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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렙 영웅님께서 귀환하신다!-266화 (265/1,559)

# 266

만렙 영웅님께서 귀환하신다!

- 11권 15화

싸움에서 가장 상책이 무엇인가.

싸우지 않고 이기는 것.

그녀는 훌륭하게 내 전의를 꺾어버리고 그 틈을 타 도망쳤다.

물론 그녀는 내 정체를 모르기에 이런 상황을 유도했을 리 없다.

그녀가 한 것은 단순 검에 남아있던 신성력의 잔재를 끌어올려 나를 견제하고 공간이동 마법을 사용한 것.

공간이동 마법이 7서클이라는 점을 감안하면 그녀가 사용할 수 있는 마법은 아니지만. 그녀는 결과적으로 모종의 방법을 통해 내게서 탈출했다.

그녀의 입장에서 나는 그야말로 현재 상대하기 힘든 적일 테니까.

하지만 그녀가 끌어올린 신성력이 어디서 오는 힘이던가.

주신 프리아.

[얼마 남지 않은 구원을 바라는 가련한 아이에게 마지막 손길을.]

-데이비. 쫓아가지 않아도 괜찮은 게야?

"무슨 수로."

내 대답에 그녀가 이해할 수 없다는 표정을 지었다.

-본녀의 눈을 빙다리 핫바지로 보지 않는 게 좋을 텐데. 그 여아가 사라지기 전 그대가 추적마법을 몸에 심어두는 것도 보았건만. 어디서 발뺌질인가. 미래를 모르니 당할 수는 있어도 그대가 아무것도 없이 그냥 당할 인간상은 아니지.

빙다리 핫바지라니. 어디서 그런 못된 말을 배워서.

-그대에게 배웠네. 그것도 조금 전에.

한마디를 지려 하지 않는다.

그녀의 말대로 지금 실시간으로 레이나와 그 일당이 어디로 사라졌는지는 알 수 있었다.

하지만.

나는 미련 없이 걸어두었던 추적마법을 해제했다.

-데이비?

"이제 없네?"

-......본녀랑 농담이나 나누자고?

어처구니가 없다는 듯 그녀가 내 귓불을 마구잡이로 잡아당겼다.

하지만 나는 쓴웃음만 지은 채 그녀의 머리를 손가락으로 푹푹 눌러 쓰다듬었다.

"그냥 보내줘."

-뭐?

그냥, 하고 싶은 대로 하게, 두자.

잔뜩 가라앉은 내 목소리에 그녀가 의아한 표정을 지었다.

내 변화에 그녀가 이해할 수 없다는 표정을 지었다.

-어째서? 솔직히 본녀의 입장에선 눈앞에서 어처구니없이 놓쳤으니 그대가 길길이 날뛸 거로 생각했는데.

"나도 확인하기 전까지는 놔주지 않으려고 했는데."

확인할 필요가 없어졌다.

그녀가 왜 이곳에 있는지는 몰라도, 누구인지는 알아버렸으니 말이다.

"게다가 조만간 다시 볼 거다."

내 말에 그녀가 이해할 수 없다는 표정을 지어 보였다.

-데이비, 도대체 왜 그러는 거야.

"직접 봐."

페르세르크는 내 기억을 읽을 수 있다. 그것도 좀 전에 있었던 기억이라면 말이다.

한번 보면 잊을 수 없는 체질을 지니게 된 내게 그녀가 마지막에 필사적으로 염원을 담아 발현했던 빛은 꽤 충격적이었다.

"내가 없었기에."

너무 많은 게 달랐다.

-세상에, 이게......이게 가능한 일이라고?

조용히 내 이마에 자신의 이마를 가져다 대고 기억을 읽어 들인 페르세르크가 잔뜩 굳은 표정을 지었다.

나머지 놈들은 평범하기 그지없다.

수인남성도, 어린 소년 마법사와 소녀 신관도.

밝은 인상을 하고 있던 전위 계열의 여성 검사 또한.

어디서든 흔히 볼 수 있는, 그저 재능이 조금 좋은 편인 아이들이다.

단순히 용사라는 입장을 선망하였기에 그녀를 따라나선 것뿐이다.

하지만 그들과 다르게 그녀는 이질적이었다.

이방인이었고, 내게 가장 익숙하면서도, 익숙하지 않은 존재였다.

그렇다면 그녀가 나를 붙잡았을 때 그것이 보인 이유는 무엇인가.

생각해보면 간단했다.

이곳으로 그녀를 보낼 수 있는 존재. 프리아 여신이 다시 무언가를 던져왔다는 것.

"페르세르크. 심연의 권능이 볼 수 있는 대상은?"

-......이 세상의 법칙에 들어오는 자......설사 타차원이라 해도 피할 수 없어....... 하지만, 다른 시간대라면.......

그러니 유일하게 심연의 권능이 먹히질 않지.

-하지만 이건 이상하지 않는가? 그런 게 가능해?

"가능할 리가 있나."

시간이라는 건 어떤 의미로는 중력에 따라 얼마든지 뒤섞이고 바뀔 수 있는 물리 법칙이다.

하지만 한 가지 사실이 빠졌다.

바로 시간의 흐름은 신의 의지에 따라 조율된다는 것.

미래와 현재, 과거는 공존할 수 없다.

그런데 눈앞에 현실이 있다.

그 원인은 여러 가지 생각해볼 수 있겠지만.

직접 본인의 입으로 듣는 게 좋으리라.

그녀의 강렬한 염원 속에.

지금의 내가 아닌. 하인스의 영주인 내가 있었으니.

이쪽에선 기다리면 알아서 다시 만나게 될 터다.

벌레 울음소리 하나 들려오지 않는 폐허가 된 지하 공간에 홀로 남은 나는 곧 이 사태의 소란을 눈치채고 몰려오는 대규모의 인원을 볼 수 있었다.

볼티즈 왕국 수도의 경비대였다.

이만한 폭음이 있었는데 볼티즈 왕국이 모르는 것도 웃긴 일이다.

말없이 서 있던 나는 곧 지하로 밀고 들어오는 수많은 인원들을 말없이 바라보았다.

"움직이지 마라!! 네놈은 포위되었다!"

수십 명의 병사가 긴장한 얼굴로 창대를 쥐고 나를 겨누고 그 뒤를 이어 궁병이 활시위에 화살을 메겨 나를 겨누었다.

저들에게 나라는 존재는 자신들의 왕국에 와서 테러를 일으킨 범인.

이곳에서 무슨 일이 있었는지는 저들의 알 바가 아니었다.

"네 이놈!! 감히 여기가 어딘 줄 알고 소란을 피운 것이냐! 이곳은 대검의 국가! 볼티즈 왕국의 수도! 무엇 때문에 이곳에서 이 같은 테러를 일으켰는지는 몰라도 내가 온 이상은 끝이다! 순순히 오라를......"

당당하게 외치던 그의 말을 끊은 채 내가 입을 열었다.

"소속을 말해라."

나는 볼티즈 왕국의 왕족이 아니기에 저들에게 뭐라 할 입장은 아니다.

하지만.

하인스 영지에서 잡혀 온 이들이 이곳에서 팔리고 있었다는 사실만 존재한다면.

달칵.

가볍게 가면을 풀어 내린 내가 사내를 보며 다시 입을 열었다.

"나는 라운왕국의 1왕자 데이비 올 라운이다. 그대는?"

"무......무슨......"

"마침 볼티즈 왕국 쪽도 할 말이 있었는데 잘됐다. 볼티즈 왕국의 국왕께선 현재 위중하시다고. 대리 섭정을 맡은 알루아 공작은 수도에 있나?"

내 질문에 그가 당황한 듯 주춤거렸다.

"우......웃기지 마라! 내가 그깟 거짓말에 속을 것 같......!"

투웅!!!

한 손을 가볍게 휘젓기가 무섭게 사방에 거대한 빛의 영역이 펼쳐진다.

모르는 이들이 본다면.

충분히 성자의 기적을 펼친 것 같은 모양새이리라.

"세......세상에......"

"시......신이시여......"

마치 신이 강림한 것을 본 이들처럼 병사들이 무릎을 꿇기 시작했다.

"진짜인지 아닌지는 눈이 있으면 알겠지. 내가 왜 이곳에 와서 이 난리를 쳤는지 너희는 몰라도 알루아 공작은 짐작하고 있지 않을까 하는데."

"......"

"안 그런가? 홀슨 동문 수비대장."

이름 정도야. 권능으로 까뒤집으면 나오는 거고.

내 말에 그가 침묵했다.

* * *

볼티즈 국가는 당연 이번 일을 부정했다.

하지만 이번 일을 역이용해 내게 덤벼들 생각은 하지 못했다.

그들도 눈과 귀가 있으니 내가 얼마나 무대뽀로 일을 저지르는지 모르는 바가 아니었기 때문이다.

결국 알루아 공작은 나와 척을 지기보다는 어떻게든 연관점을 만들어 보려 애를 썼고 이번 사태를 기점으로 블랙마켓과 관련된 이를 모조리 색출하겠다는 입장을 밝혀왔다.

겉보기적인 입장이라도 그것이면 되었다.

이런 말까지 했는데 그들이 뒤에서 딴짓을 벌이는 순간.

그것이 명분이 될 테니까.

"어서 오십시오. 저하."

머리를 숙여 인사하는 베르닐 시종장을 보며 내가 가볍게 고개를 끄덕여 보였다.

"먼저 보낸 이들은?"

"저하께서 말씀하셨던 인원보다 더 많아서 조금 지체가 되었습니다만. 다행히 별문제 없이 모두 씻긴 후 의원에게 보였습니다. 헌데......"

"정신이 멀쩡하질 않지."

"예. 의원의 말로는 육체적인 문제는 크게 없지만 대부분 정신이 나간 것 같다고......"

어감이 이상하긴 하다만, 틀린 말은 아니었다.

"생각보다 많은 인원을 보냈어. 생각지도 못했을 텐데 미안하게 됐군."

"아닙니다. 신은 그저 저하의 그런 따스한 마음씨에 오히려 감복할 뿐입니다."

"낯간지럽기는."

혀를 짧게 차며 부정하자 그가 부드러운 얼굴로 고개를 저었다.

"그 누구도 이렇게 현실적으로, 빠르게 불행에 빠진 이들을 구원하진 못할 겁니다. 저하께선 그걸 해내신 거고요."

"이로 인해 더 큰 문제가 생기면?"

"제가 아는 저하께서는 그걸 이미 다 준비해놓으신 것으로 압니다만."

허허 웃는 그에겐 말싸움을 해봐야 본전도 못 건질 상이다.

"안내해. 정신제압을 풀어야 하니."

내 말에 그는 기다렸다는 듯 물러나 고개를 숙였고 곧이어 앞장서서 나를 안내했다.

블랙마켓에서 내가 구출해온 이들은 경매장에 올라왔던 이들과 감옥에 갇혀있던 이들까지 상당수 포함되어있다.

그 수가 무려 마흔에 가까운 만큼 갑자기 불어난 사람 수에 영주성은 상당히 부산스러웠다.

"......"

멍한 얼굴로 앉아있는 엘프 여성의 모습에 유리아가 인상을 찌푸린다.

"죄송해요. 제가 관리를 못해서......"

"이건 네 잘못이 아니야. 영지 관리를 못 한 내 잘못이고."

이 사태를 꾸민 두 빌어먹을 범죄조직이 문제지.

아이나 헬리샤나가 현재 라운왕국의 수도로 향해 이 일의 배후에 누가 있는지. 또 두 범죄조직의 소재를 파악하기 위해 움직이고 있다.

그 수가 상당한 만큼 당장에 결과는 나오지 않겠지만.

각이 서면 바로 움직여야 하리라.

"헌데......제 정령술로도 이 제압구는 풀 수가 없었어요. 골다 장로님 말로는 굉장히 튼튼한 재질로 만들어진 탓에 부수려면 시간이 꽤 걸린다고......"

유리아의 말에 내가 고개를 끄덕였다.

"엘프를 노리고 만든 물건인데 엘프가 풀 수 있으면 되나."

"허면 어찌하시려고."

"이렇게 해야지."

콰창!!!

무식하게 엘프 여성의 목에 걸려있던 제압구를 낚아챈 나는 방어하듯 펼쳐지는 마나를 모조리 눌러버리고 그대로 그것을 으스러뜨려버렸다.

"어머, 과격하셔라."

동시에 단단한 금속으로 만들어진 제압구가 일순간 박살 나며 흘러내렸고, 멍한 얼굴을 하고 있던 엘프 여성의 눈에 다시금 생기가 돌아오기 시작했다.

"아......아아."

"정신이 드나?"

곧바로 내가 질문을 던지자 멍하니 앉아있던 그녀가 나를 올려다보았다.

"데이비......왕자님? 여긴......"

"그래 나야. 여긴 하인스 영지고, 널 구출해서 데려온 거다. 그보다 아픈 곳은?"

질문을 던지면서도 나는 그녀의 눈두덩을 손가락으로 고정해 동공을 확인하고 입을 벌려 구강 상태를 확인했다.

그리고는 망설임 없이 그녀의 상의 배 부분을 걷어 올린 뒤 검지와 중지를 붙여 가져다 대었다.

"꺄앗?!"

"진료 중이야. 움직이지 마."

진료할 땐 장난기를 빼는 버릇 때문에 상당히 목소리가 낮아졌다.

내 말에 그녀가 두려움에 빠진 것처럼 크게 움찔거렸다.

"아......네."

반대로, 이 상황이 미묘하게 부끄러웠던 모양이었다.

자신의 배를 이성의 존재가 서슴없이 더듬고 있으니 말이다.

이쪽은 진료 목적이지만. 저쪽은 생각이 조금 다른 듯하다.

빨갛게 물들인 얼굴로 그녀가 당황한 듯 고개를 숙여 보였다.

그 모습을 보고 있던 다른 이들의 헛기침 소리가 여기저기서 들려왔다.

과감할 대로 과감한 진료방식이니 말이다.

다만, 다른 이들과 다르게 딱 한 명만큼은 이 상황을 보며 비실비실 웃음을 흘려 보였다.

바로 유리아 헬리샤나였다.

"취향 존중은 해주겠다만. 때와 장소는 가려. 다른 이도 아니고 네 마을주민이잖아."

"이렇게라도 구해주셨잖아요?"

엘프 소녀 메리가 당황하면서 어쩔줄 몰라하는 그 모습이 그렇게 취향에 들어맞은 건지.

"저......저하. 저는 괜찮......"

"탈진......약간의 바이러스 감염 예상. 이외에......이거 뭐야. 너, 그동안 뭘 집어먹은 거야."

지구의 x-ray가 없으니 마나로 보고 있는데 생각지도 못한 약물이 위장 속에 남아있다.

미약. 혹은 환각 증세를 일으키는 마약.

이 개새끼들이 아직 한창 자랄 여린 엘프에게 뭘 먹인 거야.

허탈함이 앞선 내가 메리의 머리를 쓰다듬어주었다.

그리고는 말없이 그녀를 끌어안고 등을 토닥이며 그대로 마나를 끌어올려 몸 안에 남아있던 약 기운을 모조리 태워버렸다.

"미안하다. 지켜줬어야 했는데. 너무 늦게 찾아서."

"......아, 아니에요! 저하께서 저를 구해주신 거잖아요?! 저......저는 괜찮아요!"

당황하는 메리의 외침에 나는 미련 없이 그녀에게서 떨어졌다.

"그럼 됐고."

"예?"

큰일을 당해서 다독여주는 게 우선이라 생각했는데. 그런 판단을 내릴 정도면 뭐, 문제는 없겠다.

벙찐 얼굴을 하는 이들을 뒤로한 채 나는 베르닐 시종장에게 말했다.

"다음 녀석들도 데려와. 하나하나 확인해볼 테니까."

의술 두고 어디에다 써먹겠는가. 이런 데다 써먹어야지.

"저하, 헌데 이들은 어찌하실 겁이니까?"

"고향으로 돌아가려는 이들은 돌려보내 줘. 대금은 내 쪽에서 지불한다."

"돌아가지 않으려 하는 자들은요?"

"영주성에 취직시켜."

잘하면 이 영지 내에 수인족 영지민도 생길 수 있겠다.

그런 생각이 들자 헛웃음이 나왔다.

* * *

쿠당탕!!!

커다란 굉음과 함께 고요한 창고 내부에 네다섯의 사람이 떨어져 내렸다.

"끄윽!"

다름 아닌 데이비에게서 도망쳤던 레이나와 그 일당이었다.

"하아......하아......"

숨을 거칠게 몰아쉰 그녀는 기절한 채 미동도 하지 않는 나머지 이들을 둘러본 뒤 긴장한 얼굴로 검을 집어 들었다.

이곳까지 쫓아오면 어쩌지. 거의 기적에 가깝게 탈출했다. 성력의 빛으로도 눈 하나 깜짝하지 않던 인간이. 자신이 내비친 섬광 한 번에 무력화될 리 없으니까.

그보다. 그는 마지막에 자신을 놓치지 않을 수 있었던 것 같은데.

어째서일까.

섬광에 한번 노출되었던 그는 자신을 향해 마치 도망가라는 듯 손을 놓아버렸다.

애초에 그가 자신들을 죽일 수 있었는데. 왜 죽이지 않았던 것일까.

그리고, 그는 어째서 자신의 검을 알아보는 것인가.

"쿨럭!"

복잡한 생각을 하던 그녀가 몸을 크게 경련했다.

비틀거리며 주저앉은 그녀의 가면 아래로 새빨간 피가 흘러내렸다.

"시간이......얼마 없는데......빨리 남은 이들을 모아야 해......"

린디스 제국의 카트린느 대공.

그리고 이곳에 와서 알아낸 존재.

유일한 변수.

하인스 영지의 영주. 성자 데이비 올 라운.

지켜야 하는데......

다시는 그 같은 끔찍한 미래가 오지 않게. 자신을 지켜야 하는데.

그녀의 작은 손이 강하게 틀어쥐어 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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