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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렙 영웅님께서 귀환하신다!-287화 (286/1,559)

# 287

만렙 영웅님께서 귀환하신다!

- 12권 10화

물리법칙과 비 물리법칙에서 치외법권이라는 말이 무슨 뜻이냐 하면.

간단히 표현해서 내가 평소에 사용하는 모든 이론과 증명된 법칙들이 소용이 없다는 소리와 같았다.

놈들이 따르는 법칙은 단 한 가지.

심연에서의 법칙이 전부다.

고작 심연에서 빠져나온 파편 주제에 도대체 이놈들은 무엇이란 말인가.

"좀 더 자세히 알아봐야겠다."

대비를 해놓지 않으면 안심할 수 없다.

게임을 할 때도 그렇지 않은가. 해당마을에서 최고의 장비로 도배하지 않으면 다음 마을로 넘어가지 않는 변태 같은 게임 플레이 습성을 가진 이들을.

내 목숨은 고작 두 개.

한번은 잔불의 힘으로 다시금 일으키는 것이니 만에 하나라도 이놈들이 이것조차 무력화시킬 수 있다면, 사태는 심각해진다.

인상을 팍 찡그리고 내게 덤벼드는 페르세르크를 애써 무시하며 나는 아공간에서 방울가지 하나를 꺼내 들었다.

그리고는 그대로 몸 안에 잠들어있던 도력을 활성화 시켰다.

[5급 주술]

[주박술]

[금]

딸랑!

차르르르륵!!!!

동시에 방울가지의 방울이 청명한 소리를 내며 주변의 공기를 뒤바꾸기 시작했고 내가 품에서 던진 부적과 공명하며 황금빛의 사슬을 뽑아내 살점 덩어리들을 옭아매기 시작했다.

스팡!!!

하지만.

놈을 포박하는 힘의 일부에서 이상한 증상이 발현되기 시작했다. 마치 놈에게 흡수되듯 주술이 서서히 옅어지기 시작한 것이다.

-데이비?

그제야 뭔가 상황이 심상찮음을 깨달은 듯 주변의 공기가 싸늘해졌다.

"주술까지 잡아먹고 제힘으로 바꿀 줄은 몰랐는데."

놈들이 마나 같은 힘에 완전히 면역이 있진 않았다. 효율이 많이 떨어지긴 하지만 1서클 쇼크도 마나량과 배열을 살짝 바꾸면 분명 효과가 있었다.

상위마법에는 그대로 영향을 받는 것으로 보아 놈들은 4서클 이상의 마나량으로 밀어붙이면 효과를 보았다.

하지만 중요한 건 다른 곳에 있었다.

내가 밀어 넣은 마나를 놈들이 받아들이고.

그것을 자신의 힘으로 아주 천천히 바꾸기 시작했다는 점이다. 현존하는 모든 법칙을 깡그리 개무시하고 자신들이 가지고 있는 법칙을 인용하여 제 힘으로 바꾸는 그 형태에 소름이 싸하게 돋았다.

-데이비, 본녀가 말했지. 심연은 그대가 생각하는 이상으로 위험해. 가장 좋은 방법은 심연이 이 세계에 간섭할 수 있는 구간을 모조리 틀어막는 것뿐이야.

"그러니까 널 내게서 독립시켜야지."

-......

균열을 막을 수 있는 존재는 현재 내 입장에서 볼 때 나를 제외하곤 없다고 볼 수 있다.

그런 마당에 나와 함께 있는 페르세르크가 지속적으로 저들에게 노출된다면.

내가 대처하기도 전에 날름 그녀를 빼앗겨버릴 가능성이 컸다.

그녀를 납치해가던 균열을 잡아 찢은 힘은 지금 나로선 다시 구현하기 힘드니 말이다.

-가장 좋은 방법이 있어 데이비.

한참을 고민하던 그녀가 조심스레 입을 열었다.

"마왕이 된다는 소리 하지 마라. 지금 상황에 네가 마왕이 되면 대적자는 누가 될지 뻔하다."

-본녀는 이미 죽은 영혼이야. 까짓거 한 번 더 죽는다고......

쾅!!!

그녀의 말을 끊은 내가 바닥을 강하게 굴렀다.

그러자 거대한 균열이 일어나며 일대가 뒤흔들렸다.

"열 받게 하지 마라, 페르세르크."

-그대는 심연이 얼마나 위험한지 아직도 몰라.

우울한 표정으로 나를 보던 그녀는 결국 그대로 사라져 버렸다.

이에 나는 인상을 거칠게 찌푸리고는 살점 덩어리에 마나를 쑤셔 박았다.

우우우웅!!!!!

동시에 마나를 받아들인 놈의 형체가 다시 자라나기 시작했다.

마나 같은 무형의 힘을 원료로 놈들은 더욱더 커지고 강해진다.

물리법칙을 깡그리 무시하는 성장력에 놀라울 법도 했지만, 그보다 다른 한 가지, 크게 놀라운 점이 보였다.

"웁......"

놈에게 주입했던 마나를 다시 회수했을 때.

나는 머릿속 한구석에서 들려 오는 정체 모를 폭력성에 인상을 살짝 찌푸렸다.

제대로 된 생각을 못 하게 만들고. 마치 광분화시킨다.

주로 투사들이 사용하는 버서커 마법과 비슷하지 않은가.

그런 생각을 하던 내 손이 멈칫했다.

광폭화.

어디서 많이 본 상황인데?

이성을 잃고, 자신이 무엇인지도 모른 채 닥치는 대로 파괴한다.

그 목적은 현재 동전의 앞면인 이곳에 대한 맹렬한 적대의식이다.

그 기간은 아마, 몸 안에서 끝없이 타오르는 이놈들의 힘이 끝을 고했을 때......

"샨드라의 분신체보다 훨씬 더 빠르게 괴석거인이 나타났었지."

직접 확인하기 위해선 비슷한 케이스의 놈들을 잡아 조사해볼 필요가 있었다.

현재 가장 그쪽 방면에 관해서 정보가 다양한 이들을 나는 알고 있다.

라스트 위스프.

바로 중부대륙 북부에 자리를 잡고 있는 비밀 결사인 리인포스 알파였다.

곧바로 서신 한 장을 써 갈긴 나는 망설임 없이 손가락 중 하나에 끼워둔 반지를 활성화 시켰고 그대로 반지에 붙은 보석 부분을 서신에 두드려 그대로 전송시켰다.

저들이 정보를 가지고 있다면, 빠른 시간내에 답신이 오리라.

일단은 나도 라스트 위스프, 즉 리인포스 알파의 일원이니 말이다.

"그러고 보니 견습생 동기들 안 만난 지도 몇 달은 지난 것 같네."

속세와 연을 만들지 않는 이들이니 그들에 대한 소식을 듣기 위해선 리인포스 알파 본부까지 가는 수밖에 없지만, 그동안 신경 쓰지 않았던 것도 사실이었다.

모든 일은 순서가 있다.

당장 급하다고 들쑤시는 건 나야 좋아하는 편이지만 다른 이들에겐 상당히 불편한 현실이 될 수도 있기에 재촉하진 않았다.

지금 내게는 그보다 먼저 신경 써야 할 인물이 하나 있지 않았던가.

"바쁜가요?"

집무실로 돌아온 나를 기다리고 있던 백발의 여성, 레이나의 부탁에 나는 조용히 그녀와 눈을 마주쳤다.

속을 버릴 정도로 매운 것을 먹고, 마음속에 응어리진 모든 것을 털어놓을 만큼 술을 진탕되도록 마신 그녀였다.

마스터급이 취할 정도였으니 얼마나 마셨는지는 따로 계산해볼 것도 없었다.

그 탓에 상당한 숙취로 고생할 줄 알았건만.

그녀는 의외로 담담한 얼굴이었다.

"바쁘냐고?"

"네."

담담하게 말한 그녀가 집무실의 한쪽을 장식하고 있는 와인 진열대를 가리켰다.

"오늘 밤도, 제 상대가 되어주세요."

표현방식이 조금 걸리긴 했지만, 그녀의 의도는 금방 눈치챌 수 있었다.

그녀와 나는 만난 지 얼마 되지도 않은 상대지만, 그녀에게만큼은 내가 특별할 수밖에 없는 존재였다.

말 상대.

꽁꽁 숨겨둔, 푸념을 늘어놓을 수 있는 상대.

마음 놓고 속에 든 것들을 다 털어놓을 수 있는 이 세상에서 유일한 술친구.

그녀가 필요로 하는 것은 그녀의 삶을 듣고 공감해줄 수 있는 존재였다.

"거, 소원 한 번 소박하네."

말은 그렇게 했지만, 굳이 내가 그것을 거절할 이유는 없었다.

* * *

한차례 무언가를 내려놓은 듯 그녀의 푸념을 들어주고 그녀의 마음을 공감해준 덕분일까.

그녀는 좀 더 욕심을 부려 자신이 하고 싶었던 것들을 할 수 있었다.

단순히 어린 나이의 소녀가 하지 못했던. 소녀가 하고 싶었던 것들을 말이다.

그 때문일까.

오묘한 소문이 돌기 시작했다.

아직 레이나의 존재는 세상에 크게 알려지지 않았다.

그런 마당에 가면을 벗은 그녀를 알아보는 이는 당연 없다고 봐도 무방했다.

나이를 먹어도 괜히 방부제라 부르는 게 아닐 만큼 그녀는 예전의 아름다움을 고스란히 가지고 있었고.

외국이나 타 영지에서 찾아온 이들이나 상인들은 레이나를 보고 그녀가 일리나라는 착각을 하게 만들었다.

마치 연인이라도 된 것처럼 보이는 행동 때문이었을까.

의도하지 않게 팔란제국의 금지옥엽 일리나와 나의 사이에 묘한 기류가 오가기 시작했다는 소문이 돌기 시작한 것이다.

하지만 본인은 오히려 그게 더 즐거운 듯 보였고, 나 또한 신경 쓰지 않았다.

처음엔 제대로 웃지도 못하던 그녀가 다시금 미소를 되찾는 데엔 많은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그동안 나름대로 최대한 그녀를 배려해주었으니 말이다.

하지만 단 한 가지.

사흘째 되는 날부터 나는 그녀를 절대 그녀가 아는 이들과 마주치지 못하게 막았다.

"왜 못 만나게 하는 거죠?"

그 사실이 못내 화가 나는지 그녀가 뾰로통한 말투로 내게 물어왔다.

"널 생각해서 내린 결단이야. 그러니까 얌전히 따라."

완전히 감금한 것처럼 되어버렸지만 나는 신경 쓰지 않았다.

이게 유일한 상책이니 말이다.

"이제 얼마 남지 않았어요! 그들에게 작별인사라도 하게 해줘야 하는 거 아니에요?!"

화가 난 그녀의 외침에 나는 단호하게 고개를 저었다.

"무조건 후회할 거다. 내 말 들어."

내 말에 그녀는 차가운 미소를 머금었다.

"싫어요. 꼭 만나서 하고 싶은 말들 다 할 겁니다. 당신이 저를 위해 많은 것을 해준 건 고맙게 생각하고 있어요,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이걸 당신이 막을 권리는 없어."

"후회하지 않을 자신 있냐?"

"후회요? 적어도 후련하게 작별인사도 못 하고 떠나는 게 더 후회스러울 걸요?"

내 말에 그녀가 침묵했다.

그리고는 집무실의 창문을 벌컥 열고는 어째서인지 떠날 준비를 하는 그녀의 일행들을 향해 뛰어갔다.

마법사인 메르실, 신관인 에실트. 그리고 크루세이더 로이나.

벤디크는 어디로 사라졌는지 보이지 않았기에 세 사람이 전부였다.

"에실트! 로이나!"

마지막 가는 길에 슬픈 표정을 지을 수 없다고 여긴 것일까.

레이나는 환한 미소를 머금은 채 그들을 향해 다가갔다.

그리고는 충격적인 말을 듣고 말았다.

"저, 누구......세요?"

이 세상에 속하지 않는 자.

그녀의 존재는 본래 이곳에 있어선 안 될 존재.

과거에도, 현재에도, 미래에도.

그러니까. 그 소용을 다 한 존재는 시간이 갈수록 스스로에 대한 유지력을 잃으면서 세상을 기록하는 대서고에서도 지워진다.

윤회의 고리에 들어가는 것과는 별개의 너무도 당연한 시나리오에 감동도 재미도 없다만, 어찌하겠는가, 타 차원도 아닌 타 세계선의 존재인 것을.

"그게......무슨......"

멍한 얼굴로 굳어버린 레이나의 표정에도 불구하고 메르실이 약간 경계 어린 표정으로 레이나를 바라보았다.

"누구시기에 저희를 부르시는 거죠? 죄송하지만 저희는 지금 무슨 일로 저희가 이곳에 있는지 이해가 되지 않아서......"

메르실의 말에 레이나가 아무런 말도 못하고 굳어있던 찰나.

나는 가볍게 창문으로 뛰어내려 그대로 레이나를 들쳐메고는 아무도 눈치채지 못하게 그 자리를 순식간에 벗어났다.

"윽?!"

애초에 내가 이 사실을 전혀 귀띔해주지 않은 것은 그녀가 영리하기 때문이었다.

한 개의 힌트라도 그녀는 이런 참 어처구니없는 진실에 도달할 것이기에 어지간해선 본인이 원하지 않는 이상 말하지 않으려 했었다.

"거봐라, 후회할 거라고 했지."

"이......이게 대체......"

"당연한 현상이다."

그녀는 일반적인 인간이 아니다. 모종의 힘으로 타 세계선에서 넘어온 이방인.

게다가 이 세상에 그녀와 같은 존재가 있는 이상 그녀의 존재는 이물질에 불과하다.

그런 이물질이 자신의 명을 다하고 죽음을 맞이할 때.

주변인들의 기억 속에서도 그녀의 존재가 사라지기 시작한다는 것쯤은 금방 예측할 수 있는 일이기도 했다.

"당연한......일이요?"

"넌 타 차원도 아니고 타 세계선 사람이잖아. 네가 여기 있었다는 흔적을 세상이 남기려 들것 같았냐?"

일리나 데 팔란이라는 인물은 이미 존재한다.

그렇기에 레이나는 절대 존재해선 안 되는 인물이다.

설사 나이가 다르고 이름이 다르다 해도 말이다.

내게 매달린 채 이동하는 레이나는 한참 동안 아무런 말도 하지 못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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