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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렙 영웅님께서 귀환하신다!-281화 (280/1,559)

# 281

만렙 영웅님께서 귀환하신다!

- 12권 4화

쩡!!

거대한 시계의 한쪽 끝이 순간적으로 일그러졌다.

그리고, 누군가가 반응할 새도 없이 전체가 무너져 완전히 부서져 내렸다.

폭발 자체도 하지 못한 채 완전히 분해되어버린 것이다.

"어때, 미련이 남나?"

"......"

"그래도 보내준 건, 어디 속 시원하게 덤벼보라고 보낸 건데."

잘 안 됐나 보다?

살살 놀리듯 말한 소년의 말에 레이나의 표정이 일그러졌다.

하지만 곧 이어지는 그의 목소리에 그녀의 눈이 부릅뜨였다.

"일리나."

냉정하게 평가했을 때 그녀는 가까운 사람도 알아보기 힘들 정도로 달랐다.

가면을 쓰지 않아도 알아볼 수 없을 만큼 참혹한 흉터로 가득한 얼굴이었다.

대륙 최고 미녀라 불리던 지금의 일리나와 다르게 평행의 선을 넘어온 오랜 시간 뒤의 그녀의 얼굴은 도저히 미녀라고 볼 수 없었다.

아니, 오히려 혐오감을 불러일으킬 정도로 참혹했다.

그녀의 밝은 금발은 윤기를 잃어 백발로 변해버렸고. 그녀의 금빛 눈동자는 어두운색으로 변해버린 지 오래였다.

희고 곱던 피부는 거칠고 울퉁불퉁해져 있고, 그 색 또한 변색하고 일그러져 있었다.

당연 좀 전의 싸움으로 인해 육신 전체가 만신창이였으니 얼굴 아래도 더 말할 것이 없었다.

하지만 그런 부분은 일절 신경 쓰지 않았다.

그녀의 본질 자체는 새삼 놀라울 정도로 변함이 없이 그 어린 일리나와 같았다. 아니, 오히려 성숙한 느낌이 났다.

"연관성을 빼고 싶었으면 이름뿐만 아니라 검술이나 검도 바꿨어야지."

-데이비, 실패한 것 같은데?

'닉스가 죽는 걸론 해결이 안 돼. 지가 원하는 게 뭔지도 모르는 여자니까.'

신불자가 되는 건 사양이다.

그렇기에.

구원을 대가로 거래를 내건 주신 프리아와 연결하여 내 의지를 확실히 전하고 선불을 받은 만큼 나는 확실히 약속은 지키리라.

"널 구원하라는 거래가 있었거든."

"......"

말할 힘도 없는지 그녀가 침묵했다. 하지만 곧 눈을 부릅뜨더니 거의 다 쉬어버린 목소리로 격하게 소리쳤다.

"뒤......뒤!"

콰앙!!!!

그 말과 동시에 나를 향해 쏟아진 거대한 흑색의 마창이 내게 닿기 전에 폭발해버렸다.

거대한 물줄기가 마창을 막아내고 부숴버린 것이다.

"물의...... 정령왕. 내 마법을 멈추고 정령왕까지 소환하는 자여. 네놈은 누구인가."

[계약자. 마족과 나는 상성이 좋지 않아요. 게다가 이 정도 힘이라면......]

9서클.

확실히 보통 수준은 아니다. 나 또한 아직 9서클까지 회복 못 하고 있던 실정이었으니 말이다.

분명 봉인에서 갓 깨어난 이상 힘이 약해야 할 테지만.

그는 온전한 자신의 힘뿐만 아니라 추가로 모종의 무언가로부터 힘을 얻고 있었다.

"데......데이비 왕자."

거의 다 쉬어버린 목소리로 내 옷깃을 잡아당기는 레이나였다.

"음?"

"저......저쪽에."

필사적으로 떨리는 팔을 들어 한쪽을 가리키는 그녀의 행동에 고개를 돌리자. 거대한 창에 꿰뚫린 채 그대로 매달려있는 로이나와, 쓰러져 있는 작은 두 소년 소녀가 보였다.

"엘라임. 바톤터치하자."

짧게 말한 내가 고개를 까딱이자 경계하는 표정으로 닉스를 보던 엘라임이 곧 물줄기로 변해 세 사람을 감싸기 시작했다.

"이쪽도 데려가."

세 사람도 세 사람이지만 사실 제일 심각한 건 내 품에 쓰러져 있는 레이나였다.

[참혹하군요....... 세상에 인간이 이렇게까지 내몰릴 수 있는 건가요?]

"치료 가능해?"

[세 사람은 가능하지만......, 이쪽은 늦었어요. 당신, 신성력의 총량이 거의 남지 않았죠? 내 힘으로도 완치는 절대적으로 힘들어요.]

물의 정령은 회복의 힘을 지니고 있다. 하지만 이미 혼이 거의 불타 사라진 그녀를 살릴 방도는 없었다.

[외상 정도는 가능한데...... 스스로 혼을 거의 다 불태웠어요.]

피잉!!! 카앙!!

자신을 무시한다 여겼는지 하늘에서 또다시 흑색의 창이 대여섯 발 쏟아져 내렸지만 내게 닿기도 전에 부서져 버렸다.

이번엔 엘라임의 보호도 없었는데 막혀버린 것이다.

"말하라. 대체 무슨 수를 쓴 것이냐."

그의 질문에 나는 대답하지 않은 채 아공간에서 작은 병을 하나 꺼내 엘라임에게 건네주었다.

"얼마 안 남은 신의 눈물방울 (엘릭서)를 희석한 거다. 완치는 불가능해도 당분간 목숨 줄 붙여놓을 수는 있을 거야."

엘라임은 놀랄 일도 없다는 듯 물줄기로 병을 받아들고는 그대로 자신의 몸에 엘릭서를 흡수시켰다.

쏴아아아아아!!!

그리고는 몸의 반절을 흩어 하늘로 쏘아 올렸다.

그리고, 그렇게 쏘아 올려진 엘라임의 형체 일부는 곧 연녹빛의 비가 되어 쏟아지기 시작했다.

정령왕의 기적인 [치유의 비]였다.

억수처럼 쏟아지는 비에 온몸이 축축해졌지만 나는 개의치 않았다. 애초에 회복능력이 담긴 비를 거부할 이유는 없으니 말이다.

"그럼 이쪽은 해결했으니 이제 볼일 봐야지. 아까 물었나? 어떻게 없앴냐고."

8서클 흑마법인 데스 스피어를 아무런 대처도 없이 허공에서 부숴버린 게 그로선 가장 이해할 수 없었던 모양이었다.

9서클 흑마법인 사형 선고는 푸른 잔상이 마법을 베어내는 것을 보았다.

두 번째로 쏘아낸 데스 스피어는 엘라임에 의해 막혔다.

하지만 세 번째로 쏘아진 다수의 데스 스피어는 분명 내게 닿기도 전에 없어졌다.

아무런 징조도 없이 말이다.

"그렇다. 이해할 수 없군."

"왜 이해를 못 해. 마법사가 3서클에 들어서서 처음으로 배우는 게 이건데."

[디스펠]

"......"

내 대답에 그의 안광이 거칠게 흔들렸다.

"디......스펠이라고?"

즉, 8서클에 해당하는 그의 마법을 아무런 징조도 없이 내가 간섭하여 해제해버렸다는 소리이기도 했다.

"뭐 문제라도 있나?"

"불가능하다! 7서클의 마법을 해제하기 위해서라도 9서클의 마법 실력을 지녀야 하는 것이 디스펠이거늘!"

그의 외침대로 1서클 마법을 디스펠 해버리기 위해선 3서클 이상급의 실력이 필요하다.

5서클의 마법을 디스펠 해버리기 위해선 7서클의 실력이 필요한 게 현실이다.

그러니까. 8서클을 해제하려면.

이론상으로 10서클 그 상위의 경지가 필요하다는 뜻이기도 했다.

"8서클은 이론상 해제가 불가능할 텐데."

"보통 안 되지. 이론 상만 따지면 8서클을 해제하려면 10서클이 되어야 하는데."

그는 분명 적의 반열에 존재하는 자이며, 마왕을 보좌하던 리치로서 제거 대상이지만.

반대로 마법에 관해서는 상당히 대단한 작자라는 건 부정할 수 없다. 실제로 내가 겪어본 그는 쓸데없이 잔혹한 짓을 피하는 자였으니 말이다.

그런 그가 쌓아온 마법 학문을 단순 부정할 생각은 없다.

"9서클은 마법의 정점......그 위가 있을 리가......"

"왜 없어 이 멍청한 대머리야."

"대, 대머리......"

내 빈정거림에 그의 안광이 거칠게 휘날렸다.

"9서클이 끝일 리가 있나. 세상에 끝이 어딨어."

단순 검술 실력도 끝이 없는 판에.

"......그 말인즉 네놈이 9서클을 넘어 10서클에 이르렀다는 말이더냐."

말도 안 되는 사실이라 여기면서도 그걸 확인하려는 것인지 그가 물어왔다.

"아니, 10서클 같은 건 없어. 멍청한 대머리야."

10위계 성마법은 존재하나, 10서클이라는 건 개념상 존재하지 않는다.

8서클의 세 단계.

인지, 동화, 구현.

9서클의 세 단계.

이해, 실현, 초월.

이 위로 존재하는 것은 서클이라는 개념과는 분명 달랐다.

사실대로 고하자면. 그가 사용하는 마법이 익숙하다는 점. 그리고, 마나량을 떠나 내 깨달음의 깊이가 닉스와 상당히 차이가 난다는 점 때문이지만.

자세한 내막을 알려줄 이유는 전혀 없었다.

"이놈!!! 대머리를 몇 번이고 반복하는 것이냐! 나를 우롱하는 것이더냐!!"

결국, 분노한 그의 외침에 나는 어깨만 으쓱해 보였다.

거봐, 저놈 대머리라고 놀리면 상당히 반응이 크다니까.

실제로 하레스가 닉스의 틈을 만들기 위해 써먹었던 방법이긴 하다.

검신 하레스, 그 양반은 말이다.

겉으로 드러난 이미지로는 굉장히 뛰어난 검사이며 위대한 인물이지만.

내가 아는 하레스는 상대의 약점을 물고 늘어지는 미친개 같은 양반이다.

오히려 그런 점에선 천마 독고준과 다를 바 없으면서, 오히려 더 심한 경우가 많으니 더 말해 무엇할까.

-가만 보면 본녀의 아비에게도 상당히 골이 쌓인 것 같은데.

'그 게을러터지고 성격 나쁜 양반이 과연 내게는 아무런 말도 안 했을까.'

그럴 리가.

"같잖은 도발은 용납할 수가 없군! 좋다. 정령왕의 존재는 매우 놀랍다만! 이전과는 차원이 다른 내 힘을 보여주리라!"

격하게 소리친 그의 거대한 신형이 다시금 떠오르기 시작했다.

그리고 양손을 펼친 그의 전신으로 흉폭하고 방대한 사령 마나가 마치 화산폭발처럼 터져 나오기 시작했다.

"끄윽!"

여태껏 자신이 싸워온 상대가 전혀 제 실력을 드러내지 않았다는 사실에 경악한 듯 엘라임의 품에 안겨 회복을 받고 있던 레이나의 표정이 검게 죽어갔다.

-윽?! 이 정도면 데이비. 그대보다 마나량이 많은......

닉스는 8서클이라 알려졌지만 빠른 시기에 부활한 그는 이 세상의 것이 아닌 다른 것의 힘을 몸에 받아들이고 빌렸다.

스스로도 인지하지 못하는 사이에 말이다. 아니, 정확히는 닉스 본인이 아닌 다른 누군가가 그에게 힘을 실어 주고 있다고 보는 게 더 옳겠지만.

그 덕분에 봉인이 약해진 틈을 타 장시간 실현되어야 할 봉인 해제의식이 생각 이상으로 빠르게 진행되었다.

아무리 봉인이 한계치까지 몰려도 이렇게 아무런 징조 없이 갑자기 봉인이 풀어지는 건 상식적으로 말이 되지 않으니 말이다.

신검 칼디라스가 닉스의 봉인을 전혀 눈치채지 못했다는 점이 이번 이변에 큰 증거이기도 하다.

게다가 그의 힘은 3천 년 전 그가 활동하던 시절의 배 이상으로 강한 힘을 보유하게 되었다.

다만, 그 과반수는 단순 닉스의 힘이라고 보기엔 조금 무리수가 있는. 조금 이질적인 힘이었다.

"이 느낌 묘하게 익숙하지? 페르세르크."

-그래......

"동전의 뒷면."

뱀파이어 유적의 지하에서 봤던. 그 거대한 드래곤의 뼈가 있던 정체 모를 지하에서 느꼈던. 심연의 힘이다.

내 말에 페르세르크의 표정이 자못 심각해졌다.

"뒷면 새끼들, 매번 멋대로 하는데. 신중해지도록 브레이크라도 놔드려야지."

딸랑......

분명 그가 지금 내뿜는 마나는 내가 가용할 수 있는 마나의 총량을 넘어섰다. 괜히 9서클이 아니라는 소리다.

그래. 내가 가용할 수 있는 마나의 총량.

그그그극!! 쿵!!

압력을 견디지 못한 내가 선 바닥이 갈라지고 조금씩 내려앉았다.

아무런 마법도 발현하지 않고 단순 사령 마나의 방대한 양으로 내 마나를 짓누르고 일대 영역까지 압력을 가하는 건 상대가 나보다 압도적으로 마나의 양이 많을 때나 가능한 일이다.

효율도 더럽게 떨어지고. 별로 쓸모도 없는 힘자랑이라는 소리이기도 했다.

이에 나는 목에 걸어둔 목걸이를 꺼내 들었다.

겉으로 보기엔 단조로운 목걸이이지만 그 끝에는 자그마한 보옥이 달려있었다.

바로, 현 세계수 [알]이 각성하면서 내게 건네준 정체를 알 수 없던 신물이기도 했고.

이번 거래에서 주신 프리아 여신이 내건 보상 중 하나이기도 했다.

이미 발동하기 시작한 보옥은 변화를 가져다준다.

"동기화해보자고."

두근거리며 반응하던 보옥은 이내 내 목소리가 시동어가 되듯 제대로 발동하기 시작했다.

"힘 싸움 좋아해? 나도 더럽게 좋아한다."

쿠웅!

아주 짧은 충격음이 사방에 퍼진다. 동시에 흉폭하게 날뛰던 그의 사령 마나가 일순간 경직되며 나를 압박하던 그의 힘이 주춤거렸다.

"어디, 무식한 힘 싸움 한번 해보자고."

화아아아악!!!

동시에 보옥이 미친 듯이 빛나면서 내 전신에서 순수하게 정제된 마나가 미친 듯이 활동하기 시작했다.

전신으로 만들어진 서클과. 그 서클 마나를 병행 사용하기 위해 추가로 만든 심장 서클이 공명했고.

오랜 시간 잠을 자다 깨어난 맹수처럼 포효하며 존재감을 드러낸다.

1차 해방이라는 보상을 받은 보옥에는 세 가지 항목이 추가되어 심연의 권능에 노출되었다.

[보옥 1차 해방.]

[한정 소모품. 한정된 시간, 밴댕이 소갈딱지, 데이비 올 라운에 한정하여.]

[육체와 혼을 완전히 동기화시킨다.]

라는 항목으로 말이다.

이전에 성녀 앨리스의 일로 파업 한번 한 걸 가지고 쪼잔한 표현 한번 걸쭉하기 짝이 없다.

내 혼은 일면 완성되어있되.

육신은 그렇지 않다.

미친 듯이 날뛰며 주변을 짓누르던 닉스의 사령 마나는 곧 내 몸에서 터져 나온 힘에 개미 짓밟히듯 짓눌리기 시작했다.

자신의 힘이 얼마나 방대한지 알고 있기에 닉스는 자신이 단순히 힘에 압도적으로 짓눌릴 것이라는 생각은 해본 적도 없을 것이다.

단순히 계산해도 그의 현재 힘은 과거 마왕 이상급으로 방대할 테니 말이다.

단순 전투능력만 따지면 페르세르크의 힘이 더 상위에 존재하지만 같은 측면에 놓고 보면 총량은 페르세르크보다 더 오래 살아왔던 닉스의 압승이다.

"으윽?!"

"내려와."

푸르게 변한 눈동자를 빛낸 내가 한 손을 들어 그를 가리킨 뒤 손가락을 지면 방향으로 빠르게 끌어내렸다.

쿠웅!!!!

동시에, 단순 마나의 힘만으로 그의 전신이 그대로 짓눌리며 지면에 처박혔다.

그와 똑같은 방식의 비효율적이고 의미 없는 힘 싸움이다.

하지만 그것으로도 충분했다.

"커헉?!! 이......이건 말도 안 되는?!"

"어때, 쥑이지? 내가 힘 싸움은 자신 있는데."

회랑에서도 단순 마나량만 가지고 나를 짓누를 수 있던 영웅은 극소수에 해당한다.

그 양반들도 마냥 쉽게 누르지 못한 게 이런 비효율적인 힘자랑인데, 감히 네까짓 게.

입가에 나도 모르게 광소가 어린다. 마치 술에 취한 것처럼 알딸딸한 기분이 전신에 터져 나오기 시작했다.

-데이비? 그대......왜 이래!

콰드드득!!

필사적으로 저항하던 닉스의 거대한 골격이 마치 거대한 프레스에 짓눌린 것처럼 찌그러지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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