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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렙 영웅님께서 귀환하신다!-280화 (279/1,559)

# 280

만렙 영웅님께서 귀환하신다!

- 12권 3화

마법에 대해 잘 알지는 못한다.

하지만 한가지는 확실히 알 수 있었다.

저 시계의 분침이 한 바퀴를 돌았을 때 죽을 거라는 그의 말은 진실이라는 것.

"정신 차려 메르실!!"

닉스의 봉인이 풀리지 않았다면 일이 쉬웠을 것이다.

하지만 그게 불가능하고, 만에 하나라도 봉인이 풀렸다면. 힘을 회복하지 못한 닉스를 반드시 죽여야 했다.

검신 조차 죽이는 게 불가능했던 것이 바로 닉스이지만 그녀에게만큼은 닉스를 죽일 수 있는 한 수가 남아있었다.

물론, 가능성이 낮은 확률이기에 반드시 세 사람의 힘이 필요했건만.

가장 중요한 메르실이 닉스의 힘에 굴복해 거품을 물고 무너져 내려버린 지금, 모든 계획은 수포로 돌아간 것이나 다름없었다.

반사적으로 전신에 흑백의 기류를 터뜨린 레이나가 닉스에게 덤벼들었다.

적어도 메르실이 회복할 시간은 벌어야 할 테니 말이다.

애초에 마지막 한 수를 쓰지 않는다면, 힘의 격차는 압도적으로 크다. 하지만, 지금 여기서 무너지면 모든 게 끝이었다.

대부분의 힘을 소진했을 것이라 판단되는 성자 데이비 왕자.

그리고 자신들을 믿어주고 강적을 홀로 막아선 카트린느 대공의 희생은 무엇이라 할 것인가.

이를 빠득 깨문 레이나의 전신에서 흘러나오던 기류가 서서히 뒤틀리기 시작한다.

콰앙!!!!

동시에 포탄처럼 파고든 그녀의 일검이 닉스의 전신을 갈라버릴 듯 강하게 내리쳐졌다.

"호오......"

부분적으로 번뜩인 검은 무언가에 막혔지만, 그 충격이 전해져왔는지 닉스의 푸른 안광에 이채가 띠었다.

"놀랍군. 이 정도의 힘을 내포하다니......"

실로 순수한 호기심을 내비친 그가 천천히 손을 움직였다.

콰앙!!!

동시에 레이나의 육신을 그대로 천장 높이까지 튕겨내고 천장에 한 번 처박히게 한 후 다시 추락시켰다.

"쿨럭!"

순식간에 가해진 압도적인 힘에 레이나가 가면 너머로 피를 한 움큼 토해냈다.

동시에 그녀의 가면 일부에 금이 갔다.

"아......안돼."

반사적으로 가면을 틀어쥔 그녀가 바들바들 떨었다.

"레이나! 잘못됐어! 일단 후퇴를!"

"안 돼요! 지금 물러나면 모든 게 물거품이 될 겁니다."

죽더라도 그를 여기서 사멸시켜야 한다. 그리 생각한 레이나가 억지를 부렸다. 가장 미련한 행동이지만 물러나도 남는 미래는 참혹함뿐이니 말이다.

"에실트! 메르실을 안정시켜주세요! 내가 시간을 벌 테니!"

그 외침에 바들바들 떨고 있던 신관 소녀 에실트가 쥐고 있던 지팡이를 더욱 꽉 쥐고는 고개를 끄덕였다.

"로이나! 에실트와 메르실을 보호해주세요!"

"알겠어."

굳은 목소리로 평소의 활기를 지워버린 로이나가 등에 짊어진 방패를 꺼내 내밀었다.

그리고는 자세를 잡은 뒤 그대로 백광의 힘을 터뜨렸다.

[홀리 디펜스]

날뛰는 힘에 비해 미약하기 그지없지만 성기사의 보호 장막이었다.

"일행이 깨어나길 기다리는 것인가. 다만, 힘의 격류에 마나가 역류할 정도로 약한 인간이 무엇을 할 수 있나."

콰앙!!!

대답할 가치도 없다는 듯 레이나의 검이 또 한 번 흑백의 화염을 터뜨리며 닉스를 보호하던 장막을 후려쳤다.

당연 한번 막힌 게 두 번이라고 안 막힐까.

또다시 경로가 틀어막힌 공격에 레이나는 멈추지 않고 그대로 빗겨 치듯 검을 튕겨냈고, 그대로 경로를 바꿔 회전하듯 연타로 몇 방을 더 후려쳤다.

압도적인 중량이 담긴 일격이 서너 번 가격 되지만 역시나 보호 장막은 깨지지 않는다.

그럴수록 조급해지는 건 레이나 본인이었다. 이상했다.

리치 닉스가 강한 건 사실이지만 그의 힘치고는 너무 강했다.

그의 힘이 이게 정말인지 믿을 수 없을 정도로 말이다.

마치 폭주한 광전사처럼 미친 듯이 공격을 가하는 레이나의 검격 여파는 분명 전해졌다.

실제로 그녀가 검을 한번 휘두를 때마다 공동 전체가 진동하며 닉스의 뒤편에 난 벽면에 거대한 검흔의 여파가 생겨날 정도였으니 말이다.

하지만 닉스에겐 상처하나 주지 못했다.

"흥미롭구나. 흥미롭다!"

분침이 계속해서 움직인다. 벌써 분침은 15분을 넘어 20분을 초과하고 있었다.

순식간에 시간의 3분의 1을 사용해버린 상황에 아무런 상처도 주지 못한 것에 조급해진 레이나는 더더욱 자신의 혼을 불태워 몸 안에 담아둔, 그녀와는 맞지 않게 억지로 주입된 힘을 끌어냈다.

놈을 죽이기 위해서라면 그 어떤 것도 가리지 않겠다는 듯.

시시각각 목숨이 줄어가는 게 느껴질 정도로 탈력감이 밀려오지만, 그녀의 공격은 더더욱 강해졌다.

손이 찢어져 피가 흐르는 상황에서도 그녀의 맹공은 멈추지 않았다.

스응......

그녀의 검에 두꺼운 강기가 서린다.

[중검]

[지평선]

쩌적!!

강하게 휘둘러진 횡 베기. 과거 검신의 검술이었던 중검은 실제로 강했다.

강력한 일격이 드디어 놈의 방어막에 흠집을 낸 것이다.

흥미롭다는 듯 가만히 선 채 레이나의 공격을 방어하고 간간이 반격을 가하던 닉스는 곧 레이나의 검에 처음으로 흠집이 생긴 자신의 장막을 보고는 눈을 번뜩였다.

콰앙!!!

동시에 그녀의 신형이 그대로 지면에 처박혔다.

"훌륭하다!"

"끄윽......"

"아......안 돼! 레이나!"

다급한 로이나의 외침은 오래가지 못했다.

닉스가 손을 휘젓기가 무섭게 허공에서 튀어나온 균열 속에서 검은 갑옷을 입은 기사들이 그녀에게 몰려가기 시작했기 때문이었다.

설상가상으로 가만히 있던 닉스의 반격이 시작되었다.

"경의를 표하지. 이 이상 그대를 욕되게 하지 않겠다."

짧게 말한 닉스의 전신에서 형용할 수 없는 힘이 쏟아지기 시작했다.

그리고. 그 힘에 노출된 신관 소녀 에실트 마저 무너져 내렸다.

"아......안 돼! 에실트!!"

필사적으로 검은 기사들을 베어내고 막아내며 로이나가 급히 소리쳤지만.

"호오, 저쪽의 성기사도 제법 싹이 좋구나. 될성부른 잎은 빠르게 꺾어두지 않으면 군주의 앞길에 방해가 될 게다."

슈슈슈슈슉!!!

레이나를 견제하던 닉스의 검지 손가락과 중지 손가락이 하늘을 향하기가 무섭게.

푸욱!!!

지면에서 튀어나온 새카만 창이 로이나의 몸을 꿰뚫어버렸다.

"끄륵......"

투명한 눈물을 떨어뜨리며 그대로 굳어버린 로이나의 몸에 지면에 처박혀 있던 레이나의 몸이 굳어버렸다.

필사적으로 저항하던 그녀의 움직임이 굳어버린 것이다.

"아......아파......"

고통스런 목소리와 함께 무너져내리는 로이나의 모습에 레이나의 숨이 점차 거칠어지기 시작했다.

일면 부서진 가면 너머에 흘끗 보이는 레이나의 붉은 눈동자가 더욱 크게 확장되며 파르르 떨렸다.

"하아......하아......"

"그 가면. 제법 신기한 물건이로구나. 마를 억누르는 물건이라......분명 그 안에 담긴 것은 나의 힘이거늘. 어찌 네가 그런 것을 가지고 있는지 모르겠다만."

짧게 중얼거린 그가 한 손을 다시 휘젓자 전신을 포박당한 레이나가 두둥실 떠올라 그에게 다가갔다.

"내가 모르는 것을 그냥 두긴 찝찝하군. 어디 한번 보여 보아라."

콰직!!

그 말과 함께 거대한 그의 손에 레이나의 가면을 뜯어 부숴버렸다.

동시에 크게 뜨여진 그녀의 눈과 얼굴이 드러났고.

콰드득!

순간적으로 파고든 검이 닉스의 갈비뼈를 박살 내고 파고들었다.

"윽?!"

놀란 닉스가 주춤거림과 동시에 거의 반쯤 이성을 놔버린 레이나의 일검이 그의 갈비뼈를 완전히 부숴버리고 빠져나왔다.

쿠웅!!

동시에 바닥에 떨어진 레이나가 그대로 몸을 웅크렸다.

"아......아아아아......"

비명과도 같은 신음이 흘러나왔다.

공격을 성공시킨 것은 레이나이지만 타격은 그녀가 더 커 보였다.

"아아아아악!!!"

그리고, 처절한 고통이 담긴 비명과 함께. 그녀의 등 뒤에서 놀라운 일이 벌어지기 시작했다.

빛으로 만들어진 검은 날개가 돋아나기 시작한 것이다.

일반적인 생물의 날개라기보다는 마치 빛으로 만들어진 인공적인 날개와 비슷한 가닥가닥의 형태를 지니고 있었다.

"이것은......"

놀란 마음을 감추지 못하는지 닉스가 눈을 번뜩였다.

그 또한 그의 힘이었으니까.

그가 모를 수가 없다.

하지만 그녀를 처음 보는 닉스의 입장에선 또 이해할 수가 없었다. 처음 보는 기이한 인간 여성이 어째서 그의 힘이 담긴 물건과 육신을 가지고 있는지 말이다.

"하아......하아......"

숨을 헐떡이며 천천히 고개를 든 레이나의 얼굴은 참혹했다.

"아무래도 심상치 않아."

그리고, 허공으로 떠오른 닉스의 중얼거림과 동시에 그의 전신에 사방으로 새카만 구체들이 생겨나기 시작했다.

그리고 그에 맞추듯 날개를 펄럭인 레이나가 숨을 거칠게 몰아쉬며 이제는 새카맣게 변해버린 기류를 퍼뜨리며 살기등등하게 일어났다.

"내가 죽어도......너는 여기서 죽어."

지독한 집념에 닉스는 자신의 몸이 파르르 떨렸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힘은 미약한데. 그녀의 집념은 상상을 초월할 정도였다.

지독한 분노, 원망이 가득 담긴 그 목소리와 눈빛에 그녀의 몸이 움직였다.

슈슈슈슉!!

동시에 하늘에서 새카만 광선이 그녀를 향해 쏟아지기 시작했다.

전무후무한 거대한 흑마법의 폭격이었다.

* * *

"하아......하아......"

어두운 숲 속. 사방에 널린 수많은 시신 사이에서 유일하게 살아남아 죽어가던 사내는 몸을 기댄 나무를 흘끗 올려다보고는 헛웃음을 흘렸다.

이렇게 죽게 되었다. 하지만 미련은 없었다. 그는 버려진 암살자이며 정보원이었고.

그렇게 죽어가던 그를 살려낸 건 레이나였다.

그런 레이나를 위해 목숨을 바치는 것쯤 못할 것도 없었다.

다만.

"졸려 죽겠구만."

허탈하게 중얼거린 그는 초점조차 잡히지 않는 시야를 천천히 들었다.

시간은 충분히 벌었으니. 이제는 상관없으리라.

그렇게 미련이 없다 여기고 죽어가던 그의 앞으로 누군가의 형체가 서서히 가까워져 오는 게 보였다.

"감상은 거기까지 하자고."

* * *

치명상을 입고 죽은 건지 산 건지 모를 상태가 된 크루세이더 로이나. 마나 역류로 이제는 피거품을 내뿜는 메르실.

그리고 그보다는 상황이 나았지만, 상극의 힘에 짓눌려 숨조차 쉬지 못하고 혼절한 에실트까지.

대부분 상태는 처참했다.

그보다 심각한 것은 레이나였다.

전신에 피 칠갑을 한 레이나는 등 뒤에 돋아난 새카만 날개를 펄럭이며 미친 듯이 닉스를 향해 덤벼들었다.

검은 날개가 한번 움직일 때마다 그녀의 피부 일부가 새카맣게 변색해갔다.

이미 공동의 천장은 무너져 내리기 시작했고 쉬지 않고 돌덩이가 쏟아져 내려 발판으로 쓸 지면도 거의 남지 않은 상황이었다.

억수같이 쏟아지는 고서클의 흑탄으로 인해 피할 공간도 없음에도 불구하고 레이나는 놀라운 곡예비행을 하듯 흑탄을 피해내며 그에게 파고들었다.

콰앙!!

당연, 닉스의 공격은 점점 거세져만 갔다.

몇 차례고 흑탄에 적중되어 지면에 처박혀도 그녀는 끝까지 일어났다.

계속해서 혼을 불태우는 그녀의 수명은 이제 별로 남지 않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레이나의 움직임은 더더욱 빨라졌다.

윤회에 오를 수 있는 혼의 기본적인 힘까지 끌어내기 시작한 것이다.

"놀랍다! 제 혼을 불태울 정도로 내게 원망이 가득하구나! 내게는 보인다!"

놀라움을 감추지 않는 닉스의 외침에도 레이나의 눈빛은 더욱 서늘해지며 매서운 공격을 퍼부었다.

쩌적!!!

그리고 자신의 몸을 돌보지 않는 그녀의 필사적인 공격이 하나둘 성공하기 시작하며 닉스의 육신이 조금씩 부서지기 시작했다.

동귀어진. 그녀가 행하는 공세는 그야말로 지독한 자폭 공세였다.

한쪽 팔은 거의 떨어져 나가기 직전으로 너덜너덜해졌고, 입고 있던 경장갑의 갑옷은 거의 다 찢어져 뼈가 드러날 정도의 상처를 입었다.

처절하지만 공격은 더욱 거세졌다.

그쯤 되니 아무리 닉스라도 놀랄 수밖에 없었다.

부상을 입을수록 그녀의 흉흉한 눈빛은 더욱 짙어졌고 더욱 어두워졌다.

그리고, 동시에 강해졌다.

도대체 무엇이 그녀를 이렇게 몰아붙이는 건지 마법사라는 입장에서 호기심이 들 정도였다.

그리고, 그런 잡념에 순간 빠져든 닉스는 아주 한순간 레이나에게 틈을 보이고 말았고 이내 그녀가 완전히 파고들 틈을 주고 말았다.

"이런!"

당황한 그가 급히 방어마법을 펼쳤지만 레이나의 검은 방어막을 그대로 부숴버리며 그에게 내질러졌다.

자아가 붕괴되어도 칼디라스는 칼디라스.

닉스에겐 치명적인 검 그 자체였다. 그렇게 검의 날카로운 끝이 닉스의 두개골을 완전히 부숴버리려던 찰나.

그녀의 검이 마치 허공에서 붙잡힌 것처럼 굳어버렸다.

레이나의 시야가 흑백으로 물들며 그녀의 신형이 굳어버린 것이다.

당연 힘을 잃은 그녀가 허공에 떠 있을 순 없으니 그녀의 육신은 힘없이 지상으로 추락했다.

낙하의 충격조차 제대로 제어하지 못한 탓에 몸이 만신창이가 된 그녀는 간헐적으로 몸을 떨며 고개를 들어 보였다.

그곳에 뒤편에 있는 시계의 분침이 한 바퀴를 완전히 돌기 직전임을 볼 수 있었다.

그의 마법이 발현되지는 않았지만 제 몸이 과부하를 견디지 못한 것이다.

"아쉽게 되었군. 마법사로서 무엇이 너를 그리 몰아붙이는지에 대해 극히 흥미롭다만......"

"......"

"시간이 너의 편이 아니었구나. 비록 적이라곤 하나, 너만큼의 집념을 지닌 이는 극히 드물지. 경의를 표한다."

스스로 망가지고, 서서히 죽어가는 그녀의 이가 악물렸다. 흉측하게 일그러진 얼굴 넘어 눈에서 투명한 눈물이 쏟아져 내렸다.

이겨야 하는데. 무조건 이겨야 하는데.

그런 생각을 계속 되뇌지만 승패는 명확했다. 결국, 두 번째 기회조차 실패한 것이다.

흐려진 시야로 닉스의 뒤편에 새겨진 거대한 시계가 음산한 빛을 내뿜기 시작했다.

그리고, 마지막을 선고하듯 움직이는 분침을 보던 레이나는 치솟는 울분에 입술을 피가 나도록 깨물었다.

마치 벌이라도 받는 듯한 느낌이었다. 자신이 무엇을 그렇게 잘못했는지 이 세상의 근원이라 불리는 주신에게 따져 묻고 싶었다.

하지만 신이 답할 리는 없었다. 그렇기에 그녀는 생각했다.

이 지독한 실패를 또 겪는 것은 자신이 무능하기 때문이고. 그 탓에 다시금 벌을 받는 것이라고 말이다.

완전히 꺾여지기 시작한 의지에 그녀의 몸에서 피어나오던 옅은 검은 기류가 더더욱 검게 변했다.

아주 희끗하게 남아있던 백색의 기운은 이제 몇몇 점을 제외하곤 거의 다 사라져 버렸다.

대부분의 힘을 잃고 육신의 활동이 서서히 멎어간다는 건 죽어간다는 소리일 테니. 이제는 저항할 수도 없다.

서서히 12시에 가까워지는 분침을 올려다보던 그녀가 암담함과 처참한 슬픔을 뒤로 한 채 눈을 감으려 할 때였다.

쩍!!

갑작스런 소리와 함께.

사형 선고 마법의 근원인 시계의 분침이 움직이다 굳어버렸다.

쩌적!!

그리고, 놀랍게도 거대한 마나 덩어리와 9서클 마법사의 술식으로 만들어진 거대한 시계가 극도로 불안정해지기 시작했다.

"이......무슨......"

레이나는 문득 자신을 안아 드는 누군가의 손길을 느낄 수 있었다.

"목숨 소중한 줄을 모르지, 아주 그냥. 누굴 신불자 만들려고 날름 죽으려 들어."

"다......당신......"

"시간 다 됐다. 예열이 좀 오래 걸렸어."

누군가의 느긋한 목소리가 그녀의 귓가에 들려왔다.

그 목소리가 도대체 무엇이었는지.

레이나의 죽어가던 의식이 일순간 수면 밖으로 끌어올려 진 것처럼 한번 번뜩였다.

이 감정을 무엇이라 판단해야 할지.

놀라움, 혼란 또 다른 무언가. 무엇이 되었건 모조리 근거 없는 감정들이지만 한 가지는 확실했다.

편안해지는 듯한 이 기분은, 분명 정말 오랜만에 느껴보는 안도감이었다.

오랜 시간 제대로 잠 한번 자지 못했던 그녀가 느낀 정말 오랜만의 느낌이었다.

"총 트라이 횟수 13372회."

심드렁한 말투로 중얼거린 그는 곧 그녀를 안지 않은 남은 손을 가볍게 움직였다.

동시에 섬뜩한 예기를 품은 푸른 검이 움직인다.

"무슨......"

"저놈 뼛속에 든 구멍 숫자까지도 다 외우게 생겼다고."

"......"

"하드모드 된다고 첫판 보스가 막 보스 되는 거 아니다."

쩍!! 쩌저저적!!!

이윽고 푸른 잔상이 거대한 시계 위로 한 가닥 두 가닥. 이윽고 수십 수백 가닥으로 나뉘듯 뒤덮어졌다.

"시계는 메이커 아니면 안 받는다. 카xx에 정도는 가져와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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