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50
만렙 영웅님께서 귀환하신다!
- 10권 24화
87. 형이 거기서 왜 나와?
화염의 신수, 주작 불닭이는 눈을 부릅뜨고 존재감을 발휘하는 뇌운을 노려보았다.
분명 자신의 부모는 저놈을 갯지렁이라 표현했다.
같은 신수라도 급이 있지!
자신은 화염 그 자체! 영험한 불꽃의 정수가 아니던가!
생긴 것만 휘황찬란한 놈에게 겁을 먹을 만큼 약한 존재가 아니다!
자신은, 저 무시무시한 부모에게서도 살아남은 존재가 아니던가!
-끼이이이이익!!
거대한 포효와 함께 전신에 화염을 피워 올리며 날아오른 불닭이는 억눌러온 제 존재감을 드러내듯 뇌운을 동반하는 저 건방진 신입에게 쓴맛을 보여줄 때가 왔다고 판단했다.
이윽고, 거대한 벼락 속에서 상상을 초월하는 크기의 거대한 청룡이 모습을 드러내기 시작했다.
녀석의 크기는 상상 이상으로 거대했다. 길이는 수십, 아니 100미터에 육박해 보일 정도로 길었고 새파란 비늘은 그 어떤 검도 닿지 않을 것처럼 보였다.
그뿐만 아니라 날카로운 송곳니는 강철도 가볍게 뚫어버릴 것처럼 날카롭고 단단해 보였다.
단순히 외형 면에서 따지자면 확실히 청룡은 다른 신수들과 비교해도 월등히 거대한 형체를 지니고 있다.
다만. 거대한 포효를 흘리는 불닭이는 그런 청룡의 위세에 더욱 불이 붙은 모양이었다.
몸을 웅크린 녀석이 불꽃을 튀며 날아오르자 녀석의 거대한 형체가 더더욱 거대해지기 시작한다.
그러니까. 감히 내가 있는데 혼자 멋들어진 건 다 흉내 내고, 감히, 내가 있는데 커다란 몸집을 지니고 있다 이거지.
감히, 선배가 있는데.
대 선배가 눈앞에 있는데!
주작이의 내면에서 맹렬한 분노가 들끓기 시작했다.
분노조절 장애.
괜히 그런 별명이 붙은 게 아니라는 듯 주작은 거대한 포효와 함께 거침없이 분노를 토해내며 그대로 날아들어 허공에 떠올라 오만한 표정을 짓고 있는 청룡 쿠릉이를 들이받아 버렸다.
같은 신수인 것 따윈 불닭이에게 중요하지 않았다!
그저, 자신보다 더 튀는 저놈에게 우선 세상의 쓴맛을 한번 보여줄 필요가 있으니까.
-크아아아아앙!!
당연 초 고열의 화염에 노출된 청룡 쿠릉이는 비명을 지르며 휘청거렸고 주작이는 그런 쿠릉이의 반응에 더욱 분노를 터뜨리며 마구잡이로 발톱을 휘두르고 비늘에 상처를 입혔다.
내가! 내가 더 위대한 신수다!
제압보다는 자신의 힘을 자랑하는 듯한 그 행동거지에 당황한 것은 청룡 쿠릉이었다.
태어나면서부터 알 수 있었다. 자신은 위대한 신수이며. 바람과 뇌운을 관장하는 존재.
즉 쉽게 말해 위대한 존재라는 소리였다.
그런데, 깨어나기가 무섭게 자신의 이름을 감히 하찮은 쿠릉이 따위로 지어주는 저 빌어먹을 부모의 행동에 분노가 일었다.
-크아아앙!!
목소리는 나오지 않았지만 거대한 포효 속에는 흉포함이 가득 담겨있었다.
자신을 위협하는 거대한 화염의 새를 귀찮다는 듯 바라보던 청룡이었지만, 당연 갓 태어난 청룡이 힘을 모으기 시작한 주작을 마냥 무시할 순 없는 노릇이었다.
점차 위협적으로 다가오는 거대한 화염에 위기를 느낀 청룡은 그대로 몸을 비틀어 주작이를 밀어낸 뒤 그대로 입을 쩍 벌렸다.
동시에 빛을 머금은 구슬이 허공에 나타났고 쿠릉이는 그 거대한 구슬을 거침없이 입에 물고 눈을 번뜩였다.
청룡의 힘의 상징인 여의주였다.
거대한 힘의 덩어리인 여의주의 힘을 이용해 서서히 일대에 폭풍을 불러오기 시작하자 거센 바람이 주작 불닭이의 화염을 날려버릴 듯 강하게 불기 시작했다.
몸집을 키웠다 해도 감히 작은 새 따위가 자신을 이기려 드는가. 그런 마음을 가지고 있던 쿠릉이는 곧 들려오는 담담한 목소리에 자기 생각이 틀렸음을 깨달을 수 있었다.
"우리 불닭이. 기름 좋아하지?"
마치 자신이 더 잘났다는 듯 위세를 펼쳐대던 불의 새가 그대로 움찔거리더니 천천히 고개를 돌려 지상에 있는 작은 인간을 바라본 것이다.
자신을 태어나게 한 부모.
하지만 한낱 인간.
저게 뭐라고 저렇게 동요하는가 의문을 품었던 쿠릉이는 곧이어 주작이의 눈동자에서 이해할 수 없는 감정을 느꼈다.
"......장어가 정력에 그렇게 좋다던데....... 지렁이든 장어든 그게 무슨 상관이야. 청룡 정도 되면 어느 부위건, 몸에도 좋겠지, 잘 됐다. 성질 더러운 놈 푹 고아 먹고 체력관리나 하자."
그게 안 되면 치킨이라도 뜯는 수밖에.
혼잣말로 중얼거리는 인간의 목소리는 왜 그리 유난스럽게 귓가에 박혀 들어오는가.......
뭔가 이상함을 눈치챈 청룡 쿠릉이는 평소의 성격답지 않게 신중하게 물러나려 했다.
하지만.
-키에에에에엑!!!
마치 패닉에 빠진 것처럼 자신의 모든 것을 불태울 듯 타오르기 시작한 주작이가 날아오르며 거대한 원 형태로 빠르게 선회하기 시작했다.
동시에 허공에 떠오른 거대한 불고리가 수십 개 생겨났고 이내 불닭이의 의지에 따르듯 그대로 좁혀 들어왔다.
그 속도가 워낙에 빨랐던 탓에 쿠릉이가 그것을 피할 틈은 없었다.
콰드득!!
마치 단단한 쇠줄이 묶듯 화염의 고리는 순식간에 축소되어 쿠릉이의 육신을 묶어버렸다.
어? 이게 아닌데? 해본들 늦었다.
쿠릉이는 하늘에 떠올라 거대한 태양 덩어리가 되어버린 불닭이를 보고 눈을 부릅떴다.
화르르륵!!
그리고, 제대로 태어나서 처음으로, 아니 처음 신수의 힘을 이용해 싸운 것이긴 하지만, 어찌 되었건 처음으로 압도적인 힘에 찍혀 눌려 지상에 추락했다.
무려 100여 미터에 달하는 거대한 청룡의 위신이 바닥에 처박히는 건 한순간이었다.
-크르르르르......
이 어처구니없는 상황에 쿠릉이는 반사적으로 몸을 비틀며 위엄 넘치게 고개를 들었다.
그리고, 그곳에는 커다란 쇠 냄비를 꺼내 들고 기다란 호수에서 정체 모를 액체를 부어 넣고 있는 작은 소녀와. 또 어디서 가져왔는지 모를 채소들을 검은 칼날로 썰어 담고 있는 무표정의 엘프를 볼 수 있었다.
"륀느, 장어구이를 매우 높게 평가. 탕은 효율이 떨어진다고 분석."
[엘더 브레인, 장어가 아닌 청룡이라 명시합니다. 이것을 에나벨이 낮게 평가합니다. 푸훕.]
웃지도 않으면서 웃음소리를 내는 에나벨의 대답에 륀느의 표정이 처음으로 아주 잠깐 변동했다.
다만, 무표정에 담겨있는 륀느의 감정은 여실히 느껴져 왔다.
"륀느, 계급장 떼고 한판 붙는 걸 추천, 흠씬 두들겨 패줄 거라 선언해."
순식간에 빠루를 뽑아 들고 덤벼들려 하는 륀느의 행실에 에나벨이 곧이어 어디론 가로 급히 이동했다.
이에 쿠릉이는 반사적으로 에나벨의 뒤를 쫓았고 에나벨이 곧이어 한 소년의 뒤에 숨는 것을 볼 수 있었다.
자신을 태어나게 한 부모다.
부모이긴 하지만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 한낱 인간이다.
물론, 자신들 신수는 인간의 염원에 의해 태어나는 영험한 존재라는 것은 본인들이 가장 잘 알고 있다.
하지만 그래도 뛰어난 도력을 지닌 존재일 거라 믿어 의심치 않았는데.
어째서 저런 빈약해 보이는 어린 인간인 것인가.
그런 생각이 드는 반면 이상하리만치 인간의 모습에 쿠릉이는 두려움이 몸을 잠식하는 것을 느꼈다.
"음......온도는 어느 정도면 될까. 그래도 질길 텐데, 고온에 익히는 게 좋겠지?"
누구와 대화하는 건지 모르게 중얼거리며 새파란 불꽃을 피워올리는 부모는 곧이어 쿠릉이와 시선을 마주하고 빙그레 웃어 보였다.
"어떻게 해줄까?"
이쯤 되면 멍청이가 아닌 이상 깨달을 수 있었다.
저 부모는 지금.
자신을 저 커다란 솥에 넣어 탕으로 만들어버릴 생각을 하고 있다.
"륀느, 물 좀 끓으면 곁들일 동물 좀 잡아와라."
느긋하게 말한 부모가 천천히 다가와 콧등을 살살 문지르지만 쿠릉이는 바닥에 쓰러진 채 미동도 할 수 없었다.
압도적인 포식자가 바라볼 때 굳어버리는 것과 비슷한 느낌이었다.
갓 태어났지만, 과연 신수라는 존재는 이렇게 인간에게 미약한 존재였단 말인가.
태어나면서 가지고 있던 지식은 모두 잘못된 것이었단 말인가.
그런 생각을 하며 쿠릉이는 애처롭게 몸을 버둥거렸다.
하지만 단단하게 묶인 불의 고리는 쿠릉이를 놓아주지 않았다.
태어나서 처음(?)으로 잡혀먹힌다는 공포에 사로잡혔다.
제발! 제발 놓아줘!
-캬아아아악!!
결국 쿠릉이는 제 성격도 잊은 채 비명을 지르며 같은 신수인 주작 불닭이에게 도움을 요청했다.
비록 태어나자마자 싸우긴 했지만, 그래도 같은 신수니까.
도와주지 않을까 하고 말이다.
하지만.
-끼이잉......
그런 기대는 불닭이의 이어지는 행동에 완전히 무너져 버렸다.
거대한 화염을 내뿜으며 쿠릉이 조차 긴장할 만큼 거대한 힘을 내뿜던 불닭이가 순식간에 불을 꺼뜨린 뒤 복종하는 강아지마냥 배를 까뒤집고 인간의 손에 제 부리를 비벼대기 시작한 것이다.
철저히 강자에게 복종하는 약자의 모양새였다.
이윽고 불닭이의 시선이 쿠릉이와 닿았다.
그리고, 불닭이의 시선이 마치 자신을 보고 배우라는 것 마냥 의기양양하게 변했다.
"우리 쿠릉이. 성격이 흉포하기 그지없지?"
마치 타이르듯 말하며 콧등을 살살 쓰다듬던 부모가 곧이어 새빨간 검을 뽑아 들었다.
붉은 검을 본 쿠릉이가 입이 쩍 벌리며 눈을 부릅떴다.
거대한 동공이 떨리니 그 진동이 여지없이 보일 지경이었다.
위험하다! 저건 정말로 위험한 칼이다!
그런 생각이 들었지만, 부모는 아무런 관심도 없다는 듯 제 얼굴 앞에서 새빨간 검을 휘둘렀다.
"날이 잘 들려나 모르겠네. 어어?!"
서걱!!
동시에 쿠릉이의 자랑거리인 수염 한 가닥이 가볍게 잘려나갔다.
금속보다 단단한 수염이 잘려나간 쿠릉이의 눈이 급속도로 확장되었다.
"아이고, 미안하다. 수염이 잘려버렸네. 뭐, 다시 자라니 괜찮을 거야. 이번엔 실수하지 않고 위협만 할게, 위협만."
빙그레 웃는 부모의 말은 부드러웠다.
하지만 본능적으로 위험경고가 미친 듯이 울려 퍼지는 것을 느꼈다.
덤비면 안 되는 인간이 부모라는 사실을 느끼는 데엔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곧 있으면 저 무시무시한 검이 제 목을 자르리라!
두려움에 벌벌 떨던 쿠릉이는 급기야.
"어? 이 자식 거품 물었는데? 신수가 담이 이렇게 작아서야......쯧쯧."
거품을 물고 기절해버렸다.
* * *
"데이비님, 협박 실력이 매우 나쁘다고 평가. 륀느가 더욱 정진할 것을 추천."
"소중한 녀석들이야. 이 이상 겁을 주면 내성적으로 변할 거다."
담담하게 대답한 나는 문득 쓰러진 쿠릉이를 보며 고민에 빠졌다.
한낮 장어도 정력에 그렇게 좋다는데......신수인 청룡이라면......게다가 그 크기 탓에 양도 어마어마하다.
-세상에 진짜 정력증진을 고민하고 있는 게야?!
기겁하는 목소리에 나는 담담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좋은 게 좋은 건데...... 눈 딱 감고 조금만 잘라볼까."
홍단이를 빙그르르 돌리자 거품을 문 쿠릉이의 몸이 다시 한 번 움찔 한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이에 만족스레 웃어 보인 나는 불닭이를 보고 미소를 지웠다.
"이 녀석이 깨어나면 그곳으로 향해. 너희와는 다르지만, 자연의 힘을 흡수했었던 괴석 거인이 있을 거야. 그 녀석이 무너지지 않게 너희가 힘을 나눠줘."
쿠릉이도 적당히 겁을 먹었을 테니 적절하게 협조해줄 것이다.
-끼이이이익!!
반론은 절대 거부한다.
자칫하다간 닭요리가 된다는 사실을 잘 아는 불닭이는 거침없이 날개를 펄럭여 보였다.
"자. 그럼 사후 문제로 삼국의 사후 처리 협상이 남았네요."
'현' 국도 '현' 국이지만, 이번 기회에 '명' 국을 통해서 완전히 뜯어낼 게 남아있다.
그리고 그 결단은, 여기 잠들어있는 작은 아이인 천자와.
지금 사태를 보고 있을 '현'의 군왕이 될 것이다.
무력시위란 말이다.
단순 결과가 아니라, 현실을 보여주는 것이다.
"그렇지 않습니까? 군왕 전하."
빙그레 웃으며 수정구를 꺼내 들자.
잔뜩 굳은 얼굴로 나를 바라보고 있는 군왕의 얼굴이 보였다.
"데......이비 왕자......"
수정구 반대편에서 아연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수호신은 지켰고, 상징인 시험도 무사히 치렀습니다. 전쟁의 빌미가 될 이번 사태도 정리됐으니. 보상도 적진 않으리라 믿습니다."
"하지만......"
"물론, 저는 이 나라를 휘청이게 할 생각은 없습니다. 이깟 일로 전쟁을 할 생각도 없고. 단순히, 두 국가의 화합을 위할 뿐입니다."
애초에 당신이 타냐를 잘 신경 썼다면, 나를 포함한 라운왕국은 아낌없이 '현' 국을 지원했을 텐데요.
그거 참......
유감스럽네요?
"바라는 게......무엇인가."
"자세한 건 제가 협상에서 말씀드리겠지만 지금 언질을 주는 것도 나쁘진 않겠네요. 제가 바라는 건, 이 숲의 3분의 1에 달하는 영토. 그리고......"
타냐와 마리아가 사라진 곳을 바라보며 내가 중얼거렸다.
"볼모를 요구합니다."
내 소중한 동생이 친구가 없어서 말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