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44
만렙 영웅님께서 귀환하신다!
- 10권 18화
85. 날뛰어봐야 손바닥 안이다. 그러니, 개처럼 뛰어라.
그그그그극!!
비명을 지르는 창은 단순한 나무였다면 당장에라도 부러졌을 것이다.
물론, 금속 또한 마찬가지.
단단한 창이라 해도 일정이상 휘어버리면 그 즉시 장력을 잃어버린다.
당연 미련한 짓이다만.
나는 신검 칼디라스를 만들고 청단이와 홍단이의 원형을 만든 천일야장에게 금속의 결을 보는 괴물이라 불렸던 놈이다.
또한, 그 성질 사나운 마법사의 신, 오딘에게 죽도록 얻어터지면서도 마나 컨트롤을 배웠다.
까짓거. 금속이 망가지더라도 잠깐 강화하는 정도는 어렵지 않다.
그러니까.
다른 이는 거의 불가능한.
나만이 가능한 방식이라는 소리다.
물론, 문제는 그뿐만이
아니었다.
뱀파이어들로 인해 오염된 핏빛 결계의 방어능력과 숲 어디에 있을지 모를 수호신을 정확하게 꿰뚫는 건 거의 복권 당첨급의 확률을 뚫어야 가능하다.
불가능하다고?
내가 브로치를 준 게 고작 단순히 이런 상황을 유도하기 위해서였으리라 생각하는가.
내 힘이고.
내가 목적을 담아둔 힘이다.
당연, 저 숲 속에서 내 힘이 방출되는 곳이 어디인지는 명확하게 알 수 있다.
"불가능해. 저 숲 어딘가에 있을 수호신을 찾는 건."
밀피유의 말을 무시한 채 나는 떨려오는 팔에 마나를 둘렀다.
뿌드득!!
동시에 천을 당기고 있던 오른팔에 굵은 힘줄이 돋아나며 파르르 떨렸고 이내 그 장력이 최대치까지 끌어올려 졌을 때.
[신궁술]
[태양 떨어뜨리기.]
망설임 없이 발로 활대를 지지하고는 신창 롱기누스를 잡고 있던 손을 자유롭게 해방한다.
투쾅!!!!
동시에 거대한 원형의 충격파가 수십 겹 생겨나며 금빛의 섬광이 일대를 환하게 비추었다.
그리고 거대한 소닉붐을 일으킨 섬광은 일대에 거대한 강풍을 만들어내며 날아들어 뱀파이어들이 변질시켜둔 수호신의 결계의 첫 번째와 거침없이 충돌했다.
쩌적!!
결과? 숲 전체를 감싸는 결계가 단단하겠는가. 아니면, 작정하고 일점사를 노린 내 공격이 더 강하겠는가.
섬광이 향한 방향은 거대한 빛의 기둥, 즉 수호신의 힘이 날뛰는 곳과는 완전히 다른 방향이었지만 그것으로도 충분했다.
애초에 내가 노린 것은 빛의 기둥. 즉 뱀파이어와 태후, 그리고 천자가 있을 것으로 추정되는 장소가 아닌 것을.
수십 수백 미터에 달하는 나무들이 섬광의 여파에 관통당하고 부서지는 와중에도 빛은 힘을 잃지 않았다.
쿠웅.......
멈추지 않고 날아든 섬광이 완전히 시야에서 사라졌을 즈음.
거대한 금빛의 광구가 숲 저편에서 일어났다.
대숲은 이미 수호신의 힘으로 가득한 만큼 나로서도 수호신의 정확한 위치는 직접 뒤져보지 않는 이상 찾기 힘들다.
하지만. 뱀파이어놈들의 계획을 듣고 놈들이 내게서 훔쳐간 브로치를 놈들이 미리 찾아둔 수호신의 심장에 박아둔다고 말하는 것을 들은 이상.
위치는 굳이 찾을 필요도 없었다.
내 힘이 있는 곳이 곧 수호신이 있는 곳일 테니까.
"어떻게......"
믿을 수 없다는 듯 중얼거리는 밀피유의 의문을 무시한 채 천을 풀어 휘어버린 창대를 버린 나는 가볍게 다리를 풀고는 답했다.
"백날 머리 써봐라. 너희가 하는 짓을 내가 안 당해봤을 거 같냐?"
실전경험이라는 게 그런 것이다.
전생의 삶에서 pc게임을 할 때 이런 경우를 보고 그렇게 부르곤 했다.
고인물.
무엇을 부정하랴. 틀린 말은 아니다. 상대적으로 자유로운 구현이 가능하던 회랑은 수많은 영웅들이 제 생에 만났던 갖은 수의 적들을 구현해냈고.
나는 수백 년간 그들과 충돌하는 것으로 경험을 쌓아왔다.
생각하는 게 돌고 도는 법이고, 발전하는 인간의 생각이란 다 비슷하기 마련이다.
-아무리 그래도 놈들의 행동패턴 하나하나를 훤히 꿰는 게 가능한가?
'반쯤은 추론하는 거지.'
목숨을 건 싸움은 영악하고 치사해야 이기는 법이다.
내 정보는 최대한 죽이면서, 상대의 정보는 최대한 많이 캐낸다.
아무리 힘이 강해도, 무식하게 힘만 휘두르면 뒤에 남는 것은 씁쓸한 결말뿐이니까.
밀피유를 제압하고 있는 륀느를 보며 내가 조용히 입을 열었다.
"륀느, 에나벨은?"
"임무를 문제없이 수행 중. 무리 없이 시험자들을 유도 중."
"포인트를 벗어나지 말라고 그래."
숲의 수호신의 힘을 이용해서 시험에 통과한다고? 오냐, 그거 내가 대신해주마.
신궁 아폴론 수준은 아니더라도 그 정도 실력의 궁수들 벽 한번 넘게 만들어줄 시험 정도야 어렵지 않게 내줄 수 있다.
방식이 조금 과격하긴 하겠지만.
타냐가 원한 것은 자신의 힘으로 벽을 허무는 것.
오라비 된 자로서 그 정도도 못 해줄까.
대신 나도 이번에는 중요한 일이기에 마냥 그쪽만 신경 쓸 수도 없었다.
"제압하고 있어. 괜히 도망치지 못하게."
또 도망치면 그땐 홍단이와 청단이를 붙여서 며칠간 놀아주게 해주마.
내 중얼거림에 륀느의 안색이 파랗게 질렸다.
대부분의 뱀파이어가 사살되었고 공습을 위해 튀어나온 괴물들이 일제히 정리되었으니.
남은 것은 이 일의 원흉을 치우고 진짜 목적을 이루는 것이다.
놈들은 나를 위험대상으로 꼽았지만, 내게는 놈들은 그저 가는 길을 방해하는 귀찮은 날파리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니었다.
"홍단이 청단이."
콰앙!!
내 부름에 바닥에 떨어져 있던 청단이가 굉음을 일으키며 허공으로 떠올랐다.
동시에 허공이 찢어지며 홍단이 또한 모습을 드러낸 뒤 허공에 떠올라 내 근처로 날아들었다.
"데......데이비 왕자! 어디로 가려는 건가!"
"이 사태를 정리하고 오겠습니다. 걱정 마세요. 가급적 숲은 더 이상 파괴하지 않을 테니."
애초에 태양 쏘아 떨어뜨리기 한 번에 이미 대숲의 일부가 깔끔하게 날아가긴 했다만.
"아, 그래도 상대가 날뛰면 좀 더 부서질지도 모르겠습니다."
"데이비 왕자!"
"정신 똑바로 차리세요. 내가 있건 없건 이놈들이 노린 건 수호신입니다. 그 수호신이 완전 제압당하면 이 나라는 끝장이니."
온화한 성품을 지닌 수호신수가 날뛰면 당연 그 여파는 가장 가까이 있는 이곳으로 향한다.
고작 이 정도 전력으로 수호신을 막겠다고?
어림도 없는 소리.
군왕을 포함한 '현' 국의 관리들을 뒤로 한 채 나는 망설임 없이 부서져 내리고 있는 결계 너머로 걸음을 옮겼다.
[월령보]
새카만 연기가 내 몸을 감싸듯 흩어진다.
첫 번째 발에 숲의 초입에 도착했고.
두 번째 발에 주변이 일변하며 거대한 숲으로 주변의 풍경이 변했다.
빠른 속도로 숲을 지나치면서 들려오는 것은 격한 바람 소리와, 그 바람으로 인해 생겨나는 풀잎이 흩날리는 소리가 전부였다.
그리고 내 걸음이 멈췄을 때 주변은 숲이 아닌 완전히 파괴된 잔해더미만이 보였다.
보이는 것이라곤 거대한 크레이터 뿐이었다.
하지만 한 가지.
내가 찾는 존재는 분명 거기에 있었다.
크레이터의 정 중앙에 한쪽 무릎을 꿇고 있는 거대한 거인.
-그르르르......
이미 이성을 잃은 듯 침묵하고 있는 숲의 수호신은 역시나 한 번 정도는 들어봤고, 어떤 존재인지 본적이 있는 존재였다.
뱀파이어들의 대화를 엿들으면서 혹시나 했다.
그렇게 시도한 도박이다만, 제대로 맞아 들어가자 나름대로 이 상황을 유도한 보람이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고대 환수. 괴석거인......"
-괴석거인?
"음......룩스 대륙의 환수야."
애초에 환수 소환사라는 특질능력자는 티오니스 대륙엔 존재하지 않는다.
환수 소환사로써 영웅의 반열에 올랐던 셰인 스크리프트가 살았던 룩스 대륙에 속하는 환수.
내 대답에 페르세르크가 놀란 얼굴로 괴석 거인을 바라보았다.
말이 환수지 솔직히 말해서 괴석거인은 자연의 일부나 다름없는 존재라고 들은 바 있다.
즉. 이놈은 이 티오니스 대륙에 존재할 수 없는 존재라는 소리였다.
어디서 많이 본 상황 같지 않은가.
이성을 잃고 미처 날뛰던 초월체.
샨드라 미네아의 분신체와 같은 상황.
인간의 형체를 하고 있지만 거대한 체격에 전신이 바위로 이루어진 이 거인은 그 크기만 100미터가 훌쩍 넘는 크기를 지니고 있었다.
이만한 크기의 거인이 주먹을 한번 휘둘렀다 하면 난리가 날 터.
애석하게도 그 수준으로 따지자면 그랜드 마스터급 환수였던 환수의 왕이자 육지의 패왕인 샨드라 미네아의 분신체만도 못하지만 오랜 시간 이 숲에서 바람의 힘을 흡수해온 탓에 기본적인 괴석 거인과는 확실히 다른 힘을 지니고 있었다.
-그그그그극......
이윽고 괴석거인의 붉은 안광이 내게 닿았다.
놈의 가슴 중앙에는 마치 누군가가 후벼 판 것처럼 홈이 패여 있었고.
그 안에는 작지만 익숙한 물건이 박혀있었다.
바로 내가 받았다가 도둑맞았던. 아니 정확히 내가 내어주었던 브로치가 꽂혀있었다.
그 폭발이 일어난 와중에도 보호된 것으로 보아 모종의 힘이 신의 죽창의 힘을 대부분 상쇄시킨 듯 보였다.
후웅...... 휘리리릭!! 터엉!!
말없이 고개를 돌려본 나는 괴석거인의 뒤편에 고고하게 꽂혀있는 거대한 묵빛의 창을 발견할 수 있었다.
내가 쏘아 보낸 신창 롱기누스였다.
단순 강도만 치면 아다만티움 이상급의 강도를 지닌 헬레니윰으로 만들어진 창이다.
물리적으로 파괴가 불가능한 권능이 담긴 만큼 이만한 폭발 속에서도 흠집 하나 나지 않았다.
파괴력, 내구성, 유틸성.
단순하면서도 심플한 기능.
어느 것 하나도 빠지지 않는 팔방미인(八方美人) 같은 무기다.
"역시 아이템 빨이 좋긴 좋아."
길고 날카로운 창을 무리 없이 아공간에 수납한 뒤 나는 조용히 입을 열었다.
그래, 방해꾼이 오기 전에 슬슬 내가 하려던 것도 해야지.
사전 답사를 하고, 중간에 잠시 빠져나갔던 이유도 이 때문인데.
-나를......나를 죽여다오.......
마치 지금을 기다렸다는 듯 말을 걸어오는 괴석의 목소리가 묵직하게 울려 퍼졌다.
"역시 이성이 있었구나,"
-나는......이 숲의 수호신 이 숲은 나의 보금자리. 그리고......나의 이성을 붙잡아주는 유일한......장소.
떠듬거리며 대답한 괴석이 붉은 눈을 빛냈다.
-허나......괴이쩍은 존재들이 나를 제압했다. 저항했지만 놈들은 집요했다....... 나의 약점을......알고......나를 파고들었다. 이성을......잃었다. 과거처럼 다시...... 날뛰었다.
"그 근본적인 원인은?"
-내 힘......이 숲에서......흡수하여 나의 이성을 잡아주던 힘을 빼앗겼다...... 인간 여자, 살린다고 했다......인간 여자가 데리고 있던 작은 인간......괴이한 병을 품고 있었다...... 그리고 내 힘을 빼앗은 것은 인간이 아니었다.
인간 여자는 태후를, 그리고 작은 인간은 천자를 말하는 것일 터다.
그리고, 인간이 아니라는 작자는.
시험 초기부터 모습을 감춘 태후와 같이 있던 '명' 국의 태평재상.
꼴에 뱀파이어면서 정체를 숨긴 줄 알고 당당하게 돌아다니던 놈이다.
녀석은 내가 눈치 못 챘다고 여기는 모양인데.
뱀파이어라는 놈들은 의외로 피 냄새가 짙어서 어지간해선 눈치채기 쉽다.
-상식적으로 그대가 아니면 그런 구분은 못 하지.
'말이 피 냄새지 상대의 마나를 훑어보면 자연스레 알게 돼. 뱀파이어는 고유 혈기를 지니고 있으니까.'
-그러니까. 보통은 그런 걸 눈치채기 어렵다는 게야.
'보이는 걸 어떻게 하냐.'
심안의 경지에 들면 눈을 감아도 사방이 보이는 법인데.
저들은 그 사실을 알아도 숨길 수 없을 것이다.
심안에 이른 자의 눈을 피할 만큼 뛰어난 은신능력은 없을 테니 말이다.
-다시, 이성을 잃으면 숲을 부순다...... 인간을 죽인다...... 나는 그 같은 파괴는 옳지......않다.
담담하게 말하는 괴석거인의 말에 나는 조용히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서, 다시 이성을 놓기 전에 죽여달라?"
-힘을......빼앗기고 있다......남은 힘을 모두 빼앗기면......나는 본능만이 남는 괴물이 될......거다.
이 숲에서 얻은 힘을 빼앗기면 본능만 남은 괴물이 될 거라고?
샨드라 미네아의 분신체와 똑같은 상황이다.
차이점이라면 샨드라 미네아는 미친 뒤 단 한 번도 이성을 찾은 적이 없고. 이놈은 이곳의 힘을 이용해 이성을 찾았지만, 다시 잃어가고 있다.
-강한 인간, 네가 쏘아낸 황금의 화살......그 화살이 미쳐있던 나를 일깨웠다. 인간......나를 진정시킬 방법을 알고 있었다.
눈치 빠른 바윗덩어리 같으니라고.
다른 놈들 모조리 속아 넘어간 나름대로의 회심의 연기였는데. 혼자서 눈치를 챘다.
나와 만난 적도 없는 주제에 말이다.
-그것이 나를 진정시켰다. 다만......이대로 가면 다시 나는 이성을 잃는다.
오래 살아온 괴석거인은 현명한 존재다. 그만큼 머리가 좋고 감 또한 좋은 편이다.
그러니까.
놈은 좀 전 황금의 섬광을 쏘아 보낸 게 나라는 사실을 눈치채고 있었다.
그렇기에 미쳐 날뛰던 놈을 제압해준 내게 부탁을 하는 것이었다.
자신을 죽여달라고.
그 전에 자신을 죽여달라고 하는 괴석의 말에 나는 조용히 고개를 저었다.
"괴석거인은 보통 온화한 성품의 환수들이지. 보아하니 혼자 이곳에 떨어진 것 같은데."
-......
내 말에 괴석거인의 붉은 안광이 한차례 번뜩였다.
-동족을......알고 있나?
"어느 정도는. 다만 그전에 물어보고 싶은 게 있어서."
내 말에 괴석거인이 억지로 몸을 일으켰다.
그리고는 천천히 손을 뻗어 네발로 기어오고는 천천히 고개를 내게 들이밀었다.
-이성을......유지할 시간이......많지 않다.
"너와 같은 존재가 또 있나?"
-알 수 없다.......
"좋아 질문을 바꾸자."
누가 널 이곳으로 보냈나.
샨드라미네아의 분신체는 미쳐있었다.
그렇기에 대화는 통하지 않았다지만. 이곳의 수호신. 괴석거인은 달랐다.
엄연히 이성을 유지하고 있었고 오랜 시간 인간과 우호적인 관계를 가졌다.
내가 찾은 이세계에서 넘어온 생명체 중 유일하게 자신의 마음을 가지고 있는 존재라는 소리였다.
조금 과격하긴 해도.
뱀파이어들이 벌인 작당을 미리 눈치챈 나는 이 기회를 역으로 이용했다.
접근이 금지된 이 숲에 당당하게 들어와 어디 있는지 모를 수호신을 찾아내고 대화할 건덕지를 만들기 위해.
꽁꽁 숨어있던 수호신을 찾는 건 나도 쉽지 않으니 나는 애초에 모기놈들을 길잡이로 써먹은 것이다.
그 과정에서 내 힘을 빼앗아간 놈들의 존재?
놈들은 내게서 훔쳐간 내 힘이 지금 내게 무슨 정보를 전해주고 있는지 눈치채지 못했다.
은신처를 찾기 힘들 정도로 은밀하게 움직이는 놈들이라고?
내 힘을 멋대로 빼내서 훔쳐간 시점에서 놈들의 본진은 이미 내게 들킨 것이나 다름없다.
내게서 1을 가져가겠다면.
너희는 10을 내놔야 할 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