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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렙 영웅님께서 귀환하신다!-260화 (259/1,559)

# 260

만렙 영웅님께서 귀환하신다!

- 11권 9화

거대한 호수 위로 휘몰아치는 물줄기는 곧이어 물의 정령왕 엘라임의 분노를 대신 전하듯 거대한 물의 소용돌이가 되어 휘몰아쳤다.

바짝 마른 의상이 다 젖을 정도로 거칠게 몰아치는 물 폭풍에 나는 침묵을 고수했다.

"꺄악! 오라버니! 도대체 무슨!"

"으, 은공! 저, 정령왕께서 단단히 분노하신 것 같은데요!"

공사의 도움을 주기 위해 지원된 소수의 엘프들이 상황을 깨닫고 기겁해왔다.

그들에게 정령왕은 다시 보기 힘든 영험하고 신성한 존재이지만.

그들은 이미 내가 대지의 정령왕 노아스를 소환하는 것을 본 바 있었다.

그렇기에 또다시 정령왕을 소환한다고 해서 기겁하고 거품을 물 이는 없다고 봐도 무방했다.

정령왕을 하나 소환하면 나머지도 소환하기 쉬운가.

그건 아니었다.

아무리 친화력이 좋은 엘프라도 둘 이상의 정령을 소환할 땐 그 이상의 친화력과 정령 마나를 요구하는 편이다.

하물며 노아스와 계약한 내가 물의 일반 정령도 아닌 정령왕을 소환하려 하니, 보통의 경우엔 놀랄 수밖에 없었다.

촤아아악!!!

이윽고 거대한 물의 소용돌이가 다시 한 번 나를 향해 물줄기를 쏘아냈다.

퍼엉!!!!

하지만 기다렸다는 듯 내 뒤에서 튀어나온 흙의 거인.

노아스가 거대한 손을 뻗어 물줄기를 막아낸 것이다.

수압이 극도로 응축되어 닿는 대로 잘라낼 만큼 날카로운 물의 칼날이지만, 계약도 하지 않은 정령왕이 중간 계에서 사용할 수 있는 힘은 한계가 존재한다.

자연을 다루는 것은 정령왕이나.

그 정령왕이 자연을 다루기 위해선, 필요한 섭리에 따라 움직일 때만 대규모의 힘을 가용할 수 있다.

당연, 한 개체의 생명을 해치기 위한 것은 섭리에 어긋나는 행동이었다.

[노아스!]

이윽고 경악한 여성의 외침과 동시에 거대한 물의 회오리가 서서히 멎어 들기 시작했다.

주변을 짓누르는 듯한 거대한 정령왕의 힘에 일대에 있는 모두의 시선에 긴장감이 어렸다.

슈르륵......

이윽고 완전히 사라진 물의 회오리 안에서 푸른 빛깔을 지닌 액체로 만들어진 여성이 여유로운 걸음을 내디디며 모습을 드러냈다.

물의 정령답게 물에 빠지지 않고 잔잔한 수면 파장만을 만들어내며 걸어온 여인은 키만 따지자면 170대 정도에 늘씬한 몸매를 지니고 있었지만, 그녀를 인간이라 분류하는 이는 단 하나도 없을 것이다.

모습 자체가 물로 만들어졌으니까.

[당신인가요? 감히 나를 물라임 같은 되먹잖은 이름으로 소환한 것이.]

"맞아."

담담한 내 답변과 동시에 나의 앞을 막아섰던 노아스의 손이 서서히 치워졌다.

나를 한참 째려보던 물의 정령왕 엘라임은 곧이어 노아스와 눈을 마주치더니 침묵했다.

[당신은......]

정령왕은 완전한 단일 개체가 아니다.

같은 정령왕이라도 자연 곳곳에 엘라임이라는 존재가 있고, 몇몇을 제외한 대부분의 세계에 존재하는 것이 정령왕이다.

하지만 눈앞에 있는 엘라임은 사실상 단 하나뿐이었다.

정령 여제.

내 정령술의 스승이자 마왕 유르그의 부인이었던 유리아나가 계약했던 정령왕이니까.

[정령왕의 소환조건....... 순수한 의지와 갈망하는 마음. 대량의 정령 마나, 하지만 당신은 단 하나 밖에 조건을 이루지 못했습니다.]

"잘 알고 있어."

솔직히 내 조건으로는 정령왕을 소환하기 힘들다.

그렇기에 노아스를 소환할 때엔 유리아를 이용해 노아스를 속여먹은 뒤 제압해 계약을 했었으니 말이다.

그렇다면 땅의 정령왕이 어려운데 물의 정령이라고 쉬울까.

당연히 대답은 '부정' 이였다.

촤악!!!

말없이 나를 노려보던 그녀가 순식간에 물줄기를 채찍처럼 만들어 나를 향해 휘둘러 들어왔다.

그녀는 나와 계약하기 위해 나타난 것이 아니다.

정령왕을 소환하기에 어려운 점이 많은 만큼 지금의 준비물로는 사실상 올바른 정령 소환이 힘든 게 현실이다.

그렇다고 포기할 나였던가.

그럴 리가.

파앙!!!

마치 기다렸다는 듯 다시 팔을 뻗어 엘라임의 물의 채찍을 막아낸 노아스는 끝내 침묵했다.

대신 씁쓸함이 담긴 침음만이 흘렀다.

[진정해라, 엘라임.]

[당신은 지금 자신이 누굴 옹호하고 있는 건지 잊은 건가요?! 저 인간은 정령을 우롱하고 감히 낮잡아본 인간입니다!]

화를 내며 엘라임이 발을 구르자 호수의 잔잔한 표면이 또 한 번 거칠게 일어났다.

[너를 부르도록 협조한 것은 다름 아닌 나다.]

짧게 말한 노아스가 천천히 몸을 일으켰다.

수십 미터에 달하는 그 거체를 일으킨 그는 곧이어 나를 감싸듯 막아서고 조용히 말했다.

[내 계약자는 그 여자의 유일한 흔적이다.]

[......]

짧은 침묵이 있었다.

노아스는 제법 진중한 표정이었지만.

솔직히 나는 노아스의 얄팍한 꼼수를 금방 눈치챌 수 있었다.

나만 당할 순 없다!

그런 생각이 녀석의 머릿속을 가득 채우고 있을 것이다.

이 비열한 흙덩어리 같으니라고.

그러면서도 나는 입 밖으로 그 말을 꺼내진 않았다.

결과적으로 그를 이용했기에 일이 쉽게 풀렸으니 말이다.

"실제로 보는 건 처음이지?"

회랑에선 친해질 대로 친해진 사이였지만.

실제로 그때 만났던 엘라임은 진짜 정령이 아닌 유리아가 만들어낸 엘라임과 완전히 같은 환영일 뿐이다.

진짜 엘라임은 나를 만난 적이 없다.

그렇기에 나는 익숙한 성격을 지닌 그녀임에도 처음 보는 이처럼 조심스레 다가갔다.

[게다가, 이미 소환된 이상 너도 끝난 거다.]

그런 나를 돕기라도 하듯 노아스가 중간에서 바람잡이를 해대는 게 조금 걸리긴 했지만 말이다.

[그게 무슨 말이죠?]

[아직 모르고 있는가. 네 발밑을 봐라.]

노아스가 한숨을 내쉬며 말하자 엘라임은 곧 자신이 서 있던 호수의 바닥을 내려다보고 눈을 크게 떴다.

본래 이 마법진은 성질 더럽고 계약하기 까다로운 번외속성 정령들과 계약하기 위해 성깔 나쁜 정령여제, 유리아나가 만들어낸 덫이다.

본래의 4대 속성 정령과는 연이 없는 마법진이다만.

불법 개조는 또 내 전문이다.

[이건......]

"크흡."

내 경박한 웃음에 도리어 당황한 엘라임이 한발 물러났다.

[그, 그럴 리가, 이 마법진! 설마!]

"잘 왔다. 다른 정령왕이 나올까 걱정했는데. 미끼를 물고 네가 나타나 줘서."

다른 정령왕이 아닌 너를 불러내기 위해서 굳이 그런 사기를 친 건데.

잘 먹히는구나.

그렇게 말한 내가 그녀를 향해 걸음을 옮겼다.

호수의 위에 서 있는 그녀를 향해 내가 스스럼없이 걸음을 옮기자 주변에서 당황한 시선을 보냈지만 마치 땅이 살아있는 것처럼 내가 가는 지면에 흙의 발판을 만들어주자 신기하다는 표정을 보내왔다.

반대로.

내 접근에 엘라임은 도리어 당황해 한발, 한발 물러났다.

그리고는 한 손에 거대한 물의 검을 만들어냈다.

[고, 고고한 섭리의 정점에 있는 왕으로서!! 이 같은 사기극은 용납할 수 없어요! 제압 마법진 이라니!!]

"정령 여제가 혼돈의 정령과 계약할 때, 네가 나서서 동족을 속여먹었던 건 잊어먹었나 보지?"

[다, 당신이 그걸 어떻게......흡!!]

정령왕급의 존재는 상대와 계약하지 않을 수도 있다.

그렇기에 엘라임은 자신을 물라임 따위로 부른 내게 물벼락을 먹여주고 당당하게 돌아갈 생각이었을 것이다.

하지만.

한번 모습을 드러낸 이상 그녀는 계약 이외에 돌아갈 방법 따윈 없다.

"들어올 땐 마음대로였지만, 나갈 땐 아닌데."

아, 이거 꼭 해보고 싶었다. 라는 말이 목구멍까지 올라왔다.

내 빈정거림에 엘라임의 몸이 크게 요동쳤다.

그녀의 감정에 휘말리듯 움직이기 시작한 것이다.

"계약을 요구한다. 어찌 되었건 너는 내 얄팍한 염원에 따라 소환되었고, 나는 네게 계약을 제안할 힘을 지니고 있어. 틀렸나?"

내 말에 그녀가 침묵했다.

"륀느, 인류의 구원자."

이에 내가 잔잔한 수면 위로 발을 내디디며 말했다.

분명 빠져도 이상하지 않으련만.

내 발은 수면이 마치 딱딱한 바닥이라도 된 것처럼 아무렇지도 않게 버티며 나를 지탱했다.

휘리릭!! 텅!!

이윽고 묵빛의 노루발못뽑이.

즉 빠루가 쥐어지자 엘라임이 눈을 크게 떴다.

홍단이와 청단이는 사용할 수 없다.

힘이 약해서가 아니라. 너무 강해서 말이다.

물리적이든 비물리적이든 엘라임을 해할 생각은 없다만.

적절한 회유와 협박은 좋은 수단이다.

"정령 여제 유리아나는 내게 너희들을 부탁한다고 말했다. 굳이 정령계에 내가 찾아갈 수 없으니 너희들을 이리로 부를 수밖에. 그런데 그런 내 마음을 몰라주고 속을 썩인다면......"

사랑의 매를 들 수밖에 없지 않느냐.

물론, 좀 많이 아프겠다만.

손에 쥐어진 묵빛 빠루는 엘라임을 진정시키는 데에 탁월한 효과를 가져왔다.

[거짓말....... 그녀는 벌써 수천 년 전에 죽었습니다. 당신 같은 어린 인간은 그녀를 만날 수 없어.]

[엘라임, 그의 말은 진실이다.]

계속해서 반복하는 노아스의 대답에 짜증이 난 것일까.

결국 엘라임이 격분하며 소리 질렀다.

[당신은 누구 편인가요?!]

분위기 파악 못 하고 끼어든 건 노아스지만.

엘라임 또한 쓸데없이 고집이 너무 강하다.

그 사실을 모르진 않았지만, 실제로 계약할 때 이렇게 고생할 줄은 생각지 못한 나였다.

"싫으면 계속 거절해도 돼."

대신 그땐 말이 아니라 인류의 구원자가 나설 거다.

빙그레 웃으며 아무렇지도 않게 내가 협박을 해대자 그녀가 기가 막힌다는 표정을 지었다.

[악독한 인간!]

"엘라임, 난 지금 네 힘이 필요해. 이런 짓을 저질러야 했을 정도로."

[당신......]

"나는 네 말대로 아직 조건이 부족하다. 널 정식으로 소환하기 위해선 몇 년이고 더 있어야 가능할 거다. 그건 내가 가장 잘 알아. 다만, 지금 나는 네 힘이 절실히 필요하다."

표정을 지우고 내가 진중한 어조로 말을 이어나갔다.

"그러니 고귀한 정령왕인 네게 부탁하는 거다. 나를 도와줘. 네 힘을 조금이라도 빌려줬으면 좋겠다."

내 말에 그녀는 한참을 침묵했다.

[엘라임, 염원의 목적은 우리 정령왕의 판별이다. 그는 비록 정식은 아니나 널 소환하는 데에 성공했고 계약조건을 갖추고 있다. 계약 거부를 할 명분이 없다는 걸 잊지 마라.]

무엇보다.

다른 이도 아니고 정령 여제의 유일한 흔적이니.

그 말이 쐐기가 되었던 모양이었다.

결국, 침묵하던 엘라임은 짧게 한숨을 내쉬고는 천천히 내게 다가왔다.

그리고는 검지와 중지를 붙여 내 이마에 손을 올린 뒤 말했다.

[물의 근원]

[태초의 수맥.]

[자연의 일부인 물의 이름으로 그대의 소환을 인정한다.]

존대가 아닌 하대로 바뀐 엘라임의 목소리는 진중했다.

우웅!!

동시에 그녀의 전신으로 대량의 정령력이 쏟아지기 시작하며 거대한 물줄기를 만들기 시작했다.

왕의 강림으로 인해 물의 정령들이 활개를 치기 시작한 것이다.

[나, 물의 정령왕 엘라임이 묻겠다. 그대는 나의 계약자로서 존재할 것인가.]

"승낙하지."

[계약의 인이 새겨진 순간부터 나는 오로지 그대의 정령. 그대에게 다른 물의 정령과의 계약은 허하지 않겠다.]

짧은 대화가 오가고 그녀의 손에서 차가운 기류가 흘러나와 내 이마에 스며들었다.

동시에 푸른색의 문양이 내 이마에 생겨났다가 스르륵 흩어졌다.

"계약 정령이 된 것을 환영한다. 엘라임."

[......뭐 좋아요. 당신이 무엇이 그리 급하고 중하게 여겨서 그러는지 말해봐요. 나는 많이 바쁜 정령이니, 금방 해결하고 돌아가 봐야 하니까.]

심통한 어조로 말하는 그녀의 모습에 나는 고개를 끄덕이며 그녀의 뒤편을 가리켰다.

"저거."

내 말에 그녀가 의아한 표정을 지어 보였다.

[뭘 말하는......]

"여기 있는 호숫물, 전부 빼서 잠시 들어줄래? 공사할 거니까. 노아스! 준비는 됐나?"

[......그래, 계약자여.]

급한 일.

그래, 맞다. 급한 일.

그런데, 그게 꼭 엘라임이 생각하는 그런 계통의 일이라는 말은 나는 한마디도 한 적이 없다.

내 요구에 푸른 빛을 띠던 엘라임의 얼굴이 대놓고 일그러졌다.

정령왕을 거침없이 공사에 부려먹을 수 있는 패기는 이미 회랑에서 마스터할 만큼 배우고 온 게 바로 나다.

바들바들 떨며 분노를 표출하는 엘라임을 무시한 채 내가 손뼉을 짝짝 쳤다.

"자자, 제대로 일하자고. 명색이 정령왕인데 제대로 해결 못 하면 정령계에 소문이란 소문은 다 내줄 테니."

특히 하급 정령들은 겁도 많지만, 굉장히 수다스러우니까. 한번 퍼지면 얼마 안 가 정령계 전체에 소문이 퍼질 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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