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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렙 영웅님께서 귀환하신다!-270화 (269/1,559)

# 270

만렙 영웅님께서 귀환하신다!

- 11권 19화

혼절한 에이리아는 미동도 없이 침대에 누워 잠들어있었다.

"좀 쉬면 괜찮아질 겁니다."

에이리아의 진찰을 마친 내가 조용히 대답했다.

"혹여, 이전의 그 병과 연관이 있지 않은가."

"그 병은 아예 씨를 말렸습니다. 더 이상 황녀님께 위해를 가하는 일은 없을 겁니다."

다시 말하지만.

그 병은 존재해선 안 된다.

단호한 내 답변에 그가 조용히 고개를 끄덕여 보였다.

"그런데 말입니다."

말을 하던 내가 입을 다물었다.

'생각 이상으로 빠른데.......'

이상할 정도로 진행이 빠른 이 이상 사태. 어디서 들어본 것 같은데.

신의 히포크리아에게서 배운 의술을 이리저리 덧대어 보아도 사실상 이렇게 증상이 빠른 경우는 없었다.

"그런데?"

"아무것도 아닙니다."

내 말에 그가 조용히 물었다.

"그럼 가시게. 이제 남은 것은 황궁의에게 맡길 테니."

"제가 치료하게 해주세요."

"자네가 무슨 자격으로."

에이리아를 이 지경으로 만든 장본인이.

모질게 떨쳐낼 거면 이런 모순을 보이면 안 되는 거지.

"자네는 아직 애송이로군."

담담하게 말한 그가 천천히 창가로 향했다.

그리고는 조용히 말했다.

"짐의 부인이자 에이리아의 친모가 짐과 어찌 만났는지 알고 있는가."

그 말에 내가 침묵한 채 그를 바라보았다.

"글쎄요."

"에이리아의 친모는 알다시피 수인족이네. 여우 수인."

그것이야 에이리아의 머리에 돋아난 귀만 봐도 알 수 있다.

"여우 수인 중에서도 에이리아의 종족은 조금 특이하지."

담담하게 말한 그가 창문을 잠갔다.

"특이하다고요?"

"나인테일. 혹여 들어보았는가."

"나인테일이라......"

말을 하던 내가 기억 속에서 한가지 말을 떠올렸다.

[내부인? 누굴 거 같나."]

술을 한 바가지 퍼마시며 그가 말했었다.

[내부인은 이미 윤회했제. 일찍 죽어 삣다. 지병이 있었거든. 그것도 내 땜시로.]

마음의 병이 깊어져서 죽어버렸다는 모양이다.

"짐은 말이네."

담담하게 말한 그가 이번엔 에이리아에게 다가왔다.

"에이리아의 친모가 부인 중에서 가장 무서웠네."

사박......

그리고는 품 안에서 작은 목걸이를 꺼내 에이리아의 목에 걸어준 뒤 문 쪽으로 향했다.

"그게 무슨......"

"이건 에이리아에게 여지를 준 자네의 잘못이야. 짐은 분명 경고했네."

떨쳐내려면. 확실히 떨쳐내라고.

상대의 마음이 커지기 전에 떨쳐내라고. 아예 여지를 주지 말라고.

"그대가. 아주 조금이라도 에이리아를 향하는 마음이 남아있었으니."

불안한 기분이 든 내가 자리에서 일어난다.

하지만 문 쪽으로 향한 그는 이미 나를 두고 방에서 나가며 말했다.

"참고로 여성 나인테일은 꼬리를 반려 이외에 절대 보이지 않네. 힘내시게."

달칵!

"폐......폐하?"

왜 생각을 못 하고 있었는가.

나인테일.

만약 에이리아가 정말로 나인테일이라면......

"윽?!"

반사적으로 에이리아에게서 멀어지려 했지만.

청록빛의 머리카락이 달빛을 받아 찬란하게 빛나기 시작했다.

동시에 눈을 감은 채 죽은 듯 잠들어있던 에이리아의 눈이 떠졌다.

이전과는 다른 보랏빛의 싸한 눈빛이었다.

"화......황녀님?"

당황한 내가 물러나려 했지만, 눈을 뜬 그녀는 내 손을 잡은 채 놓아주지 않았다.

동시에 좀 전까지 아팠던 게 정상이냐는 듯 천천히 일어나더니 침대 위에 요염하게 앉아 나를 올려다보았다.

"데......이비......님."

미묘하게 바뀐 그 목소리에 내가 그녀에게서 멀어지려던 찰나.

그녀가 품 안에서 작은 은장도를 꺼내 자신의 심장을 향해 그대로 찔러버렸다.

카앙!!!!!

거의 반사적으로 움직임이 이어졌다.

순식간에 파고들어 그녀의 검을 쳐낸 내가 화가 난 얼굴로 그녀를 노려보았다.

"이게 뭐하는......읍?!"

동시에.

그녀에게 파고들어 검을 쳐낸 내 어깨를 낚아챈 그녀가 이전과는 비교도 할 수 없는 몸놀림으로 나를 제압해 침대에 눕힌 후 그대로 올라탔다.

그야말로 순식간에 벌어진 상황에 내가 일어나려던 찰나 푹신하고 부드러우며 청록빛을 지닌 무언가가 내 팔을 낚아채 그대로 침대에 처박아버렸다.

무지막지한 그 힘은 정상범주가 아니었다.

그리고.

그녀는 미련 없이 자신의 입술로 내 입을 틀어막아 버렸다.

"읍!? 으읍?!"

순식간에 힘이 빠져버린 내가 버둥거렸지만, 그녀는 요지부동이었다.

설육과 설육이 얽히는 한순간이 지나고 내게서 떨어진 그녀는 입술에 묻은 타액을 혀로 요염하게 핥은 뒤 조용히 말했다.

"당신이 나쁜 거야. 왜 자꾸 들었다 놨다 해?"

말투도 바뀌었다.

힘을 준다면 얼마든지 저항할 수 있는데.

그녀를 상대로 힘을 잘못 줬다간 그녀가 다칠 수도 있었다.

"하지만 당신을 원망하지 않아. 내 본래 성격은 당신의 선택을 극도로 존중하지만. 나는 그렇게 먹이를 놓칠 생각이 없는데......"

빙그레 웃으며 그녀가 요사스레 눈을 빛냈다.

보랏빛으로 변한 그녀가 눈동자를 번뜩이며 제 목에 걸린 목걸이를 조용히 만지작거렸다.

"왕자님. 이게 뭔지 알아?"

"황녀. 이게 뭐하는 짓입니까."

"우리 종족의 본능을 봉인하던 아티펙트, 이런 사태가 벌어지지 않게 만들려고 만든 아티펙트."

그러니까.

고이 잠들어있던 에이리아의 본능을 깨워버린 게 나라는 소리다.

짧게 말한 그녀의 대답에 나는 이 상황을 유도한 것이.

그 망할 황제의 뜻이라는 것을 깨달았다.

-음, 그래, 일단 사고 치면 책임을 져야지.

너 인마.

내가 페르세르크를 노려보자 그녀는 어깨만 으쓱인 채 나를 향해 말했다.

-데이비, 그대 아직 완전하진 않잖아? 저주는 완벽하게 막아내고, 마법 저항력도 대단해. 그런데 말이야.

특질 능력은 못 막잖아?

"흡......"

특질능력자는 별개의 존재다.

그리고 나인테일은......

티오니스에서 명맥을 이어오는 집단 특질능력자들.

그리고, 나인테일이 가진 특질 능력은.

상대의 발정.

머릿속에 피가 쏠리기 시작하자 나도 모르게 힘 조절이 안 되기 시작했다.

"떠날 거면 떠나도 좋아."

담담하게 말한 그녀의 행동에 내가 벗어나려 힘을 천천히 주기 시작했다.

"하지만 상대에게 버림받은 나인테일에게 남은 미래는."

오로지 죽음뿐이다.

남성 나인테일족도. 여성 나인테일족도.

종족 특성에 비해 종족의 수가 괜히 적은 게 아니라는 말이다.

"아바마마께서 당신이 나를 거부하는 이유를 몰라서 그냥 뒀다고 생각해?"

"후회할 짓 하지 마세요, 황녀. 나는 황녀에게 마음을 줄 여력이......"

"거짓말. 없진 않잖아? 나는 그거면 돼."

내 말에 그녀가 요사스런 미소를 지어 보였다.

"그래도 안 된다면, 나를 그냥 두고 가. 정말 당신이 나를 받아들일 여지가 조금도 없다면."

망할.

담담하게 말한 그녀가 제 옷의 단추를 하나 풀어 내렸다.

"내 꼬리는 당신에게 보였어. 나인테일족이 성년이 되고 나서 이성에게 처음 보이는 꼬리가 무슨 의미가 있는지 알잖아?"

영원한 종속의 맹세.

"당신이 나를 거부한 이유. 너무 어리기 때문이지? 당신의 기준에 20세도 되지 않은 여자아이는 아직 어리게만 보이니까."

지독하게 사람을 흥분시키는 살 내음이 주변에 진동하기 시작했다.

향이 퍼진 게 아니라. 머리에 피가 쏠리고 흥분되면서 감각이 극도로 증폭되기 시작한 것이다.

그 질문에 내가 눈을 부릅떴다.

그 사실은 그 누구에게도 말한 적이 없다. 유일한 존재라면. 내 기억을 읽을 수 있는......

그쯤 생각이 미친 내가 페르세르크를 노려보자 그녀는 가볍게 휘파람을 불며 시선을 피했다.

도대체 어떻게? 또 언제?

나와 홍단이 청단이 이외엔 그녀의 모습이 보이지 않을......

[데이비, 홍단이를 좀 빌려주겠어?]

[형님 제국까지 제가 모시겠습니다.]

[저하 린디스 제국의 초청......]

당했다.

이건, 데오르트 황제 한 명의 작당이 아니었다.

도대체 몇 명이 가담한 것인가.

내가 눈을 부릅뜨고 페르세르크를 노려보았지만, 그녀는 그저 쓴웃음만 지을 뿐 아무런 말도 하지 않았다.

-좋은 시간 보내시게.

평소 특유의 나긋나긋한 웃음기를 띤 그녀가 손사래를 친 뒤 그대로 사라졌다.

허탈함에 들어가던 힘까지 빠져버린 나는 멍한 얼굴로 그녀를 올려다보았다.

"선택해. 당신이 당신 마음대로 살겠다면, 나도 내 마음대로 할 테니까. 물론, 당신이 신경 쓸 건 아니야. 거절당한 나는 조용히 사라지면 돼."

아무렇지도 않게 자신이 죽을 거라는 말을 하는 그녀는 솔직히 무서울 지경이었다.

완전히 달라져 버린 그녀의 행동에 나는 쥐고 있던 주먹을 천천히 풀었다.

그녀가 거짓말을 하는 게 아닌 것은 안다.

그리고, 이런 상황에서도 나는 그녀가 죽길 원치 않고 있다.

"혀......협상합시다. 황녀."

"협상? 당신과 나 사이에 있을 협상은 이것뿐인데?"

그렇게 말한 그녀가 요사스런 손길로 내 가슴을 스윽 그으며 말했다.

"아프지 않아. 기분 좋을 거야. 몸의 협상은 격렬하고 강렬하지. 무서워하지 마. 손만 잡고 잘 테니까."

그 발언은 그쪽이 할 말이 아닌 것 같은데.

특질능력자의 정신계통 제압은 분명 면역이 생길 수 있다.

내가 무력하게 그녀의 능력에 노출된 건.

아마, 주변인의 말대로 나도 모르게 그녀에게 조금은, 아주 조금은 끌리고 있었던 건지도 모를 일이다.

"내가 누구 때문에 금욕하는데. 망할."

짧게 중얼거린 내가 에이리아를 올려다보았다.

"황녀."

"응?"

"저기 보세요."

내가 고개를 까딱이자 그녀가 의아한 듯 시선을 돌렸다.

푹!

동시에 내 팔을 제압하던 꼬리를 교묘하게 풀어낸 내가 그녀의 혈도를 빠르게 짚었다.

그녀의 육신은 그대로 무너져 내렸고 나를 제압하던 굉장한 힘이 사라져 버렸다.

"......"

수혈을 짚어 재워버리고 나니 그녀는 제압이 된 것이다.

말없이 쓰러진 그녀를 보던 나는 천천히 그녀를 안아 들고 침대에 뉘인 후 길어진 꼬리가 튀어나와 엉망이 된 치마를 정리해 주었다.

그리고는 서서히 줄어드는 청록빛의 꼬리를 바라보다 그녀의 상의 단추까지 채운 후 조용히 말했다.

"내 업보지......"

업이 쌓여버렸다.

멍청하게 경험이 없어도 아닌 건 아닌 건데.

결국 마음이 없진 않았으니 이 사태를 초래한 것이다.

-데이비.

"넌 조용히 해. 내가 누구 때문에 이러고 있는데."

화가 난 목소리로 내가 쏘아붙이자 그녀가 뜨끔한 듯 물러났다.

-잊지 마. 데이비, 본녀는 영체야. 그대를 품에 안아줄 수도 없다고.

"부활하고 싶다고?"

잊은 모양인데, 나도 흑마법사야. 그것도 9서클 상위 흑마법사.

네까짓 거 하나 되살리는 거.

어렵지 않아 이년아.

-그대는 나를 부활시켜선 안 돼. 단순 마족으로서의 부활과......마왕으로서의......

"시끄러워, 그건 내가 판단한다."

짧게 중얼거린 나는 곧장 문을 벌컥 열어젖히고는 문앞에서 말없이 서 있는 데오르트 황제를 바라보았다.

그리고는 언제 들어가 있었는지 모를 브로치를 꺼낸 뒤 말했다.

"약혼식."

"결정이 섰나. 그 아가씨 말대로 참 고집이 대단하군."

"도대체 몇 명이 가담한 겁이니까."

내 물음에 그가 껄껄 웃어 보였다.

"글쎄, 그거야 자네 주변에 몇 명이 있는지 보면 답이 나오지 않겠는가."

"모든 게 계획이었던 겁이니까?"

"그건 아닐세. 용사와의 약속은 분명 사실이었으니."

그는 퍽 만족스러운 얼굴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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