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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렙 영웅님께서 귀환하신다!-299화 (298/1,559)

# 299

만렙 영웅님께서 귀환하신다!

- 12권 22화

"요즘 F반 수업이 심상찮다는 말을 들었는데."

"심상찮다고?"

"아, 나도 들었어. 요즘 F반 교실 쪽에 무섭다고 아무도 가까이 안 간다더라."

"무슨 일이길래?"

샤쿤탈라의 중등부 학생들은 대부분 시간을 학급끼리 교실에서 보낸다.

물론 경쟁사이라고 해도 굳이 사이가 나쁠 것은 없었기에 주로 구내식당은 학생들 간의 자잘한 잡담이나 정보교환의 장으로 통하기도 했었다.

그렇기에 현재 샤쿤탈라 중등부 학생들의 이 구내식당에서 있었던 일은 가장 크게 소문이 퍼지기도 했다.

그렇지 않아도 얼마 전 있었던 큰 사건으로 인해 F반의 존재가 뜨거운 감자가 되어있던 찰나. 이번엔 F반 교실의 괴담에 대한 소문이 우후죽순처럼 머리를 들기 시작한 것이다.

"생각해보니 그때 그 사건 이후로 F반 학생들 전부 다 구내식당 쪽으론 오지도 않네."

"나도 좀 꺼림칙해서 가까이 가진 않았는데 말이야. 들리는 소문에 의하면 F반 교실 문에서 알 수 없는 비명소리가 들린다더라."

"비......명소리?"

서서히 모여드는 학생들의 대화에 감초가 끼얹어지기 시작했다.

"아 나도 들은 건데, 막 문앞에서 누가 문을 벅벅 긁는 듯한 소리도 나고 죽여달라는 흐느낌을 듣기도 했다던데."

꼬리에 꼬리를 물고 점점 부풀려져 가는 소문은 급기야 극단적으로 변하기 시작했다.

"솔직히 F반에 왔다는 그 임시 선생님 말이야. 정체가 좀 모호하잖아?"

"맞아. 그때 소드마스터의 상징을 보였다고 하는데 솔직히 그 나잇대에 소드마스터가 어떻게 돼."

"그렇지? 검의 최고 천재라 불리는 팔란 제국의 황녀도 10대지만 아직 익스퍼트잖아."

"어쩌면 그 선생님 말이야. 학생들을 상대로 뭔가 말 못할 짓을 저지르고 있는 게 아닐까? 이를테면......."

선생이라는 직급을 이용한 인체실험.

그 말에 몇몇 학생들이 파르르 떨며 섬뜩하다는 표정을 지어 보였다.

"에이 아무리 그래도 그렇지. 이곳 학생들 전부가 귀족가나 부잣집의 자제들인데 그런 게 가능하려고."

"그렇지? 다만 그렇다고 해도 F반 분위기가 심상찮은 건 분명해. 밤중에 교실 내에서 귀신이 우는 듯한 소리도 들렸다잖아."

"뭐야 그거......무서워."

무슨 음산한 괴담마냥 퍼져나가자 학생들은 저마다 섬뜩하다며 뿔뿔이 흩어졌다.

남은 B반 학생과 C반 학생들은 서로의 눈치를 살피더니 툭 던지듯 대화를 나누었다.

"우리 F반 쪽으로 한번 가볼래?"

"어휴 됐어. 마법제도 얼마 안 남아서 다들 준비하느라 바쁜데 그런 것에 신경 쓸 틈이 어딨어. 가서 조금이라도 연습을 더 해야지."

"그래 봐야 꼴찌는 F반 아냐? 요시아 프랑소스가 F반으로 떨어지긴 했지만 그래 본들 혼자잖아. 머릿수에 장사가 어딨어."

"요시아 프랑소스가 A반에 그대로 남아있었다면 아마 한동안 1등은 어림도 없었을 텐데."

키득거리며 말하는 그 학생들은 전혀 모르고 있었다.

중등부 학생 대부분이 무시하고 있는 F반 학생들이 무슨 짓을 저지르고 있는지 말이다.

* * *

사실상 내가 한 수업이라고 해봐야 직접적인 마나 활용능력을 높여준 것 이외엔 없었다.

그렇기에 F반의 학생들은 내가 과연 어떤 이론 수업을 할 건지에 대한 의문이 가득해 보였다.

"선생님. 이론 수업은 어떤 걸 하실건데요?"

"이쯤 되면 선생님이 대체 뭐 하는 사람인지 말해줘도 되는 거 아니에요?"

"저기, 그......오늘은 단체 대련을 안 하시나요?"

"마지막에 누구냐."

내 말에 구석에 앉아있던 작은 소년 하나가 손을 들었다가 움찔거렸다.

그리고는 시뻘게진 얼굴로 고개를 파묻어버렸다.

"그렇지 않아도 오늘도 해줄 테지만 너무 맛 들리면 세간에서 변태로 오인한다."

놀리는 듯한 내 말투에 그 학생은 파들파들 떨며 아무런 말도 하지 못했다.

"맞는데 황홀하고."

"윽......"

"맞는데 시원하고."

"그만......"

"맞는데 몸이 점점 가벼워지는 듯한 느낌이 드니 아마 대부분 같은 생각일 거다. 망할 마조히스트 같은 놈들."

"아니에요! 저흰 그런 변태가 아니라......"

상식적으론 옳지 않은 걸 알고 자신이 마조가 아니라 말할 자신은 있는데.

그 손맛을 잊을 수가 없다.

덕분에 처음 질문을 던졌던 학생 이외에 내심 대련을 기다리던 학생들 몇몇이 벌게진 얼굴로 고개를 숙여버렸다.

그중에 의외의 인물도 섞여 있자 나는 허탈한 표정이 절로 흘러나왔다.

"요시아 프랑소스. 취향 한번 독특하구나."

"당장 조용히 하지 않으면 입안에 파이어 블레스트를 던져버릴 거에요......."

"얼씨구."

그렇게 이를 부득부득 갈던 학생들이라지만 이렇게 단시간에 자신들의 변화를 겪은 녀석들은 그제야 한 가지 중요한 사실을 깨달은 듯 보였다.

노가다는 배신하지 않는다!

그리고, 그 까닭 모를 개고생 이후 자신들의 변화를 깨달은 학생들은 더 이상 수업에 대해 의문 자체는 품지 않게 되었다.

물론, 받기 싫은 것과 의문은 별개의 일이지만 말이다.

"목표는 간단하다. 지금 너희들의 서클을 단시간에 향상하는 건 불가능하다는 걸 알아둬라."

너희들은 나와는 다르니까.

"다만. 같은 2서클 3서클 마법사라도, 같은 등급의 마법사와 급이 다른 응용력, 활용능력을 가지게 해주마."

그것을 해내는 건 본인들 스스로지만, 나는 엄연히 그 활로를 열어줄 자신이 있다.

"일단 공문이다. 이번 마법제도 작년과 같은 방식으로 진행된다. 다만, 학교 상부 측에서 조금 특이한 공문을 내려보냈다."

단 한 명도 남김없이 참가할 것.

한 명이라도 빠지는 순간. 해당 학급은 기권 및 실격 처리 된다는 것이다.

"별문제 없네요. 이번엔 전원 다 참가할 테니."

"그리고 말인데......뭐야 이거."

공문서를 읽던 내 눈이 찌푸려졌다.

"1등 포상치고 너무 날로 먹는데......"

1등 해당 학급 전원 대 현자 헬리슨 발레스티아와의 면담.

웃긴 일이다.

고작 사람 하나 만나는 것이 1등 상품이라니.

하지만 어찌 보면 대단한 포상인 것도 사실이었다.

"1등 해당 학급은 대 현자님과의 면담을 마탑에서 허가한다."

"세상에!"

"대......대현자님!"

마법사 꿈나무들에게 대 현자라는 존재는 그런 의미였다. 실질적으로 멀리서나마 보는 것도 황홀한 마당에 눈앞에서 직접 대면하고 대화를 나눌 수 있다니 무궁한 영광이라는 입장이다.

너희 눈앞에 있는 인간이 그 대 현자 이상급의 마법사라는 사실을 알면 어찌 될지는 퍽 우습다만.

약속은 약속이니 굳이 그것을 들먹이진 않았다.

굳이 학생들의 마음을 싱숭생숭하게 만드는 건 교육에 하등 도움되지 않으니 말이다.

-이쯤 되면 그대도 선생님이 다됐어.

'열심히 배워놔야 해.'

페르세르크의 말에 나는 담담하게 답변을 내렸다.

-배운다고?

'내가 뭐 때문에 이렇게 열심히 학생들을 가르치고 있는데.'

단순히 첫 제자라서?

그 말이 맞다.

마법에 대한 열망이 가득한 꿈나무들을 보니 새삼 괴롭히고 싶어서?

음, 그 말도 맞다.

다만, 맹탕 자선사업 할 생각은 없었다.

이곳, 마법사들의 꿈이라 불리는 마법 학교 샤쿤탈라의 시스템이나 분위기, 혹은 수업 시스템 등을 남김없이 머릿속에 쑤셔 박아두기 위해서이기도 하다.

-설마 그대......

'돌아가는 대로 하인스 영지에 거대한 아카데미를 만들 거야. 선생 후보는 천천히 모아야겠다만. 마법, 검술, 의학, 신성학, 연금술. 궁술. 뭐, 남김없이 가르쳐줄 생각이다.'

무엇 때문이냐고?

내가 직접 계속 관리하지 않았음에도 나를 끝까지 믿고 따라와 주는 하인스 영지민들의 교육 기회를 제공하기 위해, 그리고. 재능이 있으나 돈이 없어서 학교에 입학하지 못하는 이들을 위해.

마지막으로.

공부를 하고 싶다던 뮤우의 소원을 이루어주기 위해서였다.

한다면 하고, 내 손으로 가능하면 뭐든 해낸다.

죽도록 노력해서 배운 것들을 하나도 남김없이 써먹을 생각이다.

나는.

내게 이 세상의 삶은 뭔가 새로운 도전 거리로 가득하기에 무엇이든 기회만 생긴다면 해낼 생각이었다.

단 한 명을 위해 학교를 만들겠다니 어지간히 미치지 않고서는 불가능한 일이지만, 나는 그런 행동을 하는 미치광이가 되리라.

-그건 어떤 의미로 유희에 가까워 데이비.

'틀린 말은 아니지.'

-하......세상을 그렇게 대충 사는 인간이라는 걸 세상 사람들은 알는지.

'글쎄다.'

그런 내 생각과는 별개로 대 현자와의 면담이라는 말에 눈이 초롱초롱해진 학생들이 나를 직시하기 시작했다.

"선생님. 선생님의 수업을 제대로 들으면......저희 반드시 이길 수 있나요?"

당연한 질문을 던지는 그 모습에 나는 손에 쥐고 있던 백묵 하나를 가볍게 던졌다가 받아냈다.

"죽을 고비 넘기다 보면. 알아서 다 되게 돼 있어."

참 씁쓸하지만 그게 인생의 진리더라.

걱정 마라. 분명히 말하지만 내가 배웠던 난이도보다는 확실히 낮은 간단한 수업들뿐이니.

"이제 얼마 안 남았다. 다들 죽었다고 생각하고 따라와."

* * *

샤쿤탈라에서의 계약 기간이 하루를 앞두고 빠르게 흘렀다.

나는 수식을 가르친다는 명목하에 학생들을 더욱 강도 높게 굴렸고.

처음 그 막장 수업도 견뎌냈다며 여유로워하던 학생들은 급기야 거품을 물며 수업을 탈주하려고 버둥거리는 사태까지 벌어졌다.

반면 그만큼 실력의 증진은 확실했다만.

아니 땐 굴뚝에 연기 날 리 없다고 했던가.

F반의 소문은 완전히 거짓은 아니었다.

수업을 진행하는 동안 나는 끝도 없이 녀석들을 극한으로 몰아붙였고 그것을 한번 한번 이겨낼 때마다 F반은 이전과는 비교도 할 수 없을 만큼 성장하고 있으니 말이다.

"허허, 제법 소문이 떠들썩하더군. 자네가 중등부 A반의 학생을 폭행하고 교사까지 위협했던 그 일 때문에 내가 좀 골치가 썩었네."

"어떻게 됐습니까?"

"굳이 내가 나서지 않았네. 어떻게 알았는지 골리아 공작가와 율리스, 그리고 자네에게 적대하던 청탑의 장로 브램 6급이 기를 쓰고 이 상황을 정리해버린 게지. 껄껄. 골리아 공작이 얼마나 당황했는지 무조건 괜찮다며 소리치는 모습이 퍽 장관이었네."

골리아 공작가의 가주인 골리아 공작은 제법 처신이 빠른 귀족이다. 그런 그가 내 존재를 건드렸을 때 생길 득과 실을 계산하지 못할 리가 없다.

그는 단순 고집불통의 마법사가 아니라 정치인이니 말이다.

역시 세상은 불공정거래투성이다.

"헌데, 무슨 수업을 했기에 소문이 그리 나도는 겐가. 이리 요란스런 마법 수업은 일찍이 들어본 바가 없네."

"별거 없습니다. 그보다 외통수네요. 영 집중을 못 하시는 듯한데. 제가 부탁드린 건 어떻게 되었습니까?"

내 질문에 말없이 올드 판을 바라보던 노인, 대 현자 헬리슨 발레스티아가 침음을 흘렸다.

처음엔 그래도 그가 조금 밀어붙이는 방식이었는데.

어느새 보니 완전히 손바닥 위에서 이리저리 굴려지고 있는 꼴이다.

"처음 볼 때부터 느꼈지만 자네......정말 사람인가?"

"사람입니다."

"사람이 이런 무식한 전법을 쓸 수 있다는 게 놀라울 지경이군, 대체 몇 수를 앞서본 겐가."

"필요한 것만 보는 겁니다. 그보다, 샤쿤탈라의 마법제 1등 학급포상이 너무 짜던데 그거 왜 그러신 겁니까."

내 물음에 헬리슨 발레스티아가 너털웃음을 터뜨렸다.

"껄껄. 자네 정도가 아니면 그걸 그렇게 저평가하는 사람도 없을걸세. 조금 자랑 같네만 마법사들에게 나는 일단 만나보고 싶은 1순위 인물이 아니겠나."

"어르신께서 제법 농담을 잘하시네요."

"끌끌, 마탑에서 멋대로 정한 것뿐이니 내가 무슨 힘이 있겠냐만은......그것보다 이걸 받게나."

허허 웃어 보인 그가 조용히 뒤편에 숨겨두었던 작은 상자 하나를 꺼내 내밀었다.

그 안에는 영롱한 빛을 내뿜진 않지만 은은한 빛이 새겨져 있는 돌멩이가 들어있었다.

"자네가 말한 50년 이상 된 봉인석이네. 당장 두 개를 구해줄 여력은 안 된다만. 하나 정도는 먼저 내어줄 수 있는 게지."

"고맙습니다. 솔직히 애들 보름 가르치고 받기엔 너무 과한 보상이네요."

"그래 보이는가? 맞네. 보름치고는 너무 과한 보상이긴 하지. 이것의 가치는 그 비싼 마정석보다도 한참 더 희귀한 물건이니."

일반 마나석도 아닌 마정석이다.

마탑에서도 극도로 구하기 힘든 마정석을 이렇게 오랜 시간 정제해온 물건이라면 그 가치가 보통 가치에서 머물 수가 없다.

"뭐, 따로 바라시는 게 있으십니까?"

"아니, 이미 나는 자네에게 충분한 대가를 받았네."

그가 이미 엎어질 대로 엎어진 올드 판을 가볍게 정리하며 내게 고급 재질로 된 게임판을 건네주었다.

"나뿐만 아니라 마탑 학회에서도 몇몇은 자네가 무심코 던졌던 그 말과 수식들에서 자신들이 뭘 간과하고 살고 있었는지를 깨달은 듯 보였네."

마법사란 말이다.

마법 실력의 증진을 위해선 자기 심장도 제물로 바치는 싸이코 같은 작자들이 많다.

그런 마당에 깨달음을 준 인간에게 무엇인 듯 못 해줄까.

"그리고, 나머지는 선 투자금이라고 생각하게. 이 늙은이의 시선으로 볼 때, 자네는 앞으로도 긴밀한 관계를 유지해둘 가치가 충분한 대단한 인물인 듯 보이니."

그 말에 나는 거부감 없이 상자를 받아들였다.

"헌데. 솔직히 오랜 시간 만들어온 봉인석이네만. 그걸 어디에 쓰려는 겐가? 딱히 봉인석이라고 해봐야 큰 효율성을 따질만한 곳이 없는데."

헬리슨의 질문에 나는 씁쓸하게 웃어버렸다.

"봉인석은 무언가의 힘을 이 돌 안에 가둬놓을 수 있죠, 대 현자님. 자신의 고향에서 쫓겨나고 모두에게 잊힌 채 죽어가는 가련한 사람이 있으면 어찌하시겠습니까?"

내 물음에 그가 표정을 굳혔다.

"모두에게 잊혔다라......상상만으로도 끔찍한 일이 아니겠나."

"그렇지요? 이런, 시간이 다 되었네요. 오늘은 계약수업 마지막 날입니다. 담소는 다음에 나누도록 하지요."

세상의 섭리를 구성하는 규칙은 용사 레이나의 존재를 완전히 말소했다. 이제는 나와 세계수 알을 제외하고 그 누구도 용사 레이나라는 존재를 알지 못한다.

그리고, 그 현실은 계속 유지될 것이다.

인간과 마족, 그리고 인공 천사의 혼종이 되어버렸던 용사 레이나는 완전히 사라졌다. 무리하게 인체 연성을 이용해 그녀의 혼과 만들어진 육신에 쏟아 넣는다고 해도 그녀의 몸은 얼마 가지 않아 부서질 것이다.

그렇다면 이제 남은 방법은 단 하나뿐이다.

현자의 집을 떠나 곧바로 워프를 타고 하인스 영지로 날아온 나는 지하 개인 연구실 내부로 천천히 들어갔다.

딱히 이렇다 할 무언가가 있진 않지만, 어두 컴컴한 연구실 내부에 유일하게 존재감을 발휘하는 커다란 시험관들이 내게 보였다.

다름 아닌 륀느가 있던 그 유적의 시험관을 가져와 개량해서 내가 사용할 수 있게 만든 물건이었다.

당장 여력이 안 되면 가져와서 쓰는 수밖에.

처음엔 사용법에 상당히 애를 먹었지만. 륀느의 구성과 재구성의 힘을 이용해 간단한 사용방식을 깨달을 수 있었다.

학생들을 가르치며 짬짬이 만들어온 덕분일까.

시험관 안에는 일리나와는 약간 다르지만 비슷한. 레이나와 완전히 같은 얼굴의 여성이 나신으로 잠들어있었다.

놀라운 점은 그녀의 날개뼈 쪽에 커다란 날개가 돋아있다는 점이었다.

내 취향이 동화적이지 않아 저런 것을 만든 적은 없지만. 연금술과 신의 힘이 섞이면서 저런 변화가 일어났다.

-천사라니 너무 배덕한 것 아닌가?

'저 악취미 같은 날개는 주신 프리아의 의지가 만든 거지 내가 만든 게 아니야.'

주신 프리아는 아마 그녀의 존재를 구원함과 동시에 나를 통해서 그녀의 힘을 좀 더 유용하게 사용할 하수인을 원했던 것인지도 모를 일이다.

신의 사도와는 다른. 정확히 천사라곤 하지만 천사가 아닌.

인공적으로 만들어진, 세상이 허용할 수 있는 새로운 생명을.

그녀의 육신을 구성하는 것은 흔히 쉽게 구할 수 있는 인체 연성의 기본 재료들로 만들어진 인공 육신일 뿐이다. 본래라면 절대 성공할 리 없지만 봉인석으로 그녀의 혼을 안정시켜 안착시킬 수만 있다면 그것은 곧 성공을 의미하게 된다.

성흔을 통해 사실상 처음으로 계시가 내렸다.

[이름은 발키리, 신의 의지 아래 그녀는 [지키는 자]가 될 것이다.]

이미 육신은 하인스 영지의 지하에서 반 정도 만들어져있다. 남은 것은 혼과 육신의 결합을 이뤄내고, 항체를 만들어낼 세상의 규칙에서 벗어날 유일한 힘의 존재를 담을 그릇.

고향도, 현실도 잃어버린 이에게 해줄 수 있는 유일한 구원은 이제 그뿐이다.

-그건 어떤 의미로 인체 연성에 가까운데?

"의술과 금기는 한 끗 차이야. 그리고, 이건 죽은 이를 살리는 게 아니라. 죽어가는 이를 살리는 거고."

-말장난 아니야?

"그렇게 치면 팔이 잘린 인간이 의수를 다는 것도 금기니까."

레이나의 경우 단순 못된 규칙에 의해 육신을 잃어버린 것뿐이다.

내 연금술 스승 이바는 내게 절대 인체 연성을 하지 말라 경고했다. 하지만 그 외에 다른 말도 한 바 있었다.

[데이비, 금기와 의술, 연금술은 한 끗 차이야. 그 틈을 잘 파고드는 게 진짜 진리를 탐구하는 연금술사다. 네게 도덕적 관념을 요구하지 않으마. 네가 부끄럽지 않다면. 네 능력으로 해결해. 그리고 잘못되었을 때의 책임은 스스로 지는 거다. 연금술사는 언제고 그런 책임감을 잊어선 안 된다.]

심연의 존재의 힘을 담고 섭리를 거부하는 힘을 얻은 봉인석은 완전하진 않지만, 현자의 돌과 흡사한 힘을 발휘한다.

-허면, 나머지 봉인석은 어디에 쓰려고?

레이나의 일을 해결하는 데엔 봉인석 하나면 충분하다. 하지만 나는 봉인석 최소 두 개를 요구했다.

그녀의 물음에 나는 빙그레 웃음 지었다.

"나중에 누구 뒤통수를 좀 후려칠 거야."

-누군진 몰라도 뒤통수 맞은 이는 좀 얼얼하겠군.

그녀의 말에 나는 미소를 천천히 지운 채 비어있는 시험관을 바라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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