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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렙 영웅님께서 귀환하신다!-242화 (241/1,559)

# 242

만렙 영웅님께서 귀환하신다!

- 10권 16화

처절한 비명으로 얻은 것은 값진 변화일지니.

잘못했다면서, 제발 그만두라며 애원하는 타냐의 말을 애써 무시한 채 나는 녀석의 육체 안에 뭉쳐진 부분을 모조리 풀고 개통해버렸다.

다만, 바리스나 일리나 때와는 달리 타냐의 경우는 상황이 상황인지라 조금 빠르게 효과가 적용되리라.

"어때, 몸이 좀 가벼워?"

"신기하네요......."

엉엉 울며 아파하던 타냐는 곧 찾아오는 개운함과 가벼운 몸에 놀란 듯 몸 구석구석을 움직여 보며 신기해했다.

"잘할 수 있지?"

"네! 오라버니! 고마워요! 꼭 시험에 통과할게요!"

활의 시험에서 통과한 자는 일정 경지를 돌파하게 된다.

단순히 '현' 국과의 약속이 아니라 타냐 본인의 삶을 위해서도 이번 시험은 그녀에겐 중요했다.

둥!......둥!!

뿌우우우우!

묵직한 북소리와 함께 저음의 나팔 소리가 웅장하게 울려 퍼졌다.

'현' 국의 전통 무복을 입은 채 말없이 제단의 아래에서 무릎을 꿇고 눈을 감고 있는 타냐는 상당히 긴장을 한 것처럼 보였다.

-눈이 보이지도 않는데 시험을 치른다라.......

활의 시험을 치르는 건 비단 타냐 뿐만이 아니었다.

총 다섯 명으로 나머지 세 사람은 모르는 이들이었지만.

단 한 명에 한해선 누구인지 알 수 있었다.

두꺼운 안대로 눈을 가리고 있던 작은 소녀.

마리아 공주였다.

-궁술은 시력에 굉장히 영향을 많이 받는 기술일 텐데.

페르세르크의 말대로 마리아는 기존의 무언가와는 다른 것이 있었다.

눈이 거의 보이지 않는다고 한 주제에 일상생활은 큰 무리 없이 해내는 것을 보면 말이다.

심안과는 비슷하지만 다른 무언가로 사물을 구분하는 능력을 지닌 그녀는 어떤 의미로는 웬만한 이들보다 더 사물의 구분을 명확하게 할 수 있는 힘을 지니고 있었다.

-그런 게 가능해?

'특질 능력자.'

내 대답에 페르세르크가 놀랍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특질 능력자.

상당히 오랜만에 듣는 이름이었다.

환수 소환사나 환술사가 그 예시가 아니었던가.

-그런데, 데이비. 아무리 볼일이 끝났다지만 리인포스 알파 기사단의 일을 너무 방치하는 거 아닌가?

"매번 일정량의 물자를 빼돌려서 그쪽으로 보내주는 것도 어디 쉬운 일이냐."

그런 행동 하나하나가 지금 당장에는 큰 도움이 될 수 없다만.

적어도 나는 그들의 내막이 얼마나 어수선하던 그 목적은 숭고하다 여기는 편이었다.

실제로 그때 그일 이후 내 영주실에는 리인포스 알파의 기사단원이 되었을 당시의 견습생들.

그중에서도 앵커나이트들이 보내온 편지들이 몇 통 쌓여있다.

간단한 소식들이었다.

오늘은 누가 사고를 쳤네, 어제는 누가 무슨 일을 겪었네.

딱히 중요한 것 따윈 없는 소식통이었지만 무소식이 희소식이라는 사실대로라면 이대로가 더 옳았으리라.

이윽고 군왕의 주도 아래에 산의 수호신, 현의 영수. 혹은 신수라 불리는 존재와의 접선을 위한 의식이 시작되었다.

시험을 치르는 동안은 그 누구도 그 시험에 간섭할 수 없지만, 지금만큼은 아니었다.

몇 년에 한 번씩 열리는 활의 시험은 '현' 국의 명물이자 그만큼 큰 행사이기도 했다.

국가의 주축이 되는 시험이니 말이다.

실제로 시험이 시작되기 전 수호신에게 예를 표하는 의식을 진행할 때엔 일대의 바람의 정령들이 모여들어 주변을 환하게 비추는 아름다운 절경을 만들어내는 것으로도 유명했다.

매 시험마다 수많은 이들이 시험에 응하지만 사실상 이곳에서 통과하는 이는 극소수에 불과했다.

화려한 의식 준비가 치러지던 도중 나는 무관의 복장을 한 사내와 대화를 나누고 있는 '명' 국의 태후에게 시선을 흘끗 돌렸다.

그리고는 그녀의 행동을 한참 지켜보다 조용히 자리에서 일어났다.

"앗! 데이비 왕자! 어디 가시는 겐가?"

눈치 없는 천자의 질문이 날아들었다.

저 나잇대의 순수한 아이라면 이해할 수 있긴 하다만.

천자의 말 덕분에 주변의 시선이 내게 닿을 수밖에 없었다.

"잠시 바람 좀 쐬고 오겠습니다. 금방 돌아오지요."

"아아. 다녀오게. 짐이 기다리고 있을 터이니."

아쉬운 듯 중얼거리면서도 나를 막지 않는 천자를 뒤로 한 채 의식장을 빠져나가자 내 뒷모습을 보던 윈리와 바리스가 고개를 갸웃거렸다.

하지만 나는 미련 없이 그곳을 빠져나왔고 그대로 검은 연기가 되어 흩어지듯 사라져버렸다.

* * *

'오라버니가 어딜 가시는 거지.'

의식 도중 제사장을 빠져나가는 제 오라비를 발견한 타냐는 우울한 감정이 드는 것을 느꼈다.

왜 그런지는 몰라도 괜스레 집중할 수가 없었다.

경건한 마음가짐이 가장 중요한 의식인데도 말이다.

"왕녀님."

최근 와서 그녀에겐 소중하고도 행복한 일들이 벌어졌다.

"왕녀님."

다시는 못 볼 줄 알았던 쌍둥이 동생을 만났고.

"왕녀님?"

눈을 감은 채 잠들어있던 오라버니가 다시 자신을 찾아왔다. 세 사람의 얼굴을 보고 잘 지내고 있다는 것만으로도 타냐에겐 큰 힘이었다.

이대로 '현' 국의 왕실과 혼약을 치르고 정식으로 왕비가 되더라도.

차후 다른 비들의 투기를 받아 괴롭힘을 받는다 하더라도 견딜 수 있으리라.

그렇기에 오라버니와 두 동생이 있던 순간만큼은 연 비가 자신을 괴롭히지 않기를 빌었다.

하지만 연 비는 그런 것 따윈 신경 쓰지 않았고 그날도 어김없이 자신을 찾아와 패악질을 부렸다.

보이고 싶지 않았다.

그래서 내보내려고 했는데.

오라버니가 그것을 보고 말았다.

그 이후의 일?

정말 놀라움의 연속이었다.

자신이 겪고 있던 수모를 직접 목도한 오라버니는 생전 처음 보는 섬뜩한 표정으로 연 비를 제압해버린 뒤 그대로 이 궁 전체를......

뒤집어엎어 버렸다.

'누구든 내 동생을 건드렸으면 그 대가를 치를 각오는 해야 할 거다.'

오라버니가 했던 말이 머릿속에 남아 오랫동안 사라지지 않는 그녀였다.

솔직한 심정으로 너무 당혹스러워 걱정이 되면서도.

너무 고맙고 멋진 오라버니였다.

오라버니는, 예전 그녀가 떠나던 당시에 봤던 그 약한 모습이 아니었다.

마치 자신을 지켜주기 위해 세상과도 싸울 수 있을 것처럼 강직하고 듬직했다.

자신을 지켜주지 못한 아버지에게서도 느껴본 적 없던 든든함은 그녀에게 더욱 강하게 각인되어 뇌리에 박혔다.

"타냐 왕녀."

"아......아?"

"괜......찮으세요?"

조심스레 팔을 뻗어와 뺨을 쓸어주는 마리아 공주의 질문에 타냐는 얼빠진 얼굴로 조용히 고개를 끄덕여 보였다.

"아......네. 괜찮아요."

"이제 숲으로 들어갈 시간이에요."

"부디, 두 사람 모두 시험에 통과했으면 좋겠어요. 마리아 공주님은 더 넓은 세상을 보고 싶어 하셨잖아요?"

"최선을 다해봐야겠죠."

마리아의 말에 타냐는 쿡쿡 웃어 보인 뒤 고풍스러운 상자에 들어있던 활을 향해 손을 뻗었다.

마리아 공주가 준 베고의 수염으로 당겨둔 '현' 국의 고급 각궁이었다.

본래 활의 시험을 그녀가 치를 이유는 없었다.

'현' 국 사람이라고 해서 모두가 시험을 치르는 건 아니니 말이다.

하지만 수많은 부족연합은 서로를 견제하고 있다.

그런 마당에 외부에서 끼어들어 온 불청객이 왕비가 된다니 당연 모두가 기를 쓰고 반대하는 것 또한 당연한 사실이었다.

그런 상황에서 '현' 국의 군왕은 결국 신관의 예언을 공개했고 공식적으로 나라를 위한 일인 만큼 불만을 품으면서도 대놓고 거부하지 못한 이들은 결국 타냐에게 조건을 내걸었다.

세 가지 이상의 시험을 통과한다면 문제없이 받아들이리다.

차후 '현' 국을 윤택하게 해줄 존재라면 그 정도 시험이야 어렵지 않게 통과 할 테니.

그들의 입장도 어느 정도 타당했던 탓일까.

결국, 독단으로 추진하던 군왕도 그 제안을 받아들였고.

타냐는 세 가지 시험 중 두 가지. 효(孝)와 의(義)의 시험을 통과했다.

마지막은 그녀가 어릴 적부터 좋아해 왔던 활.

그 활의 시험이 남았다.

여기까지가 이전의 상황이었다.

하지만 데이비의 난입으로 국혼은 취소되었고 거의 일방적이다시피 할 정도로 파혼이 성사되어버렸다.

더 이상 타냐에게 활의 시험을 강요할 수 있는 이는 없다는 소리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녀는 시험을 치르고자 했다.

이 왕궁에서 그녀에게 호의를 품어준 몇 안 되는 친우와의 약속을 지키기 위해서.

그리고 자신의 꿈과 욕심을 단 한 번만이라도 이뤄보기 위해서 말이다.

활은 어릴 적부터 그녀의 친구였으니까.

쿠웅!!

쿵!!

이윽고 숲의 수호신이 다시 깨어나는 소리가 들리기 시작하자 마리아가 긴장한 얼굴로 걸음을 옮겼다.

투웅......

"어라?"

그때였다.

타냐는 숲에 들어서기가 무섭게 미묘한 기분이 들어 걸음을 멈췄다.

"왜 그러시죠? 왕녀님?"

"......아녜요...... 아무것도......"

의심쩍은 표정을 지으면서도 타냐는 이내 고개를 저어 보였고 이내 속에 든 잡념을 털어버리며 다시 숲 내부로 걸음을 옮겼다.

숲에 들어서기가 무섭게 미묘할 정도로 분노에 찬 누군가의 감정이 느껴졌지만, 그저 기분 탓이라 치부해버렸다.

* * *

의식이 시작되기가 무섭게 숲 전체에 거대하고 투명한 결계가 활성화되기 시작했다.

시험을 치르는 동안은 모두 개인의 역량으로 이루어진다.

초대 국왕과의 약속에 따라 숲을 수호하는 수호신은 매해 공물을 받고 섬김을 받는다.

그리고 수호신은 시험을 치르는 자에게 적절한 바람의 시험을 내리고 그것을 통과한 자들은 대부분 한 단계 벽을 넘어서는 업적을 세웠다.

시험에 통과하는 이야 극소수지만 한번 통과했다 하면 출셋길이 열리는 만큼 '현' 국에서 활의 시험은 가장 큰 시험 중 하나이기도 했다.

이윽고 수호신께 공양하는 신물이 아주 귀하게 모셔지듯 제단 위로 올라가기 시작했고 신관중 하나가 천천히 걸음을 옮겨 거대한 조각상 형태의 신물을 천천히 들어 올렸다.

그리고는 조용히 주문을 읊기 시작했다.

"시험의 시작은 저 신물을 공양하며 주문을 외는 것으로 완전히 시작된다더군."

굳이 묻지도 않았는데 천자의 설명이 들려왔다.

"어떠한가? 짐은 활의 시험을 아주 멋진 시험이라 생각한다네."

"아......예, 재밌는 시험이네요."

"하하, 그런가? 다행이로다!"

"신하."

담담한 내 부름에 천자의 똘망똘망한 눈빛이 내게 꽂혀왔다.

"어찌 제게 그런 과한 관심을 주시는지요."

순수한 의문이 담긴 질문에 천자는 고민하다 얼굴을 붉게 물들였다.

"짐은 왕자가 멋지다."

"예?"

"짐은 어릴 적부터 몸이 좋지 않았다. 그래서 밖을 활보하고 검을 휘두르며 말을 타고 대륙을 호령하는 이들을 부러워했음이다."

"아아......"

내 중얼거림에 천자가 씁쓸한 웃음을 지어 보였다.

"왕자를 보고 있으면 짐은 대리만족을 느끼는 모양이로구나."

"신하께선 언젠가 마음껏 뛰어다닐 수 있을 겁니다."

"헤헤, 말이라도 고맙구나!"

그저 덕담인데, 그렇게 기분이 좋은 것일까.

복잡하게 천자를 바라보던 나는 이내 고개를 저어 보인 후 숲으로 시선을 돌렸다.

그때였다.

쿠웅......

제사장이 들고 있던 조각상이 서서히 진동하기 시작하더니 불길할 정도로 새빨간 빛을 내뿜기 시작한 것이다.

"이......무슨?"

이에 당황한 신관이 뭐라 말하려던 찰나.

조각상에서 쏟아져 나온 빛이 이내 하늘을 찌를 듯 쏘아져 올라갔다.

마치, 신호탄처럼.

그리고, 그 빛을 받은 하늘은 곧 화답이라도 하듯 거대한 소리를 내며 새카만 흑운을 불러와 맑은 하늘과 밝은 태양을 뒤덮기 시작했다.

"제사장! 이게 무슨 일인가! 당장 소상히 고하라!"

"그......그것이 전하......"

자신도 이해를 못 했는지 당황하는 신관의 모습에 군왕이 눈을 부릅떴다.

우웅......쿠웅!!!

이윽고 하늘에서.

거대한 까마귀 형상의 새빨간 거대 조각상이 낙하하기 시작했다.

정확히 내가 있는 이곳을 기준으로 육망성을 그리듯 떨어지는 조각상은 지름만 수 미터에 길이는 수십 미터에 달하는 거대한 크기를 지니고 있었다.

갑작스레 하늘이 변하고 그곳에서 기괴하고 불길한 조각상들이 떨어지자 사방에서 혼란스러운 외침이 들려왔다.

그런 그들의 사이에서 나는 천자의 손을 잡아끌고 말없이 이 장소를 떠나가는 두 사람을 볼 수 있었다.

천자와 태후였다.

"어......어머니? 어디로 가시는......"

"쉿. 천자, 어미만 믿으세요. 이 어미가 지켜주겠습니다."

그 말과 함께 혼란 속에서 순식간에 사라져버리는 두 사람을 보고 있던 나는 고민하듯 눈을 감았다.

그러면서도 혀를 쯧쯧 차며 내가 한 손을 뻗었다.

쩌저적!!

동시에 조각상의 눈에서 쏘아진 빔을 받은 하늘이 갈라지며 그 안에서 무언가가 모습을 드러내기 시작했다.

찢어진 균열 너머에서 괴물들의 눈과 섬뜩한 얼굴이 보인다.

그리고 그 괴물들은 이내 이곳에 있는 모두를 죽이려는 듯 지독한 살기를 내뿜으며 균열 너머로 팔을 내 뻗어 찢어진 공간을 마구잡이로 확장하기 시작했다.

하나같이 흉측하기 그지없는 괴물들의 존재에 사람들의 얼굴에 혈색이 사라졌고 급기야 비명을 지르는 이와 패닉에 빠진 이들로 장내가 가득 찼다.

"꺄아아악!!"

"괴......괴물이다!"

"전하를 뫼셔라!! 저 괴물들이 혹여라도 전하께 다가가지 못하게 해라!!"

당황한 것은 무관들도 마찬가지였으나 그들은 자신들의 직업에 맞게 순식간에 이성을 되찾고 무기를 빼 들었다.

그리고 첫 번째 균열이 완전히 찢어지기가 무섭게.

나는 손에 쥔 청단이의 검신을 부드럽게 훑었다.

"청단이. 잘할 수 있지?"

대답은 들려오지 않았지만, 그것으로 충분했다.

내가 베는 것은 저 거대한 균열.

그 균열을 유지하는 힘의 흐름이다.

홍단이로 베어봐야 나올 놈들은 계속해서 쏟아져나올 테니 말이다.

적이 많으면 다리를 끊어버리는 게 최고의 선택일 수밖에 없다.

청단이를 역수로 틀어쥔 나는 거침없이 한발 내디뎠고 그대로 진각을 밟으며 눈을 번뜩였다.

"이 좋은 행사에 돈 봉투도 안 가져오고 난입하면 쓰나."

[초중검]

......

촤르르르륵!!!!!!

그대로 베어버릴 요량이었다.

하지만.

상대는 나를 알고 있는 자.

아무런 대책도 없이 이런 사태를 벌인 건 아니었던 모양이었다.

갑작스레 조각상에서 튀어나온 붉은 사슬이 마치 나를 억압하듯 사방에서 튀어나오며 낸 몸을 포박하고 감싸버린 것이다.

"크......크흐흐흐, 드디어 잡혔구나. 인간놈."

그리고. 섬뜩한 목소리와 함께 인간과는 다른 차갑고 비릿한 향을 풍기는 이들이 나를 포위하듯 허공에서 나타나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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