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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렙 영웅님께서 귀환하신다!-256화 (255/1,559)

# 256

만렙 영웅님께서 귀환하신다!

- 11권 5화

-사아아아악

마치 뱀이 우는 듯한 소리가 귓가에 울려 퍼진다.

그 누구도 듣지 못하는 소리이지만 그 소리는 그녀에게만큼은 들려왔다.

[여...... 이......]

'듣기 싫어......듣기 싫다고......'

우울하게 몸을 웅크린 은발의 소녀는 자신의 혼을 담는 그릇인 소년의 머리 위에 앉은 채 제 뿔을 더듬었다.

고대 유적에서.

그것도 자신이 도망쳐왔던 그곳에서 자신의 힘을 사용하는 건 정말 어리석은 짓이라고 스스로도 생각하고 있었다.

다른 상황에서는 큰 문제가 되지 않지만, 심연의 자락에서 자신의 힘을 사용했다간 바보가 아닌 이상 그들은 눈치를 챌 수밖에 없다.

세상 뒤편에 있을 그 괴물들은 자신을 여왕이라 부르며 오랜 시간을 찾아 헤맸다.

그 사실은 과거나 지금이나 변함이 없다.

과거 자신의 아버지는 자신을 구하기 위해 결국 그녀가 마왕에 오르는 것을 두고 볼 수밖에 없었다.

실제로 유일한 방법이었기에 그녀는 결국 여섯 가지의 계열이 아닌 전혀 새로운 계열.

심연의 마왕이라는 이름으로 마왕의 자리에 올랐고.

살아남기 위해 다른 모든 마왕 후보를 물리치고 독보적인 존재에 올랐다.

그게 주신 프리아가 짜놓은 판인 줄은 알고 있었다.

결과적으로 대적자인 제 아버지의 가장 큰 적이 될 마왕의 자리에 오른 그녀는 심연의 부름에서는 벗어났지만.

반대로 아버지와 반목하는 끔찍한 미래만이 남았다.

결국, 그녀는 검신의 검에 죽음을 맞이했고. 혼령이 되어 소멸하기 전 칼디라스에 봉인되었다.

'오래 버틸 순 없어......그렇다면......'

단순히 자신이 심연의 여왕이 되는 건 그녀 하나의 희생 문제가 아니었다.

그들의 말에 따르면 심연의 왕이 심연과 하나가 될 때.

동전은 뒤집힌다.

그러니까.

데이비에겐 미안하지만 그를 위해서라도.

그가 지키는 모든 이들을 위해서라도 그녀는 망설일 수 없었다.

'마왕이......다시 되어야 해.'

전 마왕이 아닌. 부활할 현 마왕으로서.

페르세르크는 죽은 듯 침묵하며 말없이 데이비를 향해 손을 뻗었다.

애절하게 떨리는 손끝이 결국 그의 몸에 닿지는 못했다.

'미안해......데이비......정말 미안해......'

스스로 생각하기에도 이건 정말 바보 같은 선택이었고.

피할 수 없다던 운명이라는 흐름이 정말 야속하게만 느껴질 뿐이었다.

* * *

낡은 고래 펍.

아직 개발이 채 되지 않은 과거의 건물을 싸게 사들여서 운영되고 있는 이곳은 예쁘고 아름다운 건물보다는 향수를 느끼게 해주는 낡은 컨셉으로 운영을 하는 펍이었다.

주로 밤에만 영업을 하는 편인데 주 고객층은 용병들이나 거친 일을 하는 인부들에게 인기가 많은 곳이기도 했다.

왁자지껄한 펍의 내부로 들어온 나는 말없이 뒤따라오는 아이나를 바라보았다.

경계심을 줘선 곤란했기에 가급적 아이나는 본래의 사내의 모습을 지우고 그녀 본연의 모습에 귀만 가리고 있었다.

"지저분하네요."

"암살자가 깨끗한 것도 따지나?"

목적을 위해선 시궁창도 구르는 게 암살자 아니었나?

내 우스갯소리에 아이나 헬리샤나는 조용히 고개를 저었다.

"그보다 가급적이면 잭이라고 불러달라고 말씀드렸잖습니까."

"네 얼굴에 잭 같은 딱딱한 이름이 어울릴 것 같아? 그리고 잭이든 아이나든 본질은 변하지 않아. 앉도록 하지."

내 말에 아이나가 뭔가 불만 어린 표정을 지었지만 침묵했다.

"어서 옵쇼! 뭘 드릴까."

평소라면 내 얼굴을 알아봤을 영지민이다.

하지만, 애석하게도 나는 현재 환영마법으로 얼굴의 모습을 바꾸고 있기에 알아보는 이는 없었다.

저들의 시선에 나는 단순히 평범한 인상을 지닌 용병으로 보이리라.

"주인장, 킨타소스 산 보리 맥주를 팔러 왔는데. 혹시 살 생각 있나?"

"예? 손님 여긴 저 천박한 사내놈들에게 술을 파는 곳이지 사는 곳은 아니오. 그리고 킨타소스는 또 어디여."

어처구니없다는 표정을 지어 보이는 주인장의 대답에도 불구하고 나는 계속해서 요구했다.

"지금 사면 맥캔지 산 꿀도 첨가해서 드릴게."

"허허! 거참 이 손님 보게. 주문 안 할 거면 집어치우쇼!"

그의 짜증스런 외침과 동시에.

몇몇 사내들이 자리에서 일어났다.

대부분은 후드에 가려진 아이나의 외모에 관심이 쏠린 듯 보였지만 나머지 몇몇은 아니었다.

서로의 눈치를 보던 사내들은 이내 천천히 내게 다가왔다.

"무슨 일?"

"형씨. 킨타소스 산 보리 맥주를 판다고? 우리는 관심이 좀 있는데."

"오, 그래? 그쪽도 펍을 하나?"

흘끗 시선을 보내자 사내의 어깨에 초승달과 그 초승달을 관통하는 검의 문양이 서린 문신이 새겨져 있다.

인신매매 조직인 블랙버드의 문양이다.

"그래, 맥캔지 산 꿀도 첨가해준다고? 기가 막힌 맛이지. 가격이 보통이 아니겠는걸?"

"뭐, 장사라는 게 다 그런 거 아니겠나."

내 느긋한 말투에 사내들이 음욕 어린 눈동자로 아이나를 바라보았다.

아이나는 그런 시선을 받는 게 불쾌해 보였지만 아무런 말도 하지 않았다.

"좋수다. 뭐. 따라오쇼. 살 사람을 소개해 드리지."

"좋아."

사내들을 따라 자리에서 일어난 나는 그들을 따라 미련 없이 펍을 나섰다.

서로 왁자지껄 떠들며 앞장서는 사내는 총 2명이었다.

서로 자잘한 대화, 저열한 음담패설을 나누며 걸어가던 사내들은 이윽고 시선이 거의 없는 외곽지역의 낡은 창고까지 나를 안내했다.

"확인작업부터 하겠수다. 보아하니 어디서 소개를 받고 오신 모양인데. 암구호를 말해주시오."

"달을 꿰뚫는 칼은 언제고 태양도 물어뜯으리라."

내 말에 사내들의 입가에 서늘한 미소가 어렸다.

"확실하구만. 따라오시오."

이윽고 창고의 바닥에 설치된 나무문을 열어젖힌 사내가 지하로 나를 안내했다.

그사이에 이런 공간까지 만들어놨다라......

분명 건물 불법개조는 안 된다고 공표하긴 했다만. 결과적으로 이 자식들은 씨알도 안 먹히더라.

좀 전 저열하게 떠들던 것이 거짓말이라도 된 것처럼 침묵하며 앞장서는 두 사내를 따라 들어간 나는 곧이어 그들이 만들어놓은 땅굴이 지하 하수로 쪽에 자리한다는 것을 깨달을 수 있었다.

하인스 영지에 있는 하수도는 하나뿐이다.

내가 각 가구에 물을 제공하기 위해 만들어둔 시설.

그러니까.

남이 열심히 만들어놓은 자리에 이딴 곳을 만들어놨다는 소리였다.

"뭐야."

"거래다. 보스는?"

한참을 들어가자 좁은 길목을 막고 있던 사내가 우리를 막아섰다. 이에 앞장서던 두 사내가 진중한 어조로 말하자 사내들은 나와 아이나를 훑어보더니 이내 아이나에게서 시선을 멈추고 혀를 핥았다.

"쓰읍. 거 침 고이는구만. 보스는 안에 있다. 들어가."

아이나의 뒷모습까지도 절대 놓치지 않겠다는 듯 따라오는 사내의 시선을 무시한 채 하수로 안쪽으로 들어가자 미리 만들어놓은 공터 같은 공간에 사내들이 상당수 모여있는 게 보였다.

그래. 거래를 한다면 시선이 잘 닿지 않는 지하만 한 곳이 없다.

"보스. 거래 대상입니다."

"거래? 지금 시국이 어떤 시국인데."

짜증스레 중얼거리던 근육질의 사내가 문득 아이나를 보더니 눈을 살짝 크게 떴다.

"거래하러 왔는데. 하지 않을 건가?"

"지금 시국이 좋지 않아. 이 영지의 영주가 냄새를 맡았다."

"애석하게 됐군. 그럼 거래는 집어치워야겠어."

"뭐?"

"모르나? 이 영지의 영주가 어떤 인간인지."

넌지시 떠보자 사내가 피식 웃어 보였다.

"제 영지에서 무슨 일이 벌어지는지도 모른 채 가신들에게 일을 떠넘기고 여기저기 돌아다니는 그 한량 왕자? 내가 알게 뭐야. 이렇게 영지를 발전시켜놓고 밖으로 싸돌아다니니 우리야 살판났지. 솔직히 멍청한 부하 놈들이 들키지만 않았어도 문제가 없었겠지만."

"흐음......"

아이나가 움찔거리는 것을 제지한 채 내가 고개를 까딱였다.

"그래서. 거래는 하지 않겠다?"

"뭐......시국이 흉흉한 건 사실이지만. 여기서 거래가 일어나는 걸 그 한량 왕자가 알겠나. 그래. 상품은?"

"급하게 굴지 말자고. 헌데. 너무 적대적인 것 아닌가? 조직원을 모조리 긁어모은 것 같은데."

하수도의 공간 안에는 수십 명에 달하는 사내들이 여기저기 자리하고 있었고 몇몇은 어둠 속에 몸을 숨기고 있었다.

"하. 뭐 그렇게 생각한다면 편한 대로 생각해. 어차피 고객에게까지 상해를 입히지는 않으니. 그래서 물건은?"

말 돌리지 말라는 듯 다시 물어온다.

이에 내가 아이나의 등을 떠밀자 그가 의외라는 표정을 지어 보였다.

"뭐야. 동료 아니었나?"

"상품이다. 어렵게 구했는데."

"뭐......제법 반반하긴 하지만. 딱히 놀라울 건 없군."

"글쎄. 그렇게 여길 수 있을까."

그리 말하며 내가 아이나의 후드를 넘겼다.

그러자 가려져 있던 아이나의 긴 귀가 드러났다.

"헙!"

"에......엘프!"

동시에 놀란 목소리가 사방에서 들려왔다.

엘프라는 존재는 일단 상품성만 따지면 가치는 어마어마할 테니까.

"보통 엘프가 아니야. 스스로 타락한 다크 엘프다. 당연히 성노예로는 목석 같은 엘프보다 한술 더 뜨지."

내 말에 사내가 흥미롭다는 표정을 지어 보였다.

"좋아. 거래하지. 얼마를 원하나."

"금화로 천."

"......터무니없는 가격이군."

"되팔기만 해도 엄청난 돈이 될 텐데?"

"......"

고민하듯 침묵하는 그 모습에 나는 짧게 한숨을 내쉬었다.

"집어치우지. 그만한 자금도 동원할 수 없다면 굳이 이곳과 거래할 이유는 없어. 보아하니 이 영지에 한곳이 더 있다고 들었는데."

내 말에 사내가 인상을 찌푸렸다.

"그 들개 놈들과 거래를 하겠다고? 그만두는 게 좋을걸. 그놈들은 우리처럼 신사가 아니야."

"너희 같은 쓰레기가 언제부터 신사였다고."

내 빈정거림에 주변에서 적대적인 목소리가 터져 나왔다.

하지만 나는 무시한 채 사내를 바라보았다.

"좋아......거래하지."

이윽고 결정을 내린 듯 사내가 고개를 까딱이자 아이나는 내게서 벗어나 말없이 사내들을 따라 어디론 가로 사라졌다.

"물건은 확실하겠지? 처녀인가?"

"뭐......그쪽이 수요가 높다고 하니 건들지는 않았다."

"좋아. 금화 천......응해주지. 다만, 흥정을 좀 해야겠어."

그 말과 동시에 사내들이 각기 무기를 쥐고 천천히 다가오기 시작했다.

"금화 천 개는 너무하지. 300."

"협박하겠다는 건가? 상도덕을 버리고?"

"여기서 너 하나 죽어 나가도 아무도 몰라. 여기 지하에선 내가 법이고, 내가 왕이다. 하인스 영지의 그 한량 왕자 따위가 나를 막을 수 있을 것 같은가?"

사내의 말과 동시에 나를 포위하는 사내들의 모습에 나는 그저 침묵했다.

저들이 어떤 선택을 내리건 상관없었다.

[치직......멀지 않은 곳에 있었습니다. 어떻게 할까요.]

곧이어 아이나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이에 나는 한 손으로 귀를 덮고 조용히 중얼거렸다.

"신호보내면 알아서 해."

담담하게 말한 뒤 나는 사내를 바라보았다.

"후회할 텐데?"

"신사적으로 가자고. 이 지하는 우리 영역이다. 우리 조직은 신용은 확실해. 다만 금화 천 개는 너무 비싸군. 300."

"2천."

가격을 내리는 게 아니라 오히려 두 배로 불러버리자 사내의 인상이 찌푸려졌다.

"500."

"4천."

"흥정이......장난으로 보이나?"

"너흰 내가 장난으로 이 가격을 말한다고 생각하나?"

내 질문에 사내가 고개를 까딱였다.

그러자 조직원들이 서서히 다가오기 시작했다.

"하나 물어보지."

"말해."

"블랙버드의 수장은 당신인가?"

질문에 사내는 조용히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하지만 페르세르크의 권능을 끌어다 쓰는 내 시선에 보인 그는 보스가 아니었다.

말없이 시선을 돌려 사내들을 스윽 훑은 나는 문득 이들 중에서도 유별나게 다른 인물을 하나 발견할 수 있었다.

"저쪽이 더 보스 같은데?"

내가 침묵하고 있는 왜소한 체격의 사내를 가리키며 말하자 주변에 싸늘한 침묵이 감돌았다.

빙고.

"아무래도......넌 여기서 죽어야 할 거 같군."

"얻어걸렸나?"

빙그레 웃은 나는 나를 완전히 포위한 사내들을 무시한 채 주변을 둘러보았다.

그리고는 오른팔을 들어 그대로 핑거 스냅을 튕겼다.

따악!!

동시에 내가 들어왔던 길목에서 새카만 화염이 일어나기 시작했다.

아......이거 꼭 해보고 싶었는데.

-또......?

계속해서 침묵하던 페르세르크가 기가 막힌다는 표정을 지어 보였다.

"양심이."

따악!! 화르르르륵!!

두 번째로 튕긴 손가락이 각 환풍구를 틀어막는다.

"인간을"

따악!!

마지막으로 유일한 퇴로로 추정되는 뒷길도 틀어막은 내가 섬뜩하게 웃어 보였다.

동시에 기괴한 현상에 당황한 사내들의 표정이 일그러졌다.

"만든다."

이 말을 아나?

모르면 가르쳐주지.

퍼석!!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가장 가까이 있던 사내의 머리통이 내 손에 빨려들어 오듯 잡히며 그대로 터져 버렸다.

"너흰 양심을 져버렸으니 인간이 아니구나."

동시에 내게 걸려있던 환각이 사라지자 사내들의 표정에 경악이 어리기 시작했다.

"내 땅에서 겁도 없이 설쳐댄 대가는 충분히 치러야 할 거다."

완전히 육편이 되어버린 사내의 품에서 단검 하나를 꺼내 든 내 전신으로 새카만 연기가 흘러나오기 시작했다.

암살자의 은밀 보법인 월령보의 전조현상이다.

"아이나. 그곳에 잡혀있는 영지민을 모두 구출해. 보이는 놈은 모두 힘줄을 끊어놔라. 다시 붙이면 되니."

죽도록 아프게 하는 건 좋지만 죽이진 마라.

"하......하인스 영주!"

내 정체를 깨달은 사내들이 기겁하며 물러나 무기를 빼 든다.

내게 걸리면 자신들은 다 죽은 목숨이라는 것을 알기에 나오는 행동이다.

실제로 여기까지 와서 아무런 보험도 없이 이런 일을 쳤을 리가 없다.

나는 천천히 한발 뒤로 뺀 뒤 그대로 아무것도 없는 허공에 손을 뻗었다.

콰악!!

그리고는 좀 전까지 아무것도 없던 허공에서 새카만 무복을 입은 사내 하나를 낚아채 바닥에 처박아버렸다.

"암살 기술이 이렇게 미약해서 밥 벌어 먹고살겠나."

너희들에겐 말하지 않았지만.

암살자는 타겟을 가리지 않는다. 그것이 똑같은 업계의 암살자라 해도.

실력만 받쳐주면 똑같은 대상일 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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