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만렙 영웅님께서 귀환하신다!-285화 (284/1,559)

# 285

만렙 영웅님께서 귀환하신다!

- 12권 8화

새빨간 양념이 묻은 노점 음식은 보기만 해도 매운 느낌이 팍팍 밀려왔다.

"매운 음식은 잘 먹나?"

내 질문에 멍하니 선 채 주변을 바라보던 레이나가 화들짝 놀라 내게 다가왔다.

그리고 내가 건넨 노점 음식을 보고는 눈을 가늘게 떴다.

"이건......"

"어때, 맛 좋기로 소문난 곳인데, 한번 먹어볼래?"

"영주가......이런 것도 알고 다니나요?"

"내 가족이니까."

긴장한 표정으로 꼬치를 코에 가져다 댄 그녀의 눈이 꿈틀거렸다. 이전의 놈은 그래도 향이라도 덜했지 이번 놈은 상상을 초월한다.

하지만 그녀는 매운 향기보다는 다른 것이 마음에 걸렸던 모양이었다.

"실험의 여파 때문에 전 미각을 잃은 지 몇 년이 됐어요. 그래서 아무 맛도 느낄 수 없고요. 뭐, 매운 음식으로 자극을 주려는 건가요?"

"편한 대로 생각해."

"미안하지만 매운맛도 못 느껴요. 뭘 노렸는지는 모르겠지만. 당신이 저희 일행을 구해주신 감사를 잊으면 안 되겠죠."

아무렇지도 않게 꼬치를 한입 베어 문 그녀는 곧 말없이 입을 오물거리며 나를 올려다보았다.

그 표정은 마치. 전혀 문제 될 게 없다는 듯한 눈치였다.

이에 나는 천천히 손을 들어 손가락 세 개를 폈다.

그리고 하나씩 접었다.

이윽고, 마지막 손가락을 완전히 접었을 때.

"아? 읍!!"

그녀의 자신만만하던 표정이 순식간에 일그러지기 시작했다.

동시에 그녀의 신형이 그대로 무너져 내렸다.

"우웁!!"

그대로 몸을 웅크린 채 입을 틀어막고 눈물을 줄줄 흘리는 그녀의 표정은 볼수록 가관이었다.

그러면서도 그녀는 결코 소리 내 비명을 지르거나 티를 내지 않으려 하는데......

"아......아아......아아아아아!!"

버틸 수 있을 리가 있나.

엉엉 울며 버둥거리는 그녀에게 과일즙으로 만든 음료를 건네주자 그녀는 체면도 잊은 채 음료를 벌컥벌컥 들이켰다.

그리고는 빨개진 얼굴로 시선을 이리저리 돌리더니 짧게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당연 나를 째려보는 건 잊지 않는 그녀였다.

자존심은 10년 전이나 10년 후나 여전한 모양이었다.

"파하하하하핫!!"

-지독하군. 어떻게 미래와 현실 두 사람을 똑같이 엿 먹일 생각을 하는 겐지.

절로 터져 나오는 웃음에 그녀가 눈물이 고인 채 얼굴을 들어 나를 노려본다.

그 표정은 분명 특유의 차가움이 어려있지만, 지금까지 본 그녀와는 조금 달랐다.

"이제 좀, 사람 같네."

내 말에 그녀가 이를 악물었다. 그렇게 맵다면 버려도 이상하지 않으련만. 그녀는 애써 그것을 씹어 삼킨 뒤 남은 부분을 내게 내밀었다.

"드세요."

"나는 됐고."

"이게 사람이 먹을 수 있는 거라 생각하세요?!"

"커흠! 아가씨, 아무리 그래도 그렇게 말하면 내가 섭하지."

헛기침을 하는 드워프의 타박에 그녀가 깜짝 놀라 고개를 푹 숙여버렸다.

"죄......죄송해요. 그런 뜻이 아니라......"

"파하하하하! 어째, 지난번과 상황이 비슷한 것 같소."

"읏...... 잔말 말고 드세요!"

나는 픽 웃음을 터뜨리고는 손을 뻗었다.

"나는 별로 상관없는데."

"하......후회할걸요?"

그녀는 자신이 자신만만하게 웃고 있다는 사실도 인지하지 못한 듯 보였다.

-살살 효과가 오는 것 같은데?

'조금만 더 자극해보자.'

"그래?"

[통각경감]

[후각둔화]

-이전에 일리나 그 아이를 속인 것과 한 치도 달라진 게 없는데.

상관없었다.

속은 놈이 잘못이지.

아무렇지도 않게 씹어 삼키는 내 모습을 보며 곧 눈물 콧물을 다 빼놓을 것처럼 매운 기운이 몰려올 거라 기대하던 그녀는......

"사람이에요? 대체......왜, 멀쩡한 건데요?"

지극히 당연한 의문을 표했지만. 나는 아무렇지도 않게 마지막까지 싹 긁어먹은 후 나무 꼬치를 휙휙 흔들며 비웃음을 던졌다.

"고양이 혓바닥은 예나 지금이나."

"이익!"

격분하는 그녀의 머리를 거칠게 쓰다듬은 나는 곧 걸음을 옮겼다.

"따라와. 다른 곳으로 간다."

"이, 이봐요!"

그녀는 모르고 있었다.

드워프 노점상과 대화를 한 이후로 그녀의 온 신경은 주변을 경계하는 게 아니라 내 쪽으로 쏠린다는 것을 말이다.

사람이 말이다.

사람답게 살아야지.

마지막 가는 길이라도.

그녀가 보이지 않게 미소를 지운 나는 곧바로 다음 장소를 향해 걸음을 옮겼다.

* * *

왁자지껄한 펍.

신나게 떠드는 영지민들이나 이곳을 거쳐 가는 용병들이 한가득한 펍은 보통의 펍처럼 규칙이나 고요함 따윈 개나 줘버렸다는 듯 활기로 가득했다.

"여긴......"

"잘 안 와봤나?"

"시끄러운 걸 그리 좋아하지 않아요. 게다가 술 자체도 좋아하지 않고."

"과거엔 꽤 좋아했던 것 같은데."

"트라우마 같은 거예요. 마족놈들도 술을 엄청나게 좋아했으니까."

분명 일리나는 활기찬 모습을 퍽 좋아했었다.

본인은 차가운 인상을 고수했던 주제에 밝은 표정으로 떠드는 이들을 보는 것을 좋아하는 성격이었으니 말이다.

하지만 레이나는 달랐다.

시간이 흐르면서 변한 10년 전의 그녀와 10년 후의 그녀가 같아야 한다는 법 따윈 애초에 존재하지 않았다.

"어서 옵쇼! 뭐로 드릴까."

"보리 맥주 두 개. 그리고, 적당한 안줏거리."

익숙하게 품에서 은화 몇 개를 꺼내 내밀자 펍 주인이 킬킬거리며 고개를 끄덕였다.

"좋은 시간 보내십쇼. 저하."

"눈치 빠른 놈들."

"하하하하! 저하를 못 알아보면 이 하인스 영지의 영지민이 아니라 간첩입죠. 거 살짝 변장하신다고 못 알아보는 놈들은 죄다 외부 놈들일 겁니다요."

"요즘은 어때."

"저하께서 한바탕 엎어버리신 이후로 왈패 놈들이 깡그리 사라졌지 뭡니까요. 남은 놈들도 대부분 몸을 사리는 편입죠."

점주가 낄낄 웃어대며 좋아했다.

"됐고, 술이나 부탁해. 지난번처럼 뭐 넣다가 걸리면 손모가지 부순다."

"에이, 저하, 그거 저희 집안 가보로 내려오던 약초......"

"쓰읍. 그건 네가 먹으면 되는 거고."

"쩝...... 알겠습니다요."

괜히 눈에 띄지 않기 위해 적당한 변장을 했다. 완전히 모습을 바꾸는 것도 좋은 방법이긴 하지만. 애초에 가끔 이런 식으로 영지 밖을 나돌아다닌 경험이 있는 만큼 굳이 그렇게까지 할 이유는 없었다.

"자주......오셨나 봐요?"

분명 영주인데. 영주가 이런 펍에서 술을 먹는 게 익숙하다는 게 놀라운지 레이나가 조심스레 물어왔다.

"어때 보여."

"글쎄요......나쁘진 않을 것 같은데......"

말을 쉬이 잇지 못하는 그녀의 모습에 나는 곧 주인장이 가져다 놓은 보리 맥주를 건넸다.

"맛은 괜찮을 거다. 마셔봐."

"저는 술을 마시지 않아요."

"너와 네 일행들 치료비라 생각하고 마셔. 안 마시면 네 일행들에게 치료비를 청구할 테니. 여긴 의료보험 같은 거 없으니까 꽤 비쌀 거다."

"......"

내 말에 그녀가 묘하게 불만 어린 표정으로 천천히 술잔을 들었다.

그리고 자존심을 내세우듯 그대로 원샷에 들이켰다.

"어이구야. 잘도 마신다. 자! 한잔 더 받고."

이에 나는 쉴 틈도 주지 않고 몰아붙여 그녀의 잔에 맥주를 가득 채웠다.

"......제게 술을 먹여서 어쩌시려구요."

"쓸데없는 걱정 집어치우고 받아."

"자......잠깐만요! 방금 전에......"

"아 나는 모르겠고!"

내 역정에 그녀는 어쩔 수 없이 또 한 잔을 들이켰다.

"마......맛있네요. 이게 정말 맥주인가요?"

"그래."

한잔, 두잔, 세잔.

계속되는 권유에 그녀는 경계심이 생겼는지 처음과 같이 무작정 원샷으로 넘기진 않았다.

그런데 어쩌나. 이미 늦은 것을.

이곳은 내가 가끔 영지 시찰을 할 때마다 오는 곳이다.

그렇기에 이곳의 주인은 내가 말해둔 술을 주로 취급하는 편이기도 하다.

겉으론 보리 맥주라 하였지만. 이놈의 술은 맛이 기가 막혀서 취하는지도 모르고 마시게 되는 악명 높은 술이다.

* * *

딸꾹!

"......"

잔뜩 취한 레이나는 눈을 가늘게 뜬 채 눈앞의 술잔을 노려보았다.

"비었어요."

"그래."

"더 주세요."

"그만 마셔."

"더......더 줘!"

마치 아이가 생떼를 피우는 것처럼 그녀가 내게 칭얼거렸다.

"받아라."

이에 나는 못 이기는 척하면서 술을 따라주었고 그녀는 기다렸다는 듯 맥주를 벌컥벌컥 들이켰다.

분명 왁자지껄했던 펍이었다.

하지만 지금 주변엔 아무도 존재하지 않았다. 슬슬 눈치를 챈 영지민들이 자리를 비켜버린 탓이다.

내가 의도한 일은 아니지만, 저들은 내가 여성과 술을 마시고 있다는 사실에 쓸데없는 의미를 부여한 듯 보였다.

그녀가 현재 대륙에서 소문이 도는 용사라는 사실을 아는 이는 단 한 명도 없으니 말이다.

덕분에 그녀의 푸념은 펍 전체에 은은하게 울려 퍼졌다.

딸꾹!

또 한 번 딸꾹질을 한 레이나가 멍한 얼굴로 맥주잔을 보다 나를 노려보았다.

"사람이 왜 그래요?!"

그리고는 뭔가 울분이 터진 듯 내게 말했다.

"뭘."

"왜 날 구해주지 않았어요?"

"......"

내가 알던 일리나는 술주정을 거의 보여준 적이 없으니 사실 조금 의외의 모습이기도 했다.

"구해 줬잖아."

"그거 말고! 닉스 그 개새끼가 나를 실험 쥐처럼 다룰 때......내가 그 마족 놈들에게 포로로 잡혀있을 때......"

말을 하던 그녀의 눈에 촉촉한 눈물이 맺혔다.

"얼마나 아팠는데......얼마나 수치스러웠는데......"

"그래, 네 맘 다 알아, 자자. 한잔 더 받아."

나는 쓸데없는 말을 하지 않고 한잔을 더 내밀었다.

"나, 더럽죠?"

"인간의 육체를 보면 손과 발, 혓바닥에 세균이 득시글거린다. 그렇게 치면 안 더러운 인간이 어딨나."

"저요! 당신이 생각하는 것만큼 깨끗한 여자가 아니야! 그러니까......"

"굳이 필요 없는 내역을 꺼내서 상기시킬 필요 있나?"

그녀는 술을 벌컥벌컥 들이켜고는 그대로 상체를 엎드렸다.

"이렇게......쉽게 해결될 일이었는데......왜......왜 모두들 나를 지키려고 죽어간 건지......"

그녀가 살던 곳에서 마족에 저항하기 위한 저항군으로서. 그녀는 수많은 동료들을 잃었다.

그 사이엔 린디스의 대공 카트린느도 분명 존재했고. 그 외에 다른 이들도 분명 존재했다. 하지만 그곳에서 그들은 모두가 일리나를 지키다가 죽어갔다. 그녀만이 닉스를 죽일 방법을 가지고 있었으니 말이다.

"실패했어요.......다 죽었다고......닉스도 못 죽이고......나도 죽어가고 있었어요. 그런데 눈을 뜨니까 이곳이더라......나는."

말끝을 흐린 그녀가 울먹거렸다.

"나는 도대체 왜 이곳에......"

"그 저항군이라는 단체에서 마지막까지 살아있던 게 너 아니었나?"

"......"

"신이 한 사람에게 기적을 내리는 건 어지간한 일이 아니고서야 대단한 거다. 성자나 성녀도 아니면서 그렇게까지 애정을 받는 게 쉬운 건 아니거든."

내 말에 그녀는 계속 딸꾹질하면서 울먹거렸다.

"처음부터......알았으면......처음부터 이런 세상이었으면......얼마나 좋아......나도, 나도 하고 싶은 것도 많았는데......사랑도 하고 싶었고, 동화 속의 모험가들처럼 철없는 꿈이 가득한 여행도 하고 싶었는데."

그녀가 계속해서 말을 이어나갔다.

"리인포스 알파도, 나를 따르던 화이트 버드도 그렇게 허무하게 사라지지 않았을 텐데......"

지독한 후회가 밀려오는 그 말투에 나는 조용히 말했다.

"그래그래, 고생 많았다."

"이제 일주일."

그녀가 회한이 가득한 목소리로 대답했다. 그 목소리는 서서히 졸리는지 흐려져 갔다.

"차라리......이런 즐거운 세상에서 살 수 있었다면......나도 욕심을......"

결국 말끝을 흐린 그녀가 잠들자 나는 자리에서 일어났다.

"볼일은 끝나셨습니까요?"

"그래. 여기 팁."

"아이고, 넣어두십시오. 저하께서 이곳에 찾아주신다는 소문만으로도 제가 얼마나 큰 이득을 보고 있는지 모르십니다. 언제든지 오시면 부족함 없이 모시겠습니다요."

껄껄 웃는 주인장에게 피식 웃음을 던져준 나는 쓰러져 잠든 레이나를 조용히 등에 업었다.

-그저 하고 싶은 대로하고 사는 현실도 불가능하다니......가여운 아이인 게야.

내 등에 업힌 레이나를 불쌍하게 쳐다보던 페르세르크가 씁쓸하게 중얼거렸다.

"네가 할 말은 아니다. 네가 죄책감 가질 일도 아니고."

대적자와 마왕으로서 아버지와 반목하는 과거를 가진 주제에 누가 누굴 동정하려 드나.

그리고 그녀가 살던 세상의 마왕 페르세르크는 지금 그녀와 달랐다.

그녀의 수명은 애초에 길지 않았다. 그녀가 마지막에 발악하지 않았다면 조금 정도는 더 살았겠지만. 결과적으로 그녀의 수명은 일주일 남짓 남았다. 이제 와서 그녀를 살릴 수도 없거니와. 그녀 스스로도 원치 않은 일이다.

그녀는.

이 세상에 존재해선 안 되는 티끌이었으니 말이다.

그녀는 스스로 자신이 존재해선 안 되며. 자신이 죽어서라도 이곳의 일리나를 지켜야 한다는 일념만을 가지고 있었다.

그러면서도 마음속 어딘가에 자신도 행복하게 웃어보고 싶다는 미련을 가지고 있었다.

"가기 전까지만이라도 내가 돌봐주마."

인류 전체를 위해 싸워왔던, 한 사람의 잊혀진 과거를 이곳의 그 누구도 모르지만. 알고 있는 나라도 그녀를 위해줄 수 있는 것이다.

단순 계산을 넘어서 말이다.

-성자다운 일이라는 게야?

"세상에 성자다운 일이 어딨어.

선행은 모두가 할 수 있는 일인데.

주신 프리아는 제법 영악한 신의 의지라는 것이 확 체감이 들었다.

고민할 가치도 남지 않게끔 확실한 보상을 내놨으니 말이다.

상태창을 활성화하자 아직 남아 환하게 제 존재감을 드러내던 거래 항목이 금방이라도 사라질 것처럼 흐려진 게 보였다.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