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43
만렙 영웅님께서 귀환하신다!
- 10권 17화
새카만 옷을 입은 십수 명의 남녀가 일제히 사방에서 나타나자 주변에서 깜짝 놀라 숨을 삼키는 소리가 들려왔다.
"형님!!"
당황한 바리스가 검을 뽑아 들고 외쳐왔지만 나는 담담하게 그들을 바라보았다.
촤르르륵!!
이윽고 묵직한 검은 금속으로 이루어진 사슬이 일순간 날아들었고 청단이를 움직이지도 못하게 묶어버렸다.
홍단이는 물리 계통을.
청단이는 비 물리 계통을 베어낸다.
놈들은 모종의 힘이 담긴 사슬로 내 몸을 포박했고.
그들에게 있어서 가장 위험할 청단이를 제압한 수단은 물리 계통의 사슬이었다.
"놈의 푸른 검을 제압했다!"
뱀파이어와는 나름대로 제법 오랜 악연을 가지고 있다.
놈들의 힘은 단순 세계수와 비교해보면, 비교하는 게 미안할 지경이지만.
그 분포도가 고르고 수가 많다는 점.
무엇보다.
놈들이 숨어있는 위치를 포착할 수 없다는 점은 확실히 대놓고 드러나 있는 세계수와는 달랐다.
그렇기에,
"이런 기회는 놓치면 안 되지."
놈들의 은신처를 찾을 절호의 기회가 된다.
"뭣들 하는가!! 저들을 제압하라!!"
군왕의 외침과 함께 허공에서 나타난 기괴한 존재들과 이곳의 인간들이 충돌하기 시작했다.
하지만 그런 와중에도 나를 에워싼 뱀파이어들은 전혀 움직이지 않았다.
촤르르륵!!
적정석에서 힘을 주고 뒤흔들어보자 녀석들의 표정이 일순간 흔들렸다.
"이걸로 뭘 하려고."
"네 힘을 빌릴 거야."
내 질문에 대답한 것은 나를 에워싼 뱀파이어들이 아니었다.
치지지지지직!!
허공이 찢어지며 면식이 있는 이가 모습을 드러낸 것이다.
리인포스 알파에서 발견했던 고대유적에서 본 하프 뱀파이어.
연금술사 뱀파이어인 밀피유였다
"밀피유......라고 했나?"
"응, 오랜만이야."
담담하게 말하는 그녀는 특유의 분홍빛 머리카락을 가볍게 쓸어넘기더니 이내 검은 사슬에 묶인 청단이를 경계하듯 바라보았다.
"그 푸른 검. 위험해, 흥미롭지만 목숨을 걸 순 없어."
"그래서, 꼴랑 이걸로 나를 제압하겠다고?"
"넌 이미 함정에 빠졌어. 이 함정, 매우 강력해. 상대가 강할수록 더욱 조여들어 와."
보통은 그렇지.
그 말과 동시에 그녀가 손에 쥐고 있던 지팡이를 높게 들었다.
우웅!!
동시에 내 몸을 기준으로 새빨갛고 불길한 마법진이 모습을 드러냈다.
마족의 언어가 적힌 마법진이다.
동시에 대량의 힘이 내게서 빠져나가기 시작했다.
그 주체는.
그녀의 지팡이에 꽂힌 커다란 마석이었다.
그러니까 멋대로 남의 몸에 빨대를 꽂았다는 소리인데.
침묵을 지키던 내가 조용히 입을 열었다.
"륀느."
스르륵......
대답 대신 들려온 소리는 허공이 일그러지는 기괴한 소리였다.
"흣?!"
깜짝 놀란 밀피유는 지팡이를 내게 향하는 것도 잊은 채 그대로 몸을 던져 피해냈다.
동시에 그녀가 서 있던 공간으로 륀느의 라이트 세이버가 한 차례 빛을 번뜩였다.
"쯧......륀느, 암살 실패. 이것을 낮게 평가."
"넌......그때 분명 그 백익......"
혼란스러운 얼굴로 중얼거린 밀피유의 눈동자에 욕망이 어렸다.
"더 강해졌어......연구하고 싶어......."
"륀느, 데이비님께 배운 단어를 선정. [엿이나 먹어라]를 높게 평가."
담담하게 답하고는 남은 손에도 라이트 세이버를 뽑아낸다.
그리고는 자세를 낮추기가 무섭게 덤벼들었다.
륀느는 분명 처음 깨어났을 때와는 비교도 할 수 없을 만큼 강해져 있다.
스스로 진화하는 녀석인 만큼 전과 큰 차이가 없는 밀피유가 버텨내기엔 륀느의 저돌적인 돌진이 부담스러운 것 또한 사실이었다.
쾅!! 쾅!!
묵직한 폭음이 들려온다.
사방에서 튀어나온 괴물들의 모습에 나는 슬슬 필요량을 빼앗겼음을 깨달을 수 있었다.
"슬슬 움직이자."
콰지직......
내 저항에 따라 조각상에서 뻗어 나온 사슬이 나를 제압하듯 짓누르기 시작했다.
소울 드레인.
마족들이 과거 사용하던 방식의 마법진으로 그 방식이 시간이 흐르면서 세련되긴 했지만 결국 원판은 변치 않았다.
그러니까.
"내가 이걸 몇 번 당했다고 생각하는 거야."
콰드드득!!
단단하던 사슬로 파고든 내 마나가 사슬의 구조를 순식간에 분석하고 분해해 버리자 사슬 곳곳에서 균열이 생겨나기 시작했다.
"어쭈? 조금 튼튼하시다. 이거지?"
단순 힘으로 끊어지지 않으면 다른 방법을 쓰는 수밖에.
나는 쓰러진 이들이 떨어뜨린 검을 스윽 훑은 뒤 그대로 마나를 끌어냈다.
"그래. 어디 가져가 봐라."
네까짓 놈들이 어디까지 가져갈 수 있는지 봐주마.
그그그그극!!
결정을 내렸으면 행동은 신속하게.
나는 지속해서 내 힘을 빼앗아가던 조각을 개무시한 채 힘을 있는 대로 끌어냈다.
평소 나는 대부분의 힘을 웬만하면 느낄 수 없도록 동화시켜놓는다.
그렇기에 정말 뛰어난 경지를 가진 이가 아니라면 내 내면의 힘을 느끼지도 못하는 게 현실이지만.
그 동화를 해제하고 그대로 운용하면 아주 재밌는 사태가 벌어질 거다.
쩌적!! 쩌저적!!
오랜만에 대부분의 힘을 동시에 방출하기 시작하자 주변에 영향이 가기 시작한다.
그리고, 그런 변화와 내 몸에서 흘러나오는 섬뜩할 정도의 강한 힘에 일대에 있던 모든 이의 시선이 내게 닿기 시작했다.
격한 싸움이 갑자기 멈춰진 건 덤이었다.
-거의 본능만 남은 저 괴물들조차 멈칫할 정도라니 어처구니가 없어서.
공포도 본능의 한 축이다. 기계가 아닌 이상 멈칫할 수밖에.
8서클에 달하는 원소마나와 동일한 8서클급 사령마나.
그리고 9위계급의 신성력이 일제히 방출되며 주변을 일그러뜨리기 시작하자 지면이 멋대로 떨리기 시작했다.
지면은 마치 지진이 난 것처럼 흔들렸고 고요하던 공간에 대량의 강풍이 몰아치기 시작했다.
투웅!!!
그리고, 그 힘이 임계점에 도달했을 때.
허공에서 무언가가 터지는 소리가 들려오며 나를 억제하던 리미터가 그대로 부서져 내렸다.
"끄아아악!!"
"커헉?!"
제어 없이 날뛰는 힘에 갑자기 영향을 받은 이는 어찌 될까.
멀쩡히 잘 지내던 땅 위에 갑자기 바닷물이 생겨난다면 결과는 뻔하다.
"커헉!"
피를 토하고 그대로 무너지는 하위급 뱀파이어들은 눈이 터질 듯 부릅뜨고 고통스러워 했고 상위 뱀파이어들은 피를 울컥 토하면서도 겨우 버티는 실정이었다.
"윽?! 이게 무슨......"
푸욱!!!
그리고, 그런 여파는 륀느와 대치 중이던 밀피유에게도 행해졌고.
밀피유가 잠시 멈칫한 그 순간 륀느의 라이트 세이버가 그녀의 심장을 꿰뚫어버렸다.
"륀느, 기계장치의 신을 이식한 골렘. 이 정도 힘에는 굴하지 않는다고 보고."
촤악!!
순식간에 밀피유를 제압한 륀느가 그녀를 짓밟았다.
나를 억압하던 사슬은 그 최대 허용량을 넘어선 힘을 견디지 못하고 그대로 부서져 내렸다.
동시에 다시금 내 손에 쥐어진 청단이가 시리디시린 푸른 빛을 내뿜기 시작했다.
"필요한 만큼 가져갔냐?"
"괴물......"
창백하게 질린 얼굴로 밀피유가 중얼거렸다.
"알면 덤비질 말았어야지."
"모두 도망쳐!!"
눈치 빠른 뱀파이어 하나의 외침과 동시에.
새파란 검강이 일대를 수놓았다.
[초 중검]
[횡베기 강(强)]
[천지 일참]
쩌억!!!
그들의 반응보다 빠르게 날아든 푸른 섬광은 저들이 도망칠 틈 따윈 주지 않았다.
눈이 아플 정도로 번뜩인 푸른 빛이 사라졌을 땐 많은 것이 변해있었다.
나를 포박하던 까마귀 조각상들은 일제히 박살 나 무너져 내렸고 긴장한 채 나를 지켜보던 뱀파이어들 중 살아남은 건 운이 좋게 범위에서 벗어난 극소수가 전부였다.
스릉......
할 말을 잃은 채 내 무위를 지켜보는 다른 이들을 무시한 채 나는 조용히 밀피유를 향해 걸어갔다.
"이번엔 도망 못 갈 거다."
전에 한 번 도망치는 걸 봤는데, 두 번이나 쉽게 도망칠 수 있으리라 생각하지 마라.
륀느에게 눈치를 주자 녀석은 라이트 세이버로 더욱더 밀피유를 강하게 제압했다.
이에 자신의 특기인 액체화가 되지 않는다는 것을 깨달은 그녀가 씁쓸하게 웃고는 조용히 말했다.
"마음대로 해. 패배한 이상 더는 할 말이 없어."
내 힘을 빼앗으려던 그들의 계획은 완전히 무너져 버렸다.
하지만 밀피유는 그리 아쉬워하는 표정이 아니었다.
"야심 차게 준비한 계획이 박살 나서 어쩌나."
"글쎄."
그 말과 동시에. 그녀가 고개를 까딱였다.
"우리 목표는 이미 완수했어."
담담하게 말하는 그녀에게 일대에 있던 모두의 시선이 모여들었다.
"너를 유인하기 위해 네 동생을 그런 상황에 몰리게끔 만들었고, 너를 불러들여 '현' 국과 충돌시켰으니까."
"신물에서 피 냄새가 나더라니, 그때 손을 썼나?"
"그래."
담담하게 말한 그녀가 발버둥을 친다.
하지만 륀느는 더욱 강하게 그녀를 제압해버렸다.
"하......하지만 신물만으론 네놈들이 수호신을 어찌할 수 없음이니!"
신물은 단순히 수호신과 접점을 만들어주는 도구일 뿐이다.
그걸로 강대한 힘을 지닌 존재를 제압하는 건 실상 불가능했다.
"그건 이 남자에게 물어봐."
담담하게 말한 그녀가 나를 바라보았다.
"뭔가......없어지지 않았어?"
"천자가 준 브로치."
내 말에 그녀가 고개를 끄덕여 보였다.
"확실히 우리들의 힘만으론 수호신을 제압하기 힘들어. 하지만. 네 힘이 담긴 브로치가 있다면 어떨까."
결국, 모든 사태는 뒤에서 이 모기놈들이 조장했다는 소리였다.
태후를 통해 내게 도발용 서신을 보내왔고 '현' 국의 상황을 악화시켜 나를 불러들이고 충돌시켰다.
내가 '현' 국에서 타냐의 상황을 알고 난리를 치는 틈을 이용해 저들은 이미 준비를 끝마쳐두었고. 내게서 훔쳐낸 힘을 이용해 수호신이 움직이는 이 활의 시험에서 놈을 제압하기 시작했다.
수호신은 강대한 힘을 지닌 오래된 영험한 존재다.
당연 그 안에 품고 있는 힘 또한 보통은 아니리라.
"그......그럴 수가......그런 불경한!"
제사장이 말도 안 된다며 소리치지만.
"이미 늦은 것 같은데?"
밀피유는 담담하게 답할 뿐이었다.
그 말과 동시에 결계 내부의 숲 안에서 거대한 빛의 기둥이 쏘아져 올라가기 시작했다.
주인에게서 빠져나온 이 숲을 수호하는 수호신의 힘이 새어 나오기 시작한 것이다.
"'명' 국의 태후는 제 아이를 살리기 위해 우리와 손을 잡았고 우리가 필요로 하는 준비물과 정보를 제공했어."
"그리고 너희는 너희가 가진 기술과 힘으로 그 천자를 살린다는 거짓말을 치고, 내 힘과 수호신의 힘을 모조리 빼앗아 갈 생각이었겠지."
"......"
내 말에 그녀가 눈을 살짝 크게 떴다.
"이봐, 잘 들어, 하프 뱀파이어."
이어지는 내 말에 그녀의 얼굴에 놀라움이 어렸다.
자신이 하프라는 사실을 겉으로 보는 것만으로 구분해내는 이는 사실상 없는 게 정상일 테니까.
"너희는 그 브로치를 가져간 게 아니야. 내가 준 거지."
"그게 무슨......"
"무슨 말이냐고?"
내 웃음에 그녀의 표정이 미묘하게 찌푸려졌다.
이에 나는 말없이 한 손을 뻗어 허공을 후려쳤다.
콰지직!!
동시에 그 안에서 죽창의 형태를 한 신창 롱기누스가 내 손에 쥐어졌다.
"이 숲의 수호신의 위치는 솔직히 아무도 모른다던데."
"그래. 찾느라 애 좀 먹었어. 네가 당장 해결하려 해도 수호신이 있는 위치를 모른다면......"
"왜 몰라. 브로치를 괜히 줬는지 아냐?"
내 질문에 그녀의 눈이 크게 뜨여졌다.
"위치는 적당하고......"
그리 말한 나는 바닥에 떨어진 창을 주워들었다.
그리고는 쓰러져 죽은 병사의 복대에 감긴 두꺼운 천을 풀어 양 끝을 묶은 뒤 창끝을 바닥에 고정했다.
"데......데이비 왕자. 무엇을 하려고......"
"저격합니다."
거대한 창이 활대가 되어주고 질기고 억센 천이 활시위가 될 것이다.
화살은......
그래. 이만한 크기의 활에 맞는 건 없는 게 정설이지만.
괜히 롱기누스 창을 꺼낸 게 아니다.
죽창형태로 고정된 롱기누스 창을 익숙하게 걸어 당긴 나는 왼발로 활대가 되는 창을 밟아 고정한 뒤 그대로 시위에 롱기누스 창을 걸었다.
신의 죽창.
전생에 지구에서 중동의 테러리스트들이 입에 달고 살던 단어가 있지 않나.
정확히는 프리아의 요술봉이라 해야겠지만.
롱기누스는 프리아 여신의 힘으로 만들어진 것이 아니니 상관은 없다.
"이거 한번 해보고 싶었는데."
신께서 함께하신다.
-무슨......
콰지지직!!!!
스스로 뇌광을 빛내기 시작하는 창을 보며 나는 망설임 없이 양팔에 힘을 주고 활시위를 당겼다.
꾸그그극!!
거대한 소리와 함께 기괴하게 뒤틀리는 활대가 휘자 거대한 활처럼 변하기 시작했고 나는 망설임 없이 결계 너머 울창한 숲의 한 지점을 향해 중얼거렸다.
"신의 요술봉이나 먹어라."
알라 후 아크바르!!
RPG로켓런처는 아니지만, 위력은 비교도 할 수 없을 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