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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렙 영웅님께서 귀환하신다!-241화 (240/1,559)

# 241

만렙 영웅님께서 귀환하신다!

- 10권 15화

콰직!!

무언가가 으깨져 부서지는 소리가 들려왔다.

파괴적인 소리에 대담장 내부는 아주 잠깐 침묵에 휩싸였다.

스릉...... 착!

이윽고 주변을 번뜩였던 새빨간 검강은 언제 있었냐는 듯 순식간에 흩어지며 빛의 가루만을 남기고 흩어졌다.

"시......신하!!!! 네 이놈!!!"

가장 먼저 정신을 차린 건 대장군이었다.

그는 눈이 찢어질 듯 크게 뜬 채 굳어있는 천자를 바라보다 이내 나를 노려보았다.

그리고는 거침없이 내게 덤벼들었다.

카앙!!

이에 나는 홍단이를 검집에 넣은 채로 그의 창을 빗겨 쳐냈다.

"네놈이......네놈이 감히 신하를!!!"

"......"

당장 터질 것처럼 시뻘건 얼굴로 대노하는 그를 짜증스레 지켜보던 내가 고개를 까딱였다.

"비키세요."

"네놈을 죽이겠다!!"

카앙!!

귀찮다는 표정을 지어 보이니 그가 더욱 열 받은 듯 길길이 날뛰었다.

순식간에 내 팔을 쳐내고는 거리를 벌린 그가 마나를 끌어 올리자 그의 손에 쥐어진 창의 끝에서 푸르스름한 강기가 어리기 시작했다.

소드마스터 이상급의 실력인 것은 알고 있었다만, 제법 높은 밀도를 지니고 있다.

"그만두게! 대장군!"

'현' 국 군왕의 아찔한 외침이 들려왔지만, 그의 귓가엔 닿지 않는 모양이었다.

카앙!! 캉!! 캉!!

마치 흉포한 맹수처럼 나를 몰아치는 그의 눈은 이미 분노로 돌아간 듯했다.

"뭐 하는 겁니까."

"네놈!! 내 오늘 반드시 네놈을 죽이리라!"

"업무 태만 주제에 짜증 나게 하네."

섬광처럼 내 목을 노리고 찔러 들어오는 창끝을 보며 내가 한발 내디뎠다.

동시에 몸을 슬쩍 비켜내 그의 공격을 피해냈다.

"읏?!"

순간적인 판단과 경험이 없으면 도저히 불가능한 그런 공격 속에서도 나는 거침없이 그에게 파고들었고 그대로 그의 심장에 홍단이의 검 끝을 찔러넣었다.

"그......그만! 그만두라!"

그리고, 홍단이의 검 끝이 대장군의 심장을 찌르기 직전, 다급한 아이의 외침이 들려왔다.

그리고, 그 외침에 격하던 분위기는 한순간에 냉수를 끼얹은 것처럼 정적이 흘렀다.

"윽......"

강인한 힘으로 정말 나를 죽일 듯 창을 내질렀던 그는 곧 자신의 심장 부근에 홍단이의 섬뜩한 검 끝이 닿아있는 것을 보고는 침음을 삼켰다.

본인도 느꼈을 것이다.

흥분한 채로 앞뒤 보지 않고 덤벼든 순간.

외침이 들려와 상황을 막지 않았다면.

자신은 죽었다는 사실을 말이다.

"대......대장군은 당장 무기를 거두라!"

다급한 외침과 함께 상념에 빠져있던 장군이 눈을 크게 떴다.

그리고는 천천히 물러나며 창을 거두고는 고개를 돌렸다.

"시......신하! 무사하셨......허업!"

내가 번뜩인 검은 분명 천자를 노렸다.

그런 만큼 손도 쓰지 못할 새에 당해버린 자신의 왕이 멀쩡한 모습에 대장군의 눈이 부릅떠졌다.

그리고, 곧 주저앉아있는 천자의 뒤편에 쓰러진 무언가를 보고 입을 쩍 벌렸다.

"끄륵......끄륵......"

고요한 침묵이 오가는 틈 사이에서 나는 홍단이를 집어넣고 그대로 청단이를 뽑아 들었다.

이놈들을 잡는 데엔 역시 이것만 한 게 없지.

"잘나신 귀족 나으리께서 여기까지 무슨 일로?"

"끄윽......"

가슴에 거대한 검상을 남기고는 고통스레 피를 울컥울컥 토해내는 이는 분명 불청객이었다.

내가 벤 것은 천자가 아니었다.

천자의 바로 뒤에 숨어있던 이 사내였다.

"치......침입자!! 대장군 무얼 하는 겝니까! 어서 신하를 보호하세요!"

그때 정신을 차린 태후의 외침과 함께 대장군이 급히 창을 들어 천자의 곁에 붙었다.

"신하! 걱정 마시옵소서! 소신이 목숨을 바쳐서라도 신하의 신변에 위해가 되는 자들을 처단하겠나이다!"

"아......아아아......"

눈앞에서 참혹하게 죽어가는 사내의 모습을 그대로 봐버린 천자는 혼란 그 자체의 심정을 담고 있었다.

"뒷북 그만 치세요."

그런 대장군을 무시한 채 사내를 짓밟고 있던 나는 청단이의 검 날을 그의 목에 겨누었다.

"그쪽이 대답해볼래?"

"큭......크크큭......"

그럴 것 같더라니.

이놈의 모기 새끼들은 하나같이 정신병자들이 가득하다.

창백한 얼굴로 나를 올려다보며 킥킥 웃어 보인 그는 곧 서서히 전신을 흩어버리며 도발해왔다.

"나를 찾아낼 줄은 몰랐군, 하등한 인간치고는 제법이다."

"말은 잘해요. 그래서, 대답할 거야 말 거야."

"흐......흐흐 대답해줄 것 같은가? 감히 하등한 인간 따위가 감히 밤의 귀족인......크악!!"

"하기 싫으면 안 하면 되지 꼭 말이 많아요."

상위 뱀파이어는 거의 반 불사에 가까운 생명력을 지니고 있다.

본래 상위 뱀파이어의 개체 수가 많은 편은 아니지만, 이전에도 비슷한 것을 보지 않았던가.

뱀파이어 페이스.

2왕자 칼루스놈에게 들러붙어 라운 왕국에서 개짓을 하다가 내게 죽은 그놈 말이다.

놈은 하위 마수에도 이와 비슷한 힘을 심어 넣었던 적이 있었다.

당연 지금 내 손에 죽어가는 이놈 또한 마찬가지인 케이스로, 본체는 상위 뱀파이어라고 부르기 미안할 정도로 격이 떨어지는 놈이지만 놈은 분명 반 불사의 권능을 지니고 있었다.

아마 놈이 믿고 있었던 것은 그것이었을 것이다.

오러블레이드로 몸을 토막 내봐야 육신을 액체로 변형시켜 다시금 구성해버릴 테니까.

하지만 청단이로 베어버린다면?

비 물리 법칙에 한하는 모든 것을 베어내는 힘을 지닌 청단이의 기본 권능과 마를 멸하는 힘이 뒤섞이면 청단이는 엄연히 말해서 뱀파이어에게 가장 두려운 무기가 된다.

다만 이번엔 전과 달랐다.

서서히 죽어가던 놈의 육신이 곧 일그러지기 시작하며 끔찍한 괴물의 형태로 변해 버린 것이다.

마치 본래엔 뱀파이어가 아니라 이 끔찍한 형태의 괴물이었다는 것처럼 말이다.

침묵에 휩싸인 대담장을 한번 둘러본 나는 눈을 크게 뜬 채 침묵하고 있는 천자를 향해 물었다.

"혹시 아는 자입니까?"

내 질문에 천자는 떨리는 동공을 주체하지 못한 채 마구 고개를 저었다.

"모......몰라! 지......짐은 모르는 일이다!"

이번엔 태후에게 고개를 돌렸다.

"세상에......저 같은 괴물이 이곳에 있었다니......"

명의 태후 또한 놀란 듯 보였다.

모르신다 이거지.

스릉......

가볍게 청단이의 검신을 한번 튕기고는 검집에 밀어 넣은 내가 물었다.

"아무래도 중간에서 이간질을 한 건 이놈들인 모양입니다."

"저......저 괴물이 무엇인지......왕자는 알고 있는 건가?"

그 질문에 나는 고개를 슬쩍 끄덕여 보였다.

"이루지도 못할 꿈을 떠안고 있는 머저리들이죠. 뭐."

마왕 페르세르크이 부활? 내 곁에 그녀가 있는 이상 불가능할 것이고, 설사 가능하다고 할지라도 놈들이 원하는 미래는 절대 일어나지 않을 테니까.

"무례를 용서하십시오. 이 자가 천자를 노리기에 어쩔 수 없이 검을 빼 들어 무례를 범했습니다."

말없이 천자에게 고개를 숙여 보이자 천자는 아직 패닉에서 빠져나오지 못했는지 멍하게 고개를 끄덕여 보였다.

"짐은......이해하마. 고......고맙다."

빨갛게 얼굴을 물들인 채로 감사를 표하는 모양새는 이해하는데.

'이놈 왜 이래.'

마치 이성을 앞에 두고 부끄러워하는 소녀 같은 행색이 영 눈에 걸렸다.

-데이비, 권능을 써봐.

이런 내 태도에 페르세르크가 조용히 조언을 해주었고, 천자를 한번 훑어본 나는 조금 이해할 수 있었다.

'돌았네.'

조금 의외의 결과가 나왔다.

* * *

대담은 취소되었다.

두 나라의 왕이 모여 대담을 하는 장소에서 정체불명의 괴물이 숨어들었다는 사실만으로도 충분히 복잡한 문제였다.

문제는 이번 사태의 책임을 내가 아닌 '현' 국이 모조리 덮어 써버렸다는 점이었다.

이곳이 '현' 국이고.

이런 사태가 벌어질 수도 있음에도 전혀 방비를 하지 못했다는 점이었다.

그런 의미에서 '현' 국은 또 애꿎은 몰매를 맞는 꼴이었다.

"어머니."

고요한 침소.

방안에서 새하얀 의상을 입은 채 책을 읽던 천자는 자신의 앞에 앉아 차를 음미하고 있는 여성을 바라보았다.

"왜 그러십니까, 신하."

"정말...... 이번 일에 어머니가 관련이 없으신 겁니까?"

조심스레, 제 어머니의 눈치를 살피며 물어오는 천자의 질문에 태후는 곱게 웃어 보였다.

"예, 제가 미쳤다고 그런 짓을 했을까요. 이리 오셔요, 신하. 어미가 안아드리겠습니다."

쫄래쫄래 걸어가 태후의 품에 안긴 천자의 등을 쓸어내리며 태후가 느긋하게 웃어 보였다.

"태평재상도, 대장군도, 이 어미도, 모두가 신하의 편입니다. 모두가 신하가 잘되기를 기원하고 있어요."

"그런가요?"

"네, 이 어미를 믿으세요. 가능하지요?"

"어머니......혹시라도......"

조심스레 입을 연 천자가 똘망똘망한 눈동자로 제 어미를 바라보았다.

"무리한 일을 하진 말아주세요."

"어미만 믿으시면 됩니다."

쿡쿡 웃으며 천자가 잠들 때까지 등을 쓸어내린 태후는 곧 천자가 잠이 들자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리고는 조용히 밖으로 나갔다.

"명링."

"예, 태후마마."

"물건은 어찌 되었느냐."

"생각했던 것보다 간단히 손에 넣었습니다."

그리 말하며 검은 어둠 속에서 튀어나온 무복을 입은 사내가 손에 든 브로치를 건네주었다.

다름 아닌 데이비 왕자에게 선물이라며 주었던 브로치였다.

하지만 한가지가 처음과는 달랐다.

음각된 보석에서 옅은 빛이 새어 나오기 시작한 것이다.

"선물을 이리 소중히 여기지 않아서야. 쯧쯧."

"암살해버릴까요?"

"아서라, 그깟 일로 대의를 그르칠 생각이더냐. 그나저나 모든 물건이 모였구나. '현' 국의 신물, 데이비 왕자의 힘이 담긴 브로치. 그리고......산의 수호신까지."

담담하게 말하며 그녀가 고개를 돌렸다.

"아니 그러십니까. 재상."

"그렇겠지."

그 말과 동시에 반대편에서 누군가가 걸어 나왔다.

창백한 피부에 싸늘한 인상을 가진 젊은 남자였다.

분명 재상이라 불린 이는 나이가 지긋하고 호의적인 미소를 지닌 노인이었지만.

지금의 재상은 완전히 다른 인물이었다.

"모든 계획은 착실히 진행되고 있겠지요."

"걱정 마라. 모든 계획은 잘 되고 있다. 곧 있으면 산의 수호신이 가진 모든 가호가 천자에게 흘러들어 갈 것이다."

"당신들이 원하는 건 데이비 왕자가 전부입니까?"

"그래, 그놈은 우리 종족의 최대 원수이니까. 다만 놈의 힘은 아주 흥미롭다. 놈의 힘은 반드시 우리의 것으로 만들어야 해."

"그는 보통 존재가 아니에요. 만약 일이 틀어지면.......나는 당신들을 모두 버릴 겝니다. 그게 우리 사이의 거래였지요."

"쓸데없는 걱정을 하는군. 천자의 불치병은 산 수호신의 힘으로 나을 것이다. 그리고 우리는 데이비 왕자를 죽이고, 그 힘을 탈취한다. 서로 간에 아쉬울 것 없는 거래일 뿐이지."

싸늘한 인상을 지닌 사내의 말에 태후가 결연한 표정을 짓고는 고개를 끄덕였다.

우리의 염원을 이루기 위해선 반드시 그 왕자가 죽어야 한다.

대륙에서 가장 위험한 변수.

그 존재를 처리하지 못한다면, 자신들에게 미래는 없으리라.

재상, 아니 재상의 탈을 쓴 사내는 그 속내를 삼킨 채 조용히 어둠 속으로 사라졌다.

그리고 그런 재상의 뒷모습을 지켜보던 태후는 말없이 불이 꺼진 침소를 보며 조용히 뇌까렸다.

"천자께서 어린 나이에 죽게 두지 않겠습니다. 이 어미만 믿으세요. 이 어미가 이단으로 몰려 겁화에 타 죽는 한이 있어도...... 반드시 천자를 살리겠습니다."

* * *

날이 밝았다.

타냐가 활의 시험을 치르는 날이 온 것이다.

당연 '현' 국 최고의 행사임과 동시에 '명' 국에서도 인정하고 있는 활의 국가라는 칭호답게 무슨 일이 있어도 '현' 국은 이 시험을 중단하지 않았다.

-어라? 데이비, 브로치는?

일단은 일국의 왕이 호의를 위해 준 선물이기에 차고 있는 게 예의이긴 하다만.

"줬어."

-줬다고? 누굴?

"선물 준 사람."

피식 웃어 보인 나는 곧 시험을 치르기 위해 백일 세례를 끝마치고 정복으로 갈아입은 타냐에게 양팔을 벌렸다.

"오라버니!"

동시에 타냐가 환하게 웃으며 달려와 내게 안겨들었다.

"시험 준비는 잘 됐어?"

"죄송해요. 오라버니...... 가르쳐주신 환사...... 아직 익히지 못했어요......."

어렵게 말하는 타냐의 대답에 나는 말없이 녀석의 머리를 쓰다듬었다.

"넌 할 수 있을 거다. 긴장하지 마, 오라버니가 뒤에서 지켜볼 테니까."

"그럴......까요?"

어렵사리 물어오는 타냐의 소동물 같은 눈빛에 나는 빙그레 웃어 보였다.

그리고는 녀석의 어깨를 살짝 잡고는 고개를 끄덕였다.

"우리 동생, 근육이 좀 많이 뭉쳤구나?"

그 말과 동시에, 타냐의 빈궁에서는 잠깐 동안 처절한 비명소리가 울려 퍼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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