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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렙 영웅님께서 귀환하신다!-292화 (291/1,559)

# 292

만렙 영웅님께서 귀환하신다!

- 12권 15화

100. 너흰 아직 준비가 안 됐다.

조용한 침묵 속에서 놀란 표정을 짓는 건 율리스 한 명뿐이었다.

눈치 빠른 양반 같으니.

그는 단순히 정치적인 입장, 혹은 자존심 같은 것과 관계없이 객관적으로 이 수식을 빠르게 분석해냈고. 내가 방금 쓴 수식 속에 담긴 메시지를 금방 눈치챘을 것이다.

그 뒤를 이어 조용히 있던 몇몇 마법사들도 눈을 크게 뜨고 놀란 시선을 보내왔지만, 그것까지 신경 쓸 이유는 없었다.

"윈리."

이윽고 조용해진 학회장을 둘러보던 내가 조용히 윈리를 불렀다.

"네....... 네! 오라버니."

"나가자."

짧게 말한 내가 브램 6급을 지나쳤다.

"다시 말하지만, 이론이 맞든 틀렸든 시도 자체는 매우 좋았습니다. 다만......"

말끝을 흐린 내가 조용히 그를 지나쳤다.

"그걸 토의하는 과정과 수식에 [정치와 자존심]을 빼면 더 발전할 겁니다."

담담하게 내 말에 브램 6급은 한참 동안 아무 말도 못 한 채 그저 보드를 노려보았다.

그는 눈치를 챈 듯 보였다.

반면. 몇몇은 전혀 이 상황을 모르는 듯 그저 나를 헐뜯기 바빴다.

분명 대부분의 마탑은 달의 풀 잎사귀 문제로 인해 내게 호의적이다.

하지만 학회에 참석할 정도로 외골수 같은 양반들은 그런 것 따윈 신경 쓰지 않는 듯 보였다.

"그만!!"

이윽고 학회장을 빠져나가는 내 귓가에 브램 6급의 격노한 외침이 들려왔다.

"데이비 왕자의 말이 맞았소, 내가 내놓은 이 이론은 틀렸소이다. 어떤 이의도 받지 않겠소."

무언가 깨달음을 얻은 듯 중얼거린 그가 나를 향해 소리친다.

"데......데이비 왕자님!"

이에 걸음을 멈춘 나는 돌아보지 않은 채 그저 기다렸다.

"신성 마법은 원소 마법과 그 궤도 자체가 다르건만, 어떻게......이런 것을 알고 계신 게요?"

마법 수식이라는 게 참 웃긴 구조로 되어있다.

이론을 이해하기 위해선 수식을 분석할 줄도 알아야 하지만 직접 서클을 만들고 마나를 다뤄봐야 이것을 역산할 수 있으니 말이다.

그의 질문에 내가 조용히 웃어넘겼다.

"제가 언제 마법 못 쓴다고 말했던가요."

가볍게 손을 튕긴 내 말과 동시에.

은은한 마석빛으로 반짝거리던 학회장의 밝기가 최소 서너 배는 더 환하게 빛났다.

"기본에 충실하지 못한 마법사는 외길로 빠지는 법입니다. 대 현자께서 한번은 구경해보라 하시더니 이걸 노린 거였나 보네요."

내 말에 경악한 듯 회장을 둘러보던 마법사들은 결국 내가 사라질 때까지 아무런 말도 하지 못했다.

* * *

"오라버니!"

나를 따라 사박사박 걷던 윈리가 내게 환한 미소를 지어 보였다.

"역시 오라버니가 최고예요. 학회에 있던 마법사들을 한마디로 모조리 침묵시킨 거잖아요? 그것도 그들이 가장 자신 있어 하는 이론으로."

그녀의 말에 나는 아무런 말도 하지 않은 채 녀석의 머리를 더욱더 헝클어뜨렸다.

"으읏......머리 헝클어뜨리지 마세요."

울상을 지으며 불만을 표하는 녀석의 모습에 나는 그저 조용히 중얼거렸다.

"윈리, 마법이 뭐라고 생각해."

내 질문에 윈리가 고민하는 표정을 지어 보였다.

"마......마법이요? 글쎄요......그렇게 설명하자니 조금 어렵긴 한데. 자연에 존재하는 무형의 마나를 느끼고 조정하고 구조하여 세상에 존재하지 않는 새로운 법칙을 발견하고 현상을 만들어내는 학문기술 정도겠......"

말을 하던 윈리가 뭔가 이상한 점을 깨달았는지 눈을 크게 떴다.

4서클에 들어서면서 녀석도 어엿한 상급 마법사가 되었다.

그만큼 영특한 윈리는 한 가지 커다란 문제점을 깨달았을 것이다.

"오라버니......그렇다면 그 수식......"

"그래, 뻥이야."

내 답변에 윈리의 얼굴에 허탈함이 어렸다.

"오라버니......정말......"

허탈하게 중얼거리던 윈리가 웃음 짓다가 멈칫했다.

"잠깐......"

작게 중얼거린 그녀가 눈을 동그랗게 떴다.

"잠깐......이 수식 뭔가......프리아님 맙소사......"

말을 하다말고 소름이 돋았는지 윈리가 부르르 떨었다.

"오라버니......설마 이거 노리신 건가요?"

내가 쓴 수식은 틀렸다.

하지만 그것을 검산하는 과정에서.

어지간한 마법사라면 한 가지 사실을 머릿속에 본능적으로 각인하게 된다.

기존의 상식과 다른 적용방식을 말이다.

그리고 그 적용방식을 내세우는 순간.

브램 6급이 내세웠던 인간의 한계이론이 시작부터 뒤틀린다는 것을 깨닫게 된다.

멍청하게 고집을 버리지 못한 마법사는 평생 가도 이해 못 할 이중함정이기도 하다.

솔직히 그것과 비슷하지만 조금 다른 수식 하나면 모든 게 이해가 될 수 있다.

전혀 파고들 틈이 없는 절대 법칙이 완성되는 것이다.

하지만, 그렇게 완성품을 보여주는 건 마법사에겐 약발이 별로 들지 않는다.

무엇보다.

내가 뭣 하러 마음에 안 드는 인간들에게 깨달음을 선사해주나.

그 정도 힌트에 스스로 눈치챈 이들은 발전할 자격이 충분하지만, 자신의 위치에서 더 발전할 수 없어 현실에 안주한 이들은 평생을 가도 이해 못 할 것이다.

게다가 조만간 내가 보여준 그 간단한 수식이 틀렸다면서 나를 비웃고 넘길 것이다.

호의적인 이들에겐 큰 이득을, 그게 아닌 이들에겐 그저 헛다리를.

마법이라는 게 참 웃기기 짝이 없다.

한참을 걸어 숙소까지 도달한 나는 아직 오한이 가시지 않은 지 파르르 떨고 있는 윈리에게 말했다.

"먼저 들어가 있어. 나는 들를 곳이 있으니."

"세상에......이게 이런 방식이면 대체 얼마나 많고 다양한 수식이......"

자신의 깨달음을 천천히 곱씹던 윈리가 눈을 동그랗게 뜨고 나를 올려다보았다.

"네? 어디......가시는 건가요?"

"사전답사."

진짜 그의 제안을 받아들이러 가야 하지 않겠는가.

학회는 단순히 윈리가 보기에 적합한 짓을 하는지 보러 간 것일 뿐이었다.

진짜 헬리슨 발레스티아가 내게 요구한 것은.

다름 아닌 이곳 린드홀에 있는 거대 마법아카데미에 있었다.

* * *

대륙에는 여러 아카데미가 있지만 적탑 본부가 있는 이곳 도시, 린드홀에 있는 마법아카데미인 샤쿤탈라는 그야말로 마법사들의 하버드 같은 곳이다.

-하버드?

"지구에서 말이야. 가장 좋은 대학이라고 유명하던 곳이야. 뭐. 진짜로 정말 최고의 대학인지는 나도 모르지."

가본 적도 없으니.

인간의 인식이라는 게 그런 거다.

-데이비, 그대 말이야. 의외로 짓궂은 면이 많아.

페르세르크는 뛰어난 마법사였다.

그렇기에 그녀는 다른 시야에서 수식을 보았었다.

-윈리에게도 말하지 않았지?

함정이 하나 더 있다는 것을 말이다.

"들켰네?"

-본녀를 너무 우습게 보지 마라. 적어도 본녀는 8서클 마법까지 익힌 마법사였으니.

단순히 내가 윈리에게 설명해준 한가지 진실과 다르게 그 맞는 듯 미묘하게 틀린 수식 안에는 커다란 한가지 진리를 또 하나 숨겨두었다.

애석하게도 그것까지 눈치챈 이는 없어 보였지만 말이다.

유일하게 알아챈 것이라곤 역시 마법사 중엔 내가 아는 한에서 최고인 페르세르크 뿐이다.

우우웅!!

이윽고 대 마법아카데미 샤쿤탈라의 입구에 도달한 나는 자동으로 움직이는 발판 위에 올라섰다.

그러자 옅은 울림과 함께 푸른 잔상이 내가 있던 사각형의 발판을 들어 올려 마치 자기부상열차처럼 넓은 아카데미 내부로 날려 보냈다.

마치 마법의 양탄자가 날 듯 움직이는 발판을 툭툭 건드리며 주변을 둘러보던 나는 아카데미의 교복을 입고 돌아다니고 있는 수많은 학생을 볼 수 있었다.

나잇대는 아직 어려 보이는 9살대부터 많게는 15살에서 19 정도까지.

제법 다양했다.

애초에 마법아카데미는 나이 최저선이라는 제한이 없다.

물론 최대 제한은 존재하기에 25살이 넘은 자는 입학할 수 없지만.

그런 의미에서 내 나잇대의 소년 소녀들이 대부분인 고등부를 생각하면 이건 말 그대로 웃긴 일이다.

동갑내기 과외하는 상황 같은 웃기지도 않은 현실이지만.

현자 헬리슨 발레스티아는 내게 50년 이상 된 진귀한 봉인석을 두 개 이상 내어주는 대신 이것을 제안하였다.

"어서 오십시오. 데이비 왕자님. 오신다는 연통을 대 현자, 헬리슨 발레스티아님께 먼저 전해 들었습니다. 향후 보름 동안 데이비 왕자님께서 맡으실 임시 강사 일을 제가 주도하여 도와드리겠습니다."

의도하지 않는 선생 노릇이다.

내 마법을 일면식 없는 놈들에게 가르칠 이유는 없다.

다만, 단순히 널리 알려진 이론을 훑어주는 정도라면 오히려 이쪽이 싼값에 챙기는 거래라 할 수 있다.

봉인석의 가격은 생각 이상으로 높게 잡고 있었으니 말이다.

-하지만 현자의 독단으로 봉인석을 내어준다면 마탑에서 반발이 거셀 텐데.

'그 영감이 그래서 나를 학회로 보낸 거겠지.'

마법사들에게 빚을 지워서 불만을 잠재우게 하기 위해.

다시 생각하지만 대 현자 헬리슨 발레스티아는 정마로 7서클 마법사라는 점만 빼면 정말 다양하게 많은 사실과 인과를 알고 있는 놀라울 정도의 천재적인 양반이었다.

'그래 봐야 올드는 내가 이겼다만.'

-세상에......이런 속 좁은 인간이 9서클 초월 마법사라니......

놀랍다고 할까.

"제 이름은 세베레스입니다. 별 볼 일 없는 평민 출신이지만 대 현자님의 눈에 들어 이렇게 과분하게 아카데미의 선생과 제 4 기숙사장을 맡고 있습니다.

정말 깐깐해 보이는 인상의 사내였다.

당장 한 번만 실수해도 꼬투리를 잡고 사람을 너덜너덜하게 만들어버릴 만큼 흉흉한 인상도 가지고 있지만 나는 왜 헬리슨 발레스티아가 나를 그에게 보냈는지 알 수 있었다.

생긴 것과 다르게 그는 제법 올곧은 사내였다.

학생을 가르치는 선생으로서. 학생을 사랑할 줄 아는 사내.

그게 내가 본 세베레스였다.

물론. 속마음과는 별개로 겉은 상당히 차가워 보이는 남성이었지만 말이다.

"데이비 올 라운입니다. 부족하나마 보름간 임시 강사로 활동하게 되었습니다. 잘 부탁드리지요."

"아닙니다. 대 현자님께선 데이비 왕자님께서 아직 어린 나이임에도 불구하고 뛰어난 지식을 가지고 계시다고 말씀하셨습니다. 게다가 대륙의 성자이기도 하시지요."

그의 말에 내가 너털웃음을 터뜨렸다.

"허면. 강사로서 수업은 이틀 후부터입니다만......괜찮으시다면 학생들을 한번 보시겠습니까?"

그의 제안에 나는 조용히 고개를 끄덕여 보였다.

"애초에 그럴 작정으로 온 것이니까요."

내 말에 세베레스가 묵묵히 고개를 끄덕이고는 좀 전 내가 아카데미 내부로 들어올 때 탔던 발판과 비슷한 것을 작동시켰다.

동시에 아카데미 내부의 계단들이 일제히 변하며 바닥이 스스로 살아있는 것처럼 움직였다.

"왕자님께서 마법을 가르치실 곳은 2학년 중등부입니다. 졸업을 앞둔 고등부 바로 아래의 학생들이지요. 부끄럽지만 제가 담당하고 있는 학급이기도 합니다."

"그런가요."

보통 아카데미는 대학처럼 수강을 신청하는 식으로 이어지지만, 이곳 아카데미, 샤쿤탈라는 고등부 이전까지는 통합 교육으로 이어지는 모양이었다.

"티미는 제법 장난기가 많습니다. 엘리는 잘생긴 남자만 보면 수업을 잘 듣지 않으니 가급적 조심하시기 바랍니다."

그렇게 묵묵하고 차가운 표정을 지으면서도 자기 학생들을 자랑, 험담을 해대기 시작하는 세베레스의 말을 들으며 주변을 둘러보던 나는 문득 들려오는 소리에 귀를 기울였다.

"이봐! 들었어?! 이번에 아카데미에 단기 강사가 들어온대!"

그 말에 내 시선이 돌아갔다.

"아. 그거? 나도 들었어! 들었어!"

젊은 소년과 소녀의 대화였다.

이윽고 두 사람의 대화에 또 한 명의 소녀가 끼어들었다.

"어머, 저도 들었어요. 듣자 하니 나이가 저희와 비슷하다고 하던데요?"

"세상에......누군 이 나이에 2서클 마법사로 학생인데. 누군 선생이라니......그런데 그 선생은 몇 서클이래?"

"글쎄요......들은 바가 없어서......아직 그 선생의 이름도 모르는 걸요."

학생들의 말과 세베레스의 학생 자랑을 번갈아 들으며 가던 나는 곧이어 들려오는 말에 픽 웃음을 터뜨렸다.

"웃기지 않아? 우리랑 동갑내기가 뭘 가르치겠다는 거야."

"그러네요. 조금 자존심 상하네요."

"얘......얘들아 그만해."

"이럴 게 아니라 확인해보자. 우릴 가르치려면 그에 따른 실력은 있어야 하지 않겠냐고. 그러니까 우리가 시험을 해보는 거야."

아직 겁도 없이 천진난만하게 떠드는 저놈이 티미로 구나.

내가 자신들을 보고 있다는 사실조차 인지하지 못한 듯 떠들어대는 학생들을 보고 있자니 새삼 실감이 났다.

내가 얼마나 이 세상의 평범한 인생과 동떨어져 있는지를 말이다.

-데.......데이비?

'시험이라......이 새끼들 간이 부었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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