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97
만렙 영웅님께서 귀환하신다!
- 12권 20화
선생님이라는 작자끼리의 알력 싸움이나 그 외에 쓸데없는 자존심 싸움 같은 건 전혀 새삼스러울 것도 없다.
마탑 학회 때부터 내게 상당한 적의를 품고 있던 율리스의 수행마법사 콜린의 손이 여기까지 뻗쳐왔다는 건 안 봐도 알만한 일이었다.
"흐읍?!"
자신의 목에 뭔가 섬뜩하고 날카로운 것이 지나갔음을 뒤늦게 깨달은 A반의 부담임이 비명을 지르려던 찰나.
나는 그대로 그의 목을 틀어잡아 무릎을 꿇린 뒤 미소를 지었다.
살기가 잔뜩 섞인 미소를 말이다.
일대의 공기가 순식간에 냉각화되고 말없이 사태를 지켜보던 이들이 몸을 움츠리며 주춤거렸다.
"가서 전해."
짧게 말한 내가 눈을 빛냈다.
"성국과 마탑이 어떤 자존심 싸움을 하건 내 알 바는 아니다만, 알량한 장난질을 참는 건 이번이 마지막이다."
남들은 듣지 못하는 작은 목소리였지만 정작 듣고 있는 사내의 표정은 시시각각 파랗게 질려갔다.
"내 말."
주변을 짓누르는 듯한 묵직한 공기와 침묵 속에서 내가 조용히 입을 열었다.
"......"
"알아들었나?"
목소리는 나오지 않지만, 필사적으로 고개를 끄덕이는 그를 보며 나는 만족스레 일대에 퍼뜨렸던 힘을 순식간에 거둬버렸다.
중앙 마탑회의 장로가 된 율리스의 수행마법사로 있던 콜린은 4서클 마스터의 마법사다.
게다가 4서클임에도 불구하고 제법 여러 마탑에 큰 영향력을 지니고 있다는 말이었다.
-그런 자가 단순한 이유만으로 그대를 도발하게 한다는 건 말이 안 되지.
이유야 생각할 게 무에 있겠는가.
모든 세상 원리를 법칙으로 설명하려 하는 마법사들이 가장 거슬려 하는 존재가 바로 나와 관련이 있는데.
바로 성국이다.
신의 뜻 아래에 모든 것이 정해진다고 주장하는 성국과 마탑은 일면 존재 특성상 사실 크게 사이가 좋을 수가 없는 편이기도 했다.
그런 마당에 마법사의 본거지에서.
성국의 성자가.
그것도 20세도 되지 않은 소년이 고서클 마법사라는 의혹을 가지고 있다?
혹은 자신들이 오랜 시간 연구해오며 상대 세력을 누르기 위해 준비해온 이론을 반박한다?
단순한 개개인의 자존심 문제는 아니라는 소리다.
아마 콜린은 필두일 뿐이고 물속에 숨겨진 빙산처럼 그와 동조하는 이들이 제법 많을 터였다.
그래서 이런 짓을 저질렀을 것이다.
내가 A반의 부담임이라는 미끼를 물어 여기서 난리를 피우게끔 말이다.
이렇게 된다면 당연 학교 측에서도 더 이상 나를 보호할 수 없을 테니까.
내가 무언가 엄청난 것을 품고 있다는 것은 알만한 이들은 이제 다 아는 사실이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도 대륙에 속해 살아가는 인간인 이상 각기 장소의 규칙까지 어겨가며 멋대로 살 수는 없을 거라 착각하고 있다.
그래, 착각 말이다.
-지금은 조금 시기상조라 보고 있는데.
'맞아. 마음 같아선 싹 엎어버렸겠지만. 이번엔 조금 기다려주자고.'
적어도 학생들과의 약속인 보름이 지나기 전까지는.
굳은 채 나를 바라보고 있는 F반 학생들의 시선이 내게 닿는 게 보였다.
"선생님......"
생각지도 못한 차가운 모습에 두려움도 일면 품고 있지만, 이 녀석들이 내게 품고 있는 감정은 조금 달랐다.
학교의 선생이 학생을 폭행했고, 같은 동료 교사를 위협했다.
그것도 완전한 선생도 아닌 단기 계약 강사일 뿐인 내가 말이다.
이런 사태가 학교 상부에 흘러가면, 또 학교 전체에 퍼지면 어찌 될지는 뻔하다.
하지만, 반대로 저들은 간과하고 있는 사실이 하나 존재한다.
"괜......찮으세요?"
걱정 어린 표정으로 물어오는 그 모습에 나는 말없이 녀석의 머리를 거칠게 헝클어뜨려 버렸다.
"뭐가."
"그......골리아 공작가는 이 학교에 엄청난 기부금을 내고 있어요....... 만약 이 일이 알려지면......"
우물쭈물하며 손가락으로 도망치고 있는 A반 학생들과 A반의 부담임을 가리키는 소년의 표정은 말 대신 많은 것을 묻고 있었다.
실제로 지금 사태는 A반 F반 할 것 없이 다른 반의 학생들도 지켜보고 있으니 말이다.
"그래서?"
"그게......"
"그걸 너희가 신경 쓸 이유가 있나? 돌아가. 쓸데없는 걱정할 시간에 가서 다른 녀석들이나 진정시켜."
그 말과 함께 내가 돌아서자 녀석이 급히 내 옷깃을 잡았다.
"서......선생님은?!"
"조금 처리할 일이 있으니 거기 들렀다가 가마."
* * *
"망할!"
교실로 돌아온 티미는 거칠게 책상을 걷어차며 분노를 표출했다.
"그딴 게 무슨 선생이야!"
"진정해 티미."
"진정하게 생겼어?! 보시르 자식이 무슨 말을 했는지 못 들은 게 아니잖아!"
격분하는 티미의 말대로 학생들 대부분은 화가 잔뜩 나 있었다.
A반의 유명한 보시르가 저딴 성질머리를 지니고 있다는 사실은 늘상 알고 있던 일이었다.
하지만 오늘은 유별나게 평소보다 더 화가 났다.
학급 전원을 모욕했고, 요시아에게 성추행을 서슴없이 저질렀으며 급기야 제 선생을 마치 하인 대하듯 대하지 않았던가.
왜 학생들은 그런 일에 화가 나는 건지 이해하지도 못하면서 분을 풀지 못했다.
"그만해. 요시아가 가만히 있는데 너희들이 왜 난리야."
그나마 냉정한 성격의 학생인 세렌드 레타가 진정시켜보지만, 대부분은 씩씩거리는 분위기에 동승한 후였다.
"그런데 선생이라는 양반이 싸움은 안 된다고? 그런 상황에 안 싸우면 평생 당하고만 살라는 거야 뭐야!"
"정신 차려! 그럼 학생이 학교 내에서 폭력 사태를 일으켜도 된다는 거야?!"
서로 언성이 높아지고 싸움이 터지기 직전까지의 사태가 벌어졌다.
"요시아, 괜찮아?"
"내가 화날 게 뭐가 있어."
"그렇지만......"
"됐어. 아예 없는 일로 소문이 퍼지는 건 아니야."
본인의 일임에도 불구하고 요시아는 담담하게 중얼거렸다.
"그나저나 나머지 애들이 늦는데?"
그 말과 동시에 닫혀있던 교실 문이 열리며 모리 사엘른을 포함한 몇몇 아이들이 울먹거리며 들어왔다.
"모리! 무슨 일이야!"
엉엉 울며 들어오는 모리의 모습에 티미가 급히 뛰어나가 그녀를 달래보지만 모리는 티미를 보자마자 더 큰 소리로 엉엉 울며 그에게 안겨들었다.
"흐아앙!! 어떻게 해! 어떻게 해!"
평소 소극적인 성격을 지닌 모리가 이렇게 서럽게 운다는 사실이 놀라웠던 학생들은 감정을 숨기지 못한 채 모여들었다.
"대체 무슨 일이야! 모리 괜찮아?"
티미가 모리 사엘른의 등을 토닥이며 달래주자 한참 동안 울먹거리던 모리가 딸꾹질을 하며 천천히 울음을 그쳤다.
"선생님이......선생님이......"
"그 인간? 그 인간이 왜."
말을 잇지 못하는 모리를 대신해 다른 학생이 천천히 입을 열었다.
"그런 일은 학생이 하는 게 아니라 선생이 하는 거라면서......"
"무슨 소리야......"
"보시르를 아작내놨어. 데비 선생님이. 거기다가 A반 부담임 선생님까지 위협하고."
"뭐?!"
자신들이 보지 못한 사태에 놀란 학생들이 벌떡 일어났다.
"그게 무슨 말이야!"
"자기 학생 건들지 말라고......흐끅......"
결국, 그 학생도 울음을 터뜨리며 엉엉 울자 티미를 포함해 먼저 뛰쳐나갔던 학생들은 혼란스런 얼굴을 주체하지 못했다.
"그러니까......데비 선생님 그 인간이 우리를 내보내고 혼자 엎어버렸다는 말이야?"
"그것도 우리 때문에?"
보시르는 골리아 공작가 출신의 자제고 부담임은 마탑에서 제법 유세 높은 집단에 속해있다.
"나......들었어......자기 학생 건드리면 정말로 죽여버린다고. 막......"
허탈함이 주변을 감돌기 시작했다.
이것을 무엇이라 표현해야 할지 몰라 멍하니 있던 학생들 사이에서 가만히 있던 요시아가 눈을 부릅떴다.
"이거......좋지 않아."
"무슨 말이야. 요시아."
"함정이야. 누가 데비 선생님을 이 학교에서 쫓아내려고 함정을 판 거라고......"
순식간에 사태를 파악한 그녀가 심각한 표정으로 중얼거렸다.
"선생님이 학생을 폭행하고 동료 교사를 위협했어. 이게 뭘 의미한다고 생각해?"
"그렇다면......"
"선생님 지금 엄청나게 몰려있다는 소리야."
"하지만 그게 그렇게 쉽게......"
"보시르의 본가인 골리아 공작가는 이곳 샤쿤탈라에 엄청난 기부금을 매년 내고 있어. 아니라고 해도 그쪽의 입김을 무시하는 건 불가능해."
자신들의 선생이 전 마탑에 걸쳐 엄청난 투자지분을 가지고 있으며, 분기마다 달의 풀 잎사귀를 대량 판매하는 VVIP 고객이라는 것은 모르는 이들이다.
요시아의 냉철한 판단에 티미가 씩씩거렸다.
"말도 안 돼! 시비는 그놈들이 걸었는데 왜 우리가 이렇게 당해야 하는 거야?!"
"그럼.......어떻게 되는 거야?"
"나도 몰라....... 하지만 최소한 학교에서 당장 쫓겨나게 되는 건 물론이고 이쪽 업계에서 완전히 매장당하거나 여러 불이익을 안게 될 확률이......"
격분한 학생들은 이젠 그 분노의 화살을 다른 곳으로 돌리기 시작했다.
"가서 따져야겠어! 이건 옳지 않아. 아무리 싸이코 같은 선생이라도 이렇게 쫓겨나게 두는 건 용납할 수 없어."
요시아의 말과 동시에 티미가 주먹을 꽉 쥐었다.
"이 자식들이 가문의 힘을 빌린다 이거지? 좋아 집안싸움을 좋아하면 어디 한번 부딪혀 보자고."
팔을 걷어붙이며 나가려던 티미가 교실 문을 열었다.
그리고.
"으악!"
무언가에 걸려 넘어진 뒤 누군가에게 들쳐 업혀 들어왔다.
"이것들이 수업 준비하고 있으라니까 뭔 짓들이야."
아무런 일도 없다는 듯 나타난 선생의 모습에 학생들 전원이 어안이 벙벙한 표정을 지었다.
"서......선생님?"
"다들 앉아라. 오늘부터 수업내용을 바꾼다고 말했잖아."
데비 선생의 미소에 학생들은 생각했다.
이 인간이.
자기 일을 신경 쓰지 않게 하려고 아닌 척 연기를 하고 있구나 하고 말이다.
분명 때려죽이고 싶을 정도로 미운 싸이코 선생인데.
왜 자꾸 신경이 쓰이는 건지 이해할 수 없었다.
"너희와 내 만남이 이제 며칠 안 남았다. 다들 그동안 기초 트레이닝을 잘 견뎌왔으니 이제 심화 과정을 해야지."
그러거나 말거나 데비의 말에 학생들은 좀처럼 집중할 수 없었다.
"선생님!"
이윽고. 가장 먼저 어깨에 들쳐 업혀 들어왔던 티미가 항의하듯 외쳤다.
"모리의 말이 사실입니까?!"
"뭐."
"저희를 위해서 난리를 치셨다면서요!"
"아 그거?"
티미의 말에 그가 싱글거렸다.
"너희 때문이 아니야. 겁도 없이 덤벼드는 놈은 혼이 나야 하는 거다."
거짓말이라 생각하며 학생들이 입술을 깨물거나 말거나.
데비는 한결같은 표정으로 준비된 교재를 흘끗 보았다.
기본 마법사들을 위한 교제였다.
제법 공들이긴 했지만. 이딴 주입식 교육은 큰 효과를 볼 수 없다.
"다들 지금부터 마법을 연습한다."
그의 말에 셀비스가 벌떡 일어났다.
"아니 선생님! 그러니까 지금 중요한 건 수업이 아니라!"
"그 입, 꿰매줄까?"
데비의 말에 셀비스가 움찔거렸다.
"니들이 그딴 걸 왜 신경 써. 그런 복잡하고 더러운 이권 문제는 선생들이 알아서 할 일이다. 어긋난 학생은 쥐어패서라도 본래대로 되돌리는 거고. 선생이 선생으로서 해선 안 될 짓을 했으면 뒤지게 맞아야지."
그 말에 학생들은 아무런 말도 하지 못했다.
"무엇보다 니들은 내 첫 제자다. 제자 하나 못 지키는 선생이 무슨 선생이냐."
"......선생......흑......"
결국, 몇몇이 울음을 터뜨리자 분위기가 훈훈하게 돌아가기 시작했다.
하지만 그런 교실 분위기가 단번에 무너지는 데엔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지금부터 수업 들어간다. 지금부터 이 교실은 모조리 외부와 차단한다."
"네?"
"엥?"
"뭘 새삼스런 표정들이냐. 오늘부터 실전 수업에 들어간다. 지금까지의 개고생은 오늘 수업을 위해서라고 생각해라."
담담하게 말한 데비 선생이 손을 풀었다.
동시에 그의 전신으로 푸른 기류가 넘실거리기 시작했다.
"전원 덤벼라. 혈맥이 막힌 놈은 뚫고 너무 중구난방으로 뚫린 놈은 막아주마. 오늘 수업을 성공적으로 마친 녀석은 이전과는 비교도 할 수 없을 만큼 크게 성장할 거다."
그건 그거고 이건 이거지.
"니들이 그런다고 내가 수업난이도 낮춰줄 거라 생각했다면 큰 오산이야 이 자식들아."
그 작은 목소리가 왜 그렇게 서늘하게 들린 것일까. 학생들은 저마다 몸을 움츠리며 잘게 떨고 있는 자신을 발견할 수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