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94
만렙 영웅님께서 귀환하신다!
- 12권 17화
"어디 보자. 티미."
"......네."
"엘리."
"네에......."
"알리사."
"......여기, 있어요."
모든 일에는 순서가 있다.
사람은 제각각 다른 마음가짐을 지니고 있고 사상 또한 전혀 다르다.
아직은 주입하는 대로 쑥쑥 크는 아이들인 만큼 교육 자체는 크게 어렵지 않겠지만 그렇다고 해서 그들이 살아온 삶이 부정당해선 본말전도가 되어버릴 수밖에 없다.
학생들을 모조리 대동한 채 운동장으로 나온 나는 의심 섞인 눈초리로 나를 보는 학생들을 무시한 채 손에 쥐고 있던 보드를 스윽 훑었다.
"모리."
"네에~"
"로이사."
"네."
그놈의 규칙이 뭐라고.
내가 호명할 때마다 학생들은 탐탁잖아 하면서도 내 부름에 무시하는 이는 없었다.
"요시아."
이윽고, 예의 그 문제아로 낙인 찍힌 요시아를 호명한 나는 당연하게도 대답이 들려오지 않자 고개를 들었다.
"요시아 프랑소스."
고요한 침묵 속에서 한 학생이 조심스레 손을 들어 보였다.
"저......선생님? 요시아는 없어요."
소극적인 말투로 조심스레 답한 안경을 쓴 소녀의 대답에 나는 고개를 돌렸다.
"다시 없을 기회이긴 한데, 들을 생각 없나?"
내 시선이 향한 곳은 운동장 한편에 있는 커다란 화단 너머였다.
"요시아 프랑소스."
"......제가 여기 있는 걸 알고 계셨나요?"
"선생이 제자가 뭘 하는지 모르면 쓰나."
아무렇지도 않게 내가 답하자 풀숲 속에서 이윽고 흑발을 가진 예쁘장한 소녀가 무덤덤한 표정을 지은 채 모습을 드러냈다.
"요시아?"
"세상에 요시아가."
요시아 프랑소스.
4서클 익스퍼트 마법사로 현재 이 학교인 샤쿤탈라에선 유례없는, 천재라 불리는 학생인 모양이었다.
마법은 6서클, 검은 소드마스터라는 경지로 주로 나누어 구분하곤 하지만 사실상 비율만 놓고 보자면 마법사의 성장치가 더 낮은 건 현실이라는 것이다.
그런 불리한 상황 속에서.
고작 16살짜리 소녀가 4서클 익스퍼트라는 말은 확실히 대단한 입장인 것은 사실이다.
문제는 학교에서 수업을 하는 선생들의 수준도 4서클에서 5서클 정도이다 보니 그녀가 학생으로서 수업을 받을 수준이 맞는 건지 생각을 해봐야 할 정도인 것은 사실이었다.
'그런 점에서 보면 윈리가 대단하긴 하지.'
-그놈의 동생 사랑.
고작 열다섯의 나이에 4서클인 윈리는 이런 학교에서의 수업도 없이 오로지 마법서에 의한 독학으로 4서클까지 올라갔다.
윈리 녀석에게 재능이 어마어마한가 하면......
사실 아니라고 말하고 싶지만 14살에 3서클까지 들어갔던 점을 생각하면 확실히 윈리도 천재의 반열에 드는 편이긴 했다.
"흐음......조금 흥미가 생겨서요."
그저 따분한 표정을 유지한 채 사뿐사뿐 걸어온 요시아는 나를 한 바퀴 비잉 돌고는 눈을 가늘게 떴다.
"새로 오신 선생님이 저희와 비슷한 동년배라는 말을 들었어요."
"그래서?"
"그래서 조금 궁금해서 찾아와봤는데. 역시 신기하네요."
담담하게 말한 그녀가 나를 위아래로 훑어보았다.
"마나가 전혀 느껴지지 않는 선생님이라니."
그녀의 말은 적잖은 파장을 불러일으켰다.
확실히 마법 수업을 하는 선생이 1서클 마나도 없다는 사실이 드러나면 얼마나 어처구니없을까.
"요......요시아! 아무리 그래도 선생님인데......."
"여긴 실력주의 아니었어?"
"그래도......"
"A반 녀석들이 어째서 우릴 그렇게 깔보는지 모르진 않잖아?"
세베레스에게 먼저 들은 바 있었다.
내가 담당하게 된 F반 학생들의 경우 가장 수준이 떨어지기에 F반이라고 말이다.
실력이 모든 것을 말해주는 이 학교에서 F반에 재학 중이라는 말은 상당히 불명예스러운 꼬리표가 될 수밖에 없다.
"요시아, 입 조심해. 하지만 그건 반 대항 마법제에서 졌을 뿐이지 우리 개인 역량이 떨어지는 게 아니야."
"맞아, 게다가 넌 지난 마법제에 조차 참가하지 않았잖아? 사람 수도 부족한데 네가 그렇게 비협조적으로 나오면서 왜 우리 탓을 하는 건데?"
상당히 골이 깊은 듯 학생들이 이를 부득부득 갈며 요시아를 향해 험담을 쏟아냈다.
"서클이 높고 천재면 뭐해. 출석 일수도 못 채워서 낙제나 된 탓에 F반에 온 주제에!"
결국, 한 소년이 그녀의 역린이라도 건드렸던 것일까.
말을 한 소년이 아차 싶은 표정으로 제 입을 틀어막았지만 이미 요시아의 표정은 차갑게 식어버린 후였다.
"그래......작년 동계 마법제에 참석하지 않은 건 사실이야. 변명 따위 할 생각은 없어, 하지만, 마법을 가르치는 선생님이 1서클도 없는 마법사라니. 웃기지도 않잖아?"
망설임 없이 돌아서는 요시아의 모습에 나는 뒤 돌아 나가는 그녀의 뒷덜미를 낚아챘다.
그녀는 아무래도 이 학급에서 상당히 붕 뜬 존재인 듯싶었다.
그녀가 갑자기 동계 마법제에 불참한 탓에 F반으로 추락했다는 사실이 학생들 사이에서 암묵적으로 나돌았던 모양이었다.
-본인도 피해자일 텐데, 학급 전체에 피해를 주었다는 것에 상당히 죄책감을 가지고 있군.
'어딜 가나 예쁜 얼굴이 문제지.'
"선생......님? 이게 뭐하는 짓이죠?"
"그건 내가 묻고 싶은 말이다. 반항아를 되돌리는 건 내 소양이 아니다만. 지금 뭐하는 짓이냐?"
담담한 내 물음에 그녀가 눈을 찌푸렸다.
"그렇다면 선생님이 우릴 가르칠 자격이 있다고 생각하시나요? 마나서클 하나 없는 선생님이요."
그녀의 말에 다른 학생들이 입을 다물었다.
그녀의 말이 사실이라면 확실히 마법사도 아닌 사람에게 마법을 배우는 게 꺼림칙하게 여겨질 뿐이었으니 말이다.
게다가 저들이 상당히 자격지심을 지닌 마법제라는 행사 동안 녀석들을 돌봐줄 사람이 나라는 사실이 더욱 탐탁잖았던 모양이다.
"그건 네가 판단할 게 아니야. 마음이 바뀌었다. 가서 자리에 서라."
딱딱한 어조로 내가 쏘아붙이자 그녀가 신경질적으로 내 팔을 걷어내고는 허리춤에 걸린 완드를 뽑아냈다.
"저와 대결하세요. 선생님. 선생님이 정말 자격이 있는 분이라면 수업을 듣는 것에 아무 불만이 없겠죠. 저 녀석들은 성격이 너무 여려서 당신의 지도에 불만을 품지 못할지도 모르겠지만......"
말끝을 흐린 그녀가 단호한 표정을 지어 보였다.
"나는 달라요. 적어도 당신이 우리의 선생님으로 있을 자격이 있는지 봐야겠......"
쿵!!
그녀의 말이 끝나기도 전에 일이 터졌다.
당당하게 완드의 끝에 빛을 머금던 요시아의 무릎이 그대로 구겨지듯 꿇린 것이다.
"윽?!"
자신이 왜 무릎을 꿇었는지조차 이해하지 못한 듯 그녀가 눈을 찌푸리며 나를 바라보았다.
"이게 무슨......"
"학생이 선생을 평가하고 수업을 들을지 말지 정하겠다고? 돌았구나! 아주. 선생님이 네 친구냐? 세상이 만만하지? 꼴랑 4서클에 들어선 주제에 네가 무슨 대 현자라도 되는 것처럼 보이디?"
내 신랄한 비판에 그녀의 인상이 찌푸려졌다.
"으윽......"
그리고는 이유모를 중압감을 마나로 밀어내며 천천히 일어났다.
"대체 무슨 짓을......"
"무슨 짓이고 나발이고 네 대답은 잘 들었다. 빠른 성과를 원하나? 좋아. 너희가 원하는 게 그런 거라면 나도 그에 맞춰서 교육을 해주마."
본래엔 조금 시간을 들여서 천천히 굴려줄 생각이었다만. 너희들이 그런 것을 원한다면 순한 맛 식 교육은 모조리 배제하도록 하겠다.
짧게 말한 내가 학생들을 둘러보았다.
"너희도 같은 생각이냐?"
내 물음에 학생들이 우물쭈물했다. 겉으론 아닌 척했지만 역시 동년배에, 마법사도 아닌 듯 보이는 소년을 믿고 교육을 받기엔 꺼림칙했던 모양이었다.
하여튼 단순한 놈들.
흘러가는 대로 아주 신나게 휘둘려 주는구나. 전원 지금 이 상황이 누구의 의도대로 돌아가는지도 파악 못 하고 있으니.
"열외는 없다. 운동장 20바퀴. 선착순 5명. 나머지는 7바퀴 선착순을 할 거다."
내 말에 학생들의 얼굴에 얼이 빠졌다.
마법사는 이론과 현상을 연구하는 학자에 가깝다. 당연 육체 능력이 딸린다고 불릴 만큼 마법과 육체는 거리가 멀다는 소리였다.
그런데 운동장 스무 바퀴라니. 기사들도 잘 하지 않을 하드한 명령에 학생들의 표정이 굳어졌다.
"안 해? 그럼 내가 하게 만들어주마."
짧게 말한 내가 손을 튕겼다.
우웅!!!!
동시에 학생 전원의 몸이 부웅 떠오르기 시작했고 사정없이 운동장의 코스 위로 내던져졌다.
"꺄악!"
"쿠엑!"
비명을 지르며 나뒹군 학생들은 자신들에게 무슨 일이 벌어졌는지조차 이해하지 못한 듯 엉거주춤 일어났다.
하지만 코스에서 벗어나 내게 항의하려던 학생들의 발걸음은 커다란 코스의 끝에서 멈춰졌다.
"뭐야 이게......벽?"
퉁!! 퉁!!
분명 아무것도 없는 허공인데 마치 단단한 벽이 선 것처럼 나갈 수가 없다.
당황스러움을 숨기지 못하고 있는 학생들을 향해 나는 아무렇지도 않게 코스의 뒤편으로 걸어 들어간 뒤 조용히 말했다.
"지금부터 죽어라 달려라. 달리다 죽어라. 마법을 쓰건 죽어라 달리건 너희 자유다. 다만, 뒤처지는 순간 그에 따른 페널티를 줘야지?"
잡히면 뒤진다.
그 말과 함께.
내 뒤에서 허공이 찢어지기 시작하며 마치 지옥과도 같은 음산한 공간이 드러나기 시작했다.
쿵!!! 쿵!!
그리고. 그 뜨거운 균열 너머에서 뼈인지 갑각인지 모를 거대한 손이 튀어나오기 시작했다.
"꺄아아아악!!!"
"괴, 괴물이야!"
비명을 지르며 벌떡 일어난 학생들이 한발 두발 물러난다.
자신 있게 말하던 요시아도 지금 상황이 이해가 되지 않는지 눈을 찌푸린 채 굳어버렸다.
"여기서 질문, 티미 렌다로그. 이놈의 이름을 알고 있나?"
내 질문에 티미가 파르르 떨리는 동공을 숨기지 못한 채 멍하니 중얼거렸다.
"마, 마법사의 천적......발록."
주로 화산지대에서 서식하는 대형 몬스터다. 본래는 마족이다만. 지금 이 대륙에선 의지를 잃어버린 발록들의 잔재가 남아있는 곳이 있다.
그리고 이놈들이 마법사에게 유명한 이유는.
5서클 이하의 마법에 대한 완전 면역이라는 웃긴 사실 때문이기도 하다.
당연 그 위험성 때문에 팔란 제국의 주도 아래에 모조리 도륙당한 기록은 있다.
"고서에서 많이들 봤을 거다. 제법 위압감이 장난 아니지? 잡히는 순간 너희 같은 병아리는 잿더미로 만들 만큼 강한 놈이라는 걸 믿어도 좋다."
다른 도망칠 곳도 없어졌고 유일한 탈출구는 오로지 달릴 수 있는 앞뿐이다.
말도 안 되는 상황에 더더욱 혼란이 가중됐다.
"방식을 바꾸지 20바퀴. 그게 무슨 의미겠냐. 죽을 각오를 해. 죽도록 도망가서 어디 너희가 지치는지 이 발록의 소환 시간이 끝나는지 한번 겨뤄보자고. 참고로 맞서서 싸우다 죽고 싶으면 그리해도 좋다."
그놈의 대결. 너희가 좋아하던 대결 맞잖아?
쿠웅!!!!!
내 말과 동시에 거대한 균열에서 튀어나온 화염의 뼈 거인 발록이 분노한 주먹을 땅에 내리쳤다.
-크아아아아아아!!!!
귀청을 울리는 거대한 포효소리에 학생들의 낯빛이 보기 좋게 질렸다.
묵직한 충격과 함께 사방이 뒤흔들리자 학생들은 겁을 먹는 듯 한발, 두 발 물러나기 시작했다.
분명 다리가 풀려 그 자리에 주저앉아도 이상하지 않을 위압감이지만.
녀석들은 슬금슬금 도망칠 뿐이었다. 자신이 어떻게 발록을 마주하고도 도망칠 용기가 있는 건지 전혀 이해하지 못하고 있었다.
"그 누구도 너흴 구해주지 않아, F반이라며? 학교에서도 낙제생 반으로 유명한 모양이던데, 그런 녀석들 몇몇 죽는다고 학교가 뭐라 할까."
요시아가 발작하듯 소리쳤다.
"그게 선생이라는 작자가 할 소리......"
"선생?"
비릿하게 웃어 보인 내가 말했다.
"마나 서클도 없는 인간은 마법 선생으로 받아들이기 어렵다고 하지 않았나?"
내 반박에 그녀의 표정이 일그러졌다.
"이 일은 절대 넘어가지 않을 겁니다."
"그건 그때까지 네가 살아남았을 때 정하는 거고. 움직여."
미소를 한순간에 지우고 내가 명령을 내리자 발록은 마치 충실한 종이 된 듯 학생들을 향해 다가가기 시작했다.
그리고, 그 뒤를 이어 가장 먼저 사태의 심각성을 깨달은 요시아가 비명을 지르듯 소리쳤다.
"다들 뛰어!!"
"으아아아아악!!!!!!"
"꺄아아악!!!"
눈물 콧물 다 흘리면서도 다리는 쉬지 않고 미친 듯이 달린다.
-악독한 놈......
"인간은 극한 상황에 내몰려봐야 본성이 드러나는 거다."
-결국 그대도 그대의 스승과 다를 게 하나도 없어.
"아니지, 적어도 진짜로 작살내진 않잖아."
비명을 지르며 달리는 학생들을 무시한 채 코스 밖으로 나온 나는 좀 전까지 어마어마한 위압감을 내뿜는 발록이 온데간데 사라진 것을 보며 피식 웃어 보였다.
실제 같은 환각.
아니, 애초에 발록 같은 건 이곳에 있지도 않았다.
내가 한 것은 다른 곳으로 세지 못하게 운동장 코스를 결계로 막아버린 것.
그리고. 수십 명의 학생들에게 6서클의 집단 최면 마법을 걸어준 것뿐이다.
"적어도 아무것도 없던 사람을 길가에 세워놓고 죽을 때까지 진짜 발록이 쫓아오게 두진 않잖아?"
나는 진짜 발록이 날 찢어 죽이려고 쫓아왔어. 그것도 이제 마나를 느끼기 시작하던 햇병아리 시절에.
환상과 실제는 다르다.
-그걸 말이라고......
"거기다가 공포에 다리가 풀려서 무너져 내리지도 않게 세심한 신성버프 마법까지 걸어줬고 발록의 속도의 절반밖에 안 나오게 만들었고. 저놈이 내뿜는 열기도 극도로 좁게 구현했는데."
학생들이 무리해서 육신에 손상이 오지 말라고 전체적인 신체 보호마법까지 걸어놨다. 남들에겐 발록이 보이지도, 들리지도 않으니 그저 고요한 운동장에서 흔히 볼 법한 달리기 광경일 뿐이다.
이 얼마나......
인자한 선생님이더냐.
"어때."
싱글거리는 내 말에 그녀가 질린 듯 눈을 게슴츠레 뜨고 내 뺨을 사정없이 잡아당겼다.
-애초에 마법 수업과 이 무식한 달리기가 무슨 연관이 있는지 본녀는 모르겠는데?
"왜 없어. 각 개개인의 마나 분포나 활성화, 버릇을 조사하기 위해선 본능적으로 마나가 움직이는 유산소 운동을 극한까지 몰아붙여서 시켜보는 게 최고야."
무엇이 되었건 누군가를 가르칠 때 가장 먼저 해야 할 것은 단순 무식한 주입식 교육이 아니다.
학생의 역량을 파악하고, 학생이 가진 개개인의 특성을 파악하는 것.
그것이 가장 효율적인 방법이리라.
"시간이 많지 않아도 사전준비가 미흡하면 아무 소용 없는 거다 페르세르크."
-적어도 하나는 확실해.
그녀가 단호하게 말했다.
-그대의 스승이나 그대나 똑같이 정신이 나갔다는 거.
네가 그렇게 존경하고 그리워하는 아버지가 상위 몇 명 수준으로 무식하게 가르친 건 알고 있냐?
다시 생각하니 상당히 열 받는다. 오기 전에 하레스의 전각에 불이라도 질러주고 왔어야 했는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