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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렙 영웅님께서 귀환하신다!-272화 (271/1,559)

# 272

만렙 영웅님께서 귀환하신다!

- 11권 21화

94. 수르트의 유산.

모든 일엔 인과가 존재한다.

a가 있으므로 인해서 b가 발생해야 하는데 a가 없이 b가 발생하는 상황.

그건 엄연히 법칙을 무시하는 행동이니까.

현재 내가 아는 한에서 그런 법칙을 무시하는 것은 딱 하나뿐이었다.

동전의 뒷면의 힘.

서로 추구하는 법칙이 다른 이상 서로가 서로에게 간섭할 수 없고, 서로가 서로에게 치명적인 변화를 줄 수 있다.

속된 말로 서로가 상극이라는 소리였다.

성검의 주인, 용사 레이나는 내게 성자의 가호가 담긴 물품과 보호구를 요청했고, 카트린느에겐 직접적인 도움을 요청했다.

물론, 자유로워 보인다고 해서 대공 카트린느 카라벨라를 날름 빼낼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하지만 린디스 제국의 황제 데오르트 알 린디스는 카트린느의 파견을 수락했고 카트린느는 아무런 불만 없이 그들의 일행에 잠시 참석하는 결과를 보여주었다.

"지금이라도 그만두는 게 어떠한가."

"정중히 사양하겠습니다. 폐하."

담담하게 말하며 나는 미리 아공간에 담아두었던 가지각색의 무기들을 내 주변에 꽂아놓았다.

"거검, 에스토크, 롱소드, 바스타드...... 여유분의 무기가 한가득 이로군. 정말로 짐과 사생결단을 낼 생각인 겐가."

굳은 얼굴로 말하는 데오르트 황제를 향해 나는 말없이 목검을 빙글빙글 돌리다가 입을 열었다.

"그래서 주변을 모두 물리지 않았습니까. 폐하."

"끄응......어쩔 수 없군. 헌데, 이렇게 주변에 아무것도 없는 허허벌판이라니."

담담하게 말한 그가 천천히 검을 뽑아 들었다.

내가 바닥에 꽂아준 목검과는 다른 진귀해 보이는 보검이었다.

말없이 입고 있던 거추장스러운 옷을 벗어 던지자 세월이 빗겨나간 것 같은 거대하고 장대한 그의 풍채가 드러났다.

어지간해선 보기 힘들 정도로 다부진 몸이었다.

황제와 노령의 사내라는 타이틀로 가려져 있지만, 그는 엄연한 무인이다. 그것도 대공 카트린느 카라벨라와 비슷한 검술을 지닌 사내.

아니, 사람을 보는 눈에 한해선 어쩌면 대공 카트린느보다 더 심오한 경지에 있는지도 모른다.

"한번 시작한 것 적당히 끝낼 생각은 없네."

투웅......

두 손으로 들기도 힘들어 보이는 거검을 한 손으로 들어 올린 그가 압도적인 검강을 피워올린다.

그와 동시에.

나는 내 앞에 꽂혀 있던 목재 몽둥이의 옆구리를 발끝으로 톡 걷어차 튕겼다.

휘리리리릭!!

강한 힘에 의해 튕겨 나온 몽둥이가 주인을 때릴 것처럼 빠르게 회전하며 내게 돌아오자 나는 망설임 없이 한 발 내디디며 몽둥이를 낚아챘다.

투쾅!!!!

동시에 공기가 튕기는 소리가 들려오며 어마어마한 충격파가 일대를 휘감았다.

반사적으로 검강을 피워 든 검으로 방어하듯 막아낸 데오르트 황제의 표정이 보기 좋게 일그러졌다.

단순 목검인데.

반응도 못 할 속도로 파고들어 와 몽둥이를 내리치는 내 힘이 상상 이상이었기 때문이리라.

단순히 내 검술 스승이었던 독고준이 나를 쥐어팰 때 보여주었던 타구봉법이다.

하지만.

제법 쓸만한 공격 방식인 것 또한 사실이다.

아무리 오러블레이드를 둘렀다 해도 단순히 나무 몽둥이가 제대로 된 보검과 내구성이 같을 리가 없다.

순식간에 부서지거나 불타올랐어야 할 몽둥이가 한 치의 흔들림도 없이 그를 찍어누르자 그의 얼굴이 잔뜩 일그러졌다.

투웅!

동시에, 저 멀리 박혀있던 롱소드형 목검 하나가 마치 살아있는 것처럼 뽑혀 나와 내 손으로 빨려 들어왔다.

"윽!"

한 손으로 몰아붙이는 몽둥이의 묵직한 파괴력도 견디기 힘든데 또 하나가 들어온다.

본능적으로 위험을 느낀 그가 내게서 벗어나려 했지만 그를 압박하던 힘이 더욱 강해지기가 무섭게 그는 다 포기하고 순간적으로 마나를 폭사시켜 자신을 보호하는 강기를 만들어냈다.

저 정도 견고함이라면 6서클 마법도 아무렇지 않게 막아낼 수준이다.

카가가각!

물론, 그딴 건 아무래도 좋다.

"이런!"

롱소드에 검붉은 기류가 번뜩이기가 무섭게 그의 호신강기에 수십 가닥의 실선이 생겨났다.

단단한 강기 보호막에 생겨난 실선을 보고 아연실색한 그가 내게서 벗어나려는 그 순간.

내 오른손에 쥐어져 있던 몽둥이에 거대한 기류가 소용돌이쳤다.

[중격]

[공성전차]

콰창!!!!

실선에 이어 거대한 충격이 가해지자 몽둥이가 가차 없이 그의 강기를 박살 내며 그를 저 멀리 처 날려버렸다.

"커헉!!"

상상 이상의 충격에 그의 눈이 부릅 뜨여지며 내게서 수십 미터 가까이 나르고 굴렀다.

"쿨럭......무식하기 그지없군......"

급히 몸을 일으킨 그가 급히 기세를 끌어올리며 투덜거려왔다.

자신의 공격이 이렇게 무식하게 파훼 된 적이 없었으니 그 충격은 더 했을 것이다.

"실제로 겪어보니 알만하군....... 그대는 역시 괴물이야."

유일하게 내 몸 안에 있는 정체 모를 엄청난 괴리감을 눈치챈 것이 바로 데오르트 황제다.

정확하게 내 힘을 짚어내진 못했지만, 그는 자신의 경지와 내 경지 사이에 존재하는 수많은 깨달음의 벽이 있다는 것을 알아챈 만큼 실제로 겪어본 힘의 차이에도 어느 정도 수긍하는 듯 보였다.

투쾅!!

뒤이어 거검을 튕기듯 뽑아 든 내가 롱소드를 버리고 양손으로 틀어잡았다.

그리고는 빠르게 그에게 덤벼들었다.

"좋다!! 들어와 보라!! 짐의 한계를 끌어내 보라!"

자칫 크게 다칠 수도 있는데 호승심이 생긴 것일까.

자신의 모든 힘을 끌어내는 그의 선택에 나는 망설임 없이 발현하던 힘을 한 단계 증폭시켰다.

그리고는 끊임없이 몰아쳤다.

빠른 계통의 무기를 이용해 그를 쉴 새 없이 몰아붙이고, 묵직한 무기에 힘을 실어 치명적인 일격을 가한다.

방어가 무너진 그의 복부가 비는 것을 보고 파고들자 그가 어떻게든 방어하기 위해 내 무기를 쳐내지만.

애석하게도 내가 주먹질을 못 하는 게 아니다.

[마왕 유르그 식(式) 군중제어기]

[명치 존나 쎄게 치기]

쩌엉!!!

무식한 파괴력이 담긴 주먹이 그의 명치를 후려치자 얇게 깔린 강기가 일순간 박살 나며 그가 몇 번이고 굴렀다.

"끄윽......끄륵......"

이쯤 되면 본능적으로 알 수 있다.

상대와 자신과의 사이에 엄청난 전투 경험 차이가 존재한다는 것을 말이다.

"후우......후우......"

제대로 쉬기조차 힘든 숨을 겨우 고르며 그가 투덜거렸다.

"짐이 40여 년간을 전장에서 굴렀건만......"

그렇게 오랜 시간 경험을 쌓아온 그가 한치도 반격을 가하지 못한다는 사실이 퍽 황당하게 보였던 모양이었다.

"그대는 대체 정체가 무엇인가."

"라운왕국의 1왕자. 데이비 올 라운입니다. 폐하."

"허허......"

쓰러진 그가 쿨럭 피를 토해냈다.

무리한 마나의 운용과 그것이 부서진 경험.

그리고 내게서 받은 충격의 누적이 그의 몸을 더 이상 싸울 수 없게 만들어버렸다.

치명상에 가까운 그 모습이었지만 그는 일면 홀가분해 보였다.

"이 경지에 이르러서 짐은 더 이상 이런 호승심을 느낄 수 있을 거라 여기진 못했거늘......"

마치 깨달음을 얻은 것처럼 허허 웃는 그 모습에 나는 표정을 지운 채 다가가 그의 몸에 회복마법을 걸어 보였다.

고위 회복마법인 하이네스 힐이 들어가자 몸이 가벼워지는 게 실질적으로 느껴진 그가 말없이 팔을 움직였다.

"성자의 힘까지......대단하군. 비결이라도 있는가."

"죽도록 노력하면 됩니다."

담담하게 말하는 내 대답에 그가 실없이 웃어 보였다.

"그렇군....... 노력이 답이라......뭐, 짐이 패배했네. 애초에 이길 거라는 생각보다는 그대의 끝을 보겠다는 생각뿐이었으니."

"아직 안 끝났습니다. 폐하."

담담하게 말한 내가 한 손을 뻗어 튕겨 나갔던 그의 검을 손에 불러들였다.

그리고는 그에게 건네주며 빙그레 웃었다.

"다시 하셔야지요. 아직 시작도 안 했습니다."

섬뜩한 내 미소에 그의 얼굴이 미묘하게 파랗게 질린 느낌이 드는 건.

기분 탓이 아닐 거다.

* * *

린디스 황실의 황궁 정원은 마법으로 좁은 공간의 기후를 조절하는 사치를 부리고 있다.

날씨가 상당히 추울 텐데도 이곳만큼은 따스한 느낌이 들 정도로 말이다.

"아......"

내 등장에 조금 놀라기라도 한 것일까.

고요한 정원에 홀로 앉아 멀찍이 옹기종기 모여있는 작은 새들을 구경하던 용사 레이나가 탄성을 흘렸다.

"여기서 뭐 하나."

담담한 질문, 익숙한 하대에도 그녀는 별다른 변화를 보이지 않았다.

"별거 아니에요. 그저......"

말끝을 흐린 그녀가 조심스레 중얼거렸다.

"새를......보고 있었어요."

가면으로 얼굴을 가린 그녀가 다시 침묵했다.

"흔히 볼 수 있는 모습인데."

"제가 있던 곳에선......저런 작은 새는 없었으니까요."

씁쓸하게 중얼거린 그녀가 내게 물어왔다.

"왜 가면을 쓰고 있는 것에 대해 의문을 품지 않죠?"

"그래 주길 원하나?"

"......아니요."

"그러면 됐어. 굳이 가면 썼다고 상대 못 알아보는 것도 아니고."

내가 사람을 기억할 때엔 얼굴도 얼굴이지만 보통 그 사람이 가지고 있는 고유의 기운을 기억하는 편이니까.

쌍둥이조차 다른 지문과도 같은 그 파장 덕분에 생긴 게 같다고 헷갈린 적은 없었다.

"콜록......콜록콜록!!"

그때였다.

말없이 새를 향해 손을 뻗어 보이던 그녀가 몸을 웅크리더니 고통스런 기침을 흘렸다.

"......"

이에 내가 침묵한 채 그녀를 보자 말없이 가면 아래로 흘러내린 새빨간 선혈을 보던 그녀가 조심스레 물어왔다.

"꼴사납죠? 마왕의 부활을 저지해야 할 용사가 이 꼴이라니."

"치료는 불가능해."

"알고 있어요. 제 선택이니까."

내 대답에 그녀가 조용히 답했다.

"다만, 지금이라도 그만두면 조금 더 오래는 살 수 있어."

그녀는 고개를 저어 보였다.

"그저 이런 세상을 원했을 뿐인데......"

음울한 목소리 속엔 짙은 한이 맺혀 있었다. 하지만 아주 옅을 정도로 숨겨져 있었기에 작정하고 보지 않았다면 느낄 수 없는 수준이었다.

"그만두는 게 어때."

"또 만류하시네요."

그녀의 말에 나는 조용히 고개를 끄덕여 보였다.

"초대 리치 닉스의 힘은 네가 생각하는 그런 망자의 통제가 아니야."

"......"

내 말에 그녀는 침묵을 고수했다.

"알아요....... 그가 불사의 힘을 지닌 존재라는걸."

단순히 라이프 베슬로 살아남는 게 아니라. 그는 죽임을 당하면 숙주를 아예 옮겨버린다.

문제는 그의 힘 대부분이 그의 혼에 종속되는 특이한 체질인 탓에 육체가 옮겨진다고 그의 힘이 사라지는 게 아니라는 것이 문제다.

"그게 아니야. 만약 봉인이 풀리는 게 거짓이면. 너희가 가는 것으로 인해서 오히려 봉인이 풀릴 수도 있다."

내 말에 그녀가 침묵했다.

그리고는 나를 바라보았다.

"데이비 왕자님."

단조로운 그 목소리에 그녀가 조용히 말했다.

"그래도 갈 수밖에 없어요."

"복수 때문에?"

"제가 지켜야 할 한사람이 이곳에 살고 있으니."

그 대상이 누구인지, 나는 알 것 같은데.

"서로 만나지 않아서 다행이네."

내 말에 그녀가 흠칫 놀란 듯 보였지만 곧 정원을 떠나는 내게 아무런 말도 하지 않았다.

-어디로 가?

"륀느 데리고 잠시 갈 곳이 생겼다."

그녀의 반응을 보고 확신은 섰다.

초대 리치 닉스의 봉인은 분명 풀린다.

그렇다면.

그놈을 다시 봉인할 것인가.

쳐 죽여버릴 것인가.

선택 자체는 간단했다.

그때엔 불가능했지만, 언젠가 그놈이 다시 깨어날 때를 대비해서 수르트가 준비해 땅속에 숨겨둔 것을 꺼낼 때가 온 듯싶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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