과연 태후는 어떨는지.
"태후마마, 이것에 대해 아시는 바 있으십니까?"
"글쎄요......분명 찍힌 직인은 옥쇄이오나, 나 또한 이런 서신을 보낸 적은......"
그렇단 말이지요.
그렇다면 저쪽에 물어보는 수밖에.
벌떡 일어난 내가 조용히 그들을 향해 고개를 숙여 보였다.
"죄송하지만 조금 무례를 범하겠습니다."
"무례?"
의아한 표정을 짓는 천자를 무시한 채 나는 아무것도 없는 허공을 향해 조용히 손을 뻗었다.
콰자작!!
동시에 손끝에서 공간이 일그러지더니 이내 깨어져 나갔고 그대로 붉은 빛과 함께 홍단이가 뽑혀 나왔다.
"거......검이 허공에서!"
"세상에!"
놀란 목소리와 함께 다급한 표정으로 '명' 국의 대장군이 창을 뽑아 들고 나를 향해 겨누었지만.
아 몰라, 일단 베고 봐!
내 행동이 좀 더 빨랐다.
나는 미련 없이 손에 쥐어진 홍단이를 천자를 향해 그어버렸고, 붉은 잔상이 일순간 일대를 번뜩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